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에는 남 모를 힘이 있는법...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정직이라는 빽. 좋지 않은가?
**신(新) 도끼전**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예? 아뇨?”
“그렇다면 이 은도끼가 네 도끼냐?”
“아, 내껀 그냥 쇠도끼예요.”
산신령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정직한 청년이로구나. 너에게 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줄테니, 앞으로도 정직하게 살도록 하라.”
“아, 아니 저...! 이봐!”
세 도끼를 슬쩍 던져준 산신령은 도로 호수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뭇꾼은 산신령이 뿜어낸 연기에 잠시동안 쿨럭 거리다가 힘겹게 눈을 치켜뜨며 투덜거렸다.
“예나 지금이나 저 양반은 곱게 사라지는 법이 없군, 쳇!”
나뭇꾼은 앞에 넘부러진 세 도끼 중에서 금도끼를 우선 집어들었다.
“빌어먹을! 금으로 어떻게 나무를 베! 금이 얼마나 잘 찌그러지는지 알아?”
그는 그대로 금도끼를 휘둘러 옆의 나무를 찍었다. 그러나 예외란 없는 법. 금도끼는 보기 흉할 것 까지는 없지만 나름대로 멋지게 찌그러졌고, 나무에는 흠집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금가루들이 한 일자로 주욱 수놓아져 있었다.
“후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금도끼를 집어던진 나뭇꾼은 이번엔 은도끼를 바라보았다.
“은이야 뭐, 조금은 버티겠지. 당분간은 저걸 써볼까?”
은도끼를 집어든 나뭇꾼은 방금 후려쳤던 나무를 다시한번 찍어보았다. 턱! 턱!
“...와! 이거 좋은데!”
쇠도끼에 비해 뭐 특별히 좋은 점이 있는건 아니지만 일단 무기(?)가 때깔이 고우니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리라. 나뭇꾼은 금도끼는 적당히 시중에 팔아버리기로 하고 당분간 은도끼를 사용할 생각을 품고는 약간의 나뭇짐을 더 추가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는 펜과 종이를 꺼내들고 저 금도끼가 과연 얼마나 나갈지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지금 시세로 손가락 한마디 크기 정도가 1냥 이니까... 호오, 이거 흥미로운데.”
계산 중이던 종이를 코앞으로 가져와 흐뭇한 미소를 짓던 나뭇꾼은 냉큼 금도끼를 집어들고 사이에 낀 나무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뭐 간단하게 뽑아지는 것인가. 결국 나뭇꾼은 화가 치밀었다.
“그 빌어먹을 늙다리귀신! 이거 내다 팔라고 준거 아냐? 그런 주제에 나무는 왜 끼워 놨어!”
결국 나무를 빼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밖으로 나와있는 나무 손잡이만 다른 도끼로 잘라낸 나뭇꾼은 그대로 마을의 보석상으로 달려갔다.
보석상은 나뭇꾼의 얼굴과 손에 들고 있는 금덩어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씨익 웃었다.
“나뭇꾼이 도끼날을 다 파는 경우도 있소?”
“이게 도끼날로 보이시오? 그냥 금덩어리에 지나지 않소!”
“음...”
보석상은 잠시 금도끼날(?)을 감상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0냥 정도는 나가겠소만, 중간에 나무조각이 끼워져 있어서 값이 좀 떨어지겠소.”
“뭣? 아니, 그러는게 어디있어!”
“이거 보시오! 남은 손잡이 부분도 다 남겨서 오던가 하면 빼기 쉬워서 값을 깎는 일은 없을 것이오! 헌데 그런것도 없고, 우리더러 어쩌라는 거요! 수고비로 10냥 빼서 40냥 드리겠소. 받고 나가시오!”
“...헉!”
나뭇꾼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손에 들어오는 40냥의 감촉을 전해받은 나뭇꾼은 결국 하늘을 우러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손잡이를 왜 잘랐지!”
(나뭇꾼이 좀 엽기군요 -_-; 계속 감상하시길 ^^)
투덜투덜.
쓸데없는 행동으로 10냥을 날려버린 나뭇꾼은 몹시 좋지 않은 심기를 괜히 나무한테 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끼한테 하고 있었다.
“망할 노친네... 다 그작자 때문이야.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정도가...”
“와아~”
문득 들려오는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여자아이였다.
“그 은도끼 뭐야, 오빠? 멋있다!”
“...이거? 산 속의 어떤 늙은이가 준거야.”
“...늙은이?”
소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나뭇꾼은 나무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갖고 싶어?”
“응!”
“...자.”
나뭇꾼은 은도끼가 아닌 쇠도끼를 건네주면서 연못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연못에다가 던져. 그럼 늙은이가 나올거야.”
“...연못에 도끼 던지는데 왜 할아버지가 나와?”
“해보면 알아. 잔재주가 좀 있는 늙은이라서.”
“으응. 그거 참 이상하네.”
소녀는 쇠도끼를 들고 곧장 나뭇꾼이 알려준 연못으로 향했다. 혼자 산에 들어서니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뭇꾼이 늘 지나다니는 길이라는 사실에서 약간의 위안을 가진 채 걸음을 옮겼다.
연못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소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끼를 연못 한가운데로 집어던졌다.
첨벙!
잔잔하던 연못에 거친 파도(?)가 일어나고, 소녀는 기대감에 부푼 눈으로 점차 조용해져가는 연못을 바라보았다.
...1분.
...2분.
그러나 연못은 조용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노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 내가 오빠 도끼를 그냥 버렸나봐...!”
어린 마음에 덜컥 겁이 난 소녀는 결국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그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펑!
사방으로 지독한 연기를 뿜으며 연못 한가운데 산신령이 그 거룩한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고, 산신령은 그대로 금도끼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이 금도끼가 네 도끼냐...?”
소녀는 금도끼를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소녀야 실제로 나무를 할 일도 없고, 그냥 놓고 보는 용도의 도끼라면 은도끼 보다는 금도끼가 나을 수도 있다.
소녀는 그 도끼를 갖고 싶은 욕심이 솟아서 외치고 말았다.
“네! 그게 저의 도끼예요!”
그러나 어디 산신령한테 거짓말이 통하던가?
“네 이놈! 욕심에 눈이 멀어 그따위 거짓말을! 어디 혼나봐라!”
“꺄, 꺄악! 잘못했어요!”
산신령에게 인정은 없는 법! 곧 그는 무서운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아, 야! 내가 깜빡잊고 말 안한게...”
그때 나뭇꾼이 소녀를 찾아 왔다가 산신령을 발견하고 말았다.
“어? 아! 이봐, 노인장!”
“헉?”
산신령은 깜짝 놀라서 나뭇꾼을 바라보았고 나뭇꾼은 이를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날 놀리려고 금에 나무를 끼워서 값이 떨어지게끔 만들었겠다? 각오해!”
“...커헉! 망했다!”
다급해진 산신령! 즉시 날아오는 돌을 늙어서 제대로 말도 안듣는 몸으로 간신히 피해낸 산신령은 얼른 연못 속으로 도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나뭇꾼의 동작이 더 빨랐다. 텁!
“야!”
“네, 네?”
그는 턱으로 소녀를 가리키며 협박조로 산신령을 윽박질렀다.
“얘 쇠도끼는 돌려줘야 할거 아냐. 내놔!”
“네, 네!”
다른 손에 있던 쇠도끼를 휙 소녀 앞에 던져준 산신령은 다시 연못 속으로 달아났고,
사방이 조용해지자 나뭇꾼은 훌쩍거리는 소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