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해와 달의 상징성과 그 보살로서의 특징
달, 그것은 더위와 갈증에 타는 대지를 포근하게 식혀주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뭇 중생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니 누구에게서나 그리운 님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두운 밤 길 읽고 해 메는 자에게 그 칠 흙 같은 세상을 밝혀줄 뿐더러 한 겨울 삭풍이 불어오는 겨울 밤의 들판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방랑자에게 안식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달밤은 인간의 오감을 가라앉히고 평화와 행복에 마음을 집중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달은 인간의 마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기까지 하였으니 그 아우르는 범주가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특히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유독 이 달과 관련된 이름이며 나라도 많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그 또한 뭇 중생들을 하염없이 사랑했다는 것을 실증한다.
달이 인간에게 휴식과 안락, 그리고 마음에 안정을 심어준다면 태양은 희망과 새 생명을 약속한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햇볕을 선사하며 어둠과 무명을 파괴하여 밝은 지혜를 안겨다준다.
이러한 해와 달이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로 등장한다. 월광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은 찬드라 프라바(Candra prabha)이다. 찬드라란 바로 달을 말한다. 용수(龍樹 ; Nagarjuna)의 『중론(中論)』을 더욱 체계화한 인도 공관 불교(空觀佛敎)의 거두, 월칭(月稱)의 산스크리트 표기는 찬드라 키르티(Candrakirti)인데, 그 달이라고 불리는 사나이의 '찬드라'와 마찬가지 의미이다. 프라바는 빛을 내는 물체, 또는 광명, 광휘 등을 뜻한다. 그래서 월광변조보살(月光遍照菩薩), 내지는 월정(月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전달라발라바(戰達羅鉢羅婆)는 그 음역이다.
일광보살의 산스크리 명은 수르야 프라바(Surya prabha)로, 수루야는 태양을 의미한다. 태양이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 하여 일광변조보살(日光遍照菩薩), 또는 일요보살(日曜菩薩)이라고도 하였다
이 두 보살은 세 가지 유형으로 개념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첫째는『약사여래본원경(藥師如來本願經)』(이하 줄여서 『약사경』이라 칭하겠다)의 설에 따른 것으로, 지극히 현세 이익적인 부처님의 대명사 약사여래의 좌협시 보살 일광보살, 우협시 보살 월광보살로 등장한다. 이 두 분 보살은 주존인 약사여래가 질병이나 여러 가지 가난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즉각 병 고침과 입을 것, 그리고 먹을 것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들의 주된 활동 범위도 약사여래의 그 커다란 테두리 안에 놓여 있다.
『각선초(覺禪痹)』에서는 『약사경소』를 인용하여 약사여래와 일광, 월광보살의 탄생 배경을 밝히고 있다.
먼 옛날 전광여래(電光如來) 시절, 의왕(醫王)인 범사(梵士 ;브라만 선인)가 슬하에 일조(日照), 월조(月照)라는 두 명의 자식을 두고 살고 있었다. 그 의왕은 발심하여 앞으로 모든 중생을 이락(利樂)하겠노라고 원을 발했으며, 두 아들 역시 그렇게 발원하고 공양했다. 그 결과 이들은 바로 지금의 약사여래요 일광보살, 월광보살로 되었다는 것이다.
『약사여래본원경』에서는 이 두 보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약사유리광여래의 국토에 두 보살이 있으니, 이름하여, 일광보살 월광보살이다. 두 보살은 무량 무수한 여러 보살들 가운데 최고의 우두머리이며 약사유리광여래께서 설하는 정법의 창고를 지키고 있다.'
약사유리광여래의 설하는 정법, 그것은 현실적 고통의 해결과 실익의 부여이며, 그 일을 직접 도맡아서 수행해 내는 보살이 일광보살이요 월광보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세 이익적 역할은 어디까지나 『약사경』에서의 설이다
두 번째 유형은 밀교의 만다라에 등장하는 일광, 월광보살이다.
찌는 듯한 더위로 타오르던 대지는 밤이 오면, 청량한 물을 간직한 달의 은덕으로 그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낸다. 음습하고 음침한 대지는 태양의 도움으로 따스한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금강계 만다라에서는 월광보살은 달처럼 맑고 시원한 진리의 법락을 베풀어 주기에 그 밀호(密號)를 청량 금강(淸凉金剛)이라 불렀으며, 일광보살을 일러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요 찬란한 원광으로 중생들의 온갖 재앙을 두루 비쳐 소멸시키기에 밀호를 위덕금강(威德金剛)이라 했다.
특히 태양은 그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사라지게 하듯 일광보살은 여러 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기에 태장계 만다라에서 제개장원(除蓋障院)의 구존(九尊)중 한 보살로서 등장하고 있다. 모든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나면 태양이 찬란하게 비추이듯이 번뇌를 모두 거두어내는 제개장원은 바로 온갖 장애를 제거하는 일광보살이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해와 달이 품어내는 원초적 상징성으로서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다. 해와 달은 그들만이 간직한 외경성으로 인해 실로 다양한 형태로 우리 조상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희망과 안식을 가져다 주었다. 정월 대보름, 휘영청 달이 밝아올 때면 그 님을 향하여 소망을 빌던 어머니의 얼굴은 우리 기억에서 그렇게 멀거나 새롭지 않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관정경(灌頂經)』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부처님이 세 제자를 보내 중국을 교화하게 했다. 유동보살(儒童菩薩)을 거기서 공구(孔丘: 孔子)로 칭해지고, 광정(光淨; 월광)보살은 안회(顔回)라 하며, 마하가섭은 노자(老子)로 일컬어졌다.'
