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물수리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지난 4월22일 미 플로리다 데이토나비치의 재키 로빈슨 볼파크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주 보호동물로 지정된 물수리가 야구공에 맞아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뒤 류제국이라는 이름 석자가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타전됐다.
당시 보도는 류제국을 엽기적인 동물 학대범으로 몰고갔다. '특별 보호 조류인 물수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2급 범죄에 해당한다. 가해자는 500달러 이상의 벌금이나 60일 이하의 구류에 처한다.'는 플로리다 주 법을 언급하며 말이다.
그리고 8개월이 흘렀다.
지난 3일 기자는 덕수정보 고등학교를 찾았다. '물수리 사건'의 주인공 류제국이 모교에서 몸을 푼다는 제보를 받고서다. 그렇지 않아도 '마이너리그 특급' 류제국을 꼭 만나고 싶은 터였다. '왜 애꿎은 물수리를 맞혔는지? 도대체 어떤 공을 던지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등등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머리속은 복잡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덕수정보고 야구부의 자랑이라고 익히 들어왔던 '덕성관'에 서 류제국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승관은 지난해 10월 류제국이 모교 후배를 위해 기증한 실내 야구연습장이다. 물론 시설은 실내 최고다. 하지만 류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때.
신발끈을 묶고 있는 류제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몸을 풀기전이었다. '그냥 가볍게 몸푸는 정도예요. 스프링캠프를 대비해 근육을 풀고 있는 단계죠. 본격적인 훈련은 1월에 들어갑니다. ' 류제국은 매일 오후 2시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가벼운 스트레칭과 러닝, 그리고 캐치볼 정도로 어깨와 팔, 다리 근육을 푼다. 아직 웨이트는 시작하지 않는다고.
흔히들 개천에서 용났다고 한다. 하지만 류제국을 익히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용이 잠시 개천에 머물렀을 뿐'이라고 답한다. 류제국은 고교 최고 유망주였다.
2000년 제물포고와의 봉황대기 8강전에서 9이닝 동안 12탈삼진으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류제국은 이듬해인 2001년 경기고와의 청룡대기 준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준결승에서 뽑아낸 삼진만 해도 20개. 주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어 광주 진흥고와의 결승에서 삼진 12개를 솎아낸 류제국은 상대선발 김진우를 넉다운시키며 메이저리그행을 확정지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선 연고대가 목표였습니다. 2년때는 LG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한데 막상 졸업반이 되니 메이저리그로 눈높이가 올라 가데요.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운명 같은거였나봐요'
당시 LG가 제시한 계약금은 10억. 하지만 류제국은 미국을 택했다. '김진우요? 기아에서 잘나가죠? 흐.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진우가 대견스럽기도 하고요. 가끔 열받을때도 있어요. 동기생 진우는 벌써 스타가 됐는데, 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 비록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고달픈 마이너 생활이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계약금 160만 달러. 미국 진출선수 중 고졸 최고이자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류제국은 비록 물수리 사건으로 불미스러운 일도 겪었지만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싱글 A 랜싱에서의 성적은 6승 1패 1.75. 그리고 지난 8월 류제국은 더블A로 승격됐다.
'미래의 에이스'로 평가받는 뛰어난 자질을 더 이상 싱글A에서 썩힐 수 없다는 구단의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싱글 A에서 1점대였던 방어율이 더블A에서 5점대로 뛰었고,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미국진출하기 전부터 염주를 꼭 찼습니다. 더블 A로 승격되고 얼마 안돼 염주가 끊어졌어요. 그리고 내리 5연패를 하더라구요. 야구하고 5연패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더블 A 코치가 저를 부르더니 여기 왜 왔냐고 묻더라구요. 답답한 마음에 보관하고 있던 끊어진 염주를 던져버렸습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습니다.' 이후 류제국은 2연승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류제국은 정통파 오버핸드 투수다. 유연한 투구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직구가 일품이다. 거기에 체인지업과 스플리터, 커브를 구사한다. 직구 최고 스피드는 98마일.
'고교때 90마일 정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5마일이 찍혔고 올해는 최고 98마일까지 나왔어요. 하지만 직구보다는 제구에 주력합니다. 마이너리그만 해도 95마일이 수두룩해요. 문제는 얼마나 낮게 정교하게 들어가느냐죠. '
97마일의 빠른 직구와 82마일의 느린 체인지업. 완급조절은 벌써 메이저리그급이다.
<사진설명 > 류제국의 커브(위)와 스플리터(아래) 그립이다.
류제국의 커브(오른쪽 위)는 일반적인 커브 그립(왼쪽 위)과는 달리 엄지를 펴지않고 안쪽으로 굽힌다. 공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 강한 브레이킹이 걸려 낙폭이 커진다. 스플리터 그립 역시 독특하다. 류제국은 엄지를 검지쪽으로 올려잡아 공이 뜨는 것을 막는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
저녁해가 넘어갈 무렵 삼겹살 토크를 시작했다. 어린나이에 낯선 미국생활이 힘들만도 한데, 류제국은 씩씩했다.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about 물수리
올해 4월 류제국은 이방인의 서러움을 깊이 느꼈다. 플로리다 원정경기에서 '보호동물'인 물수리를 공으로 맞히는 바람에 동물학대죄로 기소되면서 미국 전역에 논란을 일으켰다.
