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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代文學思潮 (현대문학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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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수필 스크랩 *고희 와 코스모스
송병원 추천 0 조회 115 16.02.06 23:23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계절(季節) !

계절이란 일년(一年)을 춘(春) 하(夏) 추(秋) 동(冬)으로 나눈 그 한 절기를 뜻함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온대성기후에다 사계절(四季節)이 뚜렷하고 물은 맑고 공기는 깨끗하고 산천경개는

아름다워 살기가 좋다고 해서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일커러 삼천리 금수강산(三千里 錦水江山)

이라고 일커렀다.

 

봄(春)은 온화롭고 따사로워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절이고

여름(夏)은 무덥고 비 또한 식물들이 자라기 알맞게 내려 삼라만상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계절이고 가을(秋)은 아침 저녁으로는 봄날 같고 한낮은 따사로워 오곡과 과일을 알차게 영그는

계절이고 겨울(冬)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눈보라는 휘몰아 치고 추위가 기승을 부려 땅과 물은

꽁꽁 얼어 삼라만상이 휴식을 취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옛부터 우리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세계만방에 자랑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상이변으로 사계(四季)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더니 근자에는 봄은 조금씩 

짧아지는 것 같고 여름은 짧아진 봄 만큼 길어지면서 기온 또한 온대에서 고온다습한 아열대로

바뀌려는지 온도가 높아 졌고 가을은 옛 그대로인 것 같은데 겨울은 내 어릴 때보다 춥기는 덜

춥고 눈도 적게 내리는 것같다.

 

우리 인생도 四계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얼음이 녹아 대동강이 풀리고 낮과 밤이 똑 같아지는 춘분이 돼면 꽃 피고 새 우는 봄의 시작이라면

인생의 봄은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으로부터 뼈와 살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머님의 젖을 먹는 유아기를 거쳐 초,중,고,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돼는 20세까지가 아닐까?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걷어들일 것이 없기에 봄이 중요하듯 인생의 봄 역시 밭에 씨앗을

뿌리듯 인격이 형성 돼는 시기으므로 학문과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만 한평생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는 기본을 갖추는 제일로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면 인생의 여름은 언제부터 인가?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면서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태양이 봄에 뿌린 씨앗을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게 하는 계절이 여름인 것처럼 인생의 여름은 피 끓는 젊음으로 병역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서

직장 잡고 결혼해서 자식 낳아 동량지재(棟梁之材)로 키우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을 해도 피곤함을

모르는 40세까지가 아닐까?

그러면 인생 가을은 언제부터인가?

하지를 지나면서부터 낮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다가 추분이 돼면 낮과 밤이 똑 같아지면 며칠 전까지

세상을 구워 삶을듯 이글거리던 태양이 갑자기 힘을 잃고는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지면서 무럭무럭 자라난 오곡을 알차게 영그는 시기를 가을이라고 하듯 인생의 가을도

피끓는 젊음이 가려는지 어느날 갑자기 힘이 줄어들기 시작을하고 젊었을 때는 밤을 낮삼아 일을 해도

느껴보지 못한 피곤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불혹의 마흔살부터 인생의 가을이 시작돼는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봄 여름도 중요한 시기이지만 가을은 수확을 하는 시기으므로 가을 또한 중요한 절기다.

가을추수는 열 사람이 지은 농사 혼자서 거둬 드린다는 옛 말처럼 매우 바쁜 계절이다.

추수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제 때 거둬들여야만 추운 겨울동안 굶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곶감을 만들려면 잘 익은 감을 제 때 따서 깎아 말려야만 맛 있는 곶감을 만들 수가 있지 조금만 시기를

놓지면 감은 홍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 추수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동동걸음질을 치기에 가을를 동동가을이라고 일커르듯 인생의

가을인 불혹(不惑)의 마흔살이 소리 소문도 없이 찾아 온다.

가을이 문을 열면 눈이 시리도록 푸르든 나뭇잎이 무지개인양 울긋 불긋 곱게 단풍이 들어 정신을 얼질트려

놓듯 인생의 가을 역시 40년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자리까지 왔기에 인생의 가을인 이순(耳順)

까지는 고운 단풍처럼 좋은 일이 포도송이처럼 주저리 주저리 매달려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결코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봄과 여름보다 더욱 더 힘들고 벅찬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오면 눈이 시리도록 푸르던 들녘의 벼들이 새벽 이슬과 아침 저녁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는

푸른잎이 황금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듯 인생 초가을을 맞이해서 느끼는

느낌은 황금빛들녘을 바라보는 느낌처럼 무한한 행복함을 느꼈다.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꺼질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지는 못 했어도 마음 속으로는 단 하루도 자식들을 

생각하지 않은 날 없이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 게 자식들이 성년이 되어 의젓한

사각모를 쓰고 대학졸업생이 되어 있다.

어릴 때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는데 어느새 자식이 성인이 됐으니 이제는 해야할 일은 좋은 

짝을 찾아 결혼을 시켜야 한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조혼을 하던 우리세대와는 달리 절대로 조혼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과

달리 남녀가 평등하기에 여러가지가 서로 맞아야만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 둘씩 자식들 결혼 시켜서 함께 살자고 했더니 선전포고를 하듯 같이 살자면 결혼을 하질

않겠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있던가?

쥐꼬리만큼 ?아 놓은 돈으로 결혼 시켜 분가 시키고 나니 인생의 가을은 소리 소문도 없이 가버리고 춥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삭막하기 이를데 없는 겨울인 이순(耳順)이 백발을 앞세우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 낸다.

이순! 

육십갑자가 한바퀴 돌아 내 나이가 어느새 60 이 된 것이다.

성장한 자식들이 그동안 낳아주고 키워주고 결혼까지 시켜 줘서 고맙다고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거 하게

잔칫상을 차려 주고는 배터지게 먹고 앞으로는 쥐 죽은듯 조용히 살라고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눈만 떨어지면 나갔던 직장에서도 이제는 늙어서 쓸모가 없다면서 쥐꼬리만큼 퇴직금을 쥐여주면서

앞으로는 직장은 나오지 말고 손주들과 놀면서 과자나 사 먹으란다.

도대체 환갑이 뭐길래 환갑이 지나고나니 고물취급을 한단 말인가?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육십년을 살아 온 사회의 대우가 고작 이런 것이란 말인가?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서도 여러가지의 변화가 일어 난다.

"서민이 살기에는 하절이 좋다"는 선조들의 말씀처럼 겨울은 날씨가 춥기에 연료비도 많이 들고 의 식 주

모두다 추위를 이겨내야 하듯 환갑을 지나고 나니 몸 또한 근육이 굳어서 그런지 힘이 줄어들면서 매사

의욕을 잃고 귀찮다는 생각이들면서 행동 또한 굼뜨고 게을러 지는 것 같고 음식을 먹어도 미각을 잃어서

그런지 식욕이 떨어지면서 그 맛이 그 맛 같다.

뿐만아니라 환갑 전에는 친구가 만나자면 밤 낮 가리지 않고 콩튀듯 튀어나갔는데 환갑을 지난 지금은 일단 

집에 들어오면 친구 아니라 친구 할아버지가 나오라고 해도 나가기가 귀찮아지면서 핑게거리를 찾는 것을

보면 " 늙으면 죽어야지....!!! "하시던 옛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나도 어느새 그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가 그뿐이면 좋겠지만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몸도 늙은이 징후가 서서히 나타 난다.

검던 머리카락도 갈대인양 희끗희끗 백발을 휘날리고 탱글탱글하든 피부 역시 소나무 껍질인양 티죽티죽

거칠어 지고 젊을 때는 깨알 같은 글씨도 이마에 내 천자 그리지 않고 줄줄 잘도 읽었는데 환갑이 지난 후로는

눈 앞에 장막을 드리운듯 작은 글씨는 읽지를 못해 얼굴에 창문을 달듯 콧등에 돋보기가 얹이고 환갑 전에는

천천히 걸어도 바지가랑이에서 휙! 휙! 바람이 태풍처럼 일었는데 지금은 걸음도 충청도 양반 걸음을 닮아가는지

세월아 네월아 거북이를 닮아 간다.

환갑이 지나고 어영 부영 4~5년 산 것 같은데 어느새 칠십 코 앞에 다가 섰다. 

고구려 시대 같으면야 고려장(高麗葬)이라고 자식들이 산에다 져다가  버릴 나이가 아닌가?

내가 어느새 칠십이라니 믿어야하는데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대한민국 남자들 평균 수명은 팔십세라고 하니 앞으로 강산이 한 번만 변하면 나 역시 생을

마감해야만 한다.

누구나 고희가 돼면 나는 인생사계 어디쯤 서 있는가 한 번쯤은 생각해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인생 사계 어디 쯤에 서 있는가?

입동(立冬)을 지나 소설(小雪)절기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까? 

그 게 아니라면 팥죽을 끓여 먹는 동지(冬至)를 맞이해서 팥죽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것도 아니라면 추위를 꿔서라도 한다는 소한(小寒) 언저리에서 오들 오들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봄,여름,가을 겨울를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가 있을까?

그 것은 하느님만이 알고 있는 천기(天機)다.

천기를 누설하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生)과 사(死)는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미리 알려고도 하질 말고

알고 싶지도 않다.

수개 뭐 자랑하듯 어리석은 인간들 만물의 영장이라고 꼴값을 떨면서 살아가지만 알고보면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는 한치 앞도 모르면서 미련한 곰처럼 살아 간다.

 

앞으로 두 달 후면 나이를 한살 더 꿰차 드디어 칠십이 되니 쥐꼬리 만큼 남은 인생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우리 주위에 부자라는 졸부들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앞으로 백년

천년을 살 것처럼 욕심과 심술에다 갑질까지하면서 살아 간다.

그렇다면 쥐꼬리 만큼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만 후회 없이 살다 갈 수 있을까?

후회없이 살다 가려면 해탈한듯 욕심과 욕망은 모두 버리고 최영장군처럼 황금을 돌 같이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어쩌면 대한(大寒)을 지나 대동강물이 풀리고 개구리 입이 떨어지는 우수(雨水) 경칩(驚蟄)

을 지나 꽃 피고 새 우는 춘분(春分)까지도 살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장수하는 것만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루를 살아도 건강한 몸으로 인간답게 살아야만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식물인간이 돼어 듣도 보도 못하고 붕어처럼 숨만 뻐끔뻐끔 쉬면서 살면 과연 그 것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삶이 아니라 재앙이 아닐까?

며칠 전 Tv에서 2018년부터 우리나라도 재활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안락사(安樂死)를 허용하다고 한다.

조금 늦은감은 있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결정을 한 것같다.

옛부터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했든가?

우리나라국민들 보약이라면 무엇이 됐든 가리질 않고 마구 먹는데 보약 좋아하는 사람 치고 오래사는

사람을 나는 여직 보질 못했다.

소식 장수라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식하지 말고 알맞게 먹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러니 음식 역시 욕심 부리지 말고 되도록 신토불이를 먹으면서 사노라면 어느날 하느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이 세상 소풍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가자고  손짓하면 그 때 따라나서면 될 것이다.

 

누구나 고희(古稀) 코 앞에 서게 되면 그동안 살아 온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꿈처럼 흘러가버린 인생의 봄,여름,가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해방 다음 해 몹시도 추운 섣달 그믐 가난한 빈농의 맏아들로 태어 났다.   

어린시절 가난 했기에 굶주림이 바늘에 꿰인 실처럼 몸에 찰싹 달라붙어 애인처럼 함께 살아왔다.

그 시절 호의호식하면서 잘 사는 부잣집 자식들을 보며는 나는 왜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질 못 하고 왜

하필이면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 났을까?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가난한집에 태어 난 것은 아닐까?

사노라면 언젠가는 가난의 굴레는 벗을 수는 있을까? 

