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경쟁률이 높았던 직장을 적성이 맞지 않아 발령받은 지 3일 만에 사직서를 냈지만 직장동료들은 영구의 장래를 위해 보류를 하라면서 설득했다. 결근을 하면서 버티니 끝내 1주일 만에 직장에서 사직을 허락했었다. 영구의 성질은 독특했다. 남에게 간섭을 받거나 지시를 받는 일은 죽기처럼 싫어했다. 바닥이 다 떨어진 고무신짝 벗어내 버리듯 사직서를 쓰고 나와 버린 후로는 줄곧 지금까지 자영업만 하고 살았다. 정말이지 아파트 공사현장에 경비원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형님은 어찌하다 진주에까지 왔습니까? 말 들어 보니 해남이 사람살기 좋다고 하던데요.”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다 똑같지, 옛날에는 전라도에 묵고 살 수 있는 건덕지가 뭣이 있었던가? 밥 묵고 살기 위해서는 객지로 다들 나와야 했지. 군사독재 시절에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공장 하나를 지어도 만날 경상도 지방만 지었지. 해남 쪽에 가까운 목포만 해도 그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것을 보소. 고향에서 벌어 묵고 살 건덕지가 없으니 서울로, 부산 대구로, 다 빠져나오게 된 것 아닌가? 경상도 지방에만 봐 보소. 마산자유무역단지에다, 창원공단이다, 뭐다, 해서 커져 뿐 것 보소. 김해 양산 울산 포항처럼 전라도에는 뭐 하나 똑바른 것이 있었던가?”
“형님, 전라도에도 광양제철 있잖아요?” “뭐라한가? 광양 제철은 최근에 생긴 거지, 지금 전라도에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본가? 다 대도시로 다 빠져나가버리고 얼마 없지 않은가? 정치하는 사람들은 허울 좋은 말은 잘하지, 뭐라고 했던가? ‘균형적인 국토 발전시켜야 한다.’ 고 ‘균형적인 국가발전’ 말로 하려면 뭘 못하겠는가? 나도 말로는 떡을 해서 우리나라 사람 다 먹일 수 있겠네. 균형적인 국토발전헌다고 말은 허지만 지금 현재도 전라도와 경상도 인구를 보소. 전라도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만 경상도는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잖은가?”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맞습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동생 자네가 내 얘기를 알아듣고 있네.” “형님, 말씀처럼 우리가 고향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시설이 만들어져 있었더라면 형님 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영식은 다시 또 긴 이야기를 시작할 조짐이 보인다. 고향 떠나온 지 40 몇 년 동안 진주에 살면서도 고향에서 쓰던 말 그대로다. 언어가 한마디도 바뀌지 않고 전라도 사투리도 그대로다.
영구가 호남향우회에 부지런히 활동할 때만 해도 영식은 상당한 재산도 모은 사람이었다. 향우들도 다 인정하고 있었던 터라, 이런 공사현장에서 경비직으로 일하러 온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에게 경비원 일을 하는 것이 알려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다시 또 영식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군사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호남 쪽에는 산업기반 시설이라고는 아예 세우려고 하지 않았으며, 호남 쪽 인사들은 정부 요직에 등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동생도 알지. 군인들이 정권 잡고 있을 때만 해도 육군사관학교가 얼마나 대우를 받은 줄 아는가? 그때 왜 이런 말 한참 유행했지 않았는가? 육사 출신은 결혼할 처녀가 아예 맞선도 없이 시집간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네.”
“그럼요, 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육군사관학교가 요새는 옛날보다는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호남 쪽에는 스타 출신들이 말하자면 장군 출신이 몇 명 없었네. 군사독재 시절에는 호남 쪽 장성들은 비율이 형편없이 떨어졌던 거야.”
이때 전반장이 점심 먹고 하라면서 걸어왔다.
“두 사람이 오전 동안 무슨 얘기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합니까? 점심 잡수고 하세요.” 영식이 얼른 받아 한마디 했다. “강영구씨가 자꾸만 가르쳐 줘도 질문을 하네요.” “반장님, 벌써 점심시간 되었습니까?”
전반장이 예, 라고 대답하며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이 사람아, 벌써 라니, 동생 자네는 벌써 라고 생각하는가?” “형님 하고 얘기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는 줄 몰랐습니다.” “자네는 오늘 처음이라서 점심도 안 가져왔지? 내가 가져온 밥을 나눠먹으면 된다.” “나는 오늘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점심도 안 갖고 왔는데 어떡하죠?” “동생 자네가 밥을 많이 묵는가? 밥을 많이 묵어야 하면 밖에 나가면 큰길가에 식당도 있고 중국집도 있으니 가보소.”
영구가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기로 했다.
“형님, 나가서 밥 묵고 오겠습니다.” “자네 밥을 많이 묵는가 보네. 그냥 여기서 내가 가져온 밥을 묵지 그래.” “형님, 오랜만에 일을 해서 그런지 배가 고픕니다.” “나눠 묵으믄 될 성싶은데.” “형님, 그러면 둘 다 배고파 안 됩니다. 얼른 묵고 올게요.” “그러면 경비실에는 내가 있을 테니, 동생 자네는 밖에 큰길 건너가면 중국식당도 있고 한정식도 있응게, 가서 묵고 싶응거 묵고 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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