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참으로 특별하고 미묘한 시절인연
참으로 특별하도 미묘한 시절인연이었다. 요즘 서양 심리학에서도 ‘동시성의 원리’를 말하기도 하던데, 불교에서 말하는 ‘자타일시성불도’의 소식일 게다.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모교 교수 공채에 연거푸 실패한 충격으로, 1997년 새해 벽두에 나는 그때까지 모은 책으로 금자탑을 쌓고 올라가 소신공양하려 했는데, 「정토삼부경」을 번역하신 충담 화상의 소신공양 소식이 홀연히 들려왔다. 이에 수행자의 일념이 곧장 우주에 공명을 일으키는 무서운 감응을 절감하고, 이내 망상을 놓고 정신을 차려 돌파구 인연을 찾다가 「인광대사가언록」을 펼쳐 읽어 정토념불법문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관정 법사님이 정토법문을 펼치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그해였다!
이듬해 1998년 「가언록」을 번역해 연재할 무렵 동산대학 념불만일회가 결성되고, 관정 법사님은 한국에 정토선을 펼치려 세 번째 래방하셨다. 그리고 「가언록」이 막 나올 무렵, 2000년 6월6일에는 청계산 정토사에서 청화 스님을 증명 법사로 모시고 정토학회와 함께 만일념불 결사법회를 열어 나도 동참하였고, 그 직전(5월 하순)에 다시 래한한 관정 스님을 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냉대 받던 청화 스님의 념불선 법문도 함께 떨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스님께 법문을 청해 권두법문(서문)으로 실었는데, 과연 그 뒤로 청화 스님의 수행도력과 법문이 점차 인정받게 된 듯하여 적잖은 기쁨과 보람이 되었다. 또한 그러한 여러 법연이 한데 어우러져, 「화두 놓고 염불하세」와 발췌본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은 「운명을 뛰어넘는 길(료범사훈)」과 함께 한동안 잘 나가는 불교서적(베스트셀러)이 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애호 받는다(스테디셀러)고 한다.
한편, 청화 스님과 관정 스님 회동이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인연은, 당시에 미욱한 나로서는 아쉬움이 컸지만, 이 제 사연을 정리하는 마당에 곰곰이 사유해보니 충분히 그럴 만한 리유가 있었던 듯하다. 불경에 보면 한 불국토마다 한 부처님이 주석하시는데, 서로 상대방 불국토를 거울에 비친 듯 가까이 들여다보거나 서로 시자를 보내 문안하시긴 해도, 두 분이 몸소 찾아가 상견하지는 않는다는 평상적인 비범한 사실을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유가에서도 하늘에 두 해가 없고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없으며 한 집에 두 아버지가 없다고 했듯이, 불국토마다 바로 한 부처님만 계시는 유일무이의 무상 존재성 때문이리라! 그것은 부처님마다 다 같이 진리의 본체를 원만히 깨달아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셨지만, 당신이 화현하신 국토와 중생들 인연에 따라 몸의 크기나 수명 등 정보와 온갖 주변 환경인 의보가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텐데, 만약 두 부처님이 함께 나란히 만나신다면, 지견이 얕고 철없는 제자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서, 알게 모르게 두 부처님을 나란히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분별심(중생심)을 일으킬 수 있겠다. 이는 실로 부처님께 대한 커다란 불경이요. 수행 과정에 있는 보살 성문, 중생 자신에게는 틀림없이 막대한 손해와 업장이 될 것이다! [실제로 경전에 보면 장래 하생 미륵부처님의 몸이 석가부처님보다 훨씬 커서 대비되는 장면에서, 특별히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일깨움이 나온다.]
그러니 두 스님이 직접 만나지 않은 인연은, 정토념불법문의 순수한 온전함과 장래 홍포를 위해서 참으로 다행인 셈이다. 하마터면 두 분 다 상처를 입고 정토법문도 불신과 비방을 살 위험에 빠질 뻔했던가? 오히려 안도에 한숨을 내쉬어야 할 판이다. 초지보살조차 2지보살이 어떻게 발을 디디는지도 모른다고 정녕 일깨운 경전 말씀이 단순히 비유가 아니었구나! 청화스님의 자비로운 인내와 포용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참회와 찬탄과 감사를 바친다. 하여 현재와 미래에 극락정토 왕생을 발원하며 념불하는 수행자들은 이점을 특히 류념하여, 정토법문의 큰 틀에 공명동조하면서 서로 수희찬탄하고 격려, 부축할 뿐이며, 혹시라도 개별 수행방법상의 조그만 차이에 시비고하를 따져 서로 폄하, 비난, 비방하거나 옥신각신 흠집 내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나아가 불교 전체로도 화두선이니 념불이니 그 어떤 수행법문도 마찬가지로 서로 같은 큰 뿌리를 공감하면서, 자잘한 구체 방법론에 차이는 천차만별의 중생 근기에 따른 처방약이라고 리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용과 배려에 힘쓰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불교 승가의 명실상부한 대동 ‘화합’ 정신일 테고, 또한 ‘관정’ 스님의 ‘너그럽고 맑은 마음’이자, ‘청화’ 스님의 ‘세계는 맑은 꽃 한 송이’의 상징이 아닐까?