부자로 살 수는 없을까?

자문자답을 하면서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한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기 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그때부터

그 말을 되뇌이면서 가난하게 태어난 것에 대해 위안을 삼으면서 삶이 힘들 때면 가난하게 살면 정말로 

천당엔 갈 수는 있나?

가끔씩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했다.

천당과 지옥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은 아닐까?

설사 허상이 아니라고할지라도 죽어서 지옥에 가는한이 있어도 부자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보물처럼 소중한 인생의 봄은 가난과 싸우다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다 그시절 소중한 인생의 봄이 내

게는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든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갈 수만 있다면 하루를 열흘 같이 잘 살것만 같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불변의 진리인데 인생의 봄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앗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훌륭한 모습이 돼어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스님이 정진(精進)하여 득도하듯 인생의 봄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현명한 사람은 학문과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분도 많다.

그러나 졸부들은 인생의 봄이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고도 놀부처럼 자기 욕심을 채우는 일에만 급급했기에

금은보화는 뒤주가 넘치도록 가득 쌓아 놓고 고대광실에서 " 세월아! 고장이라도 나서 더는 가지말고

이대로 멈춰라" 스님 목사 신부 번갈아 불러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인간도 저승사자를 돌려보내지는

못하더라.

인생도 끼리끼리 산다고 주위에는 인생의 사계가 있다는 것을 미리 깨닫지 못하고 인생은 늘 따뜻한 봄날

같으리라 착각을하고 살아 온 어리석은 사람들은 삶을 실패하고는 세상이 불공평하다는둥 불평과 불만만

늘어 놓으면서 주색잡기로 소일하다가 폐인이 돼어 살기가 싫다고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뇌까리면서도 

생 목숨 끊지를 못해 억지춘향 살아가는 사람도 꾀나 많다.

짧기만한 인생의 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참으로 소중한 봄인데 어리석게도 나는 그 것을 일찍이 깨닫지 못하고 짧기만한

인생의 봄 1년은 2~3년이라도 되는양 지루하게만 느끼면서 어서 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학수고대 했다.

어른이 되면 누군가 도깨비방망이라도 갖다주는줄로 착각을 하고는  "세월아 걷지 말고 뛰어서 가라"고 

요랑까지 흔든 것을 생각하니 후회스럽기만 하다.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 금쪽 같은 인생의 봄,여름,가을 어리석게도 늘 내 옆에 머물러줄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좋은 세월은 다 흘러가버리고 남은 세월은 춥고 쓸쓸하고 삭막하기 이를데 없는 겨울도

반토막 남았다고 생각하니 한평생이 여름밤의 꿈처럼 허망하고 짧게만 느껴진다.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궁시렁거리면서 넋두리를 한들 뻐스는 벌써 떠났는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오늘 따라 쌩쌩 불고지나가는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 가슴이 시려 온다.

헌데 고희를 앞둔 요즘 내 주위에는 기가 막힐 일이 자주 일어 난다.  

인생의 사계의 소중함을 미리 깨닫고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친구들이 무슨 연유인지 풍년농사를 지어 뒤주

가득 오곡이 철철 넘쳐나도록 쌓아 놓고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면서 천년 만년 살것처럼 기세 등등

살아가든 친구가 뒤주 속의 오곡을 반에 반도 먹질 못하고 갑자기 저승으로 떠나버렸다.

한평생 뒤주 채우는 일에만 몰두해서 호의호식도 못하고 구두쇠처럼 살드니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기계도 기름칠자주하고 정비를하면서 사용하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듯이 인간도 기계와 다를바가 없는데

뒤주 가득 채워 놓고 먼저 저승에 간 친구들 인생사계 소중한 것은 일찍 깨달앗으면서도 건강 소중한 것은

뒤 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저승 !

저승은 정말로 있는 것인가?

정말로 저승이 있다면 저승이 좋기는 좋은 모양보다.

왜냐하면 저승으로 간 사람은 그 누구도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부터 "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이 생겨낫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재차"라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카( Car)시대에 살고 있기에 속담도 변하는 것인가?

내 어린시절에는 자동차는 지금의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 정도로 차가 귀했으니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은 하늘에 별따기였는데 요즘은 집집마다가 아니라 식구마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일년에 5,000명이 넘고 부상을 당하는 사람도 무려 32만여명이나 된다고 하니 

"인명은 재차"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닌 것같다.

그러나 아무리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도 옛날보다 수명이 이삼십년은 길어져서 우리나라 남자들 평균

수명은 팔십을 넘어 섰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이제는 장수국이라고 불러도 결코 과언은 아니다.

장수(長壽)국이 된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첫 번째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물리친 박정희대통령 덕분이라고 생각 한다.

내 어릴적 봄이오면 묵은 식량은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영글지 않아 먹을 것이 없는시기라고 해서 봄을

춘궁기(春窮期)라고 했다.

오죽이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연명하기까지 했겠는가?

먹거리가 부족한 그 시절 어느 마을이건 환갑을 넘기신 어른은 손으로 꼽을 정도 였다.

그?기에 환갑리 돼면 장수 했다고 마을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고 자손들은 집안의 경사라면서

돼지 잡고 술 빚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장만해서 마을잔치를 벌렸는데 1961년 5월 16일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군사혁명을 일으켜 썩은정부를 몰아내고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몰아내자고 새마을운동을

전개해서 드디어 가난의 대명사인 춘궁기 보릿고개를 몰아내고 잘살게 되면서부터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원 없이 먹고 살아왔기에 요즘은 환갑을 넘겨도 젊었다고 노인축에는 끼지도 못하기에 경로당엔 명함도 못

내밀고 고희는 넘겨야만 정회원으로 받아준다고 한다.

두 번째는 발달 된 의술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옛날에는 불치의 병으로 여겼던 결핵이나  맹장염은 병축에 끼지도 못하고 암과 같은 병에 걸려도 제 때

수술만 받으면 강산이 변하도록 살지만 옛날에는수술을 받아야할 병에 걸리면 의료시설이 열악하고 의술

또한 발달하질 못해서 수술을 받지를 못하고 곧 바로 저승사자를 따라 나서야만 했다.

부자들도 수술을 못하고 고작 한다는 짓이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으니 무슨 재주로 팔십 구십까지 살 수가

있겠는가?

옛날과 비교해보면 요즘 노인들은 참으로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옛날에는 젊은사람이나 노인이나 수술을 받아야할 병에 걸리면 대부분 죽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병원과 의사와 의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잠깐 수술만 받으면 명대로 사실분들이 가난해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는 것도 억울하고 원통한 일인데

갑작스럽게 죽은 것은 마치 무슨 큰 죄를 지어서  천벌을 받아 죽었다느니..... 상가집에서 다녀와서 상문살을

맞아 죽었다느니 하면서 마을에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아 마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단명하신분들은 시절을 잘못 만나 인생의 봄 여름 소처럼 일만 하고는 가을철 추수의

기쁨과 뒤주에 가득찬 오곡으로 따뜻한 방에서 겨울삼동 먹고 살아가는 인생의 겨울은 맛도보지 못하고 가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은 모두 가버리고 지금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꽁꽁 얼음이

어는 겨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삶은 살아 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턱 없이 짧을 것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뒤주 속에 곡식도 더는 늘어나지를 않고 찬물에 거시기 오그라들듯 

자꾸만 줄어 든다.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덧 없이 흘러가버린 봄 여름 가을를 뒤돌아 보니

마치 봄날의 꿈처럼 느껴진다.

꿈꾸듯 가버린 인생 내게는 어느 계절이 제일 행복한 계절이였나?

인생의 봄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따뜻한 햇살처럼 인간에게는 청운의 푸른꿈을 키우는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해방을 전 후해 태어난 우리세대는 대부분 가난을 멍에처럼 걸고 태어 났기에 청운의 푸른꿈을 키우는 일은 

뒷전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목에 풀칠하기가 바빠 허우적거리면서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나니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 더위가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는 여름이 기다리고 있다

서민이 살기에는 하절이 좋다는 선조의 지혜로운 말씀처럼 날씨가 무더워서 살아가기가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5,16군사혁명이 일어나서 반만년의 가난을 몰아내고 우리민족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운동이

일어나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간다.

내 꿈 역시 가난을 몰아내는 것이였기에 새마을운동에 참여해서 오직 가난을 몰아내야 겠다는 일념으로 더위를  

벗을 삼아 옆도 뒤도 돌아보지를 않고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을 했다.

세상을 구워삶을듯 이글거리는 태양이 콱콱 숨을 막는 날이면 나도 인간인데 갈매기 날고 파도가 춤을 추는

바다를 찾아가 인어처럼 멋스럽게 수영을하는 멋진 아가씨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그럴 때면 가마솥 걸머지고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냇가로 나가 족대로 물고기 잡아서 매운탕 끓여 

가지고 막걸리 잔 기울이며 목이 터져라 새마을 노래를 불으면서 천렵을 즐기면서 십여년도 넘게 새마을 운동에

피땀을 흘린 결과 도토리껍질을 엎어 놓은듯 초라하고 볼품 없는 초가집을 허물고는 기와집을 짓고 지게 지고

다니든 좁은 농로도 마차나 경운기가 다닐 수 있게 넓게 닦아놓고는 벼 다수확을 위해 품종도 개량하고 재배방법

또한 과학영농을 실시한 결과 생산량이 늘어나서 봄이면 그렇게나 넘기 힘들었든 보릿고개도 허물어 졌고 평생

소원이였던 쌀밥에 고깃국도 원 없이 먹을 수가 있게 됐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온 국민들이 새마을운동을 삶의 지표로 삼고 십여년을 피땀을 흘리면서 노력한

덕으로 우리민족과 반만년을 동거동락(同居同樂)한 가난을 드디어 몰아낸 것이다.

인생 여름 고생은 했어도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보람참 일인가?

우리 부모님세대와 우리세대의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우리 후손들은 절대로 가난 때문에 굶는다거나 배움을 포기하는

그런 슬픈 일은 다시는 겪지 않아도 돼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가장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살앗든 시절은 가마솥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였다.

 

계절의 가을이나 인생의 가을이나 가을은 그동안 피땀흘려 가꾼 오곡을 거둬들이는 바쁜 계절이다.

"열사람이 지은 농사 혼자서 거둬들인다"는 속담도 있기는 하지만 추수는 눈이 오고 얼음이 얼기 전에 그동안 가꾼  

오곡을 모두 다 거둬들여야하기에 힘든 일이지만 크나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다.

봄 여름 피땀 흘리며 씨앗뿌리고 가꾼 곡식과 채소와 과일 한톨까지도 허실 없이 제 때 거둬드려야만 쥐구멍에 눈뿌릴 

엄동설한 굶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봄 여름철과는 달리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만회할 길이 없기에 오줌 누고 거시기도 볼 사이도 없이 매우 바뿐

시기라 더우면 쉬든 여름철과는 달리 동동걸음질을 치는 계절이다.

인생의 가을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장성한 자식들 하나 둘씩 제 짝 찾아서 출가시키고 나면 천년 만년 사실줄로만 알았든 부모님도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찌나 놀라웁고 황망한지 정신도 못차리고 허둥지둥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제서야 인생은

풀 끝에 맺힌 이슬처럼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모시고 자식들과 오순도순 살아갈 때는 집안에 웃음소리가 끝이질 않았는데 자식들 출가시키고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집은 절간인양 조용하기 그지 없다.

누군가 몸무게가 제일로 많이 나갈 때는 마음에 철이 들었을 때라고 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이제야 철이드는지 돌아가신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은 후회막급 아파오고 출가한 자식들이 자주 보고 싶어도 자식들도 아이들

키우면서 자기들 생활이 바빠서 자주 못 보게 되니 요즘은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듯 삶이 허전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다.

어디 그뿐인가?  

