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이런 넋두리를 늘어 놓아도 좋을 적당한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당치 않으면 적당한 곳으로 옮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분주한 하루였습니다.
어렵게 휴가를 받은 아내는 며칠 전부터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휴가 내내 눈코 뜰 새 없는 분주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자연 부어 오를 수 밖에요.
오늘 아침, 아내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서둘러 깨웠지요.
작은 놈은 눈을 비비며 학교까지 태워다 줄 수 있냐고 다짜고짜 다그칩니다.
걸어서 가라고 하면 곧장 울음보를 터뜨릴 심산으로 말이죠.
말 끝에 아내는 그러마라고 대답해 줍니다.
아이는 순순히 화장실로 들어가 까무잡잡한 얼굴을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옵니다.
큰 놈은 소파에 길게 누워 TV 재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시큰둥해 있습니다.
녀석의 할일은 애완견 돌보기인데, 매일 가둬 두기만 하다보니 개가 아니라 돼지가 된 넘을 화장실로 데려가 일을 보게하고 휴지로 잘 치운 뒤 도로 집어 넣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놈은 매일 눈물을 찔끔거리며 투정입니다.
밥 먹기 전에 개똥을 치우다 보니 밥 맛이 없다는 겁니다.
그럴 듯한 이유긴 하지요.
해서 저는 호통을 칩니다.
일찍 일어나서 TV부터 볼 게 아니라 개똥부터 누게 한 다음에 TV를 보다 아침밥을 먹게 되면 개똥 생각이 나지 않을 거 아니냐고 말이지요.
어쨌든 놈은 오늘 아침에도 저의 호통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개똥을 치우고 식탁 앞에 앉았답니다.
늘 아이들을 앞세워 등교시키고 집을 나서던 아내는 오늘 하루 아이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고 싶었는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오늘 만큼은 저녁시간에 출근하게 된 저는 현관에 들어서는 아내를 향해 채근했습니다.
얼른 준비하고 거기 가자고 말이지요.
그동안 걸음할 때마다 하나 둘씩 잊고 챙기지 못했던 물건을 빠짐없이 챙겨 얼른 출발하자고 했더니 또 퉁퉁 부은 소리로 그러는 겁니다. 도대체 휴가가 끝날 때까지 자신만의 시간 한번 가져 보지 못하고 이게 뭐냐고 말이지요. 그래서 없는 실력으로 꼬드겼지요. 혼자 소파에 널부러져 있느니 공주처럼 모실 때 모른체 따라가면 좋을텐데...
말끝에 '공주 좋아 하시네, 심부름이나 안시키면 다행이지...' 그럽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아침을 후딱 먹어치우고 대강 챙겨서 따라 나섰습니다.
저는 그럴 것 같았습니다.
혼자 일할 때, 먼 발치에서라도 아내가 그저 바라다 보기만 해도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툇마루에 걸터 앉아 물이라도 떠다 주거나 말이라도 건네 주면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야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도시 출신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도시 출신이라서 농촌 일에 더 적극적인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요령을 몰라 서툴게 일하면 그 모습이 기특하여 더욱 사랑스러울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는 모양입니다.
그곳에 가면 늘 일이 넘쳐납니다.
시골 생활이 다 그렇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시골 일이니까요.
사실 그리 시골이랄 것도 없습니다.
시내에서 길어야 이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분위기 만큼은 완전 시골입니다.
올망졸망한 산 기슭 작은 골에 집 한채씩 엎드려 있는 분위기 괜찮은 곳이지요.
그리 크지 않은 땅덩이다 보니 이것저것 심어 놓기도 하고, 몇 종류의 닭도 기르고, 개도 세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돌보는 일은 모두 어머니 몫입니다.
여든 여섯인 어머니는 종일 닭 들여다 보시고, 개 먹이 주시는 일이 하루 일과입니다.
저는 휴식을 취하는 날이나 비번인 날에 들러 들꽃을 옮겨 심거나 통나무를 서툴지만 가공도 해보고 보통 시골에서 할 법한 일들을 흉내내곤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일이 참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시골생활이 어떠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시골도 보통 시골이 아니라 두메 산골이었습니다.
폭설이 지붕 끝에 닿을 만큼 눈이 많이 내리는 그런 시골이었지요.
그런 시골뜨기이기에 이런 정도의 일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아내는 시골이라는 말만 꺼내도 알러지가 돋을 만큼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 사람을 꼬드겨 이 정도의 시골 분위기 나는 마을에 집 한채 장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랑이가 있었을까요?
