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바꾼 사례가 역사상 여러 건 존재합니다. 바로 혁명과 개혁입니다. 혁명이 성공하거나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여러 건 있습니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과학 혁명, 프랑스 대혁명 등입니다. 하지만 개혁이 성공한 경우는 아마도 종교 개혁 말고는 그다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개혁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이 기억납니다. "혁명은 고기굽는 판을 송두리채 바꾸는 것이고 개혁은 고기판에 붙은 온갖 지저분한 부분을 닦아내고 녹여내는 지난한 작업이다." 다시 말해 혁명은 고기판을 통채로 교체하는 것인 반면에 개혁은 고기판에 붙은 이런 저런 그을음과 때를 벗겨내는 길고 긴 작업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 개혁은 혁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세력들은 가시적인 개혁을 이뤄내고 싶어합니다. 뭔가 잘못되고 그릇된 방향으로 간다고 판단한 것을 바로 잡고 싶을 것입니다. 권력을 잡은 세력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성향이기도 합니다. 뭔가 역사에 그 개혁의 성과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 누구도 못한 것일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과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개혁을 이뤄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개혁은 고기판에 붙은 온갖 더러운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된 묵고 묵은 그 흔적과 관습은 그냥 대충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오래 잡고 차근차근 해나가야 가까스로 이뤄낼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치 유럽에 있는 대성당들이 몇백년의 시간속에 만들어진 것과도 같습니다. 당시 고위 성직자들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또는 임기내에 대성당의 완성을 이루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결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벽돌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놓는데 그 시간이 오죽 걸리겠습니까. 빨리 빨리로 결코 이뤄낼 수 없는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아주 다릅니다. 한국의 개혁에도 그야말로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압축개혁의 성격이 존재합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그리고 이른바 의료개혁까지 그냥 압축개혁으로 밀어붙입니다. 마치 혁명과 혼동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성급한 집단이 고기판 갈아치우듯 후딱 해치워버리려는 과속때문에 매번 실패를 연발하는 것이 한국의 개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혁명은 단시일에 가능하지만 개혁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검찰을 비롯한 사법개혁입니다. 한국은 오랜기간 군사독재시절을 거쳤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 30년 이상을 군사독재시스템속에 나라가 놓여 있었습니다. 검사 판사들이 어떻게 소신을 가지고 수사하고 판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킨 판검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죄없는 인사들을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한다고 잡아다 잡다한 죄목을 씌워 갖은 고초를 준 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런 세월속에 생각이 있고 미래를 걱정하는 부류들은 한국에 검사와 판사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권력을 잡게 되자 그 여세를 몰아 사법개혁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혁명과 개혁은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놓친 것입니다. 검사 최상위 자리를 바꾼다고 개혁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개혁은 위에서 아래까지 두루두루 이뤄져야 합니다. 윗사람 그리고 차상위자 몇명을 교체한다고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장 어린 판검사부터 스스로 개혁이 이뤄져야 겨우 가능합니다. 사회적으로 판검사들이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당시 정권은 모든 것을 걸고 올인했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다 잘아시는 것처럼 입니다.검사의 기소독점권같은 초우월적 지위를 축소하려하자 검사들은 거세게 저항해습니다. 개혁의 ㄱ자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집단 반발을 사 혼돈속에 세월을 보냈습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들간의 갈등속에 세월은 흐르고 말았습니다. 다시 다른 정권으로 바뀌니 모든 것이 원위치되었습니다. 대성당을 짓다가 공사책임자가 바뀌니 다시 벽돌 다 허물고 다시 옛돌을 놓아 건물을 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언론개혁도 마찬가집니다. 노무현 정권때 언론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기자실이 비리의 온상이라며 당시 언론담당 부처의 장이 대못을 기자실에 박는 이벤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방송사 사장들도 줄줄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신문사 논설주간하던 인물을 공영방송 사장에 앉힙니다. 평생 신문기자만 한 사람이 방송 그것도 비대해질 데로 비대해진 방송공룡을 다스리게 됩니다. 물론 그가 와서 한 일들을 폄하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 일부 개혁적인 조치를 단행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본부장 국장 부장들을 갈아치운다고 회사전체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개혁적인 조치에 저항하는 세력이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들은 조직적인 반발을 시작합니다. 사장임기가 끝나고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저항은 계속됩니다. 그러다 권력이 바뀝니다. 그 저항세력들이 다시 공영방송을 장악합니다. 노 정권이 희망했던 언론개혁은 그냥 역사속 행사로 묻혀버립니다. 왜 언론개혁은 실패했을까요. 너무 서두른 탓입니다. 그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구태가 몇년만에 없어지고 새로워지겠습니까. 정말 길게 보고 시도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그 방법이 결코 쉽지 않겠죠. 쉬우면 누군 못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독립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대혼란기 그리고 한국전쟁, 이승만 독재, 4.19의거.5.16쿠데타 그리고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서울의 봄, 전두환 쿠데타,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치를 거치며 몸속에 배인 그 언론의 구악을 단 몇년만에 고치겠다고 서두른 것이 패착이라는 것입니다. 길게 보고 그런 언론 패악의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고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야지 공영방송 사장교체와 기자실 폐쇄만으로 한국의 언론개혁은 절대 이뤄지지 못합니다.