부자들이야 가진 것이 돈 뿐이라 물처럼 마구 써도 그대로이지만 우리 같은 서민이야 그동안 먹고 살고 쥐꼬리 만큼 

남은 것모아 놓은 재산은 자식들 출가시키고 부모님 장례치르고 나니 바닦을 들어 낸다.

남매를 둔 나도 이런데 자식 여럿 둔 부모는 모르긴 몰라도 기둥뿌리가 흔들 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내 어린시절에는 백년이 가야 세대차이가 난다고 했는데 요즘은 1~2년 아니 반 년만 지나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세상이 빨르게 변해간다는 소리가 아닌가?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든가?

고희를 바라보는 세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사회속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생활신조로 삼고 남존여비

(南尊女卑)의 봉건주의 사상이 골수에 박힐 정도로 보고 들으면서 자라났기에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요즘 세대들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 어린시절과 지금은 모든 것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변했는데도  아직도 머릿속에는 그릇 된 남존여비의 사상이

대못처럼 머리에 꽉 박혀서 빠지질 않는 것은 무슨 연유란 말인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 오셨다.

세상에 태어나면 출가 전까지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며 살아가다가 출가 후에는 남편의 뜻을 받들며 살아가다가

늙어지면 자식의 뜻을 받들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희생과 헌신 봉사로 살아가는데 그런 아내에게 늘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아내를 공주처럼 떠 받들면서 살아도 그 노고에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보답을

할까 말까한 일인데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잘못 배운 그릇된 봉건주의 사고방식 때문에 오직 남자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는 커녕 여자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큰 소리만

탕탕치면서 살아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들이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를 휘여잡고 살아 온 것은 아니다.

여자는 나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모두다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내 어린시절 마을에 황소고집을 부리는 처녀가 있었는데 못생긴 얼굴이 아닌데도 고집이 너무나 세서 총각들이

거들 떠 보지를 않아 노처녀로 늙어가고 있는데 마을에서 샌님이라고 소문난 얌전한 총각이 고집 센 노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하자 노처녀가 얼마나 고집이 셌던지 총각 부모님까지 결혼을 반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샌님총각은 여자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있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고집 센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샌님이 장가가는 날 총각부모님이나 마을사람들은 두고보면 알겠지만 일년도 못 살고 헤어질 것이라고들 쑥떡

거리면서 호언장담을 했는데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돼든 해 첫아들을 낳고도 헤어지지 않고 금술 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착한 샌님 남편은 아내의 고집을 어떻게 꺾었을까?

샌님 남편은 평상시에는 좋은 땔감만 해다주다가 아내가 고집을 부리는 날이면 가시가 있는 아카시아, 노간주나무

청솔갑을 같은 좋지 않은 땔감을 해다 줬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고집을 부릴 때마다 남편이 나뿐 땔감을 해다줘서 손에는 가시가 박히고 연기로 눈물 콧믈을

비오듯 흘리면서 고생을 하게 돼자 아내는 그제서야 고집을 부리면 손해를 본다는 것을 깨닫고는 차츰 고집을

줄이드니 끝내는 쓸데없는 고집은 절대로 부리지 않고 착한 남편을 따르는 현모양처로 바뀌었다.

고집이 세면 통하는게 없다는 고집불통이든 아내가 지혜로운 남편의 슬기로 드디어 현모양처로 바꿔 놓은 것이다.

 

여자들 신새 생각해서 후살이 간다고 가난을 물리치고 잘 살게 되면서부터 돈이면 안돼는 것이 없는 황금만능주의

세상으로 변해가자  예절과 의리도 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돼버리자 돈의 힘을 알게 된 고희의 남편을 둔 아내들은

남편이 늙어 더 이상 돈을 벌어오지 않게 돼자 돈 맛을 못 잊어 남편보기를 소 닭보듯 하면서 푸대접을 한다.

열 아홉 처녀로 시집 올 때는 순한 양처럼 무슨 일이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마디 불평 불만도 없이 고분 고분

하드니 자식을 낳고 부터는 갑자기 표독한 고양이로 변하드니 남편이 마음에 안들 때면 발가락에 숨겼든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면서 할퀴기 시작하드니 남편이 고희를 바라보는 요즘은 호랑이로 변해서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을

쥐잡듯 하면서 남편 기를 꺾어 놓드니 결국에는 이혼을 하잖다.

황혼인생에 이혼이라.....!!!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거시기 조차 막힐 일이다.

젊음 때는 호랑이라도 떼려 잡을듯 용솟음 치든 힘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콩 서말 겨우들 정도고 정년으로 수입

조차 끊어진데다가 벌어 놓은 재산도 자식 키우고 출가 시키느라고 쥐꼬리 만큼 남았는데 황혼이혼으로 쥐꼬리 마져

빼앗기게 생겼으니 어찌살란 말인가?

지는 해는 노을이나 아름답지 고희를 바라보는 남정내들은 끈 떨어진 갓처럼 힘 떨어지고 볼품 조차 없는데 이혼까지

당하면 이제 그만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저승으로 가란 말인가?

 

갑자기 송강 정철(鄭澈)(1536~1593)시인의 시 한 수가 생각난다.

    

       " 이고 진 저 늙은이 "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러라 커늘 짐조차 지실까

 

늙은이의 ?음을 표현한 시다.

늙기도 서러운데 황혼에 이혼까지 당하게 돼면 가뜩이나 쓸쓸하고 외로운 겨울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아내야 이혼을 하면 혹부리 혹을 뗀듯 기분이 훨훨 하늘을 날겠지만 밥 한 번 빨래 한 번 해보지 않은 남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들 자살율이 세계에서 제일로 높은 이유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고 했든가?

고희 코 앞까지 살다보니 서러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운 일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뿐만아니라 금수만도 못한 자식들은 부모님이 늙으면 응당 봉양해야 하거늘 봉양은 커녕 쥐꼬리만한 부모님

연금에다 빨대를 꼽는 빨대족도 있고 그 보다 더 악날하고 흉악한 놈은 부모님 재산이 탐이나서 부모를 집에서

쫓아내거나 심지어는 살해하는 폐륜아까지 있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쳐서 돌아가는지 금수만도

못한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비정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상이 이러할진데 고희를 맞이하는 전 후 세대들은 어쩌면 제일로 불행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웬가하면 효도를 하는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번 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희 코 앞까지 살아 온 그동안의 삶이 결코 헛돼게 살았다거나 억울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희세대도 반만년을 이어 온 가난을 물리치는데 일조를 했으니 그 업적은 자손만대 길이 빛날 것이다.

 

한 해에 한 살씩 먹는 나이 나는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 만큼 공평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자라고 해서 이년에 한 살 먹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한 해에 두 살을 먹는 것도 아니다 얼굴이 못낫다고 나이를

더 먹거나 잘 낫다고 덜 먹는 것도 아니며 학식이 높다고 삼년에 한 살을 먹고 무식하다고 일년에 두 살을 먹는

것도 아니며 벼슬이 높다고 키가 크고 몸이 날씬하고 똑똑하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나이를 덜 먹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이나 도둑놈까지도 평등하게 한 해에 한 살씩 먹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공평한 것은 나이 뿐만아니라 세배 또한 그런 것같다.

어릴 때는 설날이면 무릎이 닳도록 세배을 했는데 요즘은 그와는 반대로 받기만 한다.

세배하니 갑자기 옛일이 떠오른다.

설날이면 세배하려고 노인들이 모여 노시는 사랑방을 찾아가면 내 방에서는 나질 않는 역한 노인냄새가 코를 찔러

코로는 숨을 못 쉬고 입으로 숨을 쉬면서  번개치듯 세배를 드리고 콩튀듯 튀어 나오려면 낚시 미끼인양 노인께서

주시는 세뱃돈에 코가 걸려 잠시 꿇어 앉아 있노라면 이(齒)가 빠져 헛바람이 새서 그런지 어눌한 목소리로 선생님

훈시하시듯 창수할아버지와 서당훈장님이셨든 남규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시든 덕담이 지금도 귀에 쟁쟁 생각이 난다.

 

말씀은 어눌해도 눈치만은 9단이신 창수할아버지 똥 먹은 개 상을하고 꿇어 앉아 있는 우리를 둘러보시고는 못

마땅하다는듯 엄한 표정을 지으시며

" 떡국은 먹었느냐? "

" 예 먹었습니다 "

사랑방이 떠나가라 대답을 하고나면

"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으면 철이 들어야 하는데 왜 다들 똥 먹은 개상을 하고 있느냐? 혹시 노인들 냄새가 싫어서

그러느냐? "

우리는 속마음을 들켜 대답도 못하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만 푹 숙이고는 뚫어져라 방바닥만 보고 있노라면

"고이얀 놈들 같으니라구....!!! 우리는 뭐 태어날 때부터 냄새나는 늙은이로 태어 난줄 아느냐? 우리도 한때는 너희들

같은 꽃같은 시절도 있었느니라 "

창수할아버지의 꾸중을 듣고나면 남규 할아버지께서는 위엄을 보이시려는듯 길게 자란 수염을 두어 번 쓸어내리시고는

쌈지에서 빳빳한 새 돈을 꺼내들고는 세뱃돈은 주시질 않고 누가 훈장선생님 아니랄까봐 설날이면 의례 읊조리시는 

말씀을 또 다시 리바이벌(revival) 하신다.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니라"

소년이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배워 이루기는 어렵우니 일 분 일 초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 때 그 말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토씨 하나 버릴 것 없는 인생의 좌우명(左右銘) 같은 주옥 같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훌륭한 말씀을 그 때는 철이 없고 어리석어서 그랬든지 새겨 듣지를 못하고 어른들 말씀은 고리타분한 잔소리라고

여기고는 귓등으로 들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만 스럽다.

그 때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듣고 학문에 전념 했더라면 지금 요 모양 요꼴이 돼지 않았을 텐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오래전에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어디 잘못 생각한 것이 그 뿐인가?

머지않아 어른이 되면 세월이 겉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흘러 가니 시간을 아껴 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기에

시간이란 소털처럼 많고 많은데 어른이 돼면 하루가 20시간으로 줄어드나 시간을 왜 아껴 쓰란 말인가?

청개구리 삼신이라도 들린듯 어른들 말씀을 듣지를 않았는데 어느듯 번개처럼 세월이 흘러 고희 코 앞에 서고 보니

그 때 훈장선생님의 그 말씀을 들을걸하는 후회막급한 생각만 든다.

 

인간은 태어나 나이를 먹게 돼면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데 졸부들은 늙지 않고 영원히 이팔청춘으로 살겠다고 

눈만 떨어지면 몸에 좋다는 것을 찾아서 전국을 누비고다니면서 원 없이 먹고 또 먹어도 세월이 가면 졸부 역시

검은머리 파뿌리가 돼고 이마에는 냇물이 흘러가라고 내 천(川)자가 선명하게 그려지고 끝네는  병마와 싸우다가

저승사자를 따라 간다.

그런데[ 요즘에 저승은 옛날과는 달리 경제가 매우 나빠진 것 같다.

옛날 저승은 일거리는 넘쳐나는데도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환갑이 돼기도 전에 대부분 데리고 갔는데 요즘은 저승에도

IMF가 찾아와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지 그 게 아니라면 저승사자들이 처우가 시원찮아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데모를 하는지 팔,구십을 넘기고 백살이 넘어가도 데려가질 않는다.

 

내 어린시절에는 100살을 넘기신분은 도에 몇분 계실까 말까 했는데 요즘은 도 마다 백살을 넘기시는분이 천여명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이제는 장수국에 입적을하게 된 것이다.

2015년 8월 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100세를 넘기신분이 무려 1만4천여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중 남자는 3천

4백여분 정도이고 1만1천명은 여자라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도 100세를 넘긴분이 무려 4만 8천여명이나 돼고 미국 또한 100세를 넘긴 인구가 5만 3천여명이나 된다고

하니 나라가 잘 살아야만 장수국이 돼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왜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오래사는 것인가?

