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수필가 이규철의 세계, 하와이 紀行
북태평양 망망대양 위에 일곱 개 섬으로 이루어진 미국령 하와이 군도는, 말 그대로 태평양 위에 떠있는 진주랄 수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환상의 섬이었다. 나는 말로만 들어온 이 하와이에, 아내와 함께 4박 5일간의 여정으로 관광길에 오를 수가 있었다.
4월 9일 아직도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날 오후 김포 국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친 우리 부부는, 오후 7시 30분발 하와이행 보잉 747 칼(KAL) 여객기에 탑승하여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이륙을 기다렸다.
마침내 거대한 배행기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활주로에 진입하여 요란한 폭음을 내며 이륙하여, 장장 5,000킬로의 하와이 장정에 올랐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고도 11,000미터의 항로를 유지하고, 망망 태평양 위 무극한 하늘 위를 시속 700킬로의 속력으로 하와이를 향해 날고 또 날았다.
하와이 관광의 비수기(非需期)라 할까 경제 불황 탓인지 모르겠으나, 비행기는 탑승객을 다 채우지 못하고 3분의 1가량의 빈자리가 썰렁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대부분 미국인이고 절반에 못 미치는 아시아계 여행객 속에 우리 부부는 들뜬 분위기에서 하와이로 향했다.
하와이와 우리와는 18시간의 시차를 지닌다. 일부변경선을 넘으니 하루가 지났는데 같은 출발일인 4월 9일 우리보다 하루가 늦다. 하와이 도착 1시간 전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내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태평양 상공의 난기류에 몹시 동요하며 장장 7시간 30분을 무사히 날아온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하와이 군도가 그림과도 같이 내 시각에 다가왔다.
하와이 현지 시간 4월 9일 오전 9시 비행기가 하와이 오하우섬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해 무척이나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로비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관광회사 현지 안내인 30대 중반의 K씨의 안내로 레이꽃 공항영접을 받은 후 곧바로 관광길에 올랐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야자수로 뒤덮인 깨끗한 거리를 우리를 실은 봉고차는 막힘없이 달려, 하와이의 상징적인 관광지 진주만에 닿았다.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주둔지 진주만은, 1942년 12월 9일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처절한 타격을 받았던 그 역사의 현장이다. 그날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기념관엔 당시의 처절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전쟁유물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미국인 관광객들의 숙연한 모습들이 일본에 대한 야만성을 되새기는 듯했다.
진주만 현장에서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우린 시내관광 길에 올라, 하와이 주정부 청사가 위치한 다운타운에 있는 미국의 유일한 궁전인 이울라니 궁전과 현재 주정부 권력의 상징인 하와이 주 청사 등을 관광하고, 하와이 한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와이키키 해변 가의 퀸 캐피오래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나는 아내와 함께 낭만이 넘쳐흐르는 밤의 와이키키 해변 가를 산책하며 여독을 다독거렸다.
다음날 우린 섬 일주 관광길에 올라 다이아몬드 헤드와 한국지도 마을, 포르네시안 민속촌, 광막한 사탕수수, 파인애플 농장과 이승만 박사께서 세웠다는 하와이 한인교회, 하와이의 부의 집결이랄 수 있는 카할라 고급주택가, 중국인 모자섬 등을 관광하고, 영화배우 조미령의 토산품 가게에 들러, 조미령씨가 주는 기념 목걸이를 선사받기도 했다.
저녁엔 대형 범선 윈드 젬마호 유람선의 디너파티에 참가해 검푸른 태평양의 밤바다를 하와이안 미녀들의 하와이안 훌라 댄스를 관람하면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낭만의 선상 파티에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이국의 로맨틱한 정취에 심취하였다.
하와이 관광에서 빼어놓을 수 없다는 하와이 힐튼호텔 특설 무대에서 공연하는 세계적인 매직 쇼는, 하와이안 훌라댄스의 진수를 곁들인 진귀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나이 탓이랄까 많은 볼거리에 치우친 나머지 피곤함도 적지 않게 따르는 이틀째의 관광 일정을 마치고, 우린 삼일 째 날 하루 동안의 자유 시간을 얻어 와이키키 해변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과 어울려 해수욕을 즐기고 또한 나머지 시간 도보로 시내 관광 길에 나서기도 했다.
