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가장 넓고, 또 가장 건조한 지역이 호주대륙이라면 의외라고 여겨질지 모른다. 여하튼 호주는 남극대륙을 제외하고는 강수량이 가장 적은 대륙이다. 호주의 연 강수량은 500mm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호주대륙의 중심부에 있는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호수인 에어호(Lake Eyre)는 지난 20세기를 통틀어 물이 찼던 것이 불과 두 번에 불과할 정도로 강수가 적었다고 한다.
호주의 중남부 내륙 대부분의 지역은 극도로 건조하여 인공적인 물의 공급이 없으면 푸른 생명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곳이다. 동부 해안 지역으로부터 불과 200Km 거리의 내륙에 자리해 있는 캔버라(Canberra)만 하더라도 강수량이 800mm에 불과하여 자연적인 강수에 의해서만은 전원적인 도시의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하지만 자연의 생명력은 질기고 강인한 것이어서 이 지역의 극심한 가뭄과 빈번한 산불에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검(Gum)이라는 이름의 나무다. 이 나무는 산불이 잦은 호주대륙의 환경에 적응해서 웬만한 불길에는 너끈히 살아남는 저항력을 키워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나무들이 살아있다고 해서 캔버라의 푸르른 아름다움이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캔버라 시내를 벗어나서 약 10Km만 길을 달리게 되면 산야의 모습은 암갈색 검은 색감의 검나무(Gum Tree) 숲과 메마른 갈색 풀의 단조로운 모습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산야의 풀씨들은 모처럼 만에 비가 내리면 일제히 솟아나 한때 푸르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금세 다시 갈색의 메마른 들녘으로 변해버리는 게 이곳의 풍경이다.
이렇게 보면, 항상 가지런하게 정돈된 캔버라의 넓고 여유로운 정원의 수목과 잔디, 풀꽃들의 새뜻한 푸르름과 아름다움은 순전히 사람들의 부단한 보살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캔버라라는 도시에서 가장 친숙한 소리를 내며 수시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Sprinkler)라는 장치 설비의 도움이 없다면 캔버라의 푸르름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캔버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숫자의 몇 배나 될 듯한 스프링클러들이 곳곳에서 가로와 정원에 물을 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칙칙대는 소리와 함께 둥그런 모양으로 물을 내 뿜는 스프링클러 헤드의 모습은 아마도 캔버라 시내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모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머물고 있던 호주 국립대학은 하나의 커다란 인공 정원이라고 할만하다. 나의 2층 기숙사 창밖으로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 위에 빨간 꽃이 피는 ‘그레빌리아(Grevillea)’라고 하는 제법 큰 키의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이 정원에도 햇살이 뜨거워지는 오전 11시쯤이 되면 어김없이 스프링클러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작동이 되는 스프링클러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이 다 쉬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는 정원사들만큼은 그들의 일손을 놓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도 가끔은 스프링클러를 구경할 수 있다. 요사이는 이 장치가 정원용으로 보다는 농업용으로 쓰이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웬만해서는 스프링클러 같은 것은 필요 없을 만큼 비도 자주 내리고 강수량도 풍부한 편이다. 겨울 한 철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건강한 푸르름이 노상 우리 주위에 풍성하게 펼쳐져 있다.
풍성하다 보면 그 가치를 쉽게 잊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푸르름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관심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없지 않아보인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둔 우리 주위의 정원이나 자투리 공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심한 가뭄을 겪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두 차례씩은 물난리를 당하기도 하는 우리로서는 물이란 참으로 고맙고도 어떤 때는 또한 야속하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흘러넘치지만 비교적 풍부한 강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처럼 국토 면적이 적고 산도 많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위스가 우리보다 결코 좋은 자연 여건이 아님에도 국토 전체가 잘 다듬어진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길모퉁이, 밭 가장자리 어느 한구석도 사람의 정성 어린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인구 일인당 국토의 단위면적으로 치자면 우리의 두 배쯤의 면적을 가꾸어야 하는 이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인구 700만 명에 불과한 스위스의 국토 면적은 우리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어림짐작으로 스위스는 인구 1인당 단위 국토 면적이 우리의 두 배임을 알 수 있다. 어찌 그리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강토의 구석구석까지 나무 아니면 꽃, 풀 아니면 농토, 목초지로 정성스레 가꾸어 보살 필 수가 있을까.
자연 여건이 그보다 더 열악하다고 할 수 있는 호주의 많은 지역에서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푸르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스프링클러 이상의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주의 지도를 보면 푸른 녹색이 살아있는 지역은 대륙의 해안을 따라 좁다랗게 표시되어 있다. 자연적인 강수에 의하여 녹색 푸르름이 유지되는 지역이 많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의 부족을 느끼고 있는 캔버라만 하더라도 시드니나 멜버른과 같이 자연 강수의 혜택을 비교적 많이 받는 호주 대분수산맥(Great Dividing Range)*의 동 측에 자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비다운 비가 내리는 지역은 호주 동부의 남과 북을 길게 연결하고 있는 이 산맥의 동부 지역으로 산맥 너머의 서부 지역은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의 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호주의 광대한 건조 지대의 녹화는 사람의 힘으로써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그 광활한 지역의 일부를 조금씩이나마 푸른 공간으로 확대`해 나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동부의 물을 끌어들여서 녹지의 면적을 서쪽으로 넓혀 나가는 것이다. 숨이 막힐 듯이 좁다란 국토에 갇혀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호주라는 나라는 그 푸르름 넓혀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끝도 없이 넓은 땅뙈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작은 땅덩어리이지만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가꾸어지지 않은 공간이 너무나 어지럽게 널려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공공기관이나 번듯한 기업에 의해서 관리가 되는 공원 녹지나 자연경관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공간의 경우에는 제법 잘 가꾸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잘 가꾸기만 하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는 것도 가꾸어진 그 공간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공적 영역을 제외한 많은 공간은 그야말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공간도 없지 않다. 폐품이 버려져 있거나 될 대로 되란 듯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공터를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들의 주위를 아름답게 가꾸고 사랑하는 이들에 비한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에 대한 관심, 가꿈과 돌봄의 정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지금도 호주 국립대학의 기숙사에서 듣고는 했던 스프링클러의 칙칙거리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또 스프링클러 소리 못지않게 이른 아침의 정원을 들깨우던 앵무새의 일종인 '쿠카투(Cookatoo)'라는 새의 경쾌한 노랫소리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스프링클러가 없이도 얼마든지 꽃과 나무를 키워 가꿀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선사 받은 축복의 우리나라. 우리가 조금씩 여유를 찾아 우리의 터전과 주변을 더 푸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2003.8.29)
첫댓글 호주 동부 연안만 스치듯 보고 온 나로서는 호주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글이군요. "누가 호주를 안다고 할 수 있으랴."라는 글을 쓰고도 싶군요. 자연과 나무는 그 자체로 기후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욕심이 이들의 생존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도 한발시 작물 재배를 위해 스프링쿨러를 작동시키기는 하지만, 광할한 호주에서 자연에 도전하는 인위적 치산에 대해서는 식물의 원초적 생존력을 조금더 관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돕니다.
우리나라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방치되어 보기싫은 공간을 재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위스의 경우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것 같네요.
다음달 호주여행가기에 정독하였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호주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막연한 생각으로 호주는 푸르고 비옥한 땅이었거든요.
이래저래 가 봐야 할 곳이 많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가보고 싶은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