대부분 남자보다 여자들이 음식을 장만하기에 음식냄새를 많이 맡기 때문에 더 오래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장수는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앞으로 GNP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우리의 수명은 늘어나서 우리 후손들은 백오십살

아니 이백살까지 살지도 모를 일이다.

 

오복(五福)!

인간은 누구나 오복(五福) 받기를 원한다.

첫 째는 오래 살고 싶은 수(壽)이고

둘 째는 부자로 잘 살고 싶은 부(富)다

셋 째는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강녕(康寧)이며

넷 째는 남에게 선행을 베풀고 덕을 쌓고 놀부처럼 자기만을 위한 부가 아닌 남을 위해 부를 누리는 

유호덕(攸好德) 하고

다섯 번 째는 명대로 살다가 2~3일 앓고는 죽기를 바라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우리나라 명문인 어느 여자대학에서 오복에 대해 강의를 하다가 교수가 육복(六福)을 만든다면 어떤 복을

하나 더 넣는 것이 좋겠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많은 학생들이 조실부모(早失父母)를 넣자고 했다고 한다.

" 조실부모란 "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뜻이 아닌가?

지성인 대학생들이 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유인 즉 부모님을 모시기가 싫으니 돈이나 많이 벌어 놓고 일찍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닌가?

참으로 놀날 일이다.

옛부터 우리민족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전 세계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백의민족이 아닌가?

그런 민족이 어쩌다가 부모님도 싫고 돈만 밝히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으로 변해간단 말인가?

속담에 " 못 배운 자식이 효도한다"고 했는데 부모님 덕에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호의호식 하면서 대학에

유학까지 보냈드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 조실부모"란 말인가?

참으로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거시기가 막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옛 선인들이 육복을 만들지 않고 오복만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시나마 알 것 같다.

 

인간이면 누구나 오복을 다 받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오복을 다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물,경치,정자까지 좋으면야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세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요즘 많은 노인들이 "구구팔팔 이삼사"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그도 그럴 것이 칠십이든 팔십이든 구십이든 백살을 넘게 살든 명대로 살다가 2~3일 앓고는 잠자듯 가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란다.

그 누가 고종명의 마지막 복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 것이 어디 원한다고 돼는 일인가?

고종명 복은 악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주질말고 착한 사람에게만 준다면 어지러운 우리 사회는 한결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고종명의 복을 타고난 사람은 2~3일 앓고는 잠자듯 저승으로 떠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짧게는 한 달 두 달 길게는 !~2년 심지어는 10년도 넘게 병마와 싸우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간다.

 

잔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랜기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 간병에 지친 자식의 효심도 꺼져가는 화롯불처럼 차츰

사그라들어 끝 내는 노인병원에 입원을 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그동안 모아 놓은 쥐꼬리만한 재산도 치료비로 몽땅 날리고 끝내는 자손에게 빚까지 남겨준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고희 앞에 서고 보니 남은 여생 오직 하나 소원이 있다면 사는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저승으로 갈 때는 2~3일만 앓고는 가는 고종명의 복을 받기를 빌어 본다.

삶이란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살아야 산다고말 할 수 있지 산소마스크 쓰고 식물인간으로 오래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재앙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이 드신 어른들 젊을 때는 본채 만채하든 사찰이나 교회를 자주 찾아 가서 굽은 허리로

구부렁 구부렁 절을하면서 부처님과 하나님께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가만히 엿들어 보면

고종명의 복을 내려 달라고 궁시렁 거리신다.

 

고희를 넘기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자문을 해봤을 것이다.

나는 몇살까지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답은 신만이 아는 신의 영역이라 중생들은 알 수도 알 길도 없다.

그 것을 알려면 옥황상제나 저승사자를 친해놔야 하는데 사람이 어찌 신과 친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는 저승사자를 속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가 있는데 그러려면 우리나라

에서 제일로 성형수술을 잘 하는 의사를 찾아가서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얼굴로 수술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저승사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가 몰라보고는 그냥 갈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또한 그림의 떡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형욋과에는 문병외에는 가본 일이 없으니 말이다.

헌데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못난 자기의 얼굴이 싫어서 이웃에 잘난사람 얼굴로 성형수술을

했는데 재수 없는 사람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필이면 이웃에 잘난 사람이 단명을 타고 나서 갈 때가 돼서 

저승사가가 그 사람을 대리러 왔다가 성형수술을한 사람이 그 사람인줄로 착각을하고는 데리고 갔다고 한다.

성현은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고 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과 모발과 피부는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근본이라고 했다 잘 낫건 못 낫건 부모님이

주신대로 살았드라면 일찍 가지는 않았을 텐데 성형수술을 한 그 친구는 불효를 한 덕에 일찍 저승으로 간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불변의 진리인데 젊을 때 하루와 늙어서 하루는 사뭇 다른

것처럼 느껴 진다.

젊을 때 하루는 30시간이라도 돼는듯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처럼 느끼면서 살아왔는데 나이가 든 요즘은 하루가

20시간으로 줄어들기라도 한듯 시간이 왜 그렇게 빠르게 흘러 가는지 모르겠다.

세월이 나이 숫자만큼 달린다드니 그 말이 정말로 맞는 것같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내가 만약 팔 구십까지 산다면 아마도 그때는 하루가 12시간인양 더욱더 짧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를 먹게 돼면 빠른 것이 세월이라고 엇그제 2015년 새해를 맞이한 것 같은데 어느새 10달이 꿈결처럼 흘러

가버리고 동지섣달 두 달만 지나고 나면 그때 누군가 나에게 " 당신 올 해 몇살이요? " 묻는다면 

"칠십이요"라고 대답해야 겠지.

두 달 후면 내가 칠십이라니....!!!

엇그제 이팔청춘이였는데 눈 깜빡이는 사이에 칠십이 됐단 말인가?

칠십이면 노인이 아닌가?

남들은 나를 보면 노인이라고 하겠지만 마음은 아직도 노인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은지 가슴속에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시간부터 세월을 고장이라도 낫으면 좋겠다는 뚱딴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이가 칠십이라고 결코 실망할 일만은 아니질 않은가?

누군가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했고 인생도 칠십부터라고 하질 않았는가?

그러나 아무리 인생은 칠십부터라고 해도 노인인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살아 온 69년의 봄,여름,가을은 꿈결처럼 가버렸고 앞으로 남은 세월은 무서리 함박눈 내리고 얼음 꽁꽁얼고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삭막하기 이를데 없는 겨울만이 남아 있다.

혹자는 "겨울은 겨울대로 운치가 있고 꼭 해야할 일이 있지 않은가?" 반문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 오곡이나 과일도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봄에 새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 또한 봄 여름 가을 피땀을

흘리면서 살아왔으니 보상을 받듯 겨울한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따뜻한 방에서 그동안 뒤주에 쌓아 놓은 오곡으로

살다가 가라는 배려가 아닐까.

고희를 바라보는 늙어가는 인생 남은 계절은 춥고 삭막하고 외롭고 쓸쓸한 죽음의 계절 뿐이지만 결코 좌절을 한다거나 

체념을 하지 말고 따스한 봄처럼 생각하고는 하루를 열흘처럼 열심히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간다면 저승갈 때 더 큰 후회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

 

고희를 목전에 둔 을미년(乙未年) 늦 가을!

저물어 가는 가을이라서 그런지 을미년의  가을은 그 어느해 가을 보다 아쉽게 느껴 진다.

요즘들어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설 때면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검은 머리에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나든 눈망울에 풋사과처럼 탱탱하던 옛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가 없고

산봉우리에 눈이 쌓인듯 머리는 백발이 흩날리고 이마에는 세월의 훈장인양 내 천(川)자가 바로 서 있기가 힘이드는지

벌러덩 옆으로 누워 있고 눈은 동태눈처럼 정기가 빠져 흐리멍텅해 보이고 얼굴은 쭈그렁 밤송이처럼 볼품 없는 모습에서

고희가 꿈틀거리지만 "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면서 마음은 아직도 불혹이라고 유유자적(悠悠自適)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려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이마에는 한 줄 두 줄 잔주름만 늘어 난다.

 

누군가 아침에 해가 뜨면 물한 모금 마시고 다음날 해뜨기 전까지는 절대로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데 그동안 산전수전(山戰水戰)겪으면서 살아 온 69년을 뒤돌아 보노라면

하루가 아닌 한 시간이면 더는 뒤돌아 볼 게 없을 만큼 낫낫이 회상해 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인생은 일장춘몽(人生 一場春夢)이라고 했는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사노라면 나이는 자동으로 먹어 노인이 돼개 마련이다.

 

이 밤을 새고 나면  내일은 겨울로 들어서는 11월 초 하루다.

오늘 밤 자정이 되면 가을과 겨울이 손을 맞 잡고 임무교대를 하겠지?

교대식엔 누가 누가 참석을 할까?

오곡을 추수하는 농부들 이마에 구슬땀을 ?아주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잎을 고은 단풍으로 물들인 마술사

같은 산들바람과 나부가 된 나무와 황량한 들녘을 말달리듯 휘몰아칠 설한풍이 함께 자리할 것이고 그 옆에는 

흰도깨비 같은 무서리도 배석을 하겠지.....

산들바람이야 교대식이 끝나면 머나 먼 따뜻한 남쪽나라로 미련 없이 떠나야 하기에 이른아침부터 주섬주섬

보따리 싸들고는 꽃신을 신고 시집가는 새색시인양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에 치맛자락을 흩날리면서 길을

나섰기에 해질녘까지는 날씨가 포근하고 따사로웠는데 해질녘 서쪽하늘 위로 황금을 풀어 놓은듯 노을이 

물들자 멀고 먼 동토에서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계절 교대식에 참석하려고 질풍노도처럼 달려 온 북풍은 동장군의 

위엄을 보이려는지 앙가슴을 파고드는 추위를 몰고와서 선무당 굿 하듯 한바탕 지랄육갑을 떨자 길바닦에 떨어져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듯 행인들에게 짓밟혀 갈기 갈기 ?겨진 나뭇잎을 멀리 멀리 귀향을 보내듯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첫 추위에 얼면 겨울삼동 개 떨듯 떤다는데 나이탓인지 동장군의 난리법석에 몸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거리고

떨린다.

내일은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겠다.

노을이 붉게 타는 해질녘 뼛속을 파고드는 북풍이 미친여자 널 뛰듯 휘몰아 치자 하늘도 추운지 저녁 굶은

시어머니처럼 쌀쌀 맞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밤에 계절 교대식이 끝나고 나면 파르르르 깎은 비구니 머리 위에 하얀 고깔을 씌우듯 무서리가

내려 세상을 하얗게 수를 놓을 것 같다.

무서리는 겨울의 전령사다.

무서리가 내리면 국화는"지화자 좋을씨구..."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키다리 코스모스는 무서리가 사약인듯 곧 바로 명줄을 놓고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처럼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나라로 가겠지

한로(寒露)가 지나면 억새풀과 갈대도 명줄을 놓고는 시들시들 말라비틀어져 청명한 가을하늘에 만국기를 날리듯

백발을 휘날리며 널부러질 것이고 어느새 상강(霜降)도 지나고 입동(立冬) 또한 며칠 남지 않았으니 새벽에 무서리가

내린다면 올 해는 무서리도 지각을 한 꼴이다.

 

선무당 굿하듯 북풍이 난리법석을 떨어대자 조용하던 우리집 안마당에는 한바탕 부부싸움이라도 벌리듯 "왈그락

달그락! " 세숫대야 양동이가 대굴대굴 굴러가면서  난리법석을 떨어 댄다.

