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위하여
-눈물에 대한 변명
서 성 옥
오월은 백양나무의 계절
사월의 꽃자리가 끝나면
연록(軟綠)의 날들은 초록으로 짙어지고
문득문득 정수리에 다가서는 만춘(晩春)의 눈부신 햇살
오월 무성한 진초록 은사시나무
흰 파도처럼 바람에 몸을 젖혀 나부끼는 이파리들
은사시나무, 쏟아지는 햇빛에 하얗게 부서지는 이파리들
순간 은사시나무 은빛 잎들이 눈에 맺혀 반짝 눈물이 났습니다
그제야 알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순전히 쏟아지는 햇빛 때문입니다.
저 빛나는 오월 백양나무 은빛 이파리들 때문입니다
오월은 백양나무의 계절
무성한 햇볕이 잦아드는 해거름
산새들의 울음이 갈야산 산그림자 안으로 숨어듭니다
이제 은사시나무 숲은 적막합니다
속절없는 늦봄의 밤이 야금야금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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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리, 작약 꽃
서 성 옥
모란이 지면, 유월 작약 풀꽃의 세월이다
수녕궁 어원(御苑)에 붉은 작약, 흰 작약 꽃이 가득 피어났다
저 꽃 한 가지를 따 다오, 홀도로게리미실이 시녀에게 말했다
붉은 꽃 한송이에 공주의 옷섶이 눈물로 가득 젖었다
후흐허트 초원에도 유월이면 게르 후원에 작약이 만발했지
눈먼 악사가 마두금을 타며 푸른 오논 강을 노래 불렀지
늙은 왕선과 함께 초원의 제국을 떠나 올 때
대칸께서 흰 작약 꽃 한 송이를 꺾어 주셨네
나는 아득히 슬퍼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웠네
황막한 초원의 꽃, 흰 작약 꽃은 이별을 말 한다네
지금은 아버지 대칸도 세상을 떠나시고
천만리 고려 왕궁에 작약 풀꽃이 가득 피었네
아, 그리운 후흐허트 초원의 봄
저 꽃 한 가지를 따 다오, 흰 작약 꽃 한송이
* 홀도로게리미실은 징기스칸의 증손녀이자 쿠빌라이 칸의 딸, 시호는 약칭인 '제국대장공주'로 불린다.
대장공주는 원 황제 고모를 높여 부르는 말, 공민왕왕비는 노국대장공주라 는 시호를 받지만 서열이 제국대장공주에 비하여 훨씬 아래다. 제국대장공주는 병이 들어 작약 꽃 한송이를 쥐고 흐느끼다가 보름 후 39세 나이로 졸한다.
* 왕심(충렬왕)은 쿠빌라이 칸의 배려로 마흔 넘은 나이에 16세 공주인 칸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한다
* 후흐허트는 현재 중국 내몽골 자치주 주도인 후허하오터시의 몽골 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