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옛詩 (6) 漢 詩 (3) 朝鮮 前期 (1)
朝鮮 前期 (1)
登白雲峰(등백운봉) -李成桂
引受攀蘿上碧峰(인수반라상벽봉)/댕댕이 덩굴 잡고 상봉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일암고와백운중)/암자 하나 구름속에 위치해 있네.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눈에 띄는 땅이 모두 내 것이라면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강남 땅도 모두 내 것이 되리라.
(*攀; 더위잡을 반 *蘿 쑥 라 *碧; 푸를 벽 *豈 어찌 기)
*超越: 中國 楚나라·越나라 *江南: 中國의 남쪽지역
*三角山(北漢山) 白雲峰에 올라 視界에 들어오는 마을과 자연을 보며
호탕한 기상(氣像)으로 노래했다.
*李成桂(1335~1408) -朝鮮 初代國王 太祖(在位: 1392∼1398).
-本貫 全州 -字 仲潔, 君晉(卽位後) -號 松軒 -諱 成桂(卽位後 旦)
-諡號 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廟號 太祖 -陵 健元陵
妃는 韓敬敏의 딸 神懿王后, 繼妃는 康允成의 딸 神德王后이다. 先祖는 全州에 살았으며
高祖父 李安社때 間島地方으로 移住, 曾祖父, 祖父, 父親 李子春까지 元나라 地方官吏를
지냈으며, 元나라가 쇠퇴하자 李子春이 高麗에 歸化했다. 忠肅王 4년(1335) 父親 李子春과
母親 崔氏의 次男으로 咸鏡道 永興에서 出生했다. (*懿; 아름다울 의)
恭愍王 6년(1357) 柳仁雨가 雙城摠管府를 공격할 때 父親과 함께 이에 내응(內應)하여 功을
세웠으며, 後에 父親의 벼슬을 繼承해 金吾衛上將軍·東北面上萬戶가 되었다. 1361년 叛亂을
일으킨 禿魯江 萬戶를 토벌, 紅巾賊의 침입으로 開京이 함락되자, 다음해 사병 (私兵) 2,000명을
거느리고 首都奪還戰에 참가해 東北面兵馬使로 昇進했다. 元나라 나하추[納哈出]가 咸鏡道
洪原으로 침입하자 咸興平野에서 擊破했다. 1364년 元나라 燕京에 있던 崔濡가 1萬名의 군대로
平安道에 침입해 恭愍王을 廢하려하자 崔瑩과 함께 이들을 達川江에서 大破하고, 이어 女眞族의
咸鏡道侵入을 擊退해 李成桂는 모든 戰鬪에서 勝利해 武人으로서 非凡한 能力을 발휘해 密直副使로
翊戴功臣에 策錄되었다. 1368년 東北面元帥·門下省知事로 昇進, 恭愍王 21년(1372)
和寧(現 咸南 永興)府尹이 되고, 禑王 3년(1377) 開京을 위협하는 倭寇를 격퇴했다.
1380년 楊廣(現 忠淸)·全羅·慶尙道都巡察使가 되어 雲峰에서 倭寇를 소탕하고 1382년 贊成事로서
東北面都指揮使가 되었다. 다음해 李之蘭과 함께 咸鏡道에 침입한 女眞의 군대를 吉州에서 大破,
1384년 東北面都元帥·門下贊成事가 되고, 이듬해 咸鏡道 咸州에 침입한 倭寇를 격파했다.
(*愍; 근심할 민 *還; 돌아올 환 *摠; 다 총 *禿; 대머리 독 *擊; 칠 격 *濡; 적실 유 *瑩; 밝을 영
*翊; 도울 익 *戴; 일 대 *禑; 복 우 *寇; 도적 구)
禑王 14년(1388) 守門下侍中에 올라 崔瑩과 함께 權臣 林堅味등 處刑, 이때 明나라의
鐵嶺衛設置問題로 遼東征伐이 결정되자 出征을 반대했으나 拒絶되어 右軍都統使가 되어 軍事를
지휘해 北進하다가 威化島에서 回軍, 崔瑩을 제거하고 禑王을 廢한 後 昌王을 세우고, 자신은
守侍中으로서 都摠中外諸軍事가 되어 莫强한 權力을 장악했다. 다음해 鄭道傳등과 함께 昌王을
廢位하고 恭讓王을 세웠다. 恭讓王 2년(1390) 三司領事로 승진하고, 1391년 三軍都摠制使로서
趙浚등과 함께 田制改革을 斷行해 舊臣들은 經濟的基盤을 잃었으며, 그의 一派인 新進勢力은
경제적인 土臺를 構築하게 되었다.
