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10시경 출발하여 강변역에서 박정호 화백과 만나
4명이 강진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공양을 위해 최소 6시까지는 도착하려 했으나
3일 간의 연휴는 우리에게만 허락된 시간이 아니었기에
7시가 넘어 산사의 밤은 정적만이 흐르는 고요 그 자체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허기를 차로 대신하고, 반가이 반겨주실 큰스님이 안계시기에 전화를 드려보았습니다. 저희가 늦게 도착해 정진이(백련사 풍산개의이름)와 함께 만덕산 산책 중이시라 한시간 정도 큰스님 방에서 간식으로 요기하면서차 한잔 하라고 하십니다.....주인도 없는 더구나, 큰스님 방으로 가기가
왠지 청와대를 허락없이 들어가려는 듯, 보이지 않는 부담감과 곤람함에종무소 직원께
사실을 알리고 큰스님 방에 들어감을 허락받았습니다
여연스님께서 사용하시는 다구
큰스님의 하명대로 큰스님 보물창고에서 차와 수제 초콜렛으로
긴 여정의 피로를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제 초콜렛 한 상자를 차와 함께, 딸아이가 먹어 치워 결국 바닥을 들어내고...
한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큰스님을 기다리며
주인없는 방에서 우리만의 수다를 털어냅니다
한시간 반이 지나서야 산책과 사워를 마치시고 스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귀한 가족들이 왔다며
손주같은 열음이와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한 며느리를 위해
이브몽땅 실황음반, 안드레아 보첼리, 임형주와 게리 카까지.....
큰스님께서 노고와 수고를 가리지 않으시고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동축 스피커에 나오는 웅장한 소리만큼
먼길 한걸음에 달려온 저희들을 위해 눈물겨겹도록 고마운 환영식을 해주십니다
여연스님께서 맛보라고 내어 주신 복건성 복정의 쇄청 백차 쇄백금
제딸 열음이와는 지난 차박람회때 만나시고 두번째인지라
더욱 반가와 하시고 귀여워 해주십니다
손수 보물창고에 들어가시어 이것저것 챙겨주십니다
쇄청(태양초 고추 같은 차)을 해 향이 더욱 독특한 복건성 복정에서
만든 쇄백금을 내주시며 마셔보라 권하십니다
맛과 향이 독특하면서 긴압을 통해 오랜 세월 흐름의 변이를 느낄 수 있음입니다
"열음아!!! 넌 뭘 젤로 좋아하느냐?" 여연스님의 뜬금없는 물음에
"고기요! 스님!!!"
"그래 우리 열음이가 고기를 좋아하는구나!! 그래 낼 스님이 트리플 한우를 사주마!"
스님께 고기를 사달라는 중삘이나, 스님께서 고기를 0.1초의 주저함없이
사주시겠다고 약속 하시는 것이 일반인들께서는 이해가 얼핏 ??ㅎㅎ
그저, 오랜만에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손주를 대하 듯
스님의 열음이에 대한 사랑은 다음날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스님께서 직접 중국에서 백차나무를 들여와 백련사에 이식에 성공한 차나무에서 핀 백차꽃입니다
송승헌 눈썹만큼 짙고 송이향보다 백배는 강한 꽃향이
찻잔 안에 담겨있습니다
게리 카의 벅찬 베이스 선율처럼 강렬한 차향이
여연스님의 사랑을 타고 목으로 넘어가는 귀한 밤이 흘러갑니다
한시간 여의 스님과의 찻자리를 끝내고
우리 방으로 들어 와 회식을 시작합니다
절에 들어 오기 전 강진 읍내에서 요깃거리와
안줏거리를 사서 서울에서부터 공수해온 장수막걸리로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극락으 세계로 빠져듭니다
산사에서 몰래 맛보는 곡차 맛과 오로지 적막강산만이 흐르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곳에서 우리만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 같습니다
뜨끈뜨근한 방에서 고요와 평온을 느끼며 잠자리에 듭니다
새벽 4시 백련사 주지 일담스님의 염불과 목탁소리를 시작으로
심해의 깊은 바다에서 울려오는 듯한 종소리
진정 산사의 아침을 온몸으로 느끼며
백련사에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템플스테이가 처음인 저희 가족은
아침 공양을 위해 6시부터 일어나
맛있는 백련사의 음식을 먹었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열음이와 차한잔으로 백련사의 이튿날을 시작합니다
대웅전 앞의 약수
차와의 궁합이 아주 괜찮았습니다
원교 이광사가 쓴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
딸아이와 절을 둘러보며 백련사 대웅보전에 걸린
원교 이광사 현판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줍니다.
"추사가 54세 때 형조참판 시절 청의 사신으로
갖다오는 사이 정변이 일어나 사형선고 끝에 친구인
영의정 조인영의 도움으로 사형은 면했지만
머나먼 제주도 귀향길에 오르게 되지
지금이야 비행기타면 하루만에 도착하는게 제주도지만
당시에는 제주도는 죽음의 길이었단다.