당신께서 한국에 인연 있는 불자들을 제도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관정 스님은 참으로 당신의 고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대만), 홍콩, 싱가폴, 미국 등, 그 어느 곳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정토념불법문 전파에 마지막 생명의 정렬과 숨결까지 다 바치셨단다. 이제 청화 스님도 관정 스님도 극락정토에 돌아가시고, 보정 거사님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관정 스님의 저술집과 일대기를 펴내면서, 스님이 펼친 법연들을 찾아다니며 수고와 애로를 마다 않더니, 마침내 보잘것없는 나까지 찾아와 연유를 설명하며 인연담을 정리해달라고 정중히 권청해왔다. 참으로 미묘하고 신비스런 시절인연이다! 일찍이 공자도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관정법사님은 기라성 같은 고승대덕이심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보정 거사 같은‘다크호스’가 나타나 생전 발자취와 숨결을 샅샅이 찾아 귀중한 력사를 기록으로 정리하다니 말이다! 그 집념과 정렬에 탄복하면서, 이에 꿈결 같이 흘러가버린 지난 15년 전의 옛 기억을 더듬고 일기와 서신 기록을 찾아, 법의 력사철학을 정공하는 학자이자 수행자로서 력사를 기록하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정직한 사실을 정중하게 적으려고 애썼다.
보정 거사의 정성에 감동하여 엣 자료를 찾아 정리하면서, 나도 덩달아 가피를 입었는지. 참으로 오랜만에 관정 스님을 몽견하였다. 2015년 올해 3월 27일 금욜 보정 거사의 전화를 받고 29일부터 함께 2박3일간 관정 스님의 발자취와 체취를 찾아 순례한 뒤, 관정 스님과 만났던 법연담을 기초하면서 관련 일기와 자료를 읽고 수첩도 찾으며, 「정토선정의」 파일이 없어 연구보조원한테 초고를 타자하라고 부탁했다. 근데 딱 2주 만인 4월 10일 금욜 새벽꿈에 관정 스님이 참 오랜만에 정말 현현하신 것이다. 무슨 큰 고급 한식집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법회를 갖는다고 나도 참석했다. 우선 남자 거사들만 따로 안쪽 차분한 방에 들어가 마정수기를 받는다는 듯. 7~10명가량 소수만 방안에 들어가자 관정 스님이 나타나셨는데, 선채로 두 손을 크게 벌려 허공에 자유자재로 휘저으며 중국어로 ‘소우스’라고 말씀하시길래, 꿈속에서 무슨 말인지 생각해보니 곧 ‘수세’로 느껴져 ‘수인’의 뜻으로 감득했다. 근데 바로 옆에서 내 아우 거사를 스님이 데리고 가까이 와서 손으로 몸을 가벼이 쓰다듬으며, ‘마정’은 아닌데 특별히 치유 축복을 해주시는 모습이었다. 그밖에는 별 말씀 없이, 나와는 눈길도 직접 마주치지 않은 듯하다. 그 무렵 법학개론 강의안을 출력하다가 usb에 바이러스가 옮아 치료하느라 한참 애썼지만, 아마도 관정 스님 법연담을 기초하는 인연으로 한바탕 도고마성의 헤살로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관정 스님이 꿈에 나타나 아우한테 치유에 축복을 해주신 자비에 감사할 다름이다!
꿈결 같고 쏜살같은 인생 이제 얼마나 남았으랴? 더 늦기 전에 얼른 자성을 돌아보고 본래회포를 잊지 말라고 일깨우시느라, 불보살님과 극락에 돌아가신 관정 스님께서 보정 거사를 통해 희유한 불법의 인연을 펼치시는 게 틀림없다. 수승한 정토념불법문을 만나게 이끌어주신 불보살님과 인광 대사, 청화 스님, 관정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 찬탄을 바치며, 관정 스님 수행비서나 통역으로 시봉하며 법회를 열어 나를 비롯한 수많은 불자들이 감로법유를 마시게끔 법연 자리를 펼쳐주신 선용, 대주 스님 및 강 거사님을 비롯한 관계자 제위께서도 깊이 감사드리고, 앞으로 인연 있는 불자들께 조그만 참고와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적어둔 일기와 서신, 비망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대강 기초한 초고를 부처님 오신 날에 때맞춰 마무리 손질한다.(2015.8.6.목.15:50.보충;9.10.목.최종교정)
원왕생극락정토 나모아미따부처님! 나모관세음보살님! 나모대세지보살님!