오늘도 따라 나서기 무섭게 종아리를 모기에 물려 긁고 난리였습니다.
모기란 놈도 제겐 참 백해무익한 놈입니다. 그녀의 피나 내 피나 제 배부른 건 같을텐데 꼭 그녀의 팔뚝이나 종아리를 물어 뜯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제 마치냐고 채근하거나 얼른 가자고 성홥니다. 그러니 시어머닌들 그런 며느리가 달가울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자연농업이랍시고 한 이삼년 묵힐 작정으로 풀만 무성한 밭에서 퇴비용 풀을 서너짐 되게 베어 놓았었지요.
아흔 셋인 아버지가 걸어주신 지게에다 풀 한짐을 져다 비틀거리며 마당에 꼰아 박을 때마다 수십년 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땡볕에도 부지런히 일하시던 아버지 모습 말이죠. 아버진 제게 근면함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질 닮았는지 배깔고 누워서 낮잠이나 자는 일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뭔가 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일을 만들어 하는 편입니다.
하여간 서너짐 되게 부려 놓은 풀 더미 옆에 작두를 설치하곤 어머니더러 풀을 좀 멕여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제가 시범을 보이고 따라서 좀 해보라고 했더니 십리만큼 뒷걸음을 치더군요. 풀 썩는 냄새에다 날파리가 윙윙거리는 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수십년 만에 해보시는 일이라 어떨지 모르겠다며 자리를 잡고 앉더니 이내 예전 모습대로 척척 풀을 멕여 주셨습니다. 저는 또 예전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풀썩풀썩 작두질을 했구요.
사다놓은 깻묵을 잘게 두드려 풀더미에 섞고, 닭똥도 거두어다 섞었습니다. 그리고 물도 흥건히 뿌렸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에 잘 곰삭은 퇴비를 기대하며 비닐로 꽁꽁 싸매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첨으로 만든 퇴비는 김치를 담그는 정성으로 담궈(?) 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연장들을 대강 치운 뒤 동산 초입에 세포기가 자라고 있는 오이 덩쿨에서는 오이 한개를 따고, 방울 토마토 덩쿨에서는 잘 익은 토마토 다섯알을 따서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마당가 수도에서 대강 씻은 뒤 아작아작 터뜨려 먹는 토마토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내년엔 좀 더 많이 심어 볼 생각입니다. 늘 익기를 기다려야 하니까요.
장염으로 식음을 전폐한 진도개 새끼 한마리를 껴안고 시골집을 나섰습니다. 아내는 언제 준비를 마쳤는지 신발을 갈아 신고 얼른 뒤를 따르더군요.
옷을 갈아 입는 둥 마는 둥 동물 병원엘 들러 얼른 입원시키고 집에 돌아와 애완견을 목욕시키고 나니 오후 3시가 되더군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처가로 향했습니다. 장모님이 벌써부터 감자부침을 준비하고 계셨거든요. 거른 점심을 대신해 감자전 몇 닢을 후딱 먹어치웠습니다. 아침부터 울컥거리던 하늘에선 천둥과 번개가 번뜩이더니 급기야 소나기를 퍼붓더군요. 정전까지 되는 가운데 피곤이 몰려와 잠깐 눈을 붙였다 천둥소리 요란한 가운데 출근을 했습니다.
빗속으로 멀어지는 아내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물방울이 송글송글한 백 미러로 제 모습이 보였을까요?
첫댓글 실감넘치는 시골생활 잘봣읍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
시골생활이란게끝도없는일이요 해두해두 표시도없는일인것같습니다 열심히 하시는모습이 눈에보이는듯하군요 ^^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도있고 보람도있쥬? 토마토같은거 따먹을때 특히요 ㅋㅋㅋ
먹을게 넘쳐서 감당이 안되네요~~ 어제는 호박잎하고 고구마순이랑 참비름까지 가세를 하니깐 이건 먹기에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호박잎덕에 방울토마토 따온거 손도 안대고 있답니다
ㅎㅎㅎ... 님의 글에서 그림이 절로 그려집니다.... 우리 옆지기도 서울사람인데..농사 랍시고 3-4년 하더니...ㅠ.ㅠ....인제는 제게 지시를 합니다....쯥
버들님 지시대로 하시면 농사 잘될거 확실하니 그케 하세여~~~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