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 2012년 2월 13일 오후 1시경 도착. 점심 먹고 바로 하룽베이로 출발.
날씨는 흐린데 거의 매일 하노이 및 북베트남의 날씨가 이렇다 한다. 동남아시아의 런던이라 할 정도. 지금이 건기인데 매일 흐리고 꺼떡하면 소나기가 내린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후에는 오전 내내 안개비가 내렸다.
하룽베이 가는 길은 평생 처음 보는 넓은 평야지대였다. 중국과 접한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홍강이 오랜 수억년의 세월동안 만들어낸 델타지대라 한다. 강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구불구불 흐르며 그 강의 줄기도 수시로 변하면서 산악의 부엽토를 끌어다 대어 넓은 황토의 평야지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땅심은 매우 깊고 걸어 물기가 많아 건물을 짓기도 힘들고 도로를 닦기도 어렵다 한다. 사상누각일 우려가 많은 것이다. 기초 공사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주택건물은 폭은 좁고 높은 건물들이다. 그런 건물을 다닥다닥 붙여 짓는 경우가 많다. 건물 기초의 폭을 넓게 하려면 기초공사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고, 또한 습한 나라여서 공기가 잘 통하는 2층 건물에서 주거하는 전통 습관이 그리 만든 것 같다.
도로도 기초 공사가 매우 힘들다. 이중 삼중으로 기초 공사를 해야 한다. 도로 중앙에는 유도화라는 독이 있는 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는데 그 까닭은 두더쥐 같은 땅 속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란다. 흙이 부드러워 두더쥐가 살기 좋은 환경이라 자칫 그 놈들 때문에 도로가 붕괴될 우려를 피하기 위해서다.
고속도로 옆 넓은 평야는 대부분 논 지역인데 곳곳에 소들이 땅을 갈거나 논둑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도로 중앙의 풀밭에서 풀을 소들의 모습이 아주 신기하게 보였다. 황소가 대부분이나 논을 가는 놈들은 주로 물소들이라 한다. 황소보다 물소가 더 순하고 힘이 세어 그리 한 것 같으나 확실한 것 같지는 않다. 소는 사료를 먹이지 않고 노지에서 풀을 먹여서 그런지 깨끗하고 잘 생겼다. 그러나 고기는 맛이 없다 한다. 풀을 먹여서 그럴 거다. 현지인 식당에서 소고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논은 직사각형의 네모 반듯한 모양이지만 배미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다. 기계 농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물도 대부분 천수답으로 보인다. 그러니 한 배미가 넓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끔 관리기 같은 가벼운 기계에 경운기를 부착해 논을 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논 중간 중간에 보이는 무덤들이 또한 신기한 모습이었다. 논 한 가운데 한기의 무덤이 있기도 하고 무덤 떼가 있기도 하다. 왜 아까운 논 한 가운데에 무덤을 모셨을까 궁금했는데 가이드가 말하길 산도 없는 지역에 주택지에다 만들 수 없으니 당연한 현상이라 한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들이 자기네 논 밭에 모셔지면 농사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했다. 3년은 가묘에 모셨다가 이장하여 논에다 모신다. 화장은 아니고 매장이다. 아마도 순환 사상의 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도 밭 한 가운데나 귀퉁이에 조상 무덤을 모신 경우를 볼 수 있어 비슷한 문화가 아닐까 싶었다. 다만 우리는 봉분을 만들어 모신다면 베트남은 시멘트 재료로 보이는 재료로 봉분을 대신해 꼭 조그만 교회 같은 느낌을 주는 시설을 했다. 아마도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비를 피하게 하기 위해 그리 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모작 논농사 지역답게 우리나라는 아직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2월 중순 쯤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2월에 모를 내면 5개월 키워 7월에 수확하고 또 7, 8월에 모를 내면 12월이나 다음해 1월에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를 내는데 대부분 혼자서 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것도 고깔모자를 쓴 여자가 대부분이란다. 우리처럼 기계 이앙은커녕 못줄 띄워 여럿이 두레로 모를 내는 모습과는 영판 다르다. 하기는 못줄 모내기도 우리에게는 일제 시대 때 들어 온 것으로 그 전에는 베트남처럼 못줄 없이 이른바 판띄기라는 모를 냈다. 논 주인이 1미터 이상의 큰 폭으로 모를 내 가면 두레로 도와주러 온 이웃이나 가족이 그 뒤를 따라 사이에 모를 채워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판띄기 식도 아닌 그냥 주인이 혼자서 모를 꽂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 때문인지 나름대로 줄이 맞아 심어져 있는 게 신기했다.
베트남에선 남자들은 거의 농사일을 하지 않는다 한다. 우리의 논농사는 남자의 몫이지만 여기서는 논농사마저 여자가 다 한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세월 남자는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바치느라 그런 풍습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사실 농경 사회 전체를 보면 이는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다. 원시로 돌아가 볼 때 남자는 사냥을 나가고 여자는 집안 일과 채집, 농사 일을 맡았던 전통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의 사냥이 나중에는 장기간 전쟁이나 무역활동으로 바뀌고 어촌 마을의 경우는 고기 잡으러 나가는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우리 같은 경우 제주도나 남쪽 어촌 마을에는 아직도 남자들은 일상적인 농사일에 조금은 한가한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다 하겠다.
