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믿음의 특징/ 사도행전 10:1-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본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넬료라는 이름의 뜻은 ‘뿔, 창, 능력’입니다.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고 가이사랴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로마군의 주둔지였습니다. 그곳에서 고넬료는 로마군인들 100명을 통솔하던 장교였습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고넬료가 기도하는데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주여 무슨 일입니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천사가 떠난 후 고넬료는 세 사람을 욥바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가 거하는 집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황홀하고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이 내려오는 데 그 안에 유대인들이 먹을 수 없는 짐승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라.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서 가이샤라로 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는 고넬료와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중에 성령님께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방언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세례 베풂을 금하리요”하고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고넬료는 초대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①고넬료는 복음의 전환점에 사용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의 이 사건은 복음의 전환점이요 신앙 혁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유대인에게 갇혀있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도록 물꼬를 트게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유대인의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들어간 것입니다. 유대인의 편견,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주의는 복음의 세계화의 견고한 장벽이었습니다. 어느 유대인 랍비는 “왜 하나님은 이방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지옥에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지 않느냐? 그 유황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 땔감으로 이방인들을 만들어 놓으셨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배타적이며,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장벽을 허무는 일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고넬료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방인들도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고넬료는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②그는 로마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갔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를 학자들은 주후 60년으로 봅니다. 그 뒤 바울은 2년간 재판을 기다리다가 63년에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혔고, 64년에 네로에 의해 죽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세 분수(Tre fontana)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 수도원을 세 분수 수도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울을 사형시킬 때 바울의 목을 쳤는데 떨어진 목이 세 번 튀었고, 그 튀어 오른 자리마다 샘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곳 지하에는 1만 203명의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석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가로 5m 세로 2m의 방 두 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 전에 그곳에 머물렀고 거기서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그곳에서 나오면 작은 교회당이 있는데, 거기가 사도 바울이 순교한 현장입니다. 그 교회당에 들어가면 오른편에는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는 장면이, 왼편에는 바울의 목이 베이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곳 제단 왼편에 돌기둥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돌기둥은 한쪽이 마모가 돼 있습니다. 기독교도들을 죽일 때 목을 그 돌기둥에 얹고 장검이나 도끼로 내려쳤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둥에서 목이 잘렸던지, 돌기둥의 한편이 깎여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이 돌기둥에서 목이 잘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주후 60년에 로마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그때 믿었던 주요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실명만 36명입니다. 그것도 누구누구의 가정, 누구누구의 형제 이렇게 나오니까 실제로는 훨씬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었습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들은 누가 전도해서 예수님 믿은 것입니까? 누군가 바울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가 바울보다 먼저 온 것일까요? 둘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을 받고 돌아온 사람들과 고넬료입니다. 로마 교회는 그렇게 자생적으로 생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든든하게 세웠던 사람이 고넬료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난 것을 학자들은 주후 47년으로 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간 것이 주후 60년이니까 13년 차이입니다. 그 사이에 고넬료는 이스라엘 근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주후 60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약 10년 이상, 그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특히 군인들, 정치인들,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로마교회는 그렇게 고넬료에 의해서 든든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역사에서 고넬료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초점은 고넬료의 믿음입니다. 고넬료 개인을 높이고자 함이 아니라 고넬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고넬료의 믿음의 특징을 나누겠습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사람은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잠 4:23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고넬료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마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우리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남자들이 아침에 수염을 깎아도 오후가 되면 또 수염이 자랍니다. 그 이튿날 수염을 깎아도 그 다음 날 또 깎아야 합니다. 한 번 수염을 깎았다고 1년 동안 깎지 않으면 얼굴이 산적처럼 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을 한 번 새롭게 하고 큰 뜻을 품었다고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날마다 우리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방을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해도 또 먼지가 쌓입니다. 오늘 청소해도 내일 또 청소하듯이, 우리 마음을 언제나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그냥 두면 마음의 방에 쓰레기들이 모여서 못 쓰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상태가 중요합니다.
