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교통 분야를 향한 일본의 지원 가운데 랜드마크 사업을 꼽으라면 단연코 델리 지하철 건설이다. 1997년 2월 델리 'MRT(Delhi Mass Rapid Transport System[델리 대중교통 시스템])' 사업 제1단계 관련 대출약정서(Loan Agreement)를 체결하면서 양국 간 지하철 관련 협력을 본격 시작하였다. 2022년 말까지 무려 8,251억 엔(약 8조원)을 지원하면서 총연장 415km의 지하철망을 구성하는데 일본이 기여를 했다.
이외에도 모디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구자라트주의 최대 도시 아마다바드의 지하철, 인도 제조업의 메카인 첸나이(Chennai) 지하철,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와 인도 금융업 중심지인 뭄바이를 연결하는 고속철, 델리와 뭄바이를 연결하는 화물전용철도(Western Dedicated Freight Corridor) 등 일본이 지원하여 만든 교통 인프라는 수없이 많다.
지금까지 총 1조 7천억엔(약 17조원) 규모의 공적개발원조대출(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Loan)로 교통관련 프로젝트 70여 개를 지원하였다. 무상원조(Grant) 2건, 기술지원(Technical Cooperation) 24건을 통해 인도 내 6개 대도시(델리·첸나이·아마다바드·뭄바이·콜카타·벵갈루루)에 약 550km의 지하철망을 건설했다. 주요 고속철과 화물전용 철도를 건설하고, 다수의 주(州)에 4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인도 교통 부문에서 일본의 원조 수준은 가히 ‘넘사벽’이다.
더불어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하는 처지로서 한배에 탄 인도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는 사업에도 일본 지원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트리푸라(Tripura)주의 208번 고속도로 건설이라든지 메갈라야주(Meghalaya)와 아쌈주(Assam)를 연결하는 'Dhubri-Phulbari' 교량 건설에도 일본이 원조 자금을 투입하였다. 이들 지역은 인도에서도 소득 수준이 비교적 낮으면서도 중국 및 방글라데시와 접경한 요충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4년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발표하면서 이 지역 개발에 적극 나섰다.
이때 인도 정부를 돕고자 일본이 원조자금을 잔뜩 싸들고 나타났다. 중국 및 방글라데시와의 접경지역에 관심을 두고 정책을 펴겠다는 인도 정부 발표에 중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견제하고자 일본이 기꺼이 동참한 셈이다. 인도 처지에서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인도 경제 성장의 동반자 역할을 해왔던 일본이 다시 한번 나서이니 얼마나 고마웠을까, 상상이 된다.
2. 숲, 나무, 뿌리까지 인도를 잠식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협력해서 인도를 잠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해서 강조해야 할 점은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가 활성화되어 있는 거다. 195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며 다소 소원해졌던 양국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인도 방문 이래로 매년 정상회담을 여는 각별한 사이로 발전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일본과 인도는 더 애틋해졌다. 기시다 총리는 2023년에 2번(3월과 9월)이나 인도를 방문했다. 모디 총리도 기시다 총리가 G7 회의에 초대하여 2023년 5월에 일본을 방문해서 정상회담을 했다.
인도에는 자국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일본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총리급에서 이렇게 각별하다 보니 장·차관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일본 중앙부처 장·차관이 인도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의 주지사(Chief Minister)나 부지사(Deputy Chief Minister)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론 아무나 대접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기업의 해외투자나 주요한 계약 발주를 앞둔 주의 인사를 골라서 융숭히 대접하는 것이다.
인도의 주요 공공기관 특히, 인프라 관련 공공기관을 방문해 보면 나이 지긋한 일본인 컨설턴트가 떠억 하니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근무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워낙에 많은 분야에서 인도에 원조를 제공하다 보니 일본에서 은퇴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근무자, 엔지니어링 업체 퇴직자를 컨설턴트로 고용해서 인도에 파견하여 근무하게 하는 것이다.