하노이 서쪽의 산악 지방에 있는 무엉족이라는 소수 민족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전통식 계단 논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벼 농사가 대부분이지만 곳곳에 사탕수수 농사를 많이 하고 있었고 옥수수도 제법 눈에 많이 띄었다. 2월인데도 옥수수나 사탕수수가 곧 수확할 때가 다 된 모습이 또한 신기했다.
채소 밭은 집에서 가까운 텃밭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배추가 제일 많았지만 우리처럼 속이 차는 종자는 아니었다. 벌써 노란 꽃이 핀 것을 보면 수확할 때가 지난 듯 했다. 그 다음으로 청상추가 많았고 양배추가 많았다. 그리고 토란을 꽤나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습한 지역이라 토란이 잘 되는 것 같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곳엔 별로 병해충이 없다고 한다. 벌레도 농약을 치는 곳에나 있다고 설명하는 게 틀리지는 않지만 거름도 별로 주지 않고 주변 환경도 오염이 덜 되는데다 벼를 제외하고는 단작 농사를 하질 않아 전체적으로 병해충이 잘 꼬이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만들어 놓은 거름도 보니 거의 전통 두엄식 거름인데 냄새도 그냥 부엽토다. 모를 낸지 얼마 안된 논의 흙 냄새를 맡아보니 암모니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을 정도다. 모의 색깔도 보니 떡잎과 아랫잎이 노랄 정도로 질소 거름이 모자라 보인다. 이런 것으로 볼 때 베트남에선 절대적으로 질소질 비료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아직 화학비료가 보편화되지도 않은 것 같다. 논에 요소비료 뿌리는 모습을 딱 한번 보았을 정도로 일상화된 모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런 환경이 건강한 농사를 하게 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벼 모를 비닐 덮어 키우는 것으로 볼 때 곧 머지않아 이곳에도 화학농법이 물밀듯 들어올 것 같아 내심 걱정이 앞섰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사회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그래서 농촌에 아직 많은 인구가 남아 농사를 짓고 있으니 그 큰 대평원의 논을 기계없이, 화학자재 없이 소와 사람 손으로만 농사지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로서는 부러운 일이지만 그들로서는 언젠가 없애버릴 전근대적인 일로 치부할 것 같아 약간 불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베트남 음식을 보니 김치는 없지만 의외로 입에 맞는다. 채소가 많고 생선과 해산물이 그 다음으로 많고 고기는 일부인데 그마저 돼지고기가 주다. 밥은 당연히 안남미 쌀이다. 옛날 우리가 전쟁 후 가난할 때 국제 원조로 쌀을 얻어먹던 시절 안남미가 많이 들어왔다. 안남미를 먹으면 소화도 잘되어 보리밥처럼 방구도 잘 끼게 되어 안남미 먹고 끼는 방구를 알랑방구라 했다고 한다. 그럴듯한 가이드 설명이다.
현미밥을 10년 넘게 먹었더니 나와 아내는 안남미 밥이 제법 먹을 만 했다. 아무튼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에 비해 기름기 적고 담백한 음식이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특히 쌀국수나 생전조림, 생선메운탕, 해물탕의 국물 맛은 우리네 입맛과 거의 일치했다. 채소는 날 무침은 별로 없고 물에 데쳐 소스에 무치는 것이 약간은 낯설었지만 먹기는 괜찮았다.
베트남에는 아직 냉장고가 일반화되어 있질 않아 거의 매일 시장을 본다고 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사다가 바로 해먹는 것이다. 가이드는 이를 불쌍하게 여기듯 말을 했지만 나로서는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냉장고에 쟁여 놓지 않고 바로바로 해먹는다는 것은 매일 신선한 것을 먹는 것이 아닌가? 사실 냉장고는 신선한 것을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묵은 것만 먹게 하는 이상한 요술상자나 다름없다. 실제로 재래시장엘 가보니 과일과 채소가 제일 많고 그 다음 고기가 많다. 붉은 핏빛이 도는 고기를 널어놓고 파는 모습이 매우 낯설고 그로데스크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고기가 다 신선했다.
베트남 음식은 우리보다 더 일찍이 세계화되었다 한다. 월남 전쟁 후 보트 피플이 전 세계로 나가 그들의 음식을 전파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들의 풍부한 채식 문화가 서양사람들에게 신선하게 어필했던 모양이다.
