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자신의 건강이 나빠진 경우일 것입니다. 평소에도 늘 음식을 먹어왔으면서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면 제일먼저 식습관부터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각종 건강식품과 민간요법 또는 다이어트 제품들이 동원되며, 자연주의 식사나 유기농 식단에 대한 서적 한 두 권쯤 소장하고 몸에 좋은 먹을거리 공부에 몰두하게 되는 것도 이런 때 입니다.
그런가하면 아이를 가진 엄마들도 먹을거리에 민감해집니다. 내가 먹는 먹을거리가 한 생명의 미래에 뜻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고,‘좋은 것, 예쁜 것’을 가려 먹게 됩니다. 예부터 아이를 임신하면 섭생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여러 가지 금기가 내려오고 있고, 좋아하던 라면,커피,술, 자극적인 음식들과도 당분간 이별입니다. 임신과 출산, 수유 기간을 거쳐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엄마들은 먹을거리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릇된 식습관 때문에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 소아비만, 당뇨, 조숙증 같은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신이 번쩍 들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냉장고를 열어보세요! 수입산 치즈와 각종 소스, 마트에서 반짝 세일 때 산 스위티오 바나나와 키위는 물론 호주산 양념 불고기와 태국산 새우살, 유기농이라는 큰 글씨만 보고 덥석 사들고 온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 산지가 불분명한 수입산 삼겹살로 만든 베이컨 등 세계 도처에서 날아온 먹을거리들이 냉장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기가 십상입니다. 커피와 초콜릿, 설탕 등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가 조리할 때 쓰는 간장만 해도 인도산 탈지대두와 미국산 소맥(밀), 중국산 각종 추출물 등 3개국에서 온 원부재료들과 다양한 첨가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장 산지가 판별되는 1차 농축산물보다 공장을 거쳐 나오는 가공식품들에 함유되는 수입 원료들은 산지 표기가 일부만 되어 있기 때문에 원료 가운데 얼마만큼이 수입산인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수입산 식재료가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수입품이 국산품과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 이 비싸다면 바다 건너 싣고 올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격은 쌀지언정 원거리를 이동해오는 수입 식품들의 안정성은 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00년 중국산 꽃게에서 납 검출, 2004년 중국산 찐쌀에서 이산화황 검출, 2005년 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 2008년 광우병 논쟁과 멜라민 분유 파동이 있었으며, 최근 중국에서 플라스틱 쌀과 피혁우유가 유통되고 일본에서는 방사능 사고 이후 세슘에 오염된 쇠고기가 학교급식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동물사료와 식용유 등 가공식품 원료로 주로 쓰이는 옥수수는 자급률이 1.7%에 불과해 대부분을 수입해다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최근 2~3년 사이에는 그나마도 유전자조작(GMO)옥수수 수입이 크게 늘어 전체 소비량의 절반가량이나 된다고 합니다.
또 유기농 식품들은 영양가도 그대로 유지되어 우리 밥상에 도달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현지에서는 정성들여 유기농산물로 재배되었을지라도, 장기간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이동하면서도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자면 보존처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소는 수확한 뒤에도 호흡 작용을 계속하기 때문에 채소의 맛을 좌우하는 당질이 감소하고 식물 호르몬 에틸렌이 생성되며 수분이 증발하고 미생물 작용 등에 따라 변질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변화를 억제하는 처리가 불가피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채소를 영하 18도에서 급속 냉동 처리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변질과정을 막기 위해 냉동 처리 전에 살짝 데치는 관계로 비타민 C가 파괴되어 영양 손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가까운 먹을거리는 우리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 우리 농업과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됩니다. 값 싸 보이는 수입농산물이 사실 요모조모 따져보면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이지요. 가까운 먹을거리를 이용하면,
1.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신뢰가 증대됩니다.
