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에서의 마지막 修學記
2023. 12. 27
지난 6월 말 영산대 7학기를 마친 뒤 부산생활도 접고 김포집으로 올라왔다. 4년 졸업을 위해 남은 5학점은 영산대가 학점교류 체결협정을 맺은 수도권 대학들인 한양대, 경희대, 숙명여대에서 원하는 과목 수강신청해 따서 채울 심산이었다.
8년 간이나 정든 부산생활을 그만두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인서울(In Seoul)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 공부를 해보는 맛도 그럴 듯 하리라 여겨져 9월 개강이 가까와올수록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이 아쉬움을 넘어섰다.
한양대로 결정한 이유
영산대 교무처에 마지막 학기를 보낼 학점교류대학으로 한양대와 경희대로 수학장소를 옮기겠다는 신청서와 함께 총장허가 요청 및 법학과 과장에게 추천서를 요망한다는 서식을 제출했다. 그러자 학사수강팀으로부터 한 이틀 만에 허가와 추천서를 받아 프로세스에 따라 양 대학에 김재민의 수학을 부탁한다는 의뢰서를 보내어 수강신청을 허락한다는 답신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한양대 23-2학기 수강과목 시간표(월요일은 청강 수업 한과목 있음)>
드디어 양 대학으로부터 임시 학번을 받아 각 대학 포탈에 들어가 들을 만한 과목들이 있는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 대학에 모두 다녀볼까도 생각했지만 통학거리와 개설과목들을 고려해보니 아무래도 한양대 쪽에 집중해 신청하는 게 실행가능한 현실성이 더 있어 보여 그리 하기로 결정했다.
경희대는 모든 과목이 3시간짜리 3학점 과목들로만 구성되어있어 다양한 2학점 중급 어학수업에 집중하려는 나의 욕구를 한양대보다 충족시켜주지 못했기에 이 학교서의 수학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한 학교에만 집중하게 되어 시간표 짜고 학교 통학하는 데도 이점이 더 클 것 같았다.
신청과목 수강 소감
한양대 수강규정에 학점교류자는 최대 18학점 이상 신청하지 못하고, 예체능의 실기실습 과목 역시 신청이 불가하다는 제한 규정을 두었지만 교양과목을 신청하려는 내게는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일단 중급 어학코스(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회화)와 법학과목인 형법의 이해와 교양노동법등 총 15학점을 수강신청하는데 성공했다.
<9월 초 캠퍼스 내 언덕 위 501동 건물에서 내려다 본 한양대 주변 전경>
스페인어, 일본어, 독어회화는 모두 담당교수가 여자교수였고, 중국어만 중국인 남자교수였다. 영산대였더라면 스페인어와 독일어 강좌는 구경도 못했을거고, 일본어와 중국어 역시 중급 코스는 없었기에 인서울 대학에 온 보람을 크게 느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수업에 들어갔더니 젊은 학생들의 기본 실력과 배움 의지도 대단했지만, 담당 교수들의 짜임새있는 강의계획서와 거기에 소개된 커리큘럼을 한치의 오차없이 그대로 진행하는데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옛날 독일대학에서 받았던 첫 인상처럼..
영산대에서보다 각 과목당 한 2.5배의 강의 내용을 소화하고, 교수들의 강의 스킬도 장난이 아닐 정도로 최상급이었다. 이래서 인서울 인서울 하는가 싶었다. 이번 학기 말미에 행정실에서 학점교류 학생들은 한양대에서 최대 2학기까지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늦게서야 듣고 진작 4학년 1학기부터 이 학교에서 수학하지 않은 게 크게 아쉬울 정도였다.