" 겨울이 얼마나 추울려고 겨울문턱부터 난리법석을 떨지 이렇게 불면 허리 꺾여지겠네....!!! "

낮잠을 자든 삽살개도 놀랐는지 잠이 깨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 멍! 멍!" 미친듯  짓어대는데

"주인어른 빨리 나와서 저 좀 살려 주세요.....!!!! "

" 빨리 나와서 살려달라니.....??? 이 무신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린가?"

밖을 내다보지만 사람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없다.

나이 탓인지 요즘들어서 가끔씩 환청이 들리드니 또 다시 환청이 들리는 것은 아닐까?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고는 절래 절래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다급한 비명소리가 정원에서 들려 온다.

사람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정원에서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혹시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은 아닌가?

벌건 대낮에 귀신이 나타난 것은 아닐테고 일단 나가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마음 먹고는 콩튀듯 밖으로 

나오니 정원 한복판에 닭기둥지처럼 둥지를 튼 코스모스가  세차게 불어오는 북풍에 쓰러질듯 쓰러질듯

휘청거리면서 꽃가지가 꺾인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 달란다. 

" 엇쭈구리....!!!! "

코스모스가 비명을 지르다니....????

벌건 대낮에 이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코스모스의 비명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져 뇌진탕이 걸려 불귀의

객이 될뻔 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잠시 귀를 기울이고 코스모스를 뚫어져라 지켜보는데

" 주인어른! 놀란 토끼처럼 그렇게 뻐질러 서서 구경만 하시지 말고 저 좀 빨리 살려 주세요 이 대로

조금만 더 있다가는 허리가 작신 부러지겠어요 "

사람도 아닌 코스모스가 말을하다니.......!!!

직접 들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혹시 여우 한테 홀린 것이 아닌가? 홀린 것이  아니라면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허벅지를 꼬집어 보니 통증이 있는 것을 보니 꿈도 아니다.

칠십평생을 살아오면서 코스모스가 말을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기에 혹시 죽을 때가 되서

헛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것이 아니라면 귀신이 코스모스를 빙자해서

나를 꼬득이는 것은 아닐까?

그 것이 아니라면 혹시 해탈을 해서 평소에 알아 듣지 못하든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아닐까?

 

" 해탈....!!! "

입속에 넣고는 몇 번을 읊조려 보지만 입 가득 쓴 웃음이 번져나면서 해탈이 무슨 옆집 강아지 이름도 아닌데 

해탈을 운운하느냐면서 절래절래 머리가 도리질을 해 댄다.

해탈은 번뇌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속세의 근심과 걱정을 모두 내려 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무종교

무신론자인데다가 천사 같은 천진난만함도 없고 그렇다고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학을 통달한

것은 더 더욱 아니고 늘 가슴 속에는 욕구불만으로 가득차 사회를 비평하고 불만을 쏟아내면서 잡초처럼 

살아가는데 해탈이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온 것도 내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삶을 돌아보면 죽을 고비를 어디 한 두 번 겪었는가?

그런데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삶을 이여가는 것은 운수가 길 했기 때문이다.

만약 운수가 비색했더라면 환갑 훨씬 전에 한줌의 흙이 됐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 온 나에게 무슨 연유로 코스모스의 말을 알아 듣게 됐단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코스모스가 귀신처럼 느껴지면서 등골엔 오싹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귀신이

들린 코스모스는 당장 뽑아치워야 집안이 무탈하고 앞으로 몇 해 더 살아갈 수가 있지 그냥 뒀다가는 폐가 망신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코스모스를 뽑아버리려고 성큼 다가 가 덥석 웅켜 잡자 목덜미를 잡힌 코스모스가

화들짝 놀라면서

"주인님! 저는 귀신이 범접한 것이 아니니 제발 뽑아버리지 마시고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

코스모스가 놀라 부들부들 떨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니 비록 보잘 것 없는 코스모스지만 

봄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하기 위해 꽃을 피워 온갖 재롱을 떤 것을 생각하니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무슨 말을하는지 더 들어보리라 마음 먹고는 한 발 뒤로 물러 서자

" 주인님! 살려주셔서 이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

" 엇쭈구리! 서당개 삼년에 한시를 짓는다드니 코스모스 주제에 문자를 쓰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찮은 코스모스 지금 죽어도 원도 한도 없을 것 같은데 죽음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저렇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한단 말인가?

"쇠똥밭에 굴러도 저승 보다는 이승이 좋다"고 무수리를 몰고 오는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코스모스가 안스러워서 두 팔을 벌려 쓰러질듯 휘청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듬어 안았더니 그제서야 

코스모스는 살았다는듯 안도의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 쉰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한숨까지 내 쉴까.

가지 가득 꽃을 피운 코스모스는 벌과 나비의 도움을 못 받아서 씨앗을 맺지 못한 꽃들이 찬바람에

춤다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가슴이 아픈지 끌어 안으면서

" 주인어른! 지금까지 보살펴주신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인데 만약 오늘밤에 무서리가 내린다면

이제 막 피어난 어린 꽃들은 어찌하면 좋단 말이에요."

하찮은 코스모스라고 우습게 생각 했는데 엇그제 꽃이 핀 어린꽃을 생각하는 코스모스의 자식사랑에

가슴이 저려 온다.

인간이나 꽃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하늘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코스모스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춘분과 청명이 지나 햇님도 봄이 온 것을 알고는 겨울삼동 꽁꽁 얼어 있던 우리집 정원을 폭신폭신 녹여

놓고는 담벼락을 님인양 끌어 안고는 한가롭게 노닐던 어느 봄날 오후 겨울잠에서 깨어난 갓난아기 같은

연약한 코스모스가 폭신폭신 녹여 놓은 정원을 뚫고는 꽃동산을 꾸미려는지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는

그 모습이 어찌나 연약하고 어린지 애처럽게 느껴져서 안스럽게 보이는데 어린 코스모스를 본 꽃샘바람은

심술이 나는지 어린 코스모스에 와락 달겨들자 어린 코스모스는 곧 얼어 죽을듯히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하찮은 코스모스 인간들과는 삶이 다르기에 얼어죽거나 말거나 못 본척 하려는데도 아기 코스모스가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얼어 죽지 않으려고 정원 옆으로 날아 온 비닐 조각을 ?어쓰려고 고사리 같은 손을

나풀 거린다.

아무리 하찮은 코스모스라지만 생명은 하나뿐이기에 소중한 것이 아닌가?

새싹이 트지 않았으면 몰라도 꽃동산을 꾸미려고 남들 먼저 싹을 티웠기에 얼어죽지 않게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원에 비닐하우스를 지어줬더니 서리가 내리고 꽃샘추위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얼어 죽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코스모스는 무럭무럭 자란다.

다른 계절보다 유독히 짧은 봄! 

꽃 피고 새 우는 봄은 정이 들기도 전에 가버리고 가마솥불볕더위가 이글거리는 무더운 여름이 찾아

왔다.

작년에는 비가 제때 알맞게 내려서 대풍이 들었는데 올 해는 기상이변인지 아니면 가믐이 드는 해인지

봄부터 가믐이 극성을 부려 농부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저수지와 지하수로 힘겹게 모내기를 끝내고 비를

기다렸건만 장마철이 지나도 비는 내리질 않고 가믐이 더 더욱 기승을 부혀 논바닦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농부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비가 내리질 않으니 정원에 키다리 코스모스와 여러종류의 꽃들도 목이 타는지 잎을 축 늘어뜨리고는

가뿐숨을 헐떡거리며 중병을 앓는 환자처럼 임종을 기다리는듯 보인다.

꽃을 보려고 공들여 가꾼 정원에 꽃들이 시들시들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제한급수로 받은 귀한 물을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줬더니 꽃들은 하루가 다르게 튼실하게 자라나 한여름

먹구름속에서 세상을 멸할듯 천둥과 번개가 치고 받고 비명을 내지르며 싸움질을 하다가 끝네는 펑펑 

눈물을 쏟듯 소나기가 퍼부어도 튼실하게 자라난 코스모스와 꽃들은 꽃가지 하나 부러뜨리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나 소서(小暑) 대서(大暑)가 지나고 입추(立秋)가 다가서자  더위는 주춤 한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하늘이 높아지자 코스모스는 가지마다 청초하고 소박한 꽃을 활짝 피워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나를 볼때마다 반겨 맞아 주었는데 가을과 겨울이 교대식을 하는 날 북녘에서 내려 온 북풍이 심술을

부려대자 심봉사 심청이를 만나 눈이 떠지듯 코스모스는 눈이 아닌 입이 떨어진 모양이다.

" 개도 오래 키우면 여우가 된다고....!!! 코스모스도 너무 예뻐해 줬더니 말을 다 하네...!!! "

하긴 내일새벽에 무서리가 내리면 코스모스는 10월의 마지막 밤에 삶의 끈을 놓을지도 모르기에 유언을

남기려나 "

오래 살다보면 별에 별 일을 다 겪는다더니 내가 그 꼴을 겪는 것같에 얼른 코스모스를 보듬어 안고 

어루만지자 세찬 바람에 우수수 꽃잎을 날리면서 코스모스가 또 입을 연다.

" 주인어른! 별로 곱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저를 봄부터 지금까지 알뜰살뜰 보살펴주셔서 한생을

무탈하게 살다가 갑니다 "

" 이건 유언이 아닌가.....!!! 코스모스 유언을 하다니 놀라 자빠질 일이다."

인간 못된 놈은 은혜를 원수로 가린다는데 옹골차게 예쁘지도 않은 어리버리한 코스모스가 어렸을때

보살펴주고 가물때 물 몇번 줬을 뿐인데 유언처럼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을보니 배은망덕한 인간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 번 보듬어 안고는 몸으로 찬바람을 막아주자 코스모스는 활짝

웃으면서

" 주인어른! 오늘 밤에 무서리가 내리면 저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러나 제가 가드라도

슬퍼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동안 주인어른의 보살핌으로 정원에 자손도 많이 뿌려 놨기에 명년 봄에는

저 하듯 후손이 주인어른께 문안인사를 드릴테니까요 "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 먹는 소리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코스모스가 말을 하는 것도 처음 들어보는데

유언을 듣다니 너무도 놀란 나머지 눈알이 튀여나올듯 휘둥그래 떠 진다.

" 주인어른! 내일이면 하늘나라로 돌아 갈 저 에게 뭐 물어보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세요? "

 

이것봐라! 유언으로도 모자라 한술 더 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란다.

참으로 귀신 찜쪄 먹을 코스모스다.

"하긴 엎어진김에 쉬어가고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하질 않던가? "

그렇잖아도 코스모스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잘 됐다 싶어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우리나라 토종꽃인가? "

코스모스가 아니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 토종은 아니구먼유 ".

"토종이 아니면...도대체 본적(고향)은 어딘고? "

코스모스는 고향을 물어봐서 고맙다는듯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고는 고ㅇ손한 목소리로 

" 멕시코가 고향인데 한국이 살기 좋다고 해서 이민을 왔구먼유......" 

"멀고 먼 멕시코에서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로 이민을 왔단 말인가?  "

"1910년경 외국선교사에 의해서 우리나라로 왔구먼유 "

코스모스에 내력을 듣고나니 그동안 궁금증이 풀리면서 고개가 끄덕여 진다.

궁금했던 몇가지를 더 물어보니 대답은 청산유수다.

코스모스는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이다.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란다.

코스모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꽃은 아름답지만 줄기와 잎은 목이 길어 슬픈여인처럼 모가지가 긴 것이

어딘가 2% 부족한듯 보인다.

마치 허물 벗은 가재처럼 단단해 보이질 않고 연약해 보여서 바람만 조금 세차게 불어도 금세 쓰러질듯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신이 습작으로 제일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고 제일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 국화란다.