恭讓王 4년(1392) 鄭夢周를 除去, 그 해 7월 恭讓王을 讓位시키고 스스로 새 王朝의 太祖가 되었다.
이듬해 國號를 ‘朝鮮’으로 정하고 太祖 3년(1394) 都邑을 漢陽으로 옮겼다.
1398년 제1차 王子의 亂이 일어나자 芳果(定宗)에게 禪位한 뒤 上王이 되고, 1400년 芳遠이
卽位하자 太上王이 되었다. 事大主義·排佛崇儒·農本主義를 建國理念으로 삼아 朝鮮 500년의
根本政策이 되게 하고, 官制의 整備, 兵制와 田制의 再調整등 初期國家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1402년 王子들의 權力다툼에서 빚어진 心惱로 咸鏡道 咸興에 가서 머물다가
돌아와 佛家에 歸依해 餘生을 보냈다. 廟號는 太祖, 陵은 健元陵(京畿 九里市 東九陵內)이다.
(*讓; 사양할 양 * 芳; 꽃다울 방 *果; 실과 과 *禪; 물려줄 선 *惱; 번뇌할 뇌 *廟; 사당 묘)
訪金居士野居(방김거사야거) -鄭道傳(1342~1398) -高麗末~朝鮮初 文臣·學者
秋雲漠漠四山空(추운막막사산공)/가을구름 막막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낙엽무성만지홍)/소리 없이 단풍 져 땅을 붉게 물 드렸네.
立馬溪邊問歸路(입마계변문귀로)/시냇가에 말 세워 돌아갈 길 묻 나니
不知身在畵圖中(부지신재화도중)/이 몸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어라.
(*漠; 넓을 막 *邊; 가 변)
*제목은 ’金居士가 草野에 묻혀 사는 居處를 찾아서’이다.
居士를 찾아가는 길에 가을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그 恍惚境에 陶醉된 모습을 노래했다.
(*恍; 황홀할 황 *惚; 황홀할 홀 *陶; 질 그릇 도 *醉; 취할 취)
*鄭道傳 -本貫 奉化 -出生 忠淸道 丹陽 -字 宗之 -號 三峰
刑部尙書를 지낸 鄭云敬의 長男으로 出生, 長成해 牧隱 李穡의 門下에서 修學했으며, 同門으로
鄭夢周, 李崇仁등이 있다. 恭愍王 11년(1362) 進士試에 합격, 1370 成均館 博士, 1375년
親明政策을 主張하다가 親元派의 공격을 받아 全南 羅州로 流配, 1377년 流刑을 마치고
故鄕에서 學問硏究와 後進敎育에 종사하다가 1383년 咸鏡道 咸州로 李成桂를 찾아가 交流,
1384년 鄭夢周의 추천으로 書狀官이 되어 明나라를 訪問했가. 1389년 密直副使를 지내고
昌王을 廢位하고 恭讓王을 擁立에 가담해 奉化縣忠義君에 策錄. 1394년 漢陽遷都때 宮闕과
宗廟의 위치 및 漢陽都城의 基地를 결정하고 宮·門의 모든 稱號를 정했다.
1398년 제1차 王子의 亂 때 李芳遠派에게 被殺되었다. (*隱; 숨을 은 *穡; 거둘 색
*擁; 낄 옹 *稱; 일컬을 칭)
送僧之楓岳(송승지풍악) -成石璘(1338~1423) -高麗末~朝鮮初 文臣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
高低自不同(고저자부동)/높고 낮은 봉우리 모두 달라라.
君看日輪上(군간일륜상)/떠오르는 저 태양을 볼지니
何處最先紅(하처최선홍)/어느 봉우리가 먼저 타오를 것인가.
*제목은 ‘楓嶽(金剛山)으로 가는 스님을 보내다.’로, 金剛山의 해 뜨는 光景을 노래했다.