나모청정대해중보살마하살님! 나모마하반야바라밀다!
보적 김지수 공경합장 -()-
추신 : 2015.8.19. ~ 9.7.에 걸쳐 「관정 스님 일대기 - 極樂과 淨土禪」 편집본을 글쓴이의 권청에 따라 최종 교정 차 정독하면서, 그간 잘 모르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정토선 념불법문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주신 관정 스님의 보살행 진면목을 좀 더 절실히 느끼게 되어, 한편으론 새삼 기뻐 감탄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나 자신 업장 두텁고 박복한 인연에 안타까운 탄식을 금하지 못해 참회의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그저 무위자연이 최고인양 여겨, 그토록 보기 드문 선지식과 만나기 어려운 시절인연을 그냥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범상히 보아 넘기고 말았으니, 언제 어디서 또 그러한 훌륭한 법연을 만날 수 있을는지요?
당시 번역 출판 문제만 잘 풀렸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텐데, 내 원칙과 고집이 관정 스님을 둘러싼 인연 및 법연에 오래토록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친듯하여 특히 미안하고 아쉬운 여운이 진하게 감돕니다. “도가 높으면 마장도 높다”는데, 그 당시 한꺼번에 몰아닥친 온갖 마장들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나약한 정보와 박복한 의보를 탓하며 현실에 안주해버린 나 자신의 업장이자 허물일 뿐입니다.
기독교 성서에서도 “선지자는 제 시대 제 고향에선 대접받지 못한다.”는 명언이 있는데, 참으로 어렵고 힘든 때와 곳에 태어나 고난의 보살행으로 중생계에 널리 회향하고 온 법계를 장엄하신, 극락정토 연꽃 같은 스님의 마음에 깊은 존경과 찬탄을 바칩니다. 극락정토 왕생하신 관정 법사님께서 머지않아 사바예토에 중생을 제도하러 – 특히 중국 본토에 정토선 념불법문을 펼치러 – 다시 돌아오시리라 믿으며, 앞으로 인연따라 정토선(념불선) 법문을 널리 펴는 데 한 마음 보태고자 합니다.
2015.9.9.수. 보적 공경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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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정토법문의 큰 틀에 공명동조하면서 서로 수희찬탄하고 격려, 부축할 뿐이며, 혹시라도 개별 수행방법상의 조그만 차이에 시비고하를 따져 서로 폄하, 비난, 비방하거나 옥신각신 흠집 내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나아가 불교 전체로도 화두선이니 념불이니 그 어떤 수행법문도 마찬가지로 서로 같은 큰 뿌리를 공감하면서, 자잘한 구체 방법론에 차이는 천차만별의 중생 근기에 따른 처방약이라고 리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용과 배려에 힘쓰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불교 승가의 명실상부한 대동 ‘화합’ 정신일 테고, 또한 ‘관정’ 스님의 ‘너그럽고 맑은 마음’이자, ‘청화’ 스님의 ‘세계는 맑은 꽃 한 송이’의 상징이 아닐까? 당신께서 한국에 인연 있는 불자들을 제도하러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듯이, 관정 스님은 참으로 당신의 고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대만), 홍콩, 싱가폴, 미국 등, 그 어느 곳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정토념불법문 전파에 마지막 생명의 정렬과 숨결까지 다 바치셨단다. 이제 청화 스님도 관정 스님도 극락정토에 돌아가시고, 보정 거사님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관정 스님의 저술집과 일대기를 펴내면서, 스님이 펼친 법연들을 찾아
다니며 수고와 애로를 마다 않더니, 마침내 보잘것없는 나까지 찾아와 연유를 설명하며 인연담을 정리해달라고 정중히 권청해왔다. 참으로 미묘하고 신비스런 시절인연이다! 일찍이 공자도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관정법사님은 기라성 같은 고승대덕이심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보정 거사 같은‘다크호스’가 나타나 생전 발자취와 숨결을 샅샅이 찾아 귀중한 력사를 기록으로 정리하다니 말이다! 그 집념과 정렬에 탄복하면서, 이에 꿈결 같이 흘러가버린 지난 15년 전의 옛 기억을 더듬고 일기와 서신 기록을 찾아, 법의 력사철학을 정공하는 학자이자 수행자로서 력사를 기록하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정직한 사실을 정중하게 적으려고 애썼다. 보정 거사의 정성에 감동하여 엣 자료를 찾아 정리하면서, 나도 덩달아 가피를 입었는지. 참으로 오랜만에 관정 스님을 몽견하였다....보적 김지수 교수님께서는 인광대사님 가언록인 '화두 놓고 염불 하세' 를 출간하여 한국 정토문을 활짝 열러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이 책을 써서 올려 주신 운파거사님의 법공양을 찬탄 합니다!! 감사합니다!...나모아미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