그래서 그런지 코스모스는 어딘지 나사가 한 두 개 쯤 빠진듯 꽃대가 어설프고 이파리가 나약해 보이는데

반해 마지막으로 만들었다는 국화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만들어서 그런지 줄기와 잎은 정교하면서도

멋스럽게 생겼고 무서리를 맞고 피는 국화꽃은 꽃중에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와하고 예쁘고

아름답다.

그래서 누구나 국화꽃을 접하면 꽃도 아름답고 향기 또한 정신을 어질트릴 정도로 향기로와 국화꽃 앞에만

서면 꽃에 반해서 떠날줄을 모른다.

코스모스의 순 우리말 이름은 " 살사리 꽃"이라고 한다.

미풍만 불어도 여덟잎 고은 꽃잎을 춤 추듯 하늘거리기에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우리선조들은

"살사리꽃"이라는 이름을 붙쳐준 것이다.

헌데 요즘은 코스모스도 이변이 생겼다.

내 어린시절에는 코스모스는 가을이 돼서야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하지(夏至)가 지나면

곧 바로 꽃을 피운다.

지구의 온난화로 코스모스가 정신을 못차리고 헷갈려서 여름인지 가을인지도 분간하질 못 하고

일찍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결코 헷갈려서 그런 것은 아니란다.

코스모스가 일찍 꽃을 피우는 것도 다 인간들의 욕심이 빗어낸 산물이란다.

예전에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돌아와야 꽃을 피우는 만생종뿐이였는데 코스모스가 일찍

꽃을 피우게 된 이유는 1988년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올림픽 때문이란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던 해 서울시는 성화가 달릴 서울거리를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멋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 코스모스꽃길을 조성하고자 만생종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조생종을 구해서 파종했기

때문이란다.

조생종은 파종 후 60~70일만 지나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초가을부터 무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꽃을 피우던 코스모스가 초 여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 한다.

어디 그 뿐인가?

품종 또한 다양하게 개발해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노란색 검은색 코스모스도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으로서 단일민족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세계에 자랑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말이 옛말이 된지 이미 오래 됐다.

 

조생종 코스모스는 얼마나 빨리 꽃을 피우는지 경상남도 거제도 "청마마을"에서는 지난 6월25일~7월1일까지 

코스모스축제를 열어서 코스모스를 사랑하는 전국에 동호인들이 모두 모여서 성황리에 코스모스축제를

벌렸다고 한다.

내 어린시절에는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세상이 바뀌어 지금은 초여름에 피는 세상이

돼버렸으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코스모스는 꽃으로 인간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줄뿐만 아니라 "청혈해독"작용까지 지니고 있어서 눈이

충혈됐을 때 약으로 사용하면 빠른 효험을 볼 수 있고 몸을 다쳐 상처가 나거나 종기가 낫을 때도 줄기를 곱게 

찧어서 참기름과 섞어 바르면 상처가 곰거나 덧나지도 않고 낫는다고 하니 코스모스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듯" 없어서는 안될 일거 양득의 매우 유익한 꽃이다.

 

해마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는 늦가을 저녁 황금빛 노을이 황홀하게 드리우면 나는 가끔씩 만사 재쳐

놓고는 흐드러지게 꽃이 핀 코스모스 꽃길을 찾아가 코스모스에 대한 향수를 그리면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걷곤 했다.

오늘은 10월의 끝자락인 동시 11월 겨울문턱을 넘어서는 날이기에 만사 재쳐 놓고 코스모스꽃길을 걷기로

마음 먹고는 집에서 5 분 거리에 있는 코스모스꽃길로 나섰다.

내일 새벽에 무서리가 내린다면 코스모스꽃길은 명년 가을이나 돼야 다시 걸을 수 있기에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꽃길을 걷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이란 어휘를 꺼낼때면 웬지 나도 모르게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듯 허전해지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면 올 해는 마지막으로 코스모스꽃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워 진다.

자식처럼 보듬어 안고 있던 코스모스를 놓고 집을 나서자 코스모스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듯

꽃가지를 세차게 흔들면서

" 주인어른! 날씨가 추우니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

꽃길을 걷다가 기분이 센치해지면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 찌그리다보면 코스모스는 잠속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기에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고는 대문밖으로 나서니 찬바람이 나올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와락

옷깃을 파고들어 사시나무 떨듯 으시시 몸을 떨면서 칼날처럼 매서운 하늘을 올려다 보니 포근하던 오전과는

달리 하늘도 추운지 자꾸만 높아지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고 황금빛노을속으로는 북녘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들이

따뜻한 남녘으로 줄지어 날아 간다.

하늘이 자꾸만 높아지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새벽에는 무서리가 내릴 것 같다.

절기상으로도 입동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무서리가 내려도 올해는 지각을 한 꼴이다.

몸을 ?듯 훌고 지나가는 세찬바람은 한기까지 느껴지면서 몸이 으실으실 떨려오고 따스함을 잃은 햇님은

가는 가을의 마지막 선물인양 황금빛노을을 폭포처럼 쏟아 내려 노을를 바라보는 정신을 어질트릴 만큼

서쪽하늘이 아름답고 멋스럽게 불타오른다.

어떤 화가가 저토록 아름다운 황금빛 저녁노을를 그려 놓을 수 가 있단 말인가?

저토록 아름다운 노을은 하느님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천상의 정원이 저렇게 아름다울까?

천상으로 가는 길이 저렇게 아름답다면 구름이 손짓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일 새벽 무서리

타고 천상으로 가는 코스모스와 길동무 하고 싶다.

황금빛 노을를 머리에 이고 드디어 코스모스꽃길로 들어 섰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는 황금투구에 황금갑옷을 입고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히 걸어오는

나를 보고는 반갑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는데 가지는 만수산 드렁칡인양 얼크러 설크러져

세차게 몰아치는 북풍으로 금세라도 허리가 꺾여질듯 휘청거려도 그동안 역경을 딛고 거친 세파와

맞서 싸우면서 살아왔기에 애걸복걸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매달리던 정원의 코스모스와는 달리

북풍에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도 결코 굴복을 하거나 좌절을 하질 않고 운명의 그날까지 궂궂하게

살아 간다.

보기에는 연약하고 볼품도 없어 보이는 코스모스지만 코스모스는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닦쳐도

절대로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질 않고 고난과 시련에 맞서 싸우면서 의연하게 살아 가는데

인간들은 어떠한가?

세파의 시달림을 받지를 않고 살아 온 연약한 인간들은 갑자기 삶이 고달파지거나 고난이 닦치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생각은 하질 않고 죽음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런 인간은 연약한 코스모스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는 잡초 같은 보잘 것 없는 한해살이 풀인 코스모스지만 그래도 코스모스는 인간들이

모르는 하루의 천기와 자기의 운명을 알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건강한 젊은사람이 며칠 후 사고로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처신할까?

운명이니 조용히 받아드릴까?

해탈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라면 조용히 죽음을 받아드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와는 반대로 운명을

받아 드리기는 커녕 "많고 많은 사람중에 왜 하필 내가 먼저 사고를 당해 죽어야하느냐?" 면서 하느님

후장을 찌르듯 삿대질까지 하며 고래 고래 악다구니를 쓰다가 저승길 나 혼자서는 갈 수 없다며 닦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러서 저승동행인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생의 최후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내일 새벽이면 무서리로 생을 끝맞힐텐데도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 한다거나

원망도 하질 않고 초연한 모습으로 북풍의 심술도 꿎꿎하게 견디면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노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코스모스가 해탈한 스님이 열반에 들려는듯한 착각이 일면서

하찮게만 여겼던 코스모스가 존경스럽게까지 보인다.

인간이 코스모스를 보고 존경스럽다고 말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만 나도 언젠가는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까지 다가섰을 때 저렇게 초연할 수 가 있을까?

 

황금빛노을를 쏟아내리던 석양도 하루살이를 끝내려는지 꼴까닥 산을 넘자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황금빛

노을은 조금씩 엷어지면서 원앙금침을 펴듯 넓은 대지 위로 땅거미를 내리자 북풍도 계절교대식에

참석하려는지 추수가 끝이나 참새들도 찾지 않는 쓸쓸하고 황량한 넓은 들녘을 "휘~익!"한바퀴 맴도는데

벌판 끝쪽으로는 남루한 옷차림에 늙고 병든 허수아비가 임종을 앞둔 환자처럼 기침을 콜록거리면서 

참새떼를 쫓든 가을를 회상하면서 무서리가 내리면 코스와 손에 손 잡고 저승으로 떠날듯 보인다.

임종을 앞둔 허수아비와 코스모스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으려니 가슴 저 밑바닦에서 한동안 잠자고 있던

코스모스의 아련한 추억이 삽살 강아지 꼬리치듯 잠에서 깨어나 살랑 살랑 꼬리를 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코스모스의 추억을 이야기 해주려고 코스모스의 향수를 떠 올리기 위해서 가난했던

어린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조반석죽(朝飯夕粥)도 감지덕지 했고 심지어는 초근목피로 근근득생 목숨을

연명 했다고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렇게도 먹을 것이 없었느냐면서 내 말을 못 믿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반신반의 하더니 한다는 말이

" 그러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굶기는 왜 굶어요? "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된다고?

라면이 있으면야 왜 굶겠는가....!!!!

그걸 말이라고 한단 말인가? 참으로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요즘이야 맛 좋고 종류 또한 다양한 라면이  전국 어느 곳을 가나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는 고객을

기다리지만 고희를 바라보는 세대들은 청년이 될 때까지 "라면"이란 이름 조차도 모르고 살아온

것을 젊은이들은 알고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가?

라면이 얼마나 맛 있는 먹거리인데 라면이 있었다면야 왜 굶었겠는가?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고 요즘 젊은이들은 반세기 전 조상님들의 생활상을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인가?

자업자득이라고요즘 젊은이들이 우리의 뿌리를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기성세대인 우리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 빗어진 결과인 동시에 업보인 것이다.

지금이야 대한민국은 부국이 돼여 편리한 문화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원 없이 살고 있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을 맞이 했다.

그 시절 농촌은 대부분이 초가집이 였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젊은이들은 일본군에 징용이란 미명아래 전쟁터나 무기공장이나 광산으로 끌려 갔고

젊은 여자들은 돈을 벌게 해준다는 일본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일본군 위안부나 공장에 여공으로 끌려

갔기에 행복하든 가정은 풍비박산이 돼어 흩어져서 살다가 해방을 맞이 했으나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 온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동포들이 머나먼 남의나라에서 비참하게 생을 끝마친 것이다.

연합군에 의해 비로서 해방은 됐지만 36년동안이나 왜놈들에게 착취를 당하면서 살았으니 남은 것이라고는

전무 했으니 그 때의 삶이란 말로는 형용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피폐했다.

집 또한 대부분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열명도 넘는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라 방 한칸에 여러 형제들이 한 채의

이불을 덮고 올챙이처럼 오글 오글거리면서 올챙이처럼 살았다.

왜놈들에게 말과 글 오곡은 물론이고 놋숟가락이나 밥그릇까지도 빼앗아 갔으니 식량이 부족해서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초근목피로 근근득생 목숨만 연명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미국이 원조해 준 옥수수가루나 우유가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달랬다.

그 시절 먹었든 우윳가루와 옥수수가루는 참으로 꿀 맛이였는데 지금은 열 번을 머어봐도 그 때 그 맛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어쩌다가 귀한 음식이 생길라치면 먼저 먹을 것 같은데도 절대로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는

음식에 손도 대질 않고 부모님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부모님이 먼저 운감을 하시면 의좋게 나눠 먹었다.

 

가난의 굴레를 멍애처럼 목에 걸고 살든 우리민족에게도 "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가난을 몰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다.

그 것은 1961년 5월 16일 우리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일으킨 5,16 군사혁명이였다.

