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兵으로 大國의 길 연다” 세계전략 공세적 전환
최근 배타적 ‘중화민족주의’黨憲에 명시 ‘상하이기구’ 결성 등
多者외교로 美 견제 센카쿠열도 등 지역문제 힘으로 밀어붙여
지난달 24일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25명(후보위원 포함)이 둘러앉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를 비롯해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거함 ‘중국호(號)’의 키를 쥐고 있는 25명이었다.
후진타오 총서기는 이 자리에서 지난 20년 동안 한쪽 방향으로 유지돼온 중국호의 방향타를 조정하는 중대 발언을 했다.
“평화·발전·협력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주권과 안전은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국가의 근본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과 경제를 조화롭게 건설해야 한다. 국방건설과 경제건설은 상호 촉진의 관계이므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른바 ‘국방’과 ‘경제’의 동시 추진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덩샤오핑(鄧小平)이 84년 11월 1일 중앙군사위 좌담회에서 “군대는 국가 경제건설의 대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천명한 ‘선(先)경제, 후(後)국방’이라는 전략적 방침을 20년 만에 방향 전환한 것이다.
후진타오의 이 발언은 홍콩 언론에 잠시 비쳤다가 보름쯤 뒤 중국의 대부분 관영 매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중국 최고위 지도부가 ‘부국강병(富國强兵)’ 전략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의 부국강병 전략이 외부의 위협을 방어하는 수세적인 전략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고, 통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공세적인 전략이라는 점이다. 이제 실력(칼날의 빛)을 감추며 힘을 기르거나(도광양회·韜光養晦), 평화롭게 강대국으로 우뚝 서는(화평굴기·和平?起) 전략에서 한걸음 더 나가서, 국방력을 길러 필요할 때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중국의 ‘굴기’를 방해하는 세력을 막겠다는 것이다.
중국 국방기술대학 취안린위안(全林遠) 교수는 “적극적으로 세계 군사 변화와 도전에 호응하지 않으면 국가 안전은 물론, 서방 열강에 당한 침범보다 더 심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4세대 지도부가 ‘칼날의 빛을 감추던’ 수세적인 국가 전략을 20년 만에 강병(强兵)을 강조하는 공세적인 전략으로 전환한 배경에는 급성장한 경제가 있다.
강병이 뒷받침된 공세적인 외교 전략은 ‘패권(覇權) 추구’로 이어지기 쉽다. 중국 지도부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漢)·수(隋)·당(唐)·청(淸) 왕조를 거쳐온 지난 2000년의 중국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더욱이 중국 4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이후 취해온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그런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화(中華)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한 점이다. 중국은 4세대 지도부의 등장과 함께 공산당의 헌법이랄 수 있는 당장(黨章)을 개정했다. 제1조 ‘중국 공산당은 노동자 계급의 선봉대’라는 표현을 ‘중국 공산당은 노동자 계급의 선봉대인 동시에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선봉대’라고 바꾸었다. 처음으로 당장에 중화민족을 명시했다.
중화 민족의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上海) 세계박람회 유치 성공을 거쳐 최초의 유인 위성 ‘선저우(神舟) 5호’ 발사 성공으로 이어지며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배타성을 잉태하고 있다. 지난달 지난(濟南)·충칭(重慶)·베이징(北京) 등에서 치러진 축구 아시안게임 경기에서 일본 선수들과 응원단에 야유하며 일장기를 불사르고, 차량을 파손한 것은 배타적이고 왜곡된 민족주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다자(多者) 외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다자 외교의 지향점은 세계 질서의 다극화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단극주의 질서를 허물고, 중국도 하나의 극(極)으로서 기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1년 중국·러시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참여해 결성된 상하이협력기구(SOC)는 중국이 주창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다자 간 협력기구로, 중국 외교 전략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정표다.
이뿐 아니라 중국은 4세대 지도부의 등장을 전후해 2001년 상하이 APEC 회의, 2002년 중국과 ASEAN 회의에 이어, 2002년 나토와 첫 접촉에 나섰다. 지난해 10월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아세안과 중국 간의 ‘10+1 회의’에 이어, 한국과 일본 정상도 참여한 ‘10+3’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8월부터 북핵문제 6자 회담을 주도하면서 국제문제와 지역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54년 평화공존 5원칙(주권과 영토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평등과 상호 이익, 평화 공존)을 주창한 이후 불간섭주의를 유지해온 중국 외교의 일대 변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다자 외교무대에서의 중국과, 동아시아 역내 외교에서의 중국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다자 외교에서는 국제 협력을 강조하지만, 이해관계가 자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역내, 인접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힘의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과 해양 유전 개발을 둘러싸고 군함까지 동원해 대치하는 대결 양상을 보인 데 이어, 센카쿠열도(釣魚島) 영유권 문제로도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의 서해 대륙붕 개발에 대해서도 자국 해역 침범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은근히 ‘근육’을 내보였다. 대만에 대해서는 아예 전쟁 위협으로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