<아침 9시에 시작되는 중급일본어 수업 시작 전>
특히 일본어를 담당한 B교수는 강의내용을 일본 영화, 애니메이션, 뉴스, 유행 트렌드 등에서 가져왔는데 현대일본인의 정신세계와 관심사에 대한 흥미유발과 함께 중요한 일본어 표현법 등을 살가운 유머까지 적절히 섞어 멋지게 전달해주었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명강의를 만났다고 생각되었다. 엄청난 분량의 강의안과 시청각 자료들을 매주 가져와 또렷한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에너지와 열정이 동업자였던 내게는 그저 외계인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수업 전 단아한 인상의 프라우 송>
<프라우 송이 초대한 종강 파티장에서>
한국에 와서 오랜 기간 쓰지 않아 녹슬었을 독일어도 먼지 좀 틀고, 그 옛날 독일생활의 향수도 좀 느낄 요량으로 신청했는데 그런대로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40대 중반 단아한 분위기의 담당교수가 모친이 한국인이어서 좀 오래된 한국 정서를 한 40% 정도나 보유하고 있었기에 어린 학생들보다는 나와 죽이 더 잘 맞았다. 한학기 동안 수업 시간도 알찼지만, 수업 후 나와 커피타임을 따로 가지며 서로간의 세계관과 개인 스토리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던게 꽤 그럴 듯 했다.
<스페인어 강의안>
스페인어 역시 옛 추억을 되새기며 모처럼 중급과정을 신청했는데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여겨졌다. 50대 후반의 여교수가 좀 괴퍅한 루틴을 가졌으나 실력만은 확실해 일반교과서에서는 스쳐지나가던 스페인어 문법들을 빵빵한 강의안들을 갖고 수강생들의 배움 욕구를 확실히 만족시켜주었다. 영산대에서는 언감생심이었을 고급강좌를 여기서 운좋게 듣는다 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딱 봐도 범생이 같은 젊은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 교분을 맺은 것도 망외소득이었다.
<중급중국어 교재>
중국어는 영산대에서 초급수업을 들었기에 중급을 신청했지만, 수업 내용이 퀀텀도약을 한 것처럼 높아져 따라가기가 좀 벅찼다. 더군다나 95% 정도의 수강생들은 모두 부모 따라 중국 체류 경험이 최소 수년씩 있는 친구들이라서 중국어 텍스트를 읽어내고 일상 회화를 하는 수준은 나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도 30대 중반의 한국어 가능한 중국인 교수가 나의 노익장 학습 투혼을 높게 평가해 특별 대접을 해주었기에 그나마 뚜벅뚜벅 따라갈 수 있었다.
<형법수업 주교재>
‘형법의 이해’ 과목은 코로나 시절 영산대에서 동영상 강의로 형법 관련해 두 과목이나 들었지만 야간반 학생들의 수준이 고만고만해 찔끔찔끔 파편적으로만 다뤘기에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 같아 신청한 과목이었다. 수강생 상당수가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듯해 학습 열기는 아주 높았다. 거기에 맞춰 담당교수도 ‘新형법입문’이라는 600여 페이지의 교과서 내용을 14주에 걸쳐 강의안으로 요약해와 다뤄주었기에 전체 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가 있어 무척 좋았다.
<노동법 강의장>
‘교양노동법’ 강의 역시 현역 로펌 변호사가 초청교수로 와서 진행해 주었기에 쓸데없이 늘어지는 신상잡담 시간 같은 것은 생략하고 오직 채택 교과서 내용들만 보기좋은 파워포인트 강의안으로 요약해 설명해주는 덕분에 아주 효율적으로 현행 노동법을 접할 수 있었다. 40대 중반 여교수의 카랑카랑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강의 스타일이 많은 학생들에게 만족감을 크게 고조시켰다. 늦깎기 대학생활을 하는 내가 자기에게도 적지 않은 영감을 주신다고 커다란 호의감을 대놓고 보여주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수업 텍스트>
엄청난 수강희망 인원들로 인해 수강신청에 실패한 ‘자유란 무엇인가’ 수업은 담당교수와의 메일교신을 통해 특별청강 허락을 받고 참가하게 되었다. 들어보니 학생들이 몰리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현역 변호사이자 겸임교수로 이 과목을 담당한 50대 후반의 J교수는 그리스 비극, 동학혁명, 한국 현대사, 소수인에 대한 차별, 그리고 우리 문인들과 세계적 유명 문인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들을 방대한 강의안에서 다루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14주 동안 강의안들을 내게만 메일로 따로 보내주며 나의 학업 열기와 함께 교수의 방대한 독서량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내게 같은 수준으로 도반의 예우를 해준 인간적 우의가 정말 고마웠다.
