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년 전 관심밖이었던 제1연평해전의 승리를 더 한층 승화시키기 위한 탑제 자료입니다.
"매사 마음놓고 있을때 당한다"라는 교훈을 되세기면서 이글을 보냅니다.
1. 제1연평해전 의의
제1연평해전(第一延坪海戰)은 1999년 6월 15일에 서해 연평도서 일어난 대한민국 해군과 조선인민군 해군 간의 교전이다. 조선인민군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NLL을 2km 침범하여 일어났고 조선인민군 해군의 경비정 1척 침몰, 5척 파손, 사상자 50(전사 20, 부상 30)여명이 발생하였다. 같은 해 7월 3일,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연평해전'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차후에 제2연평해전이 일어남에 따라 이 전투는 제1연평해전으로 구분되었다.
2. 제1연평해전 사건 개요
♧ 제1연평해전 상세설명 동영상
꽃게철에 북한 어선이 대규모로 NLL 근처에서 조업을 하자 북한군이 이를 감시하러 내려왔고 그 결과 한국군과 대치하는 일이 일어났다.
북한은 1999년 6월 6일부터 15일까지 NLL 근처를 들락거리거나 NLL을 넘어오면서 몇 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한국군을 도발하고 있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로 인식되어 왔던 NLL을 무시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6월 15일 오전 북한 경비정 4척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왔다. 이에 한국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선체를 직접 충돌시키는 밀어내기로 북한 함정을 NLL밖으로 내보내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고속정이 북한 고속정에 올라타는 일이 벌어졌고 자칫 잘못했으면 큰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전 9시 28분 충돌공격을 받은 북한 청진급 경비정 1척이 갑자기 25㎜ 기관포로 공격을 시작하자 다른 함선도 이어서 공격에 가담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 정장 안지영 소령(당시 대위)을 비롯하여 당시 325호에 탑승한 장병들 중 일부가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325호는 곧바로 40mm 기관포와 20mm 시벌컨으로 응사를 가했다. 이때 북한 경비정은 오픈탑 형식이었고 대부분의 북한 수병들이 근접전을 위해 함상으로 나와 있었던지라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어서 포항급 초계함 영주함이 76㎜ 함포로 집중포화를 가했고 그 결과 북한의 신흥급 어뢰정 1척과 청진급 중형 경비정 1척 등 2척이 침몰하였으며 다른 경비정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하였다.
3. 제1.2 연평해전 비교
제1연평해전에서에서 쓰인 "충돌" 전략이 큰 효과를 거두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는데 잘못된 교전 수칙이 제1연평해전의 승전으로 별다른 문제를 지적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것이다. 결국 북한은 이를 역이용해 제2연평해전에서 대한민국 국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수뇌부는 제1연평해전의 성공적인 결과로 당시까지 해군 수칙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4. 제1연평해전 그 이후 상황
해전 직후 1시간이 채 안 되어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장성급 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이 회담에서 북한 측은 한국 측이 먼저 도발을 해왔다는 억지 주장과 NLL이 국제법상 북한에서 12해리 이내이기 때문에 함정이 출동한 지역은 북한 영해라고 선언하였지만 먼저 기습적으로 포를 쏘기 시작하고도 교전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한 북한의 주장은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회담은 양측의 입장 차이만 드러낸 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연평해전 소식은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 뉴스이긴 했지만 당시 남북관계가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던 국면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해군의 압도적인 승리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적게 끄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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