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학술대회 보고서(2010101262,위기은).hwp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
2010101262 사회학과 위기은
Ⅰ. 들어가며
Ⅱ. 디아스포라의 개념
Ⅲ. 디아스포라의 예
Ⅳ.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의 디아스포라
Ⅴ. 재일한국인
Ⅵ. 디아스포라 속 재일한국인
Ⅶ. 나가며
Ⅰ. 들어가며
디아스포라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또한 나는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은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이주하는 현상을 말하는 점에서 같은 분류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을 다른 분류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여기서 디아스포라의 개념과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Ⅱ. 디아스포라의 개념
디아스포라(Diaspora)의 개념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어 있다. 윤인진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국을 떠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아가는 한민족 분산”으로 정의하고, 조성윤교수는 디아스포라는 어떤 민족, 또는 종족 집단이 한 지역에 거주하다가 특별한 사정 때문에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과 이주 이후 현지에 적응하는 사회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조성윤, 2012)이라고 디아스포라를 정의하고 있다. 또한 위키백과에서는 디아스포라를 특정 인종집단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으로 볼 때 디아스포라는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그 나라에서 적응하여 사는 사람 즉, 이민자와 같은 개념인 것 같다.
Ⅲ. 디아스포라의 예
디아스포라의 예로는 재외한인, 해외입양인,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이주했던 아일랜드인 등을 들 수 있다.
윤인진교수는 재외한인의 이주 역사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했다. 첫 번째 시기는 식민지 이전에 일어난 이주의 역사로 1860~1910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구한말의 농민, 노동자들이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서 국경을 넘어 중국,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쿠바로 이주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일제강점기시기로 1910년~1945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일제 통치시기에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해방 후 본격적으로 해외이주 법제화 이전의 시기로 1945년~1962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발생한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학생 등이 입양, 가족재회,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또는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네 번째 시기는 현대적 이주의 시작시기로 1962년~현재를 말한다. 이때부터 정착을 목적으로 한 이민이 시작되었다.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을 보냈다(윤인진, 2012).
염미경교수는 멕시코 한인사회는 이주형태와 방식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크게 두 축으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1905년 멕시코의 에네껜(노끈이나 밧줄 또는 마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식물)농장의 계약노동자로 들어간 조선인들과 그 후손이다. 1905년에 멕시코의 이주 한인들과 한인후손은 일포드(Ilford)호를 타고 제물포항(현재의 인천항)을 출발하여 멕시코 유카탄(Yucatan)반도의 에네껜 농장으로 4년간의 계약으로 노동이민을 떠나 계약기간 동안 모국과 완전히 단절되었고 언어와 생활 풍습이 상이한 멕시코에서 고립 상태에 있었다. 계약만료 후 귀국하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현지 언어의 습득이나 동화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계약노동이 끝났을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한인들은 귀국 경비가 없어 멕시코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고 생존을 위해 여러 농장을 떠돌아야만 했다.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인들은 귀국을 포기하고 여러 도시로 제 각각 새로운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염미경, 2012).
Ⅳ.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의 디아스포라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은 디아스포라와 이주 공동체를 구별하고자 했다. 그는 디아스포라를 구성원들이 특정한 조건을 공유하는, 고향을 떠난 소수 공동체로 정의했다. 사프란이 주장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조건’은 첫째로 구성원들이나 구성원들의 조상이 원래 살던 본원지에서 두 개 이상의 주변지역이나 외국으로 흩어지고, 둘째로 본원지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과 신화를 보유하며, 셋째로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고, 넷째로 그들의 본원지를 조건이 만족되면 되돌아 가야할 진정한 고향으로 여기며, 다섯째로 집단적으로 본원지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본원지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믿으며, 여섯째로 그들의 본원지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적 공동체 의식과 단결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Ⅴ.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인은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말한다. 1910년의 한일합방 때까지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은 주로 유학생과 단기노동자들이었다. 단기노동자들은 탄광이나 철도 부설 공사 등에서 일을 했다. 재일한국인의 수는 191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1911년 말에는 약 2,500명 정도였지만, 조선총독부의 토지 조사 사업에 의한 농민의 토지 수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 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노동력 수요의 증대에 의해 계속 증가해,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일본 당국은 조선인 여행단속령을 공포하고 일본으로의 도항을 제한했다. 해방초기 모든 사람들이 귀국을 서둘렀고 지역마다 ‘조선인연맹’을 결성하여 귀국을 돕거나 일제강점시 억압되었던 한글과 한국사를 가르치는 사설학교들이 도처에 자생적으로 성립되었다. 1946년 3월 당시, 약 70만 명 남아 있던 재일한국인 중 50만 명 이상이 귀국을 희망했지만, 소지했던 재산과 물품의 반출이 제한되었던 점과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치 정세, 귀국해도 고향에 생활 기반이 없었던 이유로 귀국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 1946년 말에 집단 귀국은 종료되었다. 또한 그 중에는 일단 귀국했으나 고향에 적응하지 못해 밀항해서 일본에 재입국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러한 일본 잔류 한국인들이 역사적으로 현재의 재일한국인을 형성했던 것이다. 재일한국인은 14세가 되면 구청에 가서 외국인등록을 한다. 이때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는다.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고등학교 진학시 한인학생을 받지 않는 학교가 있고, 학교를 졸업해도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안 되는 경우 등 한인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일본사회의 인식은 단순히 개인의 태도와 감정에 머물지 않고 취직, 거주, 교제, 연애, 혼인 등 일상생활에서 한인을 차별하고 배제하였다. 재일한국인은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고 일본인으로부터 게으른 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환경과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위에 사진은 도쿄조선제이초급학교(東京朝鮮第二初級学校)로 도쿄 고토구(江東区)에 있는 조총련계의 민족학교이다. 이는 초등학교에 해당한다. 이 학교의 부지 일부가 도쿄도의 소유지여서 재판을 통해 반환을 요구받아 폐교위기에 몰렸으나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토지를 사들일 수 있었다.
Ⅵ. 디아스포라 속 재일한국인
재일한국인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만 귀국 후 적응문제 등 여러 문제들로 인해 돌아오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에 한국을 돌아오고 싶은 자신들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자신들을 차별하고 배제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조선인연맹’을 결성해 재일한국인들만의 화합과 단결로 학교를 설립해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준다. 이를 보면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이 위에서 말한 ‘특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조건들이 재일한국인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재일한국인도 구성원들이 특정한 조건을 공유하는, 고향을 떠난 소수 공동체 즉,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Ⅶ. 나가며
나는 이 보고서에서 디아스포라의 정확한 개념과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디아스포라’라는 것이 알듯, 말듯 알쏭달쏭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자료들을 자세히 보고, 나만의 디아스포라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디아스포라와 재일한국인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