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미세먼지가 끼어 흐릿하다
그 상처, 그 방황, 그 두려움과
그 삶의 황무지를 잊으라.
그리고 기억하라.
우리가 지나온 길이 그 길이
우리에게는 유일한 길이며
그 외의 다른 길은 없었다는 것을.
내딛기 힘든 그 발걸음이 없었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어렵게 버틴 그 발걸음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처럼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임을.
―― 마르타 스목(Martha Smock), 「다른 길은 없다(No Other Way」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1월 27일(토),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9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두루, 신가이버,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16.0km(1부 7.1km, 2부 8.9km)
▶ 산행시간 : 8시간 21분(점심과 버스 이동시간 포함)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4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33 - 제2영동고속도로 양평휴게소
08 : 12 - 석화리, 산행시작
08 : 50 - 389.2m봉
09 : 15 - 506.3m봉
10 : 00 - 스무나리고개
10 : 22 - △409.9m봉
11 : 00 - 507.8m봉
11 : 18 - 527.4m봉
11 : 38 - 오크밸리 골프장, 1부 산행종료, 점심
12 : 32 - 오크힐스 골프장, 스키장 넘어가는 고갯마루, 2부 산행시작
13 : 09 - 465.2m봉
13 : 18 - 469.7m봉
13 : 44 - △478.3m봉
13 : 58 - 헬기장
14 : 18 - 429.2m봉
14 : 40 - 436.4m봉
15 : 12 - 소금산(342.6m)
15 : 42 - 출렁다리
16 : 10 - 간현유원지
16 : 33 - 지정면사무소, 산행종료
16 : 50 ~ 17 : 25 - 문막(목욕)
18 : 00 ~ 19 : 15 - 천서리(저녁, 홍원막국수)
20 : 0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1부 산행 지도
1-2. 2부 산행 지도
▶ 강원도와 경기도 도계 506.3m봉
산행들머리가 원주여서 가깝기도 하지만 오지 않을 사람을 10분이나 기다려주고 출발한다.
오늘도 퍽 추운 날이다. 아침기온이 영하 19.5도까지 내려갔다고 했다. 차창에 성에가 끼어
밖을 볼 수가 없다. 잠자기 좋다. 한계령 님은 편찮은 노모를 간호하느라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였다 하고, 나는 한밤중 물난리로 잠이 태부족하다. 산행들머리가 가까운 게 흠이다.
이튿날 산에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려고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내가 별안간 깨웠
다. 벌써 새벽인가 하고 일어나자 갑자기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나가서 알아보라고 한
다. 12시였다. 소방차가 출동하였다. 경비실은 텅 비었고 돌아가는 소방차를 붙잡고 무슨 일
이 생겼느냐며 물었다. 11층 어느 집 수도계량기 연결 파이프가 터졌다고 한다. 그건 서울시
상수도과에서 처리할 일이라며 돌아간다고 한다.
11층에 올라갔다. 11층 복도는 물바다다. 관리실 직원 두 명이 지켜보고 있다. 옥상의 물탱
크를 잠갔다고 한다. 24층과 11층 사이의 파이프에 남아 있는 물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라며
수압이 워낙 세서 손을 대지 못하고 물줄기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이에 참견
하느라고 새벽 2시를 넘겼다. 제2영동고속도로 양평휴게소를 잠깐 들리고 나서 차안에서 등
산화 끈 조이는 등 미리 산행채비를 갖춘다.
석화리 물안 마을 지나고 약사전 마을을 가기 전에 이리천을 건너는 허름한 다리가 있다. 그
앞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건넌다. 산중 오지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사람이 그리웠
는지 꼬리치며 반긴다. 골짜기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잡목 움켜쥐어
가며 오른다. 더덕이 우리가 섣불리 건들지 못할 것을 알았다. 여기저기 보란 듯이 건화 달린
대물인데도 땅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하게 얼어붙어 그냥 지나칠 뿐이다.
가파른 사면이 숫제 빙판이다. 언 땅에 낙엽이 쌓이고 그 위로 눈이 살짝 덮었다.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헛걸음이 잦다. 여러 번 발길질하여 겨우 한 걸음 오른다. 내 깐에는 389.2m봉을
도계의 주릉으로 알고 오른쪽 사면을 러셀한 수적이 보이기에 냉큼 따랐다가 때 이르게 낭패
를 본다. 수적은 수직사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좁은 테라스이기도 하거니와 내리막 시늉하
며 반원을 돈다.
일행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게 멀리 가버렸다. 빙벽 오르는 발바닥 재미 보기를 그만둔
다. 아이젠을 맨다. 발밑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걸음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잣나무
숲이 전도 헷갈리게 울창한 389.2m봉을 오르고 오른쪽 사면으로 내리라는 일행의 주문에
따라 방향 꺾는다. 어둑한 잣나무 숲속을 한 피치 뚝 떨어져 내리면 설원인 안부가 나타난다.