그 누구도 물리치지 못해서 반만년을 이여 온 지긋 지긋한 가난을 몰아내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고 이르킨 새마을

운동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군사혁명이 일어난지 2년 후인1963년 대도시에 처음으로 선을보인 라면이 "삼양라면"이다.

전기밥솥은 이름도 모르든 그 시절 밥은 빨리해도 30여분 넘게 불을 떼야만 먹을 수가 있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삼양라면은 5분만 끓이면 뚝 딱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도깨비 같은 먹거리였다.

그러나 시골은 그 때까지도 라면이란 이름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경제가 조금 나아진 1970년경 농심에서 만든 농심라면이

출시되면서부터 라면은 날개가 달린듯 우리의 먹거리로 자리 잡기 시작 했다.

그 날 이후 우리 식탁에는 라면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굶는사람이 없어지게 됐다.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되지 굶기는 왜 굶어요?" 하는 젊은이들 라면의 역사나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라기 이전에 기성세대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을 시켰더라면 과연 그런 말을 했겠는가?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질 않는가?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해방이 후 10년 주기로 변화하는 우리의 의식주 생활문화를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해 놓고는

교육을 시킨다면 그 것이야말로 참 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면서 주장하고 싶다.

 

그 시절 어른들은 항문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사람은 태어나면 자기 먹을 것은 타고 난다는 사상을

믿었기에 슬하에 보통 칠팔남매씩 뒀다.

그러니 그 많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삼시 새끼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에 벅찬 일인데 교육까지 시킨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꿈도 못 꿀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맏자식만 교육시켜 출세를 시켜 놓으면 동생들은 맏이가 알아서

돌봐주리라 생각하고는 지차들은 초등학교만 졸업시켜 공장이나 노동판으로 돈 벌어 오라고 내보냈다.

가난하기에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 것만으로도 한이 맺힐 일인데 뼈빠지게 노동을 해서 받은 피 같은 돈은 제대로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맏 형 학비에 보탰다.

그래도 지차들은 가문을 빛내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기에 한마디 불평도  없이 꿎꿎하게 버텼다.

부모형제 덕분에 대학을 졸업한 형은 출세를 해서 장가들어 떵떵거리고 잘 살게 되자 부모님 소원을 풀어드렸지만 

자기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어릴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형의 학비를 보탠 동생들의

노고는 까맣게 잊고 자기가 잘 나서 출세한줄로 착각을하는 형들도 부지기수다.

 

동생들은 가난과  형 때문에 비록 공부는 못 했지만 어릴 때부터 기술을 익혔는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으로 대학공부를 한 형은 지혜를 부모님과 동생들은 어려서 배운 기술과 노동력이 어우러져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그 누구도 몰아내지 못한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드디어 몰아내고 우리나라는 드디어 세계에서

11번째 경제대국이 이룩하여 품앗이 하듯 원조를 받든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반만년을 이여 온 지긋지긋한 가난을 몰아낸 주역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장하고 보람찬 일을 해낸 것이다.

가난 했던 어린시절 부잣집 자식들은 잘 먹고 잘 입어서 얼굴에는 번지르르 윤기가 흐르고 몸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무척이나 보기가 좋았는데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들은 못 먹고 못 입어서 그런지 배는 북통처럼 빵빵하지만 가슴에는

기타줄인양 갈비뼈가 불거져 골짜기를 만들고 얼굴은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듯 피골이 상접(皮骨 相接)하고 누런

코는 왜 그렇게 계속해서 흘러 나오는지 코 밑이 마를날이 없어서 깡통만 들고 나서면 영낙없는 거지였다.

그래서 그 시절 소원은 살찌는 것이였다.

오죽이나 살이 찌고 싶었으면 퉁퉁한 처녀만 보면 "부잣집 맏며느리 깜"이라고 했고 정월대보름날이면 구부렁

구부렁 달님에게 절을하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 게 해달라고 손이 발이 돼도록 빌었다.

 

어린시절 달님에게 손이 발이 돼도록 빌고 빈 소원이 삼십여년만에 드디어 이루워져 쌀밥에 고깃국을 원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소원이 이루워져 몇년은 참으로 행복했는데 " 과 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쌀밥과 고깃국을 원 없이

먹었드니 살은 돼지처럼 디룩디룩 쪄서 보기는 좋은데 가난할 때는 이름도 모르든 성인병과 여러가지 병이 

껌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어 병마와 싸우게 됐다.

병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살을 빼야 한단다.

어떻게 찐 살인데 살을 빼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깝기는 하지만 건강을 되찾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기에 이번에는 살 찐사람들 살을

빼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어 댄다.

옛날 부잣집은 며느리깜을 고를 때 퉁퉁하게 살이 찌면 데려다가 살 찌우지 않아도 돼기에 쌀 궂는다고 선도

안 보고 며느리로 맞아 들였는데 요즘은 살 찐 처녀는 등에 돈을 붙혀서 데리고 가라고 해도 돈만 떼고는 거들

떠 보지도 않는 세상으로 바뀌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이 실감이 난다.

 

백년지계(百年之計)는 막여수인(莫如樹人)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는 반만년을 이여 온 가난을 몰아 내고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잘 살게 된 것은

크게 기뻐할 일이지만 생활이 나아지고 직업이 다양해지다 보니 취미생활 또한 다양해지면서 끼리 끼리 문화가

발달 돼면서 너 나 나 나 자식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삼강오륜과 인성교육을 철저하게 가르쳐야만

나 혼자가 아닌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될 텐데 충효사상이나 삼강오륜 인성교육은 출세에 지장을 주는 

고리타분한 교육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직 자식의 출세만을 위해 학교공부만 잘 하면 다른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잘 못된 교육을 시킨 결과 요즘 젊은이들은 충효도 예의범절도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두레의 삶도 모두 잊고 오직 자신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가는 예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다.

백년대계는 막여수인이라고 했듯이 지금부터라도 젊은이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려면  인성교육을 다시 시켜야할 것이다.

 

해방이 될 때 우리사회는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4계급이 뚜렷한 사회였다.

그 시절 진짜 선비는 아무리 가난하게 살았어도 부자로 사는 천민에게는 절대로 허리를 굽히거나 구걸하지 않았고

없으면 없는데로 선비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의연하게 살았다.

오죽 했으면 양반인 선비는 소낙비가 와도 뛰어가질 않는다는 속담까지 생겨났겠는가.

그 시절 양반의 농토를 경작하며 목구멍에 풀칠을하면서 근근득생 살아가는 소작농은 두더지처럼 땅이나 파 먹고

살면서 양반과 가진자들에게 갑질을 당하면서 살았기에 억울함이 뼈에 사무쳐 자식들만은 절대로 자기가 겪은 

전철을 밟지 않게하기 위해서 한풀이하듯 문전옥답까지 팔아서 서울로 유학을 보내 출세 시켜 놨드니 부잣집

처녀에게 장가들어 저는 서울에서 호의호식 하면서 문전옥답까지 팔고 자신은 머슴처럼 살아 온부모님 한테는 

효도는 커녕 무식한 부모와는 한 집에 살기도 싫다면서 고향에는 발걸음도 하질 않는 금수만도 못한 자식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 요즘은 어떠한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촌부 밤을 낮 삼아 손 발이 닳도록 흙을 파서 자식을 출세 시켜 놨드니 자식 놈

한다는 말이 서울에 집사주면 부모님께 효도 하겠다고 집 사달라고 어찌나 불한당처럼 떼를 써서 가지고 있는 

전 답 모두 팔고 노후에 쓰려고 쥐꼬리만큼 모와 놓은 돈까지 딸딸 긁어 ?아 몇 억 하는 집을 사 줬더니 갈 수록

태산이라고 효도를 하기는 커녕 명절날에도 부모님이 집에 찾아 오지 못하게 마누라 자식새끼들 데리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세상이 돼버렸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어디 그 뿐인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요즘 젊은이들은 대학에 유학까지 시켜놨는데도 취직은 하질 않고 부모를 봉으로 아는지

취직도 하질 않고 부모에게 빨대를 꼽고는 기생충처럼 쪽쪽 부모를 빨아 먹고 살아가는 젊은이도 날로 늘어 나고

심지어는 부모의 재산이 탐이나서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한집에 살겠다고 부모를 꼬득여 전 재산을 챙기고는

부모를 헌 신짝처럼 버리거나 살해하는 자식도 있다고 한다.

도대체 돈이 뭔지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단 말인가?

 

"하나님!

 하느님이 계시기는 계신 겁니까?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 많고 많은 벼락 비 올 때만 우당탕 퉁탕 사용하시지 말고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 골통

위에 쓰레기 치우듯 한 방씩만 내려주십시요.

그 많은 벼락 안 쓰고 아꼈다가 국 끓여 드실라고 아끼십니까.

금수만도 못한 그런 인간들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곧 바로 벼락을 내려주십시요.

그래야만 사회정의가 바로 서고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 아닙니까 "

 

농촌이나 도시나 독거노인들은 날로 늘어나는데 모시려는 자식은 자꾸만 줄어드는 세상이 돼버렸으니 

그 분들은 남은 여생을 누구를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란 말인가?

내 어린시절에는 부모님과 자식은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살다가 운명하실 때면 자식들은 만사 제쳐 놓고 모두

모여 임종을 지켜 봤고 운명하시면 선산 양지바른 곳에 고히 모셨는데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이 늙어 거동이

불편하시면 편히 모시기는 커녕 곧 바로 저승 대기실 같은 노인병원에 입원을 시켜 놓고는 죽을 때만 기다린다.

사람이 태어나면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인데 반만년의 가난을 물리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은 세대들은 늙어 팔자가 낙동강 오리알 신새가 돼버렸다.

 

황금빛 코스모스길을 걸으면서 추억의 코스모스를 떠올리다가 생각이 잠시 삼천포로 빠져서 입이 얼얼 하도록 

헛아가리질만 신바람나게 해댄 것같다.

어린시절 시골마을에 집들은 몇몇 부잣집 기와집을 빼고는 대부분 초가집이 였다.

볏짚으로 이영 엮어 덮은 초가집은 볼품은 없어도 그래도 앞산 뒷산과 조화를 이뤄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

포근하면서도 아늑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시골의 운치와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초가집 일색이던 시골이 지금은 부촌이 되어 초가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고 날아갈듯 

현대식으로 문화주택을 지어 놓았는데 다른사람들 눈에는 멋스럽게 보일는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실속은 별로

없고 남들에게 자랑하려는듯 겉만 번지르르 돈 치장을 해 놓은듯 보인다.

산처녀는 순박하고 자연을 닮아야만 산처녀라고 부르듯 옛날 우리가 살던 초가집은 보기에는 볼품 없게 보여도

살아보면 여름에는 선풍기가 없어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넉넉하게 굼불만 떼면 동지섣달 긴긴밤이 새도록 따뜻

했는데 현대식으로 지은 주택은 여름에는 에어콘이나 선풍기가 없으면 찜통 같이 푹푹쪄서 질식 할 것 같고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려면 난방비가 솔찮이 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방문도 옛날처럼 멋스러운 빗살무늬 방문은 민속촌에나 가야 구경할 수가 있고 지금은 시골 방문은 

합판으로 짠 문 뿐이고 창문도 유리창문을 달아서 보기에는 시원해 보이기는 해도 초가집처럼 인정이 넘치고

정겨움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내 어린시절에는 상강(霜降)이 지나고나면 활짝 핀 코스모스 꺾어다가 방문에다 정성스레 수 를 놓고는

천년을 간다는 닥나무로 만든 문종이로 문을바르고는 입동이 지나 함박눈이 내리고 동지섣달이 다 가고

대동강물이 풀리고 개구리 입이 떨어진다는 우수 경칩이 가고 꽃 피고 새가 우는 새봄이 올 때까지 방문에 

활짝 피여 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 살아 왔다.

