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수필에는 버려야 할 평범이 없다. 평범이 그대로 수필인 까닭이다. 그러자면 수필가는 그 자신이 수필이어야 하며 생활 그 자체가 글이어야 한다. 글을 떠나서 생활이 따로 없고 생활을 떠나서 글이 따로 있지 않다. 필자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수필가요, 또 문사의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149. 수필가가 된 뒤에 비로소 수필이 써지는 것이 아니고 수필을 연마하고 연마해서 수필가를 형성해 나가며, 각고의 공을 쌓고 쌓아서 수필이 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과 인생은 생활의 연마 속에서 함께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150. 예술가란 예를 통해서 도를 얻는 자이며, 예는 오직 쉼 없는 연마와 연마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이다.
151. 수필의 연마 역시 생활과 떠날 수 없음이 또한 이와 같다.
152. 수필은 자유로운 산문이라 했고, 자유롭다는 말은 고전문장의 일절의 규격과 제한된 사상에서 탈피하는 것이라 했다. 탈피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이다. 허물이 있음으로 비로소 허물을 벗는 것이다. 구각이 없으면 어찌 탈피가 있으랴. 이미 과거의 문장을 모르고 전통을 계승한 바 없고, 대가에 사숙한 바 없으면 무엇을 탈피할 것인가. 독창적이란 말은 처음부터 손오공이 되란 말이 아니다.
153. 장대(1597~1676) 자신의 글이 나오기까지는 17년간의 고심의 모방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자기를 성장시켜 부단히 탈피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창작이란 모방에서 비롯하여 탈피에서 얻는 새로운 가치의 창조라고 본다.
154. 우리나라의 모든 명필 중에서 김정희처럼 진한고체에 심취하고, 중국에 가서 금석문의 고체를 체득하고 연마한 작가는 다시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필자는 자유로운 산문이 되기 위하여는 우선 많은 연구와 수련이 선행되고 전제되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155. 문학은 부단히 모방하며, 부단히 탈피하여, 부단한 전통에서 부단한 혁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어느 때이고 피나는 진실을 요구한다. 여기서만 세계수준을 능가할 수 있고, 여기서만 자아의 독창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156. 문학이 예술이라면, 예술이 어찌 기술의 연마를 떠나서 성립될 수 있으며, 수필이 문학이라면 어찌 아무렇게나 쓰기만 하면 되는 문학이 있을 수 있으랴. 생활이 수필을 낳는다면 그 생활이 얼마나 순수하고 수련해 나가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랴, 생활하면 다 생활이 아니다. 생활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오직 사색과 추구, 양식과 비판, 정열과 상상이 생활을 이루어야 하고, 신비로운 필치가 자유자재로 꽃을 수 놓고 안개를 피우며 신운이 드날리게 하자면 문신의 가호가 내리도록 피나는 연마와 기원이 있어야 하지 아니할까.
출처 : 윤오영 <수필문학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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