도계 주릉의 506.3m봉이 첨봉이다. 줄줄이 긴다. 일일이 눈 쓸고 낙엽 쓸어 발판 만들어가며
오른다. 숨차면 스틱 짚고 서서 주변 경치 살핀다. 이리천 건너편 설산준봉인 성지봉과 금물
산은 나뭇가지 수렴에 가렸다. 506.3m봉을 다섯 피치로 오른다. 정상은 예전에 헬기장이었
는 듯 평평한데 지금은 잡목이 꽉 들어찼다. 오뎅타임이다. 겨울 산은 어쩌면 산정에서 오뎅
을 먹으려고 오는 것 같다.
2. 스무나리고개 주변
3. 수목장인 하늘숲 추모원 뒤쪽 사면
4. 멀리 가운데는 금물산
5. 하늘숲 추모원 뒤쪽 사면
6. 하늘숲 추모원
7. 하늘숲 추모원 뒤쪽 사면
▶ 스무나리고개, 하늘숲 추모원, 오크밸리 골프장
남진한다. 이제 도계보다 더 긴 산줄기를 타고 소금산 넘어 삼산천까지 남진할 터이다. 한 차
례 겁나게 떨어져 내리고는 한참동안 평탄하다. 우리가 눈길에 새길 낸다. 423.6m봉 넘고 눈
밭 누비다가 잘난 능선 마루금 따라 무심코 서진한다. 방향착오. 왼쪽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흐릿한 주릉을 잡는다. 임도와 만나고 차량차단기 돌아내리면 대로가 지나는 스무나리
고개다.
예전에 이 고개에 도적이 많아서 스무 명이 모여야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
름이다. 또 다른 유래로는 스무나리고개에 좋은 묘 터가 있는데, 산이 험하고 숲이 우거져서
이 묘자리를 찾으려면 20명이 20일을 찾아야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십일리라고도
한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그래서일까? 능선 마루금 오른쪽은 하늘숲 추모원 입구다. 처음에는 하늘숲 추모원의 의미
를 알지 못하고 건조주의보(?) 때문에 산행을 제지당할 검문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왼쪽 사면으로 크게 돌아 오른다. 간벌하여 가시덤불이 득세하였다. 날선 가시는 두꺼
운 겨울바지를 따끔따끔하게 뚫는다. △409.9m봉 넘고 하늘숲에 들어서야 가시덤불에 해방
된다.
하늘숲 추모원은 국립 수목장림이다. 나무허리에 명패를 달아놓았다. 대개 나무 한 그루에
한 부부 또는 한 분을 모셨다. 명패에는 애틋한 사연도 새겨놓았다. 언뜻 ‘김교신’이라는 명
패가 눈에 띄었다. 일제 때 함석헌 등과 함께 활동했던 종교인으로 교육자인 김교신이 생각
나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보다 세 살 아래인 동명이인이다. 명패에 새긴 그의 부인의 바
램이다.
세월이 흐른 것보다
내 모습을 더 많이 변하게 하여요.
그대 흐르는 세월보다는
조금씩만 적게 변하여요.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나는 날
내가 쉽게 그대를 알아볼 수만 있게요.
봉봉을 오르고 내린다. 잔매에 골병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수목장림 잘 가꾼 울창한 소
나무 숲을 간다. 볼만하다. 산정무한 님이 후미로 내 뒤에 오기에 오늘 나를 살리는구나 하고
발걸음이 덩달아 사뭇 느긋했는데 507.8m봉에 올라 휴식할 때야 산정무한 님이 컨디션 난
조로 탈출한 줄을 알았다. 얄궂다. 내가 좀 더 즐기게 버텨주지 않다니.
527.4m봉은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는다. 차라리 직등할 것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찔하게 가파른 설사면이다. 어렵사리 주릉에 들고 점심때가 되었다. 통통한 지능선
잡아 하산을 서두른다. 설벽에 미끄러지고 넘어져 아예 엉덩이 썰매로 내리다 보니 더 내릴
수가 없어 아쉽다. 덤불숲 뚫고 머리 내밀어 오크밸리 골프장이다. 도로 양쪽에 골프장을 조
성하였다.
골프장 벗어나서 한적한 음식점 너른 주차장 한쪽에 바람 차벽 만들어 점심자리 편다. 따뜻
한 듯해도 기온이 영하 8도다. 버스의 뒤쪽 트렁크에 넣고 다니는 10리터 물통의 물이 얼었
다. 소불고기 볶고 콩나물라면 끓여 한편 백주, 소주, 탁주 안주하니 만복이 금방이다. 오늘
도 산을 어렵게 만들어 가게 생겼다. 부른 배 어르며 오크밸리 스노우파크 스키장으로 넘어
가는 산간 고갯마루로 이동한다.