이는 중국의 유교와 도교를 불교로 아우르기 위한 포석으로, 거기서 월광보살이 안회로 등장하는 것을 눈여겨 볼 만하다.
월광보살의 모습을 보자. 『아사박사(阿娑縛사)』에 인용되어 있는 역자 불명의 『정유리정토표(淨琉璃淨土標)』에 의하면 이렇다. 온몸이 백홍색의 살색이고 왼손의 손바닥 위에는 월륜(月輪)을 올려놓고, 오른손으로는 홍백색의 연꽃을 들고 있다. 일광보살은 적홍색의 살빛으로 왼손의 손바닥 위에 일륜(日輪)을 올려놓고, 오른손에는 천상에서만 피는 만주적화(蔓朱赤化)을 들고 있다.
우리 문화 속의 일광보살, 월광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은 우리나라에서 약사여래와 더불어 민중들의 고통을 보듬고 앉아주는 도타운 님이었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은 우리나라에서 약사여래의 협시로 등장하는 삼존불 양식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밀교계 경전의『약사경』의 현세 이익적 측면을 두드러지게 강조했을 것이라고.
그러나 청량한 법을 베풀고 번뇌를 제거하는 역할도 그들의 가슴 속에 담겨 있었을 뿐더러, 해와 달이 품고 있는 하늘 나라의 두 님이라는 상징성은 우리 조상들에게 희망과 마음의 평화를 안겨다주는 보살로서 신앙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광, 월광 두 보살은 약사여래 삼존불의 형식으로 우리 산야의 바위벽에 강한 선을 드러내며 박히거나 고색창연한 사찰, 그 뜨락의 약사전에 협시보살로 조성되었을 뿐더러 그 후불 벽화로 몸을 나투어 민중들의 소망을 보듬어 주었다.
우리 문화 속에 나타난 두 보살의 형상을 보면 위에서 말한 위궤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일륜과 월륜을 손에 들지 않고 보관에 붉게 또는 희게 태양과 달을 표시하였으며, 손의 모습은 합장한 자세가 대부분이다.
경남 함안의 방어산 정상 부근 바위 절벽에는 약사여래 삼존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 신라 말기인 801년 조성된 것으로 이 시기의 불상 형태를 살필 수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본존불은 약합을 들고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월광보살은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자애로울 뿐더러 이쁘장한데, 일광보살은 다소 험악해 보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불상 전체에서 긴장감 넘치는 장대성은 엿볼 수 없다는 게 흠이라고 하나 신라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의 이마에는 각각 해와 달의 모습이 떠 있다.
방어산 약사여래 삼존불 전체가 주는 느낌이 8세기 통일 신라의 명랑하고 활달한 모습에서는 좀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광보살의 자애로운 모습에서 절대 모성의 포근한 품에 파묻히길 염원했을 것이며, 일광보살에게서는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없애주는 강인한 부성에 감싸이기를 빌고 또 빌었으리라.
안양시 석수동 삼막사(三幕寺)에는 마애 삼존불상을 모신 칠성각(七星閣)이 자리잡고 있다. 칠성의 본존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그리고 그 좌우 협시보살로 일광변조소재보살(日光遍照消災菩薩)과 월광변조소재보살(月光遍照消災菩薩)인데 그 두 보살은 다름 아닌 일광, 월광보살로서 그들이 민간 신앙과 관련을 ꂙ으며 불교화 되었다는 점에서 그 민중성과 불교의 포용성을 잘 알려준다. 놀라운 일은 약사여래와 치성광여래, 그리고 그 두 주존불을 옹위하는 협시 보살의 이름이며 형태가 유사하다기보다는 너무나 똑같을 정도여서 칠성 신앙과 약사 신앙의 습합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칠성 신앙의 수명 장수적 기능이 약사 신앙의 현세 이익적 기능에 끈이 다앗기 때문이지만, 해와 달이 우리 민족에게 주고 있는 도타운 은혜, 만물을 길러내고 보듬어주는 절대 님으로서의 상징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머리에 일륜과 월륜이 각각 표시되어 있는 삼삼관(三山冠)을 쓰고 있는 양 보살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염원을 들어주던 보살의 대비심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조선 시대 불화에서도 그 약사불회도(藥師佛會圖)에 일광, 월광보살이 보관에 빨간 일륜과 하얀 월륜을 갖추고 다정히 얼굴을 내민다. 회암사 약사삼존도(藥師三尊圖)의 두 보살은 일륜 월륜 표시가 특이하며 정밀하고 아름답다. 동그란 원 속에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일륜을, 역시 동그란 원에 토끼가 떡방아를 뾵는 모습을 월륜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소원의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달이 더위를 식히듯이 중생들의 고통을 씻겨내 심신을 맑고 청량하게 해주는 월광보살, 해가 온누리를 비추어 어둠과 습기를 제거하고 만물을 자라게 하듯 중생들의 번뇌를 없애고 보리를 자라게 하는 일광보살, 이 두 보살에서 우리는 해와 달에 투영된 보살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리라고 본다.
출처 : 조계사 : http://www.ijogyesa.net/
[불자가 꼭 알아야 할 100가지]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