본래 이들 업무는 일본이 제공한 원조 자금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더불어 철도나 도로, 통신 등을 다루는 인도 공공기관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 몇 년간 근무하다 보면 파견기관의 주요 정책이나 정보를 포착하지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다. 인도 곳곳의 주요 기관에 말초신경처럼 퍼져있는 일본인 컨설턴트들이 주요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 창구 역할을 하는 터이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가장 먼저 이들 컨설턴트를 파견한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취합한다. JICA에서는 양허성(讓許性, Concessionality; 이자율이나 상환기간 같은 대출조건이 일반 상업금융보다 얼마나 더 유리한가 하는 정도)이 높아 원조자금을 지원해야 할 프로젝트, 상업성이 높아서 민간금융기관이 지원해도 적절한 프로젝트 등을 분석한 정보를 일본의 각 기관에 제공한다. 요컨대, 최고위급부터 나서서 인도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고위급부터 실무진까지 인도를 밀착 마크하고 있으니, 일본이 인도의 인프라 시장을 싹쓸이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겠다.
3. 인도의 시선
지금까지는 인도에 원조를 제공하는 일본의 처지에서 원조를 살펴봤다면 지금부터는 인도에서 원조를 어떠한 시선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도는 해외원조자금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는 않다. 물론 장기·저금리 자금을 빌려준다면야 당연히 ‘땡큐’이겠지만, 인도로서는 원조자금을 빌려달라고 선진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릴 동기가 크지는 않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인도는 자금 사정이 그리 궁하지 않아서다.
인도는 전 세계에 거주하는 인도인으로부터 받아들이는 해외송금(foreign remittance)이 1,250억 달러가 넘는 유일한 나라다. 주로 중동의 건설 현장에 파견 나간 인도인 노동자들이 살과 뼈를 갈아 넣어서 번 돈을 부지런히 고국으로 보낸다. 이 돈이 인도 경제발전의 밑거름이다. 게다가 인도로 몰려드는 해외직접투자(FDI) 금액도 연간 약 500억 달러가량이나 된다. 여기에 비하면 1년에 약 100억 달러에 불과한 원조자금은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닌 터이다.
대부분의 수혜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도 자체적인 수혜 정책을 만들어서 이를 공여국에 지켜 달라고 요구한다. 가령, 원조 공여국이 자국산 물품을 끼워팔기 하는 ‘구속성 원조(tied aid)’는 원칙적으로 거부한다. 원조자금으로 건설공사 등을 할 경우 이 공사에는 오직 원조 공여국 기업과 인도기업만 참여할 수 있게 제한한다.
배짱부리고 체면을 중시하는 인도답게 가끔은 특정 국가로부터 오는 원조나 특정한 자연재해를 기해서 선진국이 제공하겠다는 원조를 거부하기도 한다. 일례로 2012년경 인도가 영국이 아닌 프랑스 전투기를 대량 매입하기로 하자, 영국 보수당을 중심으로 ‘배은망덕한 인도에 왜 원조를 주고 있냐?’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당시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영국 원조 안 받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해 버렸다(영국 원조가 그 이듬해부터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예 중단되지는 않았다).
참고로 그 시기가 공교로운 면이 있기도 하다. 일단 2007년을 전후해서 1,000달러를 넘겼던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5년 만에 약 1,500달러를 목전에 두면서 인도가 나름대로 성장에 자신을 느꼈다. 더불어 2013년에는 국제사회의 인도를 향한 원조가 우연히 일시적으로 감소하면서 인도가 받는 원조에 비해 자국이 해외에 하는 원조의 비율이 조금 높아졌다. 이렇다 보니, 인도가 영국을 향해 큰 소리 한번 쳐볼 만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4. 뭐, 인도도 원조를 한다고?
여기까지 읽으면 잠시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앞에 언급했듯이 인도도 원조를 한다. 이 세상 나라들이 공여국과 수혜국이라는 두 개 그룹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공적개발원조를 ‘선진국에서 가난한 개도국을 향한 단순한 자금 흐름’이라고 이해했다가는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국제 원조의 역동성을 놓친다. 인도는 매년 100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받는 수혜국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약 7억 달러(약 9천억원)가 넘는 원조를 다른 나라에 한다. 한국이 2023년 약 31억 달러를 집행했으니, 우리가 한참 내려다보는 인도가 한국의 약 1/4에 해당하는 금액을 해외원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법 눈길이 간다.
인도처럼 수혜국이며 공여국인 나라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국도 그랬었다. 한국은 1987년 경제개발협력기금(EDCF), 1991년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하면서 그전까지 산발적으로 하던 원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선진국의 원조를 계속 받았다. 달리 말하자면 대부분의 개도국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공여국이었다가 누군가에게는 수혜국인 전략을 택하고 있다. 해외원조가 단순히 못 사는 나라를 도와주는 대출이나 기술협력이 아니라 정교한 외교 수단이자 대외경제정책인 셈이다.
