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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웅천은 단후완청 바로 옆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우선 이곳의 인원부터 얘기하시오."
단후완청은 손을 내리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략 일천 명쯤인데 꽤 고수들인가 봐요. 하나 초일류는 없을 거예요. 진미문 총단을 치러 가는 선봉에선 빠졌거든요."
"알겠소. 침상 밑에 숨어 있으시오."
백리웅천의 신형은 어느 새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갈대 사이에 있는 공터에 아수라의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살육을 벌이는 자는 단 한 사람, 백리웅천이었다. 그 주위로 수많은 흑의인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간밤의 작전을 수행하고 와 곤히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번쩍! 콰콰쾅!
그의 손에 들린 용형검이 춤을 출 때마다 해일 같은 강기가 일어나 사위를 뒤흔들었다.
마존 헌원우상의 절기 마교비천팔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혈천섬부터 비천마폭강망까지 백리웅천은 연습하듯 차례로 시연하고 있었다.
은밀종 검수들의 공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다. 그들의 마지막 숨결 위로 아침 햇살이 환하게 뿌려지고 있었다.
단후완청은 그저 침상 한 귀퉁이에서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백리웅천이 전사하면 자신은 수많은 자들에게 윤간(輪姦)당한 후 무참히 죽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녀는 오직 백리웅천의 승리를 기원할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덜컹!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단후완청은 간이 철렁하는 기분이었다. 들어오는 자가 백리웅천이면 그녀는 살아난 것이다. 하나 다른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수많은 사내들이 그녀를 차례로 겁탈할 것이다.
단후완청은 차마 고개를 들어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때 그녀의 귓전으로 약간 익숙해진 묵직한 육성이 파고들었다.
"단후소저! 시간이 없소. 빨리 안휘성(安徽省) 내안(來安) 분타로 가야 하오."
순간 단후완청은 어둠을 뚫고 빛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백리웅천의 품에 교구를 던지고 말았다.
"백리문주님!"
백리웅천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놈들과 싸우느라 너무 격렬히 움직이다 품속의 전서구 세 마리가 죽고 말았소. 양주 분타는 잿더미가 되었으니 내안 분타로 가야 총단에 연락할 수 있소."
그는 말을 하면서 밖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소저를 안고 경공으로 달릴 테니 내 귀에 대고 소저가 아는 상황을 빨리 설명하시오."
단후완청은 상황의 급박함을 깨닫고 그의 귀에 붉은 입술을 갖다대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단후완청은 혼인초야 다음 날 남편 황보원량과 함께 복면인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복면인들은 일단 단후완청 부부의 하단전을 칼로 찔러 내공을 폐지시켰다.
단후 부부는 여러 곳을 경유해 홍택호 부근의 늪지대로 오게 되었다. 그들은 감금되었을 뿐 비교적 후한 대접을 받았다.
어느 날 그들은 세 사람의 남자와 한 여자가 있는 곳으로 불려갔다. 단후완청은 그들의 말을 통해 흉수들이 변방 사대세력이 모인 집단임을 알게 되었다.
삼남 일녀는 단후 부부에게 친절히 대하며 말만 잘 들으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특히 풍신우길은 그녀의 미모를 보고 끈적끈적한 눈빛을 던졌다. 단후완청은 여인의 본능으로 그가 자신을 탐냄을 깨달았다.
그녀는 언젠가 풍신우길이 자신을 강제로 범할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하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인질을 관리하는 일은 뱐야밀궁 궁주 아후라의 업무였다.
아후라는 붙잡아 온 여자라도 강제로 못된 짓을 해선 안 된다고 금기를 정해놓았던 것이다.
백리웅천은 이 대목에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후라는 괜찮은 여인인 것 같소."
단후완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게 잘 대해줬어요. 중원의 오만방자함을 징계하는 것이 목적이지 여인의 정조를 함부로 짓밟는 짓은 자신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때 백리웅천은 단후완청을 한쪽 어깨에 건 채 갈대 숲을 완전히 벗어나 협곡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속도를 높이며 중얼거렸다.
"흐음! 그런 착한 여인은 가능하면 죽여선 안 되겠군."
그는 이어 조용히 물었다.
"그녀의 나이는 몇이오? 얼굴은 어떻게 생겼소?"
단후완청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물어요?"
"외모를 모르면 실수로 죽일 수도 있지 않소?"
"그렇군요. 그녀는 나보다 조금 까무잡잡하면서도 윤택이 흐르는 피부예요. 그런데 코가 우아하게 치솟아 있어요. 이국(異國)의 미녀라 바로 알아 볼 수 있어요."
미녀란 말만 들으면 힘이 나는 백리웅천이었다. 사실 그의 아랫도리는 이미 힘이 잔뜩 나 있었다. 반라 차림의 미녀를 안아들고 달리니 피치 못할 현상이었다.
그의 바지 중심부는 달려가는 방향을 향해 실밥이 터질 듯 불룩 솟아 있었다. 단후완청은 고개가 그의 등을 향하고 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진행되었다.
