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와 허브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경기도 과천 '마이알레'나 양평 '봄 파머스 가든'처럼 한적한 교외 식당뿐 아니라 서울 북촌 '떼레노', 강남 가로수길 '에이블', 도산대로 근처 '보나세라', 홍대 앞 '르끌로'처럼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음식점에서도 건물 옥상이나 뒷마당의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식재료를 키운다. 요리사들은 "조금만 수고하면 싱싱한 농산물을 훨씬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다"며 싱글벙글이고, 손님들은 "맛도 좋지만 건강엔 더 좋을 것 같다"며 텃밭 딸린 식당을 반긴다.
- ‘오키친’과‘OK버거’오너 셰프인 요나구니 스스무씨는 매일 새벽 서울 계동 중앙고 정문 옆에 있는 텃밭에서 그날 쓸 채소와 허브, 식용 꽃 등을 수확한다. 샐러드의 주재료나 각종 요리의 양념, 장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계동에 사는 요리사 요나구니 스스무씨는 매일 새벽 6시면 곧장 텃밭으로 간다. 집에서 걸어 1분이 채 안 걸리는 중앙고등학교 정문 바로 옆. 옛날 주택이 있던 빈 땅을 개간했다. 이곳에서 재배한 채소와 허브는 그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키친'과 'OK버거' 음식에 두루 사용된다.
요나구니씨는 5년 전 관악산 어귀에 처음 텃밭을 일궜다. "그때만 해도 구할 수 없는 서양 허브가 대부분이었어요. 있다 해도 비쌌고요. 서양 채소가 아니라도 한국에서 먹지 않던 것들은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에서는 호박꽃이 중요한 식재료예요. 꽃 속을 리코타치즈로 채워 튀기는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요. 하지만 한국에선 호박꽃을 공급해주는 청과상이 없었어요. 인터넷을 통해 씨앗을 해외에서 사거나 외국에 나갔을 때 사와서 뿌렸죠."
- 서울 가로수길 브런치카페‘에이블’의 리코타 치즈 샐러드(위 사진). 건물 옥상에 목제 화분을 만들어 바질·루콜라·비타민·셀러리·케일·토마토 등을 재배한다.‘ 오키친’피자(아래 사진). /김성윤 기자·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스페인 음식점 '떼레노' 요리사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다가도 옥상에 뛰어올라가 요리에 필요한 타임이며 민트 따위 허브나 토마토 같은 채소, 식용 꽃을 따온다. 옥상에는 떼레노 총주방장 신승환씨가 만든 40평 규모 텃밭이 있다. 그가 텃밭을 운영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울 때다. "제가 일했던 스페인 식당 주변에 큰 밭이 있었고, 거기서 필요한 식재료를 대부분 재배해 썼어요. 여기 옥상 텃밭은 규모가 작아서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주로 허브류를 재배합니다."
신 셰프는 출근하면 옥상부터 올라가 물 주고 잡초를 제거한다. 그는 "힘은 들지만, 훨씬 싱싱한 재료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납품받는 채소·허브는 상품성 때문에 다 자란 걸 따요. 유통하는 시간이 있으니 오래 보관하기 힘들죠. 저희는 어린 잎을 쓰니까 훨씬 부드러워요. 밭에서 바로 따서 쓰니 보존기간도 길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죠. 처빌(chervil)이라는 서양 허브는 한 팩에 2000원인데, 저희가 이걸 하루에 4~5팩 써요. 그런데 처빌 씨앗을 1만원어치 사다가 키우면 한 달 넘게 씁니다."
셰프들의 텃밭 가꾸기는 '팜투테이블(farm-to-table) 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팜투테이블이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먹는다'는 운동으로, 건강과 환경에 관심 많은 소비자와 요리사들 사이 유행하고 있다. 신토불이 식재료를 먹자는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과도 닿아있다.
손님들도 텃밭이 있는 식당에 호의적이다. 신승환 셰프는 "옥상에 올라가 텃밭을 보고 싶다는 손님이 꽤 있다"고 했다. 요나구니 셰프는 "더 싱싱한 재료를 더 풍성히 쓸 수 있으니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텃밭은 요리사들에게 힐링의 공간이기도 하다. 홍대 앞 골목길에 숨어있는 '르끌로(Le Clos)'는 '프랑스 가정식'을 내세우는 식당답게 오래된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했다. 담벼락 아래 4평 남짓 작은 텃밭이 있다. 식당을 공동 운영하는 최연정·지민 자매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홍대 한복판이지만 지치고 힘들 때 우리 '비밀의 정원'인 텃밭에 가면 재충전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