인도는 그렇다면 어느 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원조를 할까. 인접한 빈곤 국가들 즉, 네팔과 부탄이 인도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다. 인도 정부의 FY(회계연도)2024/2025 예산안에 따르면 부탄을 향한 원조로 207억 루피(약 2억 6천만 달러), 네팔을 향한 원조로 70억 루피(약 8,750만 달러)를 배정하였다.
반면, 최근 친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와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한 몰디브를 향한 원조액은 22%가량 깎은 60억 루피(약 7,500만 달러)를 배정하였다. 인도는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미얀마 등 이웃 국가에 원조 예산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인도가 해외원조라는 도구를 서남아 지역에서 자국패권 유지에 활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인도계 후손 또는 정착민이 많이 사는 아프리카의 모리셔스나 세이쉘은 물론 몇몇 중남미 국가에도 원조를 한다.
5. 원조를 활용한 치열한 외교전
한편, 세계 정세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두드러지며 중국의 대항마로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더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정치·군사적 목적과 자신들의 원조 정책을 연결해 왔던 미국의 행태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인도·중국·방글라데시가 접경하는 인도 북동부 지역을 향한 원조지원액을 늘리면서 인접한 벵골만에서 중국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일이 없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일본이 최대 주주로 있는 다자금융기구인 아시아개발은행을 앞장세워 인도 북동부 지역을 향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와의 패권경쟁을 피할 수 없는 중국은 네팔, 스리랑카에 이어 최근에는 몰디브를 향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원조를 중요한 수단으로 쓰고 있다. 원조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총성 없는 외교·군사 경쟁이 서남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다.
원조는 정치·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다양한 국제적 이슈를 해결하는 데에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인도는 기후변화 분야에서도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 일본 국제협력단은 인도의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산업을 지원하고자 지속해서 원조를 하고 있다.6) 2023년 3월에는 파리기후협정(Paris Agreement) 제6조에 근거하여 인도의 탄소 감축량을 일본으로 이전할 수 있는 ‘공동크레딧시스템(Joint Crediting System)’을 설치하자는데 기본적으로 합의하기도 하였다.
이 협의를 잘 진행한다면 일본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헤쳐 가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필요가 없다. 인도의 탄소 감축량을 가져다 쓰면 되기 때문이다. 양국 간 탄소감축량 이전을 위한 각종 규정과 제도가 인도에 도입될 텐데, 이를 위해 일본의 원조자금을 투입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6. 한국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원조를 형편이 어려운 나라에 제공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 순위가 대략 세계 14등 정도다. 우리가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의 규모도 세계 15등 정도이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국력이나 경제 규모에 걸맞게 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각국 인구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원조 규모를 공여국의 인구수로 나눠서 보면 <그림 15>와 같은 매우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총소득 중에서 겨우 0.18%만을 원조에 쓰는 한국은 OECD 원조위원회 회원국 가운데 그 비율로서 꼴찌에서 4번째를 차지한다. OECD 회원국 전체의 평균도 0.3%를 넘어선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얼마나 높고, 우리도 먹고 살기 어려워 죽겠는데 한가하게 해외원조 타령이나 하고 있냐?’라고 독자분들이 항의한다면.. 맞는 말이다. 우리도 힘든데 선뜻 해외원조 하자고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1953년 이후 한국에 원조를 제공했던 선진국은 과연 자국 내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어서 당장 망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한국이라는 나라에 원조를 쏟아부었을까. 그들도 나름의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를 도왔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장 먹고살기 힘들지만, 우리가 1990년대까지 받은 누적 원조가 거의 70조원에 달한다는 점, 더불어 우리가 1980년대 이후 개도국에 제공하기 시작한 원조가 아직도 그 절반에 불과한 35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금은 더 해도 되는 형편이지 않을까 한다.
비록 그 어떤 선진국도, 그 어떤 국제기구도 우리에게 ‘너네도 먹고 살 만큼 잘살고 있으니 원조 좀 많이 해라’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들 아닌가. 최소한 국제사회에 진 빚은 당당하게 갚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