지난했던 통학길
<김포골드라인의 차내 혼잡도>
우리집 김포 운양동에서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222에 위치한 한양대 서울 캠퍼스로 가는데는 지하철을 3번이나 바꿔타고 1시간 40분 정도가 걸리는 만만찮은 통학거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출퇴근 길 지옥철로 이름나 있는 김포골드라인을 제일 먼저 이용했는데 운양역까지 13분여 걸어가 이미 승객들로 바글거리는 김포공항행 경전철에 올라타 한 20여분 시달리다 보면 김포공항에 간신히 도달하게 되었다.
<출근타임 김포공항-당산행 9호선 타기>
여기서 9호선 급행을 타고 25분여 걸리는 당산역까지 가는데 좌석에 앉아서 갈 확률은 그래도 한 50%는 되었다. 10월 중순부터는 경로석에 자리가 비면 ‘나도 이제 노인 자격이 있어!’ 하고 착석하니 9호선에서 앉아갈 확률이 한 60%로 높아졌다. 자리에 앉으면 다른 이들처럼 이어폰 귀에 꼽고 유투브 동영상 보고 들으며 좀 느긋하게 갈 수 있었다. 시험기에는 관련 과목 텍스트들을 훑어보며 집중공부하는 자세로 다녔다. 골드라인보다는 붐비는 밀집도가 좀 나았지만 여전히 사람들로 꽉 채워져 달렸다.
당산에서 하차해 한 5분 여의 환승거리를 도보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걷다가 마지막 지하철인 신촌 방향 2호선에 갈아탔다. 여기서 내리는 승객들이 많아 밀집도는 가장 느슨하지만 바로 앉을 자리 발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 앉은 승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내릴 지를 알 수 없어 운에 맡기고 빨리 내릴 듯하다 여겨진 승객 앞에 서지만 자리 나는 것은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웬만하면 신촌이나 시청 정도에서 자리가 나지만 운이 안좋을 때는 목적지인 한양대 바로 전역인 왕십리역까지 가서야 좌석이 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2호선 차창에서 본 한강의 정취>
<하교길에 석양을 선사하는 한강>
여기서도 10월 중순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경로석을 노리게 되자 자리가 비워져 있을 때가 많아 지공거사 4년차 임을 맘속으로 내세우며 낼름 앉았다. 자꾸 앉으니까 나중에는 이 자리들이 나를 위한 당연석으로까지 여겨졌다. 나보다 열 살 넘어 어려보이는 50대나 60을 바라보는 중년여인들조차 거리낌 없이 자리에 착석하는 걸 보고 더욱 더 이런 생각이 굳어졌다. 아무튼 체면차리며 경로석을 비워주는 젊은이나 4, 50대 중년들, 그리고 아침 시간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 7, 80대 노년층 때문에 꼴랑 69 군번으로 비워진 경로석들을 이번에 잘도 이용했다.
<한대 캠퍼스와 바로 연결된 2호선 2번 출구>
2호선을 한 30분 정도 타면 한양대역에 도착했는데 2번 출구가 캠퍼스내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 너무 좋았다. 영산대 해운대 캠퍼스의 경우 동래역에서 갈아탄 경전철로 영산대역에서 내리면 캠퍼스까지 무조건 15분을 걷고 다시 수업건물 F동까지 비탈길을 도보로 올라가는데 10여분이 소요되어 총 25분여가 걸렸는데 이 시간이 줄어드니 꼭 횡재한 기분이었다.