이 지구촌에 마지막 남은 유일한 공해 없는 낙원이라 일컫는 하와이! 과연 하와이는 말 그대로 그 설득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연 없는 맑은 공기 어느 곳이나 늘 푸른 야자수의 숲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남국의 꽃들, 잘 정비된 시가지와 도로망 즐비한 회색빛깔의 아름다운 고층 건물들, 어느 곳에서나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는 여과 없이 마실 수 있는 맑은 지하수, 어떤 곳이건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삶의 공존이랄 수 있는 지상 낙원 같았다.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진풍경, 세계도처에서 몰려온 다국적 인종시장을 방불케 하는 세계 속의 하와이었다.
섬 둘레에 걸쳐 있는 해변 가 어느 곳이건 오염된 곳이란 찾아 볼 데 없고, 태평양의 쪽빛 바닷물이 먼 바닷가에서 물보라를 일구며 해안으로 다가왔다 되가는 파도를 타고 서핑(파도타기) 족들의 묘기백출 또한 시원스런 볼거리였다. 또한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와 친절의 순리가 엄존하는 선진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일곱 개 섬으로 되어 진 하와이 군도의 인구는 약 130여만 그 중 하와이 원주민은 약 30여만 뿐이고, 미국인 일본인 한국 교민과 기타 국 등 다민족이 살고 있는 하와이 경제권은 일본인이 70%의 압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다. 어느 곳에든 안내 표지엔 영어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어 마치 일본에 온 착각마저 들게 하기도 한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어디서나 불편 없이 통할 수가 있는 곳이 하와이고 보면 과시 하와이는 일본인의 역세권에 들어 있다 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10여만의 한국 교민들도 지금은 나름대로의 경제권을 형성해, 한국의 이미지가 그런대로 부각되어 하와이 속에 한국의 인식도를 높였고, 또한 많은 한국 관광객이 드나들게 되어 관광지 설명 때 영어와 일본어 다음으로 한국어로 설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상하(常夏)의 낙원 하와이는 별다른 산업이 없고 관광 수입만으로도 족히 살아간다는 말이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 것은, 하와이에 가 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가 본 관광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가 말했듯이 하와이가 이 지구촌에서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공해 없는 지상낙원이란 예찬을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짧은 4박 5일의 하와이 관광 일정이 아쉽기는 하였으나, 그나마 보람찬 관광체험을 가슴에 담고, 태평양의 험한 역풍을 맞바람으로 나는 비행기의 귀국길에서,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는 하와이의 짙은 인상을 곰곰이 되씹는 순간들이 긴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듯했다.//
위의 글은 장인어른께서 월간 ‘純粹文學’ 1997년 9월호에 ‘하와이 紀行’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하신 한 편 수필의 그 전문이다.
희한하게도 장인어른께서는 이 글에서만큼은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내심을 털어놓지 않으셨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사실 그대로 표현해주셨다.
덕분에 하와이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 시각에서 그려볼 수 있었다.
하와이는 나도 참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한 갑자 세월 전으로 거슬러, 역대의 미국 가수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Can`t Help Falling In Love)라는 팝송을 불렀던 뮤지컬 영화 ‘블루 하와이’를 보면서 부터였다.
하와이 전역이 그 영화의 배경이었다.
그 영화로, 내 그 풍경 그 노래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언젠가는 내 꼭 하와이로 달려갈 것이라고 마음속에 단단히 작정을 했었다.
그러나 온 세계로 여행을 다 다니면서도, 내 일찌감치 작정했던 하와이 여행은 정작 실행을 못했다.
앞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계획도 아직은 없다.
그래서 장인어른께서 쓰신 이 수필은, 그 전문을 여기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이 글로서라도 하와이 여행의 느낌을 좀 전해 받을까 싶어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