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3331
명심보감-112
제6 안분편
동봉
족함을 알면 언제나 즐겁고
탐욕이 많으면 근심덩어리
언제나 족한 줄 아는 사람은
빈천하더라도 또한 즐겁고
내내 족한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하나 오로지 근심뿐이다
족함을 알면 언제나 넉넉하여
종신토록 치욕이란 걸 모르고
멈출 줄 알고 때맞춰 멈추면
종신토록 부끄러움이 없다
윗사람과 견주면 그저 그러나
아랫사람과 견주면 여유가 있다
--- 경행록 ---
경행록운
지족상락 다탐즉우
지족자 빈천역락
부지족자 부귀역우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불치
비상부족 비하유여
景行錄云
知足常樂 多貪則憂
知足者 貧賤亦樂
不知足者 富貴亦憂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比上不足 比下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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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의 계열은 아래와 같다
서기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이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면
개신교 인사 16명
천도교 인사 15명
불교 인사 2명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민족대표 33인은
그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기독교계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태화관[종로 인사동]에 모였다
그들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날 때가 오후 4시 무렵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이었던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기미독립선언의 사실을 알렸다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2년 동안 구금 이후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8개월에서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 중 손병희 등은 복역 후 병사했다
33인 말고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많은 이들이 독립을 부르짖었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대한의 독립을 이룩하기에 이르렀다
민족대표 33인과 달리 48인설이 있다
대표적 이름은 종전대로 33인이다
삼일절 노래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이요
생명이며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여 이날을 길이 빛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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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lc3cry6WKA?si=3gDWyVxqiI_eGWkH/영상 삼일절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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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2024
제105주년 삼일절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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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포의새벽편지
기포의 새벽 편지-3331<명심보감-112>
실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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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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