8. 하늘숲 추모원. 소나무 한 그루에 대개 한 부부를 묻었다
9. 성지봉, 그 오른쪽 뒤는 금물산
10. 오크밸리 골프장
11. 오크밸리 스키장
12. 오크밸리 스키장, 인공으로 제설한 눈인데 입자가 아주 곱다
13. 치악산
▶ 소금산, 출렁다리
스키장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튼튼하게 철조망을 쳤다. 능선 마루금을 철조망 바깥의
비탈진 데로 밀어냈다. 느닷없는 험로를 만난다. 주기가 확 달아난다. 인공의 제설한 눈은 밀
가루처럼 입자가 아주 곱다. 그런 눈이 매끄럽고 딴딴하게 쌓였다. 설벽이다. 한 발만 삐끗하
면 저 아래 골창에 처박힐 것이라 한 발 한 발이 아주 조심스럽다. 철조망에 오른손 오지를
끼워가며 오른다.
스키장 꼭대기에 오르고 잡목 숲 헤친다. 오전에 이어 다시 봉봉 오르고 내리기를 시작한다.
심산이다. 봉마다 굴곡이 무척 심하다. 469.7m봉을 넘고 469.7m봉은 제법 사나운 암릉 암
봉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그 다음 △478.3m봉 오르는 능선은 암릉의 흉내
만 냈을 뿐이다. 직등이 순로다. 두루 님은 지레 겁을 먹고 왼쪽 사면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거기는 설벽이었다. 그 점잖은 입에서 자책이 섞인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478.3m봉의 삼각점은 2부 산행의 최고봉답게 2등 삼각점이다. ‘원주 24, 1988 재설’. 조
금 더 가면 너른 헬기장이 나온다. 양광이 가득하여 휴식하기 좋다. 웬만한 날씨이면 조망이
썩 좋을 곳이다. 치악산 비로봉, 남대봉, 시명봉, 가리파재 지나 백운산, 십자봉 연봉이 희미
하게 반공에 드리웠다. 바윗길 소나무 숲 내리고 429.2m봉은 왼쪽 설사면을 돌아 넘는다.
436.4m봉은 온 길과 갈 길을 살필 수 있는 경점이다. 쭉쭉 내리는 가파른 사면도 이제 곧 끝
날 것이라 조금은 아쉽다. 소금산 둘레길 대로에 든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먼지가 풀풀 인
다. 통나무계단 잠깐 오르면 간이운동기구와 벤치가 놓인 소금산 정상이다. 산 이름 작명의
유래가 궁금하였다. 국립지리정보원의 중앙지명위원회가 아닌 원주시에서 작명한 이름이다.
혹시 정선의 염장산처럼 소금을 묻어서일까?
메아리 대장님의 추측이 맞았다.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섬강의 푸른
강물과 넓은 백사장, 삼산천 계곡의 맑은 물에 기암, 준봉이 병풍처럼 그림자를 띄우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는, ‘금강산을 떼어다가 조그맣게 옮겨놓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금
강산이 지니고 있는 산세를 갖춘 듯하다 하여 이름 붙은 산’이라고 한다.
출렁다리를 보러간다. 온 길을 잠깐 뒤돌아 출렁다리로 쪽으로 간다. 중무장한 등산객은 우
리들뿐이다. 어색하다. 대부분 빈손에 운동화 신은 간편복장이다. 절벽 위 아찔한 전망대를
들러 소금산을 바라보고 내리쏟는다. 출렁다리. 정식 명칭은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이다. 지
난 1월 11일에 개통하였다. 높이 100, 길이 200m, 폭 1.5m.
많은 행락객들이 올랐다. 우리 일행이 출렁다리를 배경하여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인파
에 뒤섞이는 바람에 가망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념사진을 찍
어주느라 뒤처진다. 출렁다리 아래는 내려다볼 수 있게 바닥을 그물식의 철제를 깔았다. 고
소공포나 오금이 저리는 아찔한 맛은 혼자 혹은 몇몇이 띄엄띄엄 지날 때이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가니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다.
출렁다리 지나고 간현유원지 쪽으로 내리는 길은 외길인 데크로드다. 오가는 사람의 교행이
가능한 데크로드는 무려 500m에 달한다. 대역사였다. 가다서고 또 가다서고 지체와 정체를
반복한다. 이러하니 우리 버스는 주차장에 세울 여지가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간현역 근처
88번 지방도로 갓길에 주차하였다. 걷는 시간이 늘어나니 일당(8시간 산행)을 넉넉히 채
운다.
14. 백운산
15. 오크밸리 스키장에서 우리가 넘어온 산들
16. 소금산 정상에서
17. 소금산 아래 출렁다리, 지난 1월 11일에 개통하였다
18. 소금산과 간현유원지
첫댓글 특산물 대신 특식도 좋았네요. 가끔 시도해 볼만합니다.
근교산이지만 호젓해서 좋았는데, 출렁다리부근에서 인파를 만나 시껍했씁니다^^
저의 소금산행 하이라이트는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왼 사면길 가다가 직벽 사면을 오르느라
땀도 어지간히 나구요.
그동안 농축해 놓은 진액들을 다 부어낸 듯합니다.
굴러떨어지는 뻔도 하구요 ~
간만에 오지 댕겨오니,
맘몸이 아주 좋아합니다 !!!
저녁만찬,
고픈배..따끈한 육수는
그날의 모든 피로를 풀어주는 순간이었네요.
오지산행도 생각(맛을 찾아서)이 변하고 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