'제가 야구공에 머리를 맞아 죽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글이 타이핑된 편지가 배달됐다는 팀동료의 귀뜸이 있었습니다. 헌데 정작 제 자신은 특별히 살해위협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당시 뉴욕메츠 산하 마이너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연습하는데 상대 벤치에서 물수리를 맞혀보라는등 조롱섞인 야유를 보냈어요. 다가와서 툭툭 머리를 건들기도 하구요. 오기가 발동해서 공을 두개 던졌는데, 신기한게 처음 던진 공이 눈앞에서 지나가는데 새가 꿈쩍도 안하더라고요. 두번째는 헉...'
사건 조사과정에서 공에 맞은 뒤 동물병원에서 폐사한 물수리가 이전에 치명적인 병을 안고 있음이 밝혀졌지만 류제국은 지역 동물학대혐의로 플로리다주 검찰에 고발됐고, 소속팀이 한단계 강등되는 혹독한 벌을 받았다. 그러나 불필요한 좌절은 아니었다. 다행히 이사건은 벌금을 무는 선에서 법적 책임이 매듭지어졌고, 개인적으로도 미국 문화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은 한해가 됐다.
'부모님께서 걱정 많이 하셨어요. 철없는 행동으로 원치않는 유명세를 탔지만, 이제는 야구로 이름을 날려야지요'
about 최희섭
'미국에 가기전에는 마이너리거들이 햄버거로 끼니를 떼워서 힘들줄 알았는데, 또 막상 안그렇더라고요. (최)희섭이형이 자주 전화로 격려해 준 것이 큰 힘이 됐어요. 형이 알고보면 진짜 귀여워요.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얼마나 애교가 많은데요. 사람들은 상상을 잘 못해요'
류제국은 지난해 남해에서도 최희섭과 함께 훈련했다. '하루는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데 희섭이 형이 시내까지 뛰어가자는 거예요. 한참을 뛰어가는데 희섭이형이 지나가는 여고생들에게 '내가 누군지 아세요?' 라고 묻는거예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면 형이 한마디해요. 제국아 야구 열심히 하면 형처럼 유명해져'
최희섭의 농때문이었을까? 류제국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붙고 싶은 상대로 주저없이 최희섭을 꼽았다. '재밌을거 같아요. 꼭 삼진잡을 겁니다.' 류제국은 미래의 탈삼진 목록에 최고타자 배리 본즈의 이름도 빼놓지 않았다. '가끔 본즈랑 붙는 꿈을 꿔요, 그런데 그꿈이 악몽이예요.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통한의 결승홈런 맞고,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을 겁니다. 과감히 몸쪽으로 찔러야죠. 자신있습니다.'
about Girl
류제국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무엇보다 힘든건 외로움일거에요. 아무도 없는데 덩그라니 혼자 밥먹을때, 게임지고 집에 왔을 때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그럴땐 정말 여자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도 시원시원하다.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액정에 새겨진 한 여자를 자랑스럽게 내민다. '착하고 참한 스타일의 여자예요. 연예인으로 치면 탤런트 손예진 스타일이요'
이달 중순 남해로 내려가 최희섭 권윤민등과 함께 본격적인 몸만들기 들어가는 류제국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잠깐 상경할 계획이다. '솔로들끼리 모여 파티하기로 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동안 친구들과 보내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올 한해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년시즌은 더블 A에서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마운드위에서 집중력만 보완한다면 시즌중 트리플 A, 가을엔 메이저리그도 가능할 겁니다. 제국이 기억해주세요'
스포츠서울닷컴 | 임근호·최우근기자 cwk7162@
사진 ㅣ 스포츠서울닷컴 김도윤기자 bobody@
첫댓글 류제국 선수 둥굴둥굴 귀엽당^^ 코리안 메져리거들 2004년 시즌엔 모두들 좋은 모습으로 우뚝 서길 바랍니다
제국이형도 지난 실수를 잊고 야구에 전념해서 코리안에이스가 되시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내년엔 류제국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꼭 볼 수 있길 바랍니당..ㅎㅎ
ㅋㅋㅋㅋ 홧이링~~~~ㅋㅋㅋ
류제국... 메이저 20승을 해도 나는 절대 그의 팬이 되지 않을 것이다.
손예진양.... ㅋㅋㅋ 실제를 한번 알아보심이 어떨지~! 그말 쏙들어갈꺼우~! ㅋㅋㅋ
니미럴...제목은 '물수리는 잊어주세요'라면서 이 써글 기자는 뭐땜시 그 때 일을 다시 상기시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