2절에 보니 그는 경건했습니다.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신앙심이 깊다’는 의미입니다. 또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하다. 존경하다’라는 뜻입니다. 고넬료가 경건했고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말은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신앙심이 깊어서 하나님을 존중했습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안테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습니다. 고넬료가 그랬습니다. 그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었기 때문에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고, 그 인도에 순종해서 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들었던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육신적으로는 베드로 앞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공간적으로 하남시 감이남동에 있습니다. 그건 여기 모인 모두가 동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사업장에, 어떤 사람은 직장에, 어떤 사람은 집에 가 있습니다. 반면에 많은 분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최하진 선교사님입니다. 이분은 1989년 28살에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스탠포드대학교에서 포스트 닥터를 했으며, 대덕 연구 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최박사 미쳤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청소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열방중고등학교를 세우고자 2002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3년 8월 학교 개교를 앞둔 1개월 전 마지막 공사 대금 1억 원이 필요했습니다. 1주일 동안 잠을 못 자니까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까지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돈만 찾았던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1억 원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돈을 보내신 목사님은 처음에는 그 돈을 태국 선교사님에게 보내려고 몇 번 전화를 걸었는데 ‘여긴 아니데, 여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번번이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최하진 선교사님은 그 일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그때 하나님께서 최선교사님 마음에 이런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게 뭔지 아느냐? 네가 학교를 지어 나를 위해 일하는 것,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바로 나에 대한 절대 신뢰다. 네가 나만 의지하면 다른 모든 일은 뒤따라온다.” 최선교사님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무엇인지 그때 경험했습니다. 돈이 많아야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장 안전하고 주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임재가 언제 강하게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할 때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믿음은 하나님과 교통입니다.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①구하는 기도입니다. 구하는 것이 목적인 기도입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사역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필요할 때마다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령님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돈이 없으면 돈을 달라고 기도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면 건강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다가 만나는 문제를 놓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는 대기업을 일구어 성공했습니다. 그 후 그는 고향에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집을 본 동네 사람들이 “너무 초라합니다.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포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입니다.”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비결은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합작품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사람은 약하지만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위대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4절에 보니 천사가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 되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므네모쉬논”입니다. 이 말은 기억의 의미도 있고 ‘기념물, 기념비’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윤재목사님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이 말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거기에 맞는 기념물을 주신다"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념물, 기념비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안산홍 하나님의 교회 때문에 곤란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땅과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기념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 때문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기도응답의 기념비였던 것입니다. 한나가 자녀가 없어서 너무 속상할 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한나에게 기도 응답의 기념물이고 기념비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념물과 기념비가 있습니까? 기독교인이라면 분명한 기념비와 기념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쓰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념물과 기념비를 주십니다.
우리는 구하는 기도를 영혼구원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 소녀가 난치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녀는 병상에서 전도를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데, 어느 날 목사님이 방문하여 병상에서나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고, 그 지역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죽은 다음,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녀의 베게 밑에서 56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적인 56명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 앞에 빨간 십자가 표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기도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 사람씩 표시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부흥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몸을 쓰지는 못하지만 병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한 소녀로 인해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영혼을 구하는 일에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②교제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교제의 기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위하여 힘을 쓰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질 것입니다.
기도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3절에 보면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4절에 보니 천사가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는 바리새인들의 기도처럼 깡통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고넬료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쌍방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구하는 기도, 사역을 위한 기도에 힘써야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를 위한 기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만 부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요 신부로 부르셨기 때문에 교제와 교통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3.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의 차이는 행함의 차이, 삶의 차이입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행함으로 믿음이 증거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손바닥과 손등 같습니다. 다르지만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손등이 가는 곳에 손바닥이 가고 손바닥이 가는 곳에는 손등도 가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믿음은 진짜 믿음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그의 삶입니다. 그의 행함 있는 삶을 증거하는 말씀이 22입니다. 베드로를 찾아간 세 사람이 고넬료에 대하여 한 말입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들은 고넬료는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의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칭의를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고넬료의 삶을 판단할 때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의 저서 ‘종교박람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 요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서?”, “그렇다네”, “그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먼”, “글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났나?”, “모르겠는데”, “몇 살 때 죽었지?”, “모르겠는데” 대화가 이쯤 되니 믿지 않는 친구가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예수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도 예수 믿는 건가?” 그때 믿는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별로 아는 게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것 같네. 그러나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달라진 게 있다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고,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변화가 왔다는 것이네. 자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놀라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3년 전까지 나는 술주정뱅이요 빚도 많지 않았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와 아내 할 것 없이 온 집안 식구가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나. 그리고 나를 반가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항상 화를 내며 살아왔었는데, 예수 믿고 달라진 것은 모두 나를 반가와 한다는 것이네. 또 나도 가족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구만. 그리고 나는 몰랐었는데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네. 그러고 보니 감사하고, 하루하루의 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 자체가 아주 소중해졌다네.” 그러자 예수 믿지 않는 친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진짜 믿음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삶이 어떻게 변됐는가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변화가 없다면 그 믿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동안 한국교회의 화두가 영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성하면 신비적이거나 수도적인 면을 생각하는데 실제로 훌륭한 영성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65세에 무드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신비체험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거나,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수도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아닙니다. 에녹은 자녀를 낳으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가정생활을 하며, 경제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에 안토니오라는 유명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의 전부를 팔아 구제하고 빈손으로 사막에 가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수도할 때 하루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신발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 안토니오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거룩한 삶을 드리며, 전 재산을 다 드렸는데도 신발을 고치는 노인보다 못하다니' 라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노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노인의 대답은 “저는 너무 생활이 가난하기 때문에 낮에는 신발을 고쳐주며 생활 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저의 하루 일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인은 특별한 신비체험이나 엄청난 수도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했습니다. 25절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고넬료는 지배국의 군대 장교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프라이드가 넘쳐나야 합니다. 그런 그가 피지배국의 어부에 불과하였던 베드로 앞에 넙죽 엎드렸습니다. 베드로가 주의 종이였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그렇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써 이방 세계에 복음의 문이 열리게 한 고넬료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를 나눴습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2. 믿음은 하나님과 교통입니다. 고넬료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쌍방적인 신앙입니다.
3.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진짜 신앙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