방문에 코스모스를 생각하노라니 갑자기 30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나ㅣ면서 늦 가을이면 할머니와

함께 방문에 코스모스 수를 놓고 방문 바르던 일이 엇그제 일인양 떠 오른다.

 

초등학교 2 학년 되든 해 늦가을 어느 토요일날 아침이였다.

" 얘야! 오늘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 활짝 핀 코스모스 한아름 꺾어 오너라 "

" 할머니! 코스모스는 뭘 하시게요? "

" 방문에 코스모스 수를 놓으려고 그런다 "

" 코스모스꽃 보다 더 예쁜 들국화로 수를 놓으면 안돼나요? "

" 들국화는 꽃이 두꺼워 수를 놓기가 힘드니 코스모스를 꺾어 오너라 "

" 코스모스는 싫은데 "

" 코스모스는 예쁜 꽃인데 왜 꺾기가 싫으냐? "

" 꽃은 예쁜데 코스모스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꺾기 싫어요 "

" 냄새야 비누로 ?으면 없어지는데 뭔 걱정이냐 "

" 그래도 싫어요 할머니 "

" 평양 감사도 본인이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꺾어오기 싫으면 그만 두거라 할머니는 코스모스 꺾어오면 

너 주려고 점방(店房)에 눈깔사탕 사러 갈려고 했는데 "

" 할머니! 코스모스 꺾어오면 정말로 눈깔사탕 사주실거야? "

"정말이지 그러나 니가 싫다고 하니 다른 사람 시키면 된다 "

" 아니야 할머니 집에 올 때 내가 꺾어 올게 "

" 냄새가 나서 싫다면서... "

" 할머니가 냄새는 비누로 씻으면 괜찮다고 하셨잖아 " 

할머니는 나를 힐끗 쳐다 보시더니

" 사내가 금방 이랬다 저랬다 하면 거시기가 떨어진다던데 "

할머니는 나를 놀려 먹으려는지 거시기까지 들먹 거린다.

" 할머니 거시기는 작대기 같에서 안 떨어지고 감자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떨어 진데 "

" 요놈 봐라! 할머니를 놀려 먹으려고 하네 "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활짝핀 코스모스처럼 환하게 웃으시면서 내가 귀엽다는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데

인정이 많으셔서 그런지 쓰다듬어 주시는 손이 무척이나 따뜻하다고 느껴 진다.

학교 가서 공부를 해도 눈 앞에 눈깔사탕이 자꾸 떠 오르며 입 가득 군침이 고여서 공부는 개 머루 먹듯 대충 

하고는 수업이 끝나자 마자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는 코스모스를 꺾으러 교문을 나 섰다.

흔해빠진 코스모스야 마을 가득 널려 있지만 할머니 마음에 드는 예쁜 꽃송이가 다닥 다닥 붙은 코스모스를

꺾으려면 코스모스가 발 디딜틈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동구밖 코스모스를 꺾어 가야만 한다.

동구밖은 학교에서 1km쯤 가야 한다.

눈깔사탕  먹을 생각에 단 숨에 동구밖으로 달려 갔다.

숨은 턱에 차 헐떡 거리고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뚝 뚝 떨어지지만 동구밖은 코스모스꽃동산을 이루듯

흐드러지게 피여 동구밖이 꽃성인양 애워 싸고 있다.

코스모스를 꺾으려고 코스모스가 빼곡하게 들어찬 군락지로 들어서니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코스모스가 

동구밖이 거름져서 그런지 내 키를 훌쩍 넘도록 자라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춤추듯 코스모스꽃이

하늘 거린다.

인에 인 못 고른다고 하지만 코스모스가 꽃동산을 이루고 있어서 그런지 예쁘고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너무나도 많아서 흐드러진 것으로 골라 잠깐 꺾었는데도 금새 두 팔이 모자랄 정도로 꺾었다.

집에만 가면 달콤한 눈깔사탕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시가 급해서 쉬지도 않고 곧 바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슴에는 한 아름 코스모슬 안고 걷는데도 내가 축지법을 하는듯 걸음이 빨라 진다.

뛰다시피 걸었더니 숨은 헉 헉 턱에 차고 이마에서는 비오듯 땀이 흘러내리지만 눈깔사탕 먹을 생각에 쉬지도 않고

활짝 열린 대문안으로 들어서니 안마당에는 크고 작은 집안에 방문짝이란 방문짝은 모두 떼어내서 떼 묻은 문종이는

모두 뜯겨져 나가고 할머니가 바가지로 퍼붓는 물벼락을 맞고는  목욕을 하듯 묵은 떼를 떼를 씻느라고 난리법석을

떨고 계시다가 코스모스를 꺾어오는 나를 보신 할머니는 얼른 내 앞으로 달려오셔서 코스모스를 받아 안으시면서

" 우리 강아지 예쁜 코스모스 꺾어오느라고 고생이 많다 "

코스모스를 할머니에게 넘겨 드리고 손을 코 앞르로 갖다 대니 금방이라도 토할것 같은 코스모스 특유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러 얼른 펌프가 있는 우물로 달려가서 비누로 머리도 감고 손도 깨끗이 씻었지만 특유에 코스모스 냄새는

없어지질 않는다.

세수하고 닦으면 빨리 물기를 머금지 않아 닦으나 마나한 삼베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려고 할머니를 흘끔거리면서 

안방으로 가는데 할머니는 코스모스를 받아 장독대 옆에 놓고는 눈깔사탕을 주겠다는 약속을 잊으신듯 감감무소식이다.

눈깔사탕을 마루에 내 놨나 싶어서 마루를 흘끔쳐다보니 마루에도 눈깔사탕은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할머니 방에 사다 놓으신 것은 아닌가 싶어서 방을 건너다 봐도 눈깔사탕은 보이질 않는다.

한번 하신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시는 분이시기에 걱정을할 필요는 없지만 연세가 높으셔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씩 약속을 해 놓고도 깜빡 잊기도 하신다.

"할머니! 코스모스 꺾어왔으니 빨리 눈깔사탕 주세요" 했다가는 

" 어디 난리라도 낫느냐? 사내자식이 진득하지 못 하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 커서 큰 일은 못 한다 "라고 하시면서

준 것도 다시 뺏으시려고 하시니 할머니 앞에서는 절대로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불공에 뜻이

있지 눈깔사탕에는 뜻이 없는듯 시치미를 떼고는 방에 걸려 있는 삼베수건을 벗겨 얼굴을 닦으면서

" 할머니! 동구밖까지 가서 꺾어 온 코스모스라서 무척 탐스럽지요? "

"언중유골"이라고 내 딴에는 먼곳까지 가서 꺾어 왔으니 빨리 눈깔사탕 달라고 독촉을 하는 것이다.

연세 때문에 귀더 어둡고 눈 또한 어두워 바느질을 하실 때면 으례 나를 불러서 실을 꿰달라고 하시지만

눈치만은 9단이시라 눈깔사탕을 먹고 싶은 내 마음은 훤하게[ 꿰뚫고 계실 것이다.

수세미로 문짝을 빡빡 문질러 씻던 할머니는 잠시 쉬시려는 아니면 눈깔사탕을 주시려는지 일손을 놓고는 내 앞으로

다가오셔서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 우리 강아지 소담스런 코스모스 꺾으려고 동구밖까지 갔다 왔단 말이야 "

할머니는 내가 꺾어온 코스모스가 마음에 드시는지 입가득 엷은 웃음을 머금고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면서

" 가까운 곳에서 꺾어와도 돼는데 날씨도 더운데 동구밖까지 가서 꺾어오느라고 우리 강아지 고생 많이 

했으니 약속한 눈깔사탕 줘야지 "

눈알 빠지게 기다리고 기다리든 말씀이다.

떡에 꿀을 바르듯 한바탕 듣기 좋은 칭찬을 늘어 놓으신 할머니는 눈깔사탕을 꺼내러 가시는지 할머니 방으로

들어 가셔서 농문을 여신다.

눈깔사탕이 무슨 보물이라고 농 속에 넣어 놓으신단 말인가?

일각이 여삼추(一刻 如三秋)라고 눈깔사탕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이 길기만 느껴진다.

사 놓은 눈깔사탕 그냥 꺼내면 될 텐데 눈깔사탕을 보석으로 착각을 하시고 농 깊숙히 넣어 놓으셔 농을 뒤적

거리면서 찾고 계신 것처럼 보인다.

눈깔사탕을 먹고 싶은 마음에 방으로 들어가 보고 싶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 사내자식이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잠시를 못 참고 오두방정을 떠느냐? 그래가지고는 될 일도 안된다? "

꾸중을 들을 것을 불 보듯 삘이라 입 가득 고인 침을 삼키면서 할머니가 눈깔사탕을 들고 나오시기만을 목을

길게 빼고는 눈알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시는데 손에는 눈깔사탕이 들려 있는

것이 학을 수 놓은 빨간 복주머니를 들고 나오시드니 복주머니를 열고는 비비고 접어서 꼬기 꼬기해진 돈을

꺼내 주시면서

" 눈깔사탕 사준다는 것을 그만 깜빡 잊었지 뭐냐 그래서 돈을 주는 것이니 얼른 점방에 가서 눈깔사탕 사 먹어라 "

 

할머니가 주시는 돈을 받아들고는 천둥에 놀란 개 뛰듯 펄쩍거리고 뛰면서 점방으로 눈깔사탕 사러 간 것이

엇그제 같은데 어느새 6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내가 할아버지가 됐으니 어이한단 말인가.

 

코스모스 꺾어오면 눈깔사탕을 사주시든 호랑이 같은 할머니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립고 뵙고만 싶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돌아갈 수만 있다면 코스모스 꺾어서 방문에 수를 놓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만 싶구나.......

 

 

 

 

 

 

 

                                                  ㅡ  끝 ㅡ

 

 

 

 

"

 

                                    2016년  2 월  4 일      길    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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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2.08 21:01

    첫댓글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지내셨지요.
    오랜만에 뵙네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한가한 시간에 읽어보렵니다.
    편안한 날 되시고 늘 건필 하세요.

  • 작성자 16.02.09 09:53

    선생님
    그동안 강녕하셨지요?
    병신년 새해에도 늘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건필하세요.

    길상이 배상

  • 16.02.12 11:41

    선생님 그간 잘지내셨는지요.
    새해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

  • 작성자 16.02.12 12:00

    양선생님께옵서도 그간 잘 지내셨지요?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여 선생님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16.02.18 00:08

    오랜만에 귀한 작품을 접하게되니 무지 반갑습니다.,
    자연의 춘,하,추,동 사계와 인생의 나이에 따른 사계를 비교 설명이
    구구절절 맞아떨어지는 명작을 보네요,
    요즘 여성상위시대로 바뀌어,
    저출산율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노인 자살율 세계 1위,.../
    남자들의 입지가 좁아질대로 좁아져 숨을 제대로 못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래간만에 장문의 좋은 글 읽느라 본래 좋지않은 눈이 앞을 지경입니다.
    단편소설보다도 더 긴 귀한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보다 일본이 더 심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앞서 가고 있다고 하네요,
    일본 주부들은 남편이 정년퇴직 까지는 나 죽었다하고 살다가
    정년이 딱되면 헤어지자고,../

  • 작성자 16.02.18 10:29

    걸풍 선생님
    우수가 코 앞으로 다가 섰으니 아무도 모르게 봄이 우리 곁에 살포시 다가섰습니다.
    선생님 그동안도 강녕하셨지요?
    일년간 펜을 놓았다가 다시 든 부족한 글에 과찬을 얹져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배가 고파야 식욕이 당기듯 펜을 놓았드니 가끔씩 펜이 잡으라고 꼬득이네요.
    앞으로는 그럴 때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편씩 쓰렵니다.
    병도 환절기에 기승을 부린다니 건강에 주의하셔서
    고종명의 마지막 복을 기원드립니다.

    길상이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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