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전의 대종회 참석 소감을 보고..
간단히 몇 자 적고자합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회의 참석하신 일부 분들이 이미 중앙종친회에서 결정한 어사공파를...
불인정 내지는 뒤집기 위한(?) 속셈으로 정랑공파라고 고집한 이유는 단 한가지..
어사공파하면 전라도 해남이고, 해남파가 어사공파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해남 외 일부 몇 몇 분들은 어사공파 보다는 정랑공파로 하는게 더 났다는 것이 아닐런지요.
여론 주도 층이 주도하면 나머진 그냥 따라 갈 뿐입니다.
황전의 전언에 의하면 정랑공파로 하자는 분들도 특별한 이유는 없는 듯..
그저 양경공 손자 보다는 아들로 하는게 더 났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하는 데...
만약 그게 전부라면 정랑공파로 하자는 이유치고는 너무 빈약하고..
앞에 어르신들의(파 분류로 문중 일을 보신분들의) 노고를 가볍게 묵살해 버린 것이며..
파 분류의 전체적인 기준(흐름)을 잘 모르고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억지 주장인지 잘 모르지만..
파분류는 제 생각인데 1927년 쯤 하지 않았을런지요.
왜냐하면 그 해에 대동항렬을 통일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일전에 올려드린 어사공파항렬표를 보시면 각 파별항렬과 대동항렬이 나오는 데..
거기에 1927년도에 각 파별 항렬을 대동항렬로 통일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따라서 1927년 이전에는 각 문중별로 파를 만들고 썻던 것을..
지금의 12개파로 통일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꼭 90년 전에 말입니다.
언제 분류했던 시기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러면 당시에(파 분류시)왜 정랑공파로 하지 않고...
어사공파로 했는지 제 나름되로 말씀드리자면..
파 분류시 너무 윗대로 올라가면 파가 너무 적고...(특히 우리 순김은)
반대로 너무 아랫대에서 분류하면 너무 많아 복잡하여 누가 누의 직계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 순김은 중시조이신..
(어느 파에선 중시조라 불인정,양경공 증조부 윤인을 중시조라함:고려시대 문화평장사)
승주(양경공)할아버님 아들 손자대와, 저쪽은 절재공 종서할아버님의 아들 손자대가...
적당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절재공 묵재공은 아들 손자가 아직은..)
두 분이 동시대 사람이고...(승주 할아버님:이조 태종조~세종. 종서할아버님:세종~단종조)
또한 벼슬도 두 분이 비슷하게 높으셨기에..
(절재공:좌의정.양경공:검교좌의정,병조판서.검교는 일종의 명예직,실근무는 안함)
본 카페에서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12개파는 우선 절재공 형제분(절재공파,묵재공파:형 종한),
그리고 양경공 형인 전서공파(을재),
또한,양경공 4남 판서공파(유검),
나머지 8개파는 모두 양경공 손자들입니다.
만약 양경공 아들대로 파를 통일해 분류한다면?
종한할아버님과 종서할아버님 자손은 거의 멸실되다시피했고..
승주할아버님 아들 다섯분으로(그 중 차남은 무손)파를 나누어야 하는데..
너무 단촐하고 나중에 자손들이 멋되로 파를 만들어 불러...
지금의 12개파 보다 훨 씬 많은 수 십개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언필칭 양경공 아들이 더 났다고 했다는데..
뭐가 얼마나 더 났지요? 벼슬이 얼마나 더 높은지요?
(정랑공:이조정랑,정5품,오늘날 5급사무관.어사공:구례현감,종6품,오늘날 6급주사정도)
아버지와 아들을 놓고 파를 가르기 위해 분란을 이르키면.
어느 집안 처럼 원수 안되란 법도 없고 오히려 남보다 못하단 걸 알아야 합니다.
양경공대종회의 몇, 몇 분들은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중앙종친회의 파 분류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그 자리에서 우리 주장만 계속할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양경공대종회에서는 정랑공파로 중앙종친회에서는 어사공파로
가야할 것 같아요.
계속 우리 주장만 하면 아무래도 관계가 서먹해질 것은 뻔한 일이기에..
인종반정에 성공하여 영의정까지 지내신 북저공 가문이 빈약하여 제대로 상석도 돌보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형편이 낳은 양경공대종회에서 도와주어야하지 않으냐? 하고 제안했지만 종손을 비롯하여 전례에 없는 일이고
관례가 되면 안된다고 하여 전 문중에 나서 무슨 위원회라도 만들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선에서 타협을 했지요.
중앙종친회에서도 경북지방의 종친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지요.
서자인 적자가 있었는데도 양자를 들인게 잘못되었으니 다시 이를 바로잡자고 했는데..
참 딱하기도 하지..
그 쪽 집안 일인데 우리가 나설 수도 없고..
정랑공이냐?
어사공이냐? 하는 문제로 우리만 열을 내지 저 사람들도 관심 없 듯
우리도 그 일엔 관심이 없는데 거의 난장판 수준으로 그 문제를 회의 때 마다 들고 나오는
그들도 참 안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