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우리 애들을 깨우다가,
남편에게 말을 걸다가 문득
"여보 !
난 참으로 다정해 내가 늘 느끼는 나야"!
그래 난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친절하다.
며칠 전 오전수업 마치고 백운호수에 가서 게장백반을 먹는데 밥상을 차려주실때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맛있겠다고 인사하고, 리필해 주셔도 인사하고, 입에 음식을 물고 있을땐 살짝 몸을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
식사 마치고 카운터에 계산하며 사장님께
맛도 정성스럽고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친절하셔서 맛나고 즐거웠다고, 인사하고 나오니
함께 식사한 학생이 선생님은 인사가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면서
"우리가 돈내고 팔아주는건데 왜 계속 고마워하세요? 도리어 식당 사람이 고마워 해야지요".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 나 먹으라고 음식 만드셨고
날 위해 밥상 차려주시니 고맙고
그러니 맛나게 먹고 빈그릇에 고마운맘 수북하게 담아드려야지.."
"그래서 인사치레에 말같지 않았군요?"
"정말 맛있었고 고마워서 그런마음 들때마다 마음에 이는 생각을 표현했을 뿐이야"
그렇구나!! 우리 딸아이는 내게 말한다.
"엄마는 일을 30%만하고
70%는 응석을 부려서 땜빵한다." 고..
응석이든 애교든 다정한 말씨로 꼬시든..
어째튼 부딪쳐서 부서짐에 이르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가게하는 것은 큰 재주다 . 능력이다.
그 능력에 근본은 애정과 다정함이다.
매사에 인정을 남겨두면 후래에 서로 좋은 낯으로 보게 될것이다.
어떤 일을 결정함에
나는 인정을 기준으로한다.
'네가 좀 더 가져라' '네가 좀 더 먹어라'
새벽에 일어나 혼자 중얼거렸다.
남전 이종분(열호당 서당훈장
한국 정신문화원 석사)
평촌에서 지금 시대에 보기드문 서당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것도 남자 훈장선생님도 아닌
여자분으로서, 사서삼경과 논어 맹자등 요즘 아이들이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고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분이 제공해 주신 글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뭄에 자기 논에 열심히 물을 대 놓았습니다.
다음날 자기논에 가보니 바로 아래 논에서 자기논의 물을 다 빼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랫논의 사람을 찾아가 항의를 했습니다. 아랫논의 사람은 미안하다며
다시 그 물을 올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다음날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는 화가나서 다시한번 항의를 하였고 아랫논에서 자기논에 물을 또다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삼일째 되는날 까지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일 같이 따져 물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덯게 해야 되냐고..
그러던중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니가 한 행동을 지극히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정당한 일만 행하는 정당한 사람보다 더 나아가 사람에게 덕이되고 사랑을 가지고 더 선한일을 하기를 원한다."
마땅하고 정당한 것을 주장하는것을
율법주의라 합니다.
유대인의 멸망은 율법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미국도 극도의 사법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사는일에 '정당한 것'만 있으면
사회는 참으로 각박하고 메말라갑니다.
모든 실과나 한알의 곡식도 자신이
가진것 보다 수십배씩 선이의
열매를 맺습니다.
따뜻한 한마디,
친절한 음성, 따뜻한미소,
그것은 자그마한 선을 이루는 행위입니다.
그 자그마한 선의의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은 사랑의 바다에 이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