생산자는 지역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관계에 기반하여 소비자의 요구나 필요를 반영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됩니다. 또 소비자는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아는 상태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게 됩니다. 서로 얼굴이 보이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친환경 지역 먹을거리를 취급하는 경우에도 이런 신뢰 관계가 가능할까요? 언뜻 생각하면 생산자들에게는 대형마트라는 안정적 판로가 생겨 이득이고 소비자들도 가까운 먹을거리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역 먹을거리를 소비하는데 그칠 뿐 얼굴이 보이는 신뢰관계가 형성되거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 있어서 이윤보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유통 대기업 시스코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가 후려치기 같은 대기업의 횡포가 시스코와 지역 농민 사이에서도 일어났으며 생산 작물을 제한하는 등 농민이 대기업에 종속되고,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가 소멸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가까운 먹을거리를 이용하더라도 되도록 직거래 방식을 권합니다.
2. 생산자가 건강한 농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합니다.
ISEC(International Society for Ecology & Culture)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식량체계에 속해 있는 생산자에게는 100원 중 9원이, 지역 식량 체계에 속해있는 생산자에게는 100원 중 80원이 돌아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역에서 나는 가까운 먹을거리를 이용할수록 그만큼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지는 것입니다.
3. 지구 환경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이용하면 수송거리가 짧아서 석유를 덜 써도 되고, 그만큼 운송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가까운 먹을거리와 수입품이 이동하면서 내뿜는 탄소배출량을 비교해보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지구의 수명도 결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먹을거리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 입니다!!
또한 가까운 먹을거리는 원거리 이동 식품보다 포장을 적게 해도 되므로 친환경적입니다.
4.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가까운 먹을거리는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에서 순환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판매와 배달 등 지역에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며 지역에 새로운 사업들을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영국의 뉴 이코노믹 파운데이션의 보고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지역 먹을거리의 직접 구매에 지불하는 10파운드는 지역 경제에 25파운드를 창출하는데 비해, 슈퍼마켓에 10파운드 지불하는 것은 지역 경제에 14파운드를 창출한다고 합니다.
5. 생산자와 소비자사이의 유통단계를 줄여 경제적입니다
우리가 시중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먹을거리들은 일반적으로 생산지에서 소비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통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농산물의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생산자 → 산지수집상 → 도매시장 경매 → 중간도매상 → 소매상 → 소비자의 단계를 거치게 되며, 한단계씩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최소 10% ~ 20%의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농수산물 유통공사(aT)의 '농산물 유통실태 조사(2008)‘에 따른면 출하단계에서 11.8%, 도매단계 10.6%, 소매단계에서 22%의 유통 비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특히 파와 감귤, 당근, 양파, 무 등의 유통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당근의 유통비용은 75%, 무 70.9%, 파는 무려 81.5%에 달한다고 합니다.
즉, 가까운 먹을거리를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함으로써 소비자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고, 생산자도 중간 상인들로 인한 마진부담 없이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먹을거리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가까운 먹을거리의 범위에 대해 먹을거리 품목마다 다른 거리 기준을 적용하자는 입장(채소 ․ 과일처럼 쉽게 변질되는 먹을거리는 반경 50킬로미터 이내, 쌀 ․ 보리처럼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또 불가피한 먹을거리는 반경 300킬로미터 이내)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전국이 반나절 수송이 가능한 거리(서울-부산간 약 370km)이므로 국내산 먹을거리는 모두 가까운 먹을거리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먹을거리를 선택할 때 무엇보다 국내산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이윤이나 신뢰관계, 친환경적인 요소,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고려한다면 되도록 직거래 방식으로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기를 권합니다.
각 지역에서 농민이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농민 장터를 이용하거나,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방식의 제철꾸러미를 이용해도 되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010년 말 현재, 전국에 생협은 180여개가 있으며 전체 조합원수는 50만명 정도됩니다. 한살림, 두레생협, 아이쿱이 대표적인 생협이며, 천주교의 우리농, 불교의 인드라망 생협, 대학생협을 비롯해 지역마다 다양한 생협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생명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시소비자와 농민 생산자들이 함께 뜻을 모아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한살림은 연중 1,000여 종류의 친환경 유기농산물 및 생활용품을 생산하여 조합원들께 공급하고 있으며, 마을공동체의 회복 ․ 친환경 생활의 실천 ․ 지구 환경보호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