오피니언칼럼
[광화문·뷰] “계급 주입말라” 김민기의 당부
조선일보
정우상 기자
입력 2024.05.23. 00:00업데이트 2024.05.23. 07:34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5/23/6VQHYD4HSNAJNCZHDXPRZ4WSWE/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야학 통한 교육 기회 사다리
하지만 이념·계급 교육은 반대
포용 허락 않는 극단의 터널
저항과 통합이 공존하는 음악
김민기./'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갈무리
1973년 김민기는 지금의 목동인 신정동에서 야학을 했다. 야학은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닐 수 없거나, 낮에는 공장에 다녀서 밤에 공부해야 하는 청소년을 위한 배움터였다. 국가 대신 대학생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 방영된 김민기 다큐멘터리에선 이제는 60대 후반이 된 그때 ‘신정 야학’ 교사들이 모여 김민기를 기억했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 이인용 전 삼성전자 사장, 김한 전 JB금융지주 회장이다.
당시 학생용 영어 교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니 ‘나는 노동자, 너는 자본가(I’m a laborer, You are a owner)’라는 문구가 있었다. 빈민층 학생들에게 이념 교육을 통해 계급의식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김민기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슨 사상 주입을 하려고, 정치적인 교육을 하려고 이런 야학을 하는 게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저항 가수’ 김민기는 왜 그랬을까.
김민기를 두고 “과격한 운동권 같지만 사실은 순수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고 선배였던 손학규도, 음악 친구 송창식도, 신정야학 후배들도 그렇게 김민기를 기억했다. 순수라는 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대략 정치적이지 않다는 뜻이라면 김민기가 순수했다는 평가는 절반만 맞다.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김민기는 빈민촌 야학 이후에는 인천 부평의 공장으로 갔다.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를 지은 적도 있다. 거창한 계급투쟁 이런 건 아니었지만 변혁의 주체가 도시 빈민, 노동자, 농민이라는 분명한 의식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유신 시대와 80년대 시위 현장에서 애국가처럼 불렸던 ‘아침 이슬’을 만든 김민기. 87년 민주화 이전까지 그의 모든 노래가 금지곡이 되면서 김민기는 실제와 달리 투사로 인식됐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탄탄대로를 예상했던 김민기는 예상 못 한 벽을 만났다. 민주주의 그다음, 사회주의와 반미(反美)를 추구했던 운동권은 김민기를 계급의식이 희박한 관념적 지식인으로 비판했다. 왜 노동 해방이나 조국 통일 같은 메시지를 노래에 분명히 반영하지 않느냐는 불만이었다. 혁명의 시대가 되자 김민기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기반으로 뮤지컬과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마지막까지 어린이 연극과 노래에 헌신했다. 사람들은 그를 높은 봉우리라고 했는데 자신은 그저 고갯마루에 불과하다고 했다.
학전 폐쇄를 계기로 그의 노래와 삶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민기가 민주화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는 김지하와 이문열, 황석영 같은 예술가들이 정치와 불화를 겪으며 짊어졌던 불운과 불편함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이와 달리 김민기의 ‘아침 이슬’은 시위하는 대학생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함께 부르는 노래다. 저들에 푸르른으로 시작하는 ‘상록수’는 누군가에게 저항의 노래지만 누군가에는 통합과 희망의 노래다.
지금 우리는 회색과 포용을 용납 않는 극단의 시대 속 터널을 지나고 있다. 현금 25만원을 주자 말자, 기득권 보수입네 종북 좌파입네, 분열의 언어만 박수를 받는다. 계급의식을 주입하지 말라고 한 것도 김민기고, 빈민 청소년에게 야학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를 놓아주려 한 이도 김민기다. 야학 후배였던 이인용은 이렇게 기억했다. “민기 형은 저항의 상징처럼 돼 있지만, 아마 조금 더 좋은 세상,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생각했던 것 같다.”
정우상 기자 정치부장
내나라는내가지킨다
2024.05.23 05:10:41
일부 교수, 학자, 종교인,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에 발들여 사회와 국가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되돌아보면 결국 그들 자신의 명예와 부귀영화만을 위한 것으로 비춰지는 측면도 있다. 그런 점에서 초심을 붙잡고 정치판과 거리를 두고 학전에서 연극인들을 길러낸 김민기 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하시고, 존경받을만 하다. 이런 분이 사회와 시민, 국가를 건강하게 만든다. 평생을 올곧게 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닮고 싶을 뿐이다.
답글작성
24
0
인진쑥
2024.05.23 01:03:17
김민기씨, 새삼 존경합니다. 어린이에게 사상을 주입하면 안된다는 님의 소신에 님의 노래가 새롭게 들립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답글작성
22
0
밥좀도
2024.05.23 05:34:47
무엇이든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이 개입하면 문제가 된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아쉽다.
답글작성
20
1
Henry
2024.05.23 07:03:15
김민기가 만든 노래가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려져 군부에 저항이니 어쩌니들 하지만, 막상 김민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노래를 만든적 없다고.
답글작성
7
0
뻘건곰 사냥꾼
2024.05.23 06:45:37
그러니까 70년대 생들이 공산주의 계급투쟁 교육을 많이 받아 오늘날 무조건 더불어민주공산당을 찍고 있다 즉 이나라 패망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답글작성
4
1
anak
2024.05.23 05:55:14
칼도 법도 사상도 쓰기 나름입니다.
답글작성
3
0
베토벤과 모차르트
2024.05.23 07:34:55
저 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물이요...김민기 선생의 조속한 쾌차를 기원합니다.
답글작성
2
0
씨드랙
2024.05.23 07:26:07
너 이름 희은아, 너는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
답글작성
2
1
사실과자유
2024.05.23 07:14:28
김민기..아주 순수해 보이더라. 끝까지 그렇게 가길.
답글작성
2
0
오병이어
2024.05.23 07:12:55
1부는 못 보았고 2.3부를 보면서 뒷것 김민기님의 삶과 예술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진정한 예술인 김민기님! 건강하셨으면...
답글작성
2
0
무신
2024.05.23 08:24:23
김민기를 투사로 만들고 혁명가로 만든게 누구일까? 박정희 전두환이 만들었지!!!그냥 노래나 만들고 부르는 순수한 가수로 가만히 놔뒀라면 지금 김민기는 어떤 인물이 되어있을까?
답글작성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