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서율이와 함께, 문경새재 옛 과것길/참 행복한 추억
“선배님, 도와줄 일이 좀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보고 싶은 관광지 100선’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를 뽑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우리 문경새재를 클릭 좀 해주세요. 지금 5등인데, 어떻게든 순위를 좀 끌어올려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클릭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좀 귀찮더라도 매일 클릭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위에도 좀 알려주세요. 우리 고향땅 문경을 위한 일입니다.”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그해 겨울로 접어드는 어느 날, 그때 문경시에 근무하던 우리 문경중학교 28회 동문 박시복 후배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그렇게 신신당부 부탁을 했었다.
박 후배는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중학교 총동창회 사무국장의 일을 도맡아 감당해내는 정성이 돋보여서 남달리 정을 쌓아왔었다.
그래서 웬만한 부탁이면 들어줘야할 것이었지만, 이번의 부탁은 녹녹치 않겠다 싶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이 친구야. 힘 좀 쓰는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게.”
내 그렇게 슬그머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박 후배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닙니다. 바로 힘을 써주실 분이 선배님이십니다. 선배님은 인터넷을 다를 줄 아시잖습니까. 이곳 사람들은 마음은 있어도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아서 큰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인터넷도 할 줄 아시고, 서울로 출향한 고향 분들과 교분이 많으시잖아요. 그리고 독서클럽 같은 모임을 주도하셔서 주위에 적잖은 영향을 주시고 있음을 제가 잘 압니다.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달라붙고 있었다.
내 마음이 흔들렸다.
박 후배의 고향 챙기는 그 가상한 마음을 더 이상 손사래 쳐 내칠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그때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서는 온라인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그런대로 적격이긴 하겠다 싶었다.
우선 나부터 한국관광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찾아들어가, ‘가보고 싶은 관광지 100선’이라는 이벤트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그때 확인한 것이, 1위가 신안 홍도, 2위가 신안 증도, 3위가 경남 창녕의 우포늪, 4위가 서울의 남산타워, 그리고 우리 고향땅 문경새재가 5위였다.
그 순위를 챙겨보면서,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이라는 우포늪의 존재를 내 생전처음으로 알게 됐다.
풍경이 원체 뛰어나다는 신안 홍도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문경새재가 천 리길 멀리 떨어진 신안 증도나 우포늪에 순위가 밀린다는 것은 수치스럽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터넷 문화가 낙후되어 있다는 그 증표였다.
좀 더 관심을 가지면 그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먼저 내 아내를 끌어들였다.
주위 두루 인간관계가 많은 아내를 통해서 주위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였다.
이어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고향땅 깨복쟁이 친구들을 끌어들였고, 고등학교 동기동창들이며 검찰청에서 인연이 된 검사와 수사관들이며, 그리고 독서클럽 ‘Book Tour’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그저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해발 1,000m를 넘어서는 산등성이들이 줄을 잇는 백두대간의 장엄한 풍경과, 1,000리 낙동강 물줄기가 발원하는 숱한 계곡들의 아름다움과, 감홍사과니 오미자니 약돌 한우에 약돌 돼지 해서 특산품과,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그날로 왔다 그날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편의를 자랑하면서 끌어들였다.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오늘도 클릭 했지요?”
매일이다시피 그렇게 확인까지 했다.
쑥쑥 순위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서울 남산타워를 제치고, 곧 이어 창녕 우포늪을 제쳤다.
그러나 이미 저만치 앞서간 신안 증도와 신안 홍도는 미처 제치지 못하고, 그해로 3위에 머무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주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클릭에 익숙해진 손길들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해를 넘겨 그 이듬해에, 신안 홍도와 증도를 제치고, 우리의 문경새재가 ‘가보고 싶은 관광지 100선’에서 1위로 등극한 것도, 그때 우리 문경 사람들에게 인터넷 문화가 확산된 그 결과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고향땅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게 있어 참 행복한 추억이다.
내 사랑하는 다섯 살배기 손자 서율이와 문경새재 옛 과것길을 찾았다.
어린이날은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한낮의 일이었다.
어린이날 연휴 사흘을 문경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졸라서 저 어미 아비와 같이 왔기에, 맨 먼저 찾은 곳이 바로 문경새재 옛 과것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인 내 고향의 정취를 온전히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마침 이 날은 우리 문경의 자랑거리인 찻사발 축제가 한창인 날로,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서율이는 신이 났다.
사람들 틈을 헤집고 마구 달리면서 기뻐했다.
서율이의 그런 모습을 보는 나 또한 기뻤다.
아내를 비롯해서 서율이 저 어미 아비까지 기뻐했다.
그렇게 우리 온 가족 함께 기뻐한 그 순간, 서율이에게도 먼 훗날에 참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그 길을 같이 걸었다.
그래서 온 가족 함께 한 그 순간이, 서율이에게도 먼 훗날에 참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그 길을 같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