풍신우길은 단후완청을 자주 찾아왔다. 하나 아후라의 규칙 때문에 감옥 앞 공터에서 만날 뿐이었다. 두 사람은 반야밀궁 무인들이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담소를 자주 나누었다.
단후완청은 그를 통해 바깥 동정을 알 수 있을까 싶어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했다. 그녀는 반야밀궁 무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그만 음성으로 질문했다.
풍신우길은 자랑스럽게 이것저것 지껄여댔다. 그는 비밀이니 조그맣게 말해야 한다며 얼굴을 앞으로 가져와 얘기했다. 그러다 가끔 한 번씩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단후완청은 어떻게든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아나지 않고 고개만 가볍게 뺐다.
물론 그녀가 혀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실수로 감옥 창에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곳에서 대화를 했다. 때문에 그녀의 입술에 풍신우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것을 남편 황보원량이 보고 말았다.
그 후 그들 사이에는 불화가 지속되었다. 그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감방에 있으면서 쉴 새 없이 언쟁을 주고받았다.
황보원량은 풍신우길의 신청으로 단후완청이 나가면 창틀에 고개를 최대한 들이박았다. 그리고는 반야밀궁 무인들에게 한 눈 팔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치기도 했다.
이때 백리웅천은 생각했다.
'그냥 자기한테 반해서 술술 얘기해 줬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입술을 뺏긴 내용까지 말할까? 게다가 혀는 주지 않았다니... 으음, 야릇한 끼를 가진 여인이야!'
그는 또한 짜증까지 느껴졌다.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은 사패천의 병력 이동상황, 작전 내용인데 그녀는 시시콜콜한 사항을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풍신우길의 목을 너무 성급히 잘랐나 하는 후회까지 밀려들고 있었다. 하나 기이하게도 그녀가 야릇하다는 느낌이 들자 오히려 그의 하체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음, 웬만큼 강한 남자도 이런 여인을 아내로 취하면 평생 의처증으로 마음 고생을 하게 되지. 나 같은 초강의 정력남이 꽉꽉 눌러줘야 하는데.......'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내심으로 이것저것 생각도 하면서 듣고 있었다. 비록 내안 분타가 안휘성과 강소성의 경계에 있다지만 아직 한참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단후완청은 풍신우길뿐만 아니라 그곳의 남자 대부분이 탐욕의 눈빛을 보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사건이 터진 날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밤 감방 안에 복면인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반야밀궁 무인들을 어떻게 제압했는지 너무도 손쉽게 침입했다.
그는 단후완청을 깨우고는 옆방의 남편은 수혈(睡穴)을 짚여 곤히 자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는 곧장 그녀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단후완청은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른 복면인이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두 복면인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백리웅천은 듣다 말고 내심 한 마디 했다.
'진실은 그와 다를지도 모른다. 둘이 신나게 헐떡거릴 때 다른 복면인이 뛰어들었을 지도 몰라.'
사실은 단후완청의 말과 백리웅천의 생각과의 중간이었다.
그녀는 복면인에 의해 강제로 거의 발가벗긴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나 수십 일 만에 사내 밑에 깔리자 차츰 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사내의 격정적인 애무를 받으며 신음을 질러댔다. 그러다 다른 복면인이 들이닥친 것이다. 궁극의 행위가 막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아무튼 백리웅천이 단후완청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천 리 밖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문득 육상아의 자태가 떠올랐다.
'상아라면 이런 식으로 떠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한 사항만 간략하게 이미 다 전달했을 것이다. 조실부모하고 숙부들과 겨루며 대권을 쟁취한 그녀를 어찌 응석받이 막내딸과 비교할 수 있으랴?'
그는 문득 정실인 육상아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본능은 그럴수록 반대로 작용했다. 단후완청을 무자비하게 짓이기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의 아랫도리는 식을 만하면 다시 달궈지고 있었다.
단후완청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복면인 둘이 거칠게 싸우자 도중에 복면이 날아갔다.
먼저 온 자는 남만 축융탑의 영수인 호지강이었다. 두 번째 복면인이 풍신우길이었다. 두 사람의 장세에 벽이 무너졌다.
그 바람에 장력이 옆으로 튀며 옆 방 침대에 누워있던 황보원량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때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막북 광혼풍의 철륵가우와 반야밀궁의 아후라가 두 사람을 떼어 말렸다. 그 이후로는 아후라가 강력히 보호하는 바람에 그녀는 남자의 집적거림을 받지 않았다.
백리웅천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야산의 높다란 바위에 서서 평원을 가로지른 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관도 상에는 인파가 띄엄띄엄 오고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얘기 잘 들었소."
단후완청은 의혹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백리웅천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온갖 군더더기를 늘어놓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좋고 매력이 있는지 설명했소."
단후완청은 낯을 붉혔다.
"그... 그게 아니라 자초지종을 말하려......."
백리웅천은 무뚝뚝하게 말을 받았다.
"난 여기서 쉬어가기로 결정했소."
"그... 그러세요. 지금까지 계속 경공술을 펼치셨으니......."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내 몸 상태가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오."
백리웅천은 그녀를 어깨에 걸친 채 바위 옆 숲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덤불로 사면이 가려진 작은 풀밭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