학업 종료 소감
보통 첫 수업 중급 일본어가 9시부터 시작되는 수요일은 집에서 5시 반에 일어나 세수하고 와이프가 전날 저녁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 샌드위치 빵을 꺼내들고 수업교재들 챙겨 운양역까지 걸어가는 가장 긴 하루의 날이었다. 걸어가는 새벽길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승이라도 된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을 자주 만끽했다. 보통 학교에 수업시작 4, 50분 전에 도착하면 교정 곳곳에 있는 커피카페 등에 들려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잔에 샌드위치 아침 먹는 일상이 정말 이 나이에 누리기 쉽지 않은 멋진 호사라고 여겨졌다.
<11월에 찍은 차분한 본동 캠퍼스 전경>
<중앙도서관인 백남관>
운이 좋아 70이 다되어서도 제도권 대학에서 많은 20대 외국유학생들을 비롯해 개성 넘치는 용모를 가진 젊은 한국학생들과 마주치며 배움의 생활을 하게 된 행운에 무한한 감사의 念을 결코 잃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운좋게 시작한 노익장의 학업과업을 후회없이 마쳐야지’ 하는 생각만을 품은 채 ‘20년부터 부산에서 7학기를, ’23년 한양대에서 마지막 8학기를 말 그대로 꿈처럼 수행했다.
<독어 수업 들어가기 전 커피한잔과 샌드위치 아침 먹는 501동의 옥외공간>
<외국인 학생들과 점심식사(라면+밥 2500원/퓨전 한식 3900원) 하던 학생식당>
영산대에서는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학기당 200만원 정도 지원해주는 장학금과 영산대측이 성적우수 학생에게 주는 학업장학금으로 7학기 동안 학비전액을 면제해 주었다. 게다가 8학기에는 학점교류제도를 통해 한양대같은 등록금이 100여만원 더 비싼 인서울 대학에서 따로 돈내는 것 없이도 수준높은 수업들을 수학할 기회를 제공했다. 넉달을 이 학교에 다니며 내 머리 속에 있던 7, 80년대 후기대학 한양대라는 이미지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제 한국에서 8위권에 랭크되는 대단한 인재양성 및 연구 대학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로 확실히 대체되었다.
<이 학교와 작별을 앞둔 12월 초 애잔한 마음으로>
기말고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나는 이제 4년에 걸친 대학생 놀이가 끝나가는데 대한 아쉬움이 점점 짙어갔다. 지난 넉달간 매주 5일이나 오고가고 했던 멀었던 통학길에 대한 기억들이 먼저 났다. 학교 도착 후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식사를 하고 수업에 들어가던 것과 마치고는 도서관 학습 후 집으로 돌아오던 하학길의 그 모든 시간들이 많이 좋았던 시절들의 마지막 추억으로 오래오래 반추될 것 같았다. 이제 과거로 들어가 다시는 내 앞에 전개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거라 여겨지는 그 순간순간들을 머리 속에 담으려 사진도 제법 많이 찍었다.
일주일 전 기말시험들을 모두 끝마치고 제도권 학업과는 일단 마침표를 찍은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다. 그간 공부합네 하고 가사를 와이프에게 전적으로 맡겼는데 이제 가장으로써 마누라가 혼자 짊어지었던 가사수입 확보에도 일익을 담당할 방법들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고 당연히 여긴다. 약간 막연한 감도 들지만 지난 4년간 공부하던 열정과 의욕이라면 밥벌이 보탬도 어디선가 나타날 모멘텀만 잡으면 크게 못할 것 없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첫댓글 하기 힘든일을 무사히
그것도 거의 완결하게 해낸
인간승리 입니다.
인간승리 김재민 법학도
졸업을 축하 드립니다.
대단합니다.
백교장, 잘 지내시능교? 코로나로 인해 우연히 시작했던 역주행 대학생활을 그럭저럭 여건들이 아다리가 되어 했던 것 뿐인데 인간승리라고 바람 잡아주니 쪼끔 민망함다. 그래도 띄워주니 고맙네요.. 시작한 서도의 길 가는 데까지 잘 가보시기 바람다.
엄청난 학구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엄청난 존경심이 저 막창자꼬리부터 차올라옵니다!