육지도 아니고 섬나라 제주로의 귀향은 재수가 좋아야 연명하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단다.
전주, 남원을 거쳐 제주 귀향길에 그의 오랜 벗 초의를 만나러
대흥사에 들리는 데 그때 당시 걸려있던
원교 이광사의 현판을 비판하며 조선의 글씨를 조진 사람의
현판을 걸어놓다니 네가 제정신이 있는 게야?
추사의 극성에 못이겨 그 자리에 추사의 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런 후 9년이 지나 1848년 63세의 고령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 난 추사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초의를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예전 내가 귀향가면서 저것도 글씨냐고 떼어내라 했던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어디있는가? 있거든 내 글씨를 떼어내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하며 대흥사 대웅보전의 현판이 지금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된거지!!
그 때 이광사는 글씨는 대흥사 뿐아니라 말사인 백련사에도 남아있는데
바로 그 이광사의 글씨가 네가 지금 보고있는 이 현판이란다"
백련사 대웅보전 앞에 서있는 만경루 안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작품들이 걸려 있습니다
아이와 한자한자 읽으며 세상의 아픔에 등돌리지 않는
백련사 스님들께 깊은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절 내부 구경을 마치고 천연기념물 151호 동백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수백년 걸쳐 형성 된 아름드리 동백을 처음 보는 딸아이는
백련사가 엄마의 뱃속 처럼 아득한 편안함과 따스함을 준다며
이 곳에 살고 싶다고 연신 방글방글 됩니다
내친김에 딸아이와 구강포 드라이브를 나섰습니다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세상의 맛과 삶의 맛을 함께함이 가르침이 아닌 가리킴*의 부모의 역활임을 확신합니다
원래는 다산초당입구의 다산 수련원을 숙소로 사용하려 했으나
여연스님의 만류로 백련사에 묵게 되었습니다
부둑불 밤새 소란을 피어 숙면에 방해를 받으신
백련사 직원 분들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다산수련원에서 바라 본 광장
가르침과 가리킴
글. 밥꿈사랑 이준호
일반적으로 가르침과 가리킴을 혼동하여 말할 때가 많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에서 가르친다를 ‘교사가 학생을 가리킨다’라고 잘못 표현한다.
가르침은 교敎다.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깨닫거나 익히게 하다. 알도록 이르게 하다. 고치어 바로잡다’란 타동사다.
가리킴은 지指(가리킬지)다.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나 나침판 따위가 무엇을)특별히 짚어 보이거나 알리다. 지칭하여 이르다’란 타동사이다.
가르침과 가리킴 모두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가르침은 가르침의 대상 보다 내가 우월적 지위 또는 우월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월적 지위나 지식이 없을 경우, 대상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 막말로 권위가 상실돼 못해먹는 경우가 생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 해먹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대상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다. 왜 일까?
가리킴은 대상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손을 통하거나 말을 통하거나 내 행동을 통해 직접 안내해 주어야한다. 중국말로도 가리킴은 지향指向zhǐxiàng이라 한다. 지향은 상대에게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가능하다. 수직보다는 수평적 개념이다. 교육적 용어로는 가르침이 표준어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품의 정신은 가르침과 맞지 않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는 상대방이 가르침의 대상으로 내가 상대방 보다 우월함이 깔려 있다. 품은 아이들 보다 우월하지도 아이들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최소한 가르침의 우월적 지위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반열에 오른 분들 정도는 돼야 만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허나 가리킴은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보며 눈과 마음과 몸으로 실천이 가능하다. 아이들과 관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권위와 수직적 구조 속의 압력과 억압이다. 수직적 구조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낙하의 가속도가 더해 엄청난 데미지가 온다. 이는 엄청난 공포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자기방어를 낳는다. 현재 청소년 폭력과 학교문제는 학교와 교권이 아이들 눈과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품에는 늘 아이들이 들끓고 그들 스스로 즐기며 그들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간다. 늘 공간에 나오고 싶고 어울리고 싶고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하길 좋아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길 좋아한다. 이들 세계에는 막힘은 사라지고 오로지 통함만이 있다. 품이 특별한 것은 높이 오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품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있으니 친구 같고 형 같고 누나 같다. 공포도 없고 자기방어도 없다. 아이들이 쳐다보기 좋은 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가리켜 주는 곳이다.
세상에 가장 좋은 교육은 가르침이 아닌 삶으로 가리켜 줌이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주년 기념글 - 품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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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여행이었네. 열음이도 보고.... 많이 컸다. 함게 했으면 좋았을 그런 .....창식형은 안갔어?
이천 가시느라요
여연스님-힌우트리플-열음이 그리구 원교 이광사의 현판과 아픔에 등돌리지 않는 동지애..멋집니다~^^
읽고 보고 느끼는동안 제 입은 계속 귀를 못잡아 안달을 내고 있네요ㅋㅋㅋ
열음이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은 친구 인듯합니다^^
밥꿈사링님도요~^^
담 기회에는 꼭 같이 가시죠^^ 저도 스님께 다발성님 자랑 좀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