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9:20-30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다윗의 인생(20-25절)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목동 출신이었던 다윗은 수많은 인생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던 왕이 없었고 또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왕은 없었습니다.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할 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써온 그의 인생이었지만, 이제 성경기자는 다윗의 여정을 복되게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20) 다윗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매 회중이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와 왕에게 절하고
다윗은 자신이 감당해야할 많은 과업들을 마무리 했습니다. 일반적인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 이루어놓은 수많은 과업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과시하고 기념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업적이 드러나기보다 하나님이 드러나길 원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백성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주목하길 바라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송축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이러한 요청에 백성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송축했을 뿐만아니라 여호와와 왕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던 다윗은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과 모범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다윗이 하나님께 위임받은 이스라엘 왕국의 대리 통치자였음을 인정한다는 뜻이었습니다.
(21, 22)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무리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하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하니라
20절에서 하나님을 향한 송축이 있었던 바로 다음날,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집니다. 21절에 등장하는 모든 원문의 동사들은 3인칭 남성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모든 제사의 주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번제의 경우에는 가축을 천마리 잡아드리는 일천번제로 드려졌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추측케 합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 무리가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송축은 피흘림이 있는 제사를 드림과 또 이웃과 그 기쁨을 나누는 단계까지 나아갔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본문에서는 다윗을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룬 열왕기상에서는 아도니야의 반역사건과 함께 솔로몬의 왕위계승의 기사를 다루고 있지만, 역대기 기자는 그러한 부분을 생략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형통하게 이끄심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왕이 된 솔로몬 뿐만 아니라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왕이 통치하는 국가가 아닌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임을 드러낸 것 입니다.
(23-25)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형통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 또 왕의 위엄을 그에게 주사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성경기자는 솔로몬이 형통하였다고 증언합니다. 다만 이 형통은 세속적 가치관에 입각한 성공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인생의 여정을 뜻합니다. 나의 삶이 비록 비참하고 고단할 지라도,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고 미련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손 붙잡고 계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 누구보다 형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함몰되기보다,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의지하며 형통한 인생을 살아내는 힘을 얻으시는 저와 교우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형통함을 누렸던 다윗 가문(26-30절)
(26, 27)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더라
성경기자는 다윗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새의 아들’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 막내였고 보잘 것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대적자들은 그를 조롱하기 위해 ‘이새의 아들’로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천한 출신이었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새의 아들’이라는 말은 더 이상 조롱 섞인 호칭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했던 성군을 향한 존경의 표현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28)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성경은 다윗이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다고 증언합니다. 하지만, 동일하게 다윗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사무엘하의 말씀을 보면 역대기의 기록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곳이 없어 유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편에 나온 그의 시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자주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자기 아들의 반역 때문에 맨발로 울며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다윗의 삶이 고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부하고 존귀를 누렸다고 합니다. 다윗이 살아온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존귀한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모든 부유한 삶은 비천한 삶입니다. 우리도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존귀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9, 30)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또 그의 왕 된 일과 그의 권세와 그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모든 나라의 지난 날의 역사가 다 기록되어 있느니라
29절에서는 다윗 왕의 행적을 기록한 세사람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선견자 사무엘과 선지자 나단, 마지막으로 선견자 갓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선견자 혹은 선지자였습니다. 선견자와 선지자는 약간의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자로서, 왕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어떻게 실현되는 지를 알리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역대기는 단순히 사실을 전하는 역사서 뿐만 아니라, 그 역사의 과정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에, 선지서의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역대기 기자의 다윗을 향한 인생 종합 평가는 ‘그가 존귀한 삶을 살았다’입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인생에는 굴곡이 많았습니다. 그는 순결하게 고난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악한 마음을 품고 충성된 부하의 아내를 탐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과 정치는 용감하게 대처했지만,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우유부단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는 겸손할 때도 있었지만, 인구조사를 감행하며 하나님께 교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영광을 누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큰 화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인생은 절대로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윗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마음에 새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의 이야기 속에 우리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며 우리에게도 여전히!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는 그 은혜가!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창문을 열어 드리십시다. 그리고 우리 곁에서 사랑으로 속삭이시는 보혜사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다윗의 이야기가 종이에 기록된 글자가 아닌, 지금 현재 우리의 삶에 현재진행형이 됨을 확신하십시다.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므로 오늘 하루도 다윗처럼 존귀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내시는 저와 우리 모든 100주년기념교회 교우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역대기의 결과론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 과정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와 굴곡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과정 조차도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회개하였을 때 그 삶이 형통한 것이며 존귀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당장은 안개가 낀 것 같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를 형통케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앞에 존귀한 삶을 살았다 평가받으며 귀한 생명의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내가 죽은 뒤에 나의 인생에 대한 신문기사가 난다면 어떤 헤드라인이 나오길 원하십니까?
2.다윗의 인생에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역대기자의 기록은 단순합니다. 기자의 관심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다윗으로부터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믿음의 유산은 다윗 왕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믿음의 유산은 무엇입니까?
4.다윗과 같이 형통하고 존귀한 삶을 살았다 평가받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김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