현 정부는 의료계를 개혁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의대 정원 대폭 확대를 시작으로 의사세계를 개혁하겠다는 포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뭔가 역사속에 대단한 업적으로 남기고 싶은 의지가 보입니다. 의사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예상을 했겠지요. 그런 예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밀어붙였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요. 군단위나 소도시에 산부인과가 없어 쩔쩔맨 어느 임산부의 경우를 내세웁니다.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죠. 동네에 소아과가 없어 애를 태우는 어머니가 언론에 나옵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벌쩍 뜁니다. 이런 문명화된 세상에 소아과가 부족해 어린 아이들과 부모들이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통탄할 일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의사 시스템의 문제때문에, 특히 의사수가 태부족해서 발생한 것으로 정부는 판단합니다. 돈이 되는 과에만 몰리고 돈이 안되는 과에는 지원자도 없고 특히 중소도시 이런 곳에는 소아과 산부인과가 없는 현실에 정부관계자들은 한탄을 뿜어냅니다. 이 모든 것은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정신 부재가 가져온 병폐라고 판단합니다. 인구소멸 우려 지역이기에 어린 아이가 거의 없고 임산부가 없는 것의 관련성은 그다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환자가 없어도 의사는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대정원을 대폭 확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가르칠 교수가 부족하다고 의대쪽에서 말해도 그냥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워낙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를 갈 것이니 대강당에 대거 수용해 강의해도 잘 알아들을 것이다라고 판단합니다. 의사가 대폭 증원되면 시골로도 갈 것이고 중소도시에도 의사들이 병원을 낼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가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의료개혁의 칼을 뽑아듭니다. 그런데 의사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젊은 전공의들만 참가했는데 이제는 전문의 나아가 교수들도 저항에 동참하는 분위기입니다. 동네 의원 의사들인 개업의들도 의료의 손을 놓을 태세입니다. 아주 판을 엎겠다는 저항이라고 정부는 판단합니다.
정부는 이번에는 절대 의사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의 의료체계가 일시 마비되더라도 반드시 의료개혁을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그냥 읽힙니다. 국민들의 여론과 언론도 정부편입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몸이 아파 할 수 없이 병원은 찾지만 결코 방문하고 싶지 않은데가 바로 병원 아닙니까. 의사들 돈 많이 법니다.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직종이 바로 의사 아닙니까. 그래서 집 팔고 부모들이 투잡을 하면서도 자식들 의대보내고 싶어 난리치는 곳이 한국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흐름에서 소외된 대부분의 세력은 의사들을 혐오합니다. 신 포도인 셈입니다. 그런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작아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의사 면허까지 반납하겠다고... 그렇게 마음대로 하소... 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대체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프고 싶어 아픕니까. 할 수없이 아픈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사가 없답니다. 수술도 한참 기다려야 한답니다. 중요한 수술을 잡아났는데 의사가 없어 수술을 받을 수 없답니다. 병원 주변에서는 힘든 나날이 계속됩니다. 이제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처한 한국 의료개혁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왜 지금 이렇게 의료개혁을 서두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개혁을 하기전에 사전 땅고르기 작업을 충분히 해놓았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정부관계자들과 의료계가 얼마나 만났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몇번 만나서 의견이 맞지 않는다... 협의가 불가하다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또한 지금 의사수가 부족하다고 의대 학생수를 대폭 늘려놓고 그 학생들이 의사로서 제대로 활동하려면 적어도 10년이 걸릴텐데 그때 한국의 인구구조가 어떻게 될 것이며 인공지능 AI가 의사를 대체할 가능성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연구하고 검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료개혁은 다른 개혁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다른 사법개혁이나 언론개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환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숨이 경각인 환자가 존재하니 함부로 서두르면서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료계의 리더들과 꾸준히 그리고 심도있게 다방면에 걸친 논의와 협의를 거쳐 국민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의사들의 현장 분위기도 감안해서 차근 차근 추진해도 쉬운 사인이 아닌데 급작스레 칼을 빼서 휘두르고 말을 듣지 않는 의사들을 혼내주겠다고 하면 그 의료개혁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외국에서도 그렇게 서두른 적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전광석화같이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그런 나라는 한국외에는 없는 듯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개혁은 혁명과는 너무도 다른 개념입니다. 정말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추진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이 개혁입니다. 지금껏 지구상 개혁이 성공한 것은 종교개혁밖에 없는 듯 한데 그 종교개혁도 여러 세기동안 수많은 전쟁과 인명의 희생이 따르고서야 겨우 자리를 잡은 것 아닙니까. 한국의 개혁도 마찬가집니다. 사법개혁과 언론개혁 그리고 의료개혁 나아가 연금개혁도 쉽게 될 사안이 결코 아닙니다. 차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접근하고 국민적인 합의를 이루고 당사자간의 합의도출을 시도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려를 낳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능력있고 머리좋고 배운 것이 많은 정부관계자들과 의사들이 벌이는 대결이니 서민들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도 아니지만 강자대 강자 바로 그들의 다툼에 항상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 것은 국민들 그가운데 서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같아 보입니다. 졸속이 아닌 세계적 명품을 남기기 위해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은 1882년에 시작돼 140년이 지난 아직까지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도 이번에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사안입니다.
2024년 3월 2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