이런 베트남의 건강한 음식문화가 그들을 소박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실로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여유가 있을 수 없다. 대부분 혼자 있는 사람이 없다. 둘 셋이 차를 마시며 길거리 노점상 낮은 의자에 둘러 앉아 노닥 거리거나 멍청하니 먼 산을 쳐다보는 모습들이 평화롭다. 어제 투숙하러 들어간 호텔에서 본 인부들이 아직도 같은 공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가이드 경험을 들었더니 8명이 하루종일 형광등 하나 설치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한다. 일한다고 모여서 연장 풀고 정리하는 데 한 시간, 점심 먹으러 간다고 두시간, 다시 일할 때 연장 푼다고 한시간, 그리고 오수를 꼭 지키는 그들의 문화가 그런 게으른 모습을 만들었다 한다.
그렇지만 곰곰이 보면 열대지방의 날씨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대충 일해도, 설령 아무 일 안해도 근처에 있는 것 주워 먹기만 해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는 그들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건물을 지어도 짓다 말다 하는 게 일쑤라 한다. 실제로 우리가 묵은 호텔 주변의 짓다만 건물을 보았는데 저렇게 방치했다가 언젠가 또 짓는다 한다.
반면 우리는 “빨리, 빨리”로 유명하다. 아마도 4계절이 뚜렷해 때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 기후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모를 내도 장마 오기 전에 빨리, 풀을 매도 무더위 오기 전에 빨리, 수확을 해도 서리 오기 전에 빨리, 김장을 담가도 추워지기 전에 빨리 해야 때를 놓치지 않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호치민 기념관엘 가보았더니 100년이 넘은 시멘트 건물을 보았다. 우리처럼 덥고 추운 기후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갈 일이 없으니 시멘트 건물도 오래 간다. 이런 날씨 덕에 여유있는 그들의 문화와 모습을 만들어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극단의 치열한 경쟁사회가 부지런한 모습을 왜곡된 빨리빨리, 곧 부실한 급성미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2년 전 두배나 긴 여정의 운남성 여행보다 반밖에 되질 않은 베트남 여행의 여독이 오히려 두배 이상이다. 아마도 베트남의 습한 날씨가 더 피로하게 만든 것 같다. 같이 여행간 사람 중에 탈이 난 사람이 운남성 여행 때보다 두배나 더 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오자마자 매서운 한파가 몸 속을 파고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가 우리에게는 최고라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들어왔다.
베트남 마지막 날 꽤나 비싸고 맛있는 한정식을 먹으며 걱정이 앞섰다. 집에 가면 먹을 게 없을텐데, 또 여행 내내 내 휠체어 끌어주랴, 심부름 하랴 고생한 아내에게 맛있는 음식 차려주길 기대하기는 진짜 염치없는 일이니 더 그랬다. 그러나 걱정은 전혀 현실화되질 않았다. 김치 하나에 시래기 된장국 끓어 올린 아내의 소박한 밥상이 얼마나 꿀맛이던지, 역시 내 집이 최고라 할 만 했다.
소가 풀을 뜯고 있는 위의 붉은색 조그만 시설이 바로 무덤떼다.
고깔모자 쓴 베트남 여성 혼자서 모를 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드넓은 논을 여성들이 각각 자기 논에서 모를 다 꽂는다.
한국에선 두세사람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끝낼 일을 베트남에선 여섯 사람이 느릿느릿 여유롭게 일을 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니다.
무엉족이라는 소수민족 마을의 계단논이다. 우리네 시골풍경과 아주 흡사하다. 왼쪽 파랗게 보이는 곡식은 사탕수수다. 수확할 때가 다 되었다. 바로 앞에는 텃밭인데 우리의 채소들과 비슷한 것들이 재배되고 있다.
첫댓글 저도 지난주에 비슷한 경로로 베트남 다녀왔습미다. 전통 농촌 공동체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아침 7시부터 학교에 가는데(시차가 있어 우리의 8시쯤으로 판단됨) 낮에는 더워서 두시간씩 잠을 자서 그런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매우 부지러한 민족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 선생! 재미있는 여행을 했군요. 난 10수년 전에 몇번 유전자원_종자_관계로 가긴 했지만 겉으로만 본 것이어서......... 쌀국수 맛은 괞찬았던 기억이나네요. 참, 지난번 곡성 수집갔다가 논가운데있는 묘와 집 옆에있는 묘를 보고 생각이 나서 사진 찍어 놓았는데 ...아직도 필요하면....?
선생님, 감사합니다. 꼭 보고 싶네요. 근데 베트남 가서 희한한 동백이 있어 저도 선생님께 보여드리려 사진 찍었는데 다 흔들렸지 뭐에요. 사진 기술이 후저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린벨트에 사는 이는 아파트를 갈망하며 정작 아파트에 사는 이는 전원주택같은 그린벨트의 소박한 집을 갈망합니다 저는 한쿠바교류협회를 맞으면서 쿠바에 한국농장을 준비하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전통 농사를 지어왔지만 쿠바는 이제껏 농사가 없다가 최근 농사를 배우면서 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소박한 농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욕심과 끊임없는 허욕을 내려나야 하는 데 말입니다. 다녀오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