(*楓; 단풍 풍 *璘; 옥빛 린)
*금강산은 季節에 따른 아름다움이 각각 달라,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한다. (
*剛; 굳셀 강 *蓬; 쑥 봉 *萊; 명아주 래 *楓; 단풍 풍 *嶽; 큰 산 악 *皆; 다 개 *骨; 뼈 골)
*成石璘 -本貫 昌寧 -字 自修 -號 獨谷 -諡號 文景
恭愍王 6년(1357) 文科에 及第하고 學諭·典理摠郞을 지냈다. 辛旽과 대립, 海州牧使로 左遷되고,
禑王 10년(1384) 倭寇가 昇天府(現在 開豊)에 침입하자 副元帥 楊伯淵과 出戰해 적을 격퇴하고,
輸誠佐理功臣이 되었다. 그후 楊伯淵의 獄事에 連坐되어 咸安의 戍卒로 充軍되었다가 풀려
昌原君이 되었다. 李成桂등과 함께 恭讓王을 내세운 공으로 贊化功臣이 되고, 1392년 朝鮮이
開國하자 李穡·禹玄寶一派로 추방되었다가 漢城府判事등을 거쳐 左政丞에 오르고,
太宗 1년(1401) 佐命功臣 三等으로 昌寧府院君에 봉해진 후, 1415년 領議政이 되었다. 詩文에
능하고 草書를 잘 써서 當代의 名筆로 알려졌다. (*璘; 옥 빛 린 *諡; 시호 시 *愍; 근심할 민
*諭; 타이를 유 *摠; 다 총 *旽; 밝을 돈 *遷; 옮길 천 *禑; 복 우 *寇; 도적 구 *淵; 못 연
*輸; 보낼 수 *獄; 옥 옥 *坐; 앉을 좌 *讓; 사양할 양 *贊; 도울 찬 *穡; 거둘 색 *寶; 보배 보
*丞; 정승 승 *佐; 도울 좌 *寧; 편안할 녕 *領; 거느릴 영)
鐵原懷古(철원회고) -姜淮伯(1357~1402) -高麗末~朝鮮初 文臣
山函故國千年恨(산함고국천년한)/산은 천년 한을 머금은 채 솟았고
雲抱長空萬里心(운포장공만리심)/구름은 만리 하늘에 뻗어 있네.
自古興亡皆有致(자고흥망개유치)/예로부터 흥망에는 이치가 있나니
願因前轍戒來今(원인전철계래금)/거울에 비추어 조심하라 함이라.
(*懷; 품을 회 *淮; 물 이름 회 *函; 지닐 함 *抱; 안을 포 *皆; 다 개 *致; 이를 치
*願; 원할 원 *轍; 바퀴 자국 철 *戒; 경계할 계)
*興亡에는 理致가 있으니 過去를 거울삼아 오는 일을 警戒하라는 뜻의 노래이다.
*姜淮伯(강회백) -本貫 晋州 -字 伯父 -號 通亭.
禑王 2년(1376) 文科에 及第, 簽書司事를 歷任, 1385년 密直副使, 1388년 密直使로 明나라에
다녀왔다. 昌王을 廢할 때 功으로 1389년 恭讓王이 卽位하자 推忠協輔功臣의 號를 받았으며
이어 判密直司事에 吏曹判書를 兼任했다. 王에게 佛敎排斥을 上疏하고 漢陽遷都를 中止하는데
힘쓰고, 이어 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를 지내고 政堂文學兼大司憲이 되었다.
鄭夢周의 편에서 趙浚, 鄭道傳을 彈劾했는데 恭讓王 4년(1392) 鄭夢周가 살해되자 晋陽에
流配되었다. 朝鮮建國後 太祖 7년(1398) 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다. 文集으로 <通亭集>이 있다.
(*淮; 물 이름 회 *禑; 복 우 *簽; 제비 첨 *密; 빽빽할 밀 *恭; 공손할 공 *推; 밀 추 *輔; 도울 보
*排; 밀칠 배 *斥; 물리칠 척 *疏; 소통할 소 *黜; 내칠 출 *陟; 오를 척 *憲; 법 헌 *浚; 깊게 할 준
*劾; 꾸짖을 핵 *巡; 돌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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