길영공도 오랜만임다. 이제 좀 시간이 나니 여기서 댓글 자주 주고 받으며 지내봅시다. 부인께도 안부 전해주시고.. 신년에도 소망했던 일 잘 이뤄지길 바라네요.
서토거사니믄
마이 반성하고. 김박사한테 사과하소
수년전에 김박사랑 우리집에 왔을때
긴긴저녁을 이런 김박사한테는 기회를 안주고
혼저 씨버리는 데 시간을 다 소모했으니...
김박사가
막판 Spurt하듯,
대단한 일을 저지러고 마무리했네요
고생했소.
그런데, 김박사는 이 일을 시작한 동기가?
식지않는 학구열에 불타서?
아니면 무슨 목적으로?
아니면....
김박사글을 복사해서
대학5학년 우리 아들에게 보내야겠니더
그놈이
본을 받을지
'아빠는 뭐하노?, 시골구석에 처밖여 세월만 낚고 있으니..."
하고 나무라는 동인을 삼을지
나는
비닐하우스자재로
하우스 대신에, 주자장을 만들려 하는 것도
죽을 쓰고 있으니
아이고 허리야....
사진을 보니..주차장이 아니라, 원예농원을 크게 만드는듯 보이는군요.
바닥 기초작업이나 철제 기둥작업 된 것을 보니..암튼 머 하나를 손수 만들어도..
항시 전문가에 버금할 정도의 사전설계를 구상해놓고 진행하고 있어보여..
그 재주가 새삼 부러워짐미다.
이 정도 주차장이면.. 아마도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갖다 댈 계획이신 모양- ^^
옥도사, 긴 댓글 고맙소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실사구시의 노년을 보내는 모습에 항상 흠모의 예를 보냄미다. 언제 서토가 오면 지난번 모인 곳으로 한번 더 방문하리다. 볼 때까지 싸모님과 잘 지내시구려..
여기서 댓글 대담은 신년에는 더 자주 하십시다. 항상 건강하소.. 좋은 글 많이 올려주면서..
김박 쵝오! 만만세!^^
수인공도 오랜만에 보네요.. 건강 가이드 글과 스포츠 야사 글도 한번 씩 들어와서 흥미롭게 읽었심다. 신년에도 소원 많이 이루어지길 기원함다.
김박사의 학구열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나이에 그러한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가요?
부럽기도 하고 .......................
김작가, 그동안 사진 작품 많이 올렸을건데 자주 못들어와 잘 살피지 못했네요.. 내 학구열이라는 것은 김작가의 예술혼에 비하면 이빨도 안났지요.. 내가 항상 흠모하는 부분임다.
전철 차창에 비친 한강의 풍경을 찍은 사진에.. 김박사의 늦깍이 대학생활에
대한 만족스럽고도 뿌듯한 감회가 잘 담겨있는듯 여겨집니다.
만년에.. 4년간의 학업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위치해 가며
일반인들에게는 결코 흔치않을 특별하고도 귀한 시간을 보낸 김박사가 아주 대단하고 부럽군요.
참으로..쉽지않을 과정이었을 터인 바..이를 끝까지 마무리 해낸 김박사의
은근한 의지가 또한 크게 돋보입니다.
서토가 한강 정경 사진에 대해 언급해 주니 역시 인생 짝지다 하고 여겨지외다. 내 블로그(https://blog.naver.com/corazon27/223305314682)에는 사진이 총 38장 들은 걸로 올렸는데 여기서는 20개 이내로 올려야 게재가 된다해서 사진을 18개나 뺄 수 밖에 없었네요. 요 두 사진은 어쩐지 살리고 싶어 계속 놔두었는데 서토가 한마디 해주니 잘 살렸다 싶소이다.
나이가 어린 교수와 자식뻘 학생들 속에서 배울 수 있었던 사실이 내게는 마음고생보다 항상 황감스러운 감정으로 다가왔네요. 서토도 같은 상황이었으면 아마 그리 느꼈을 것임다.
김박사가 묘사하는 교과 과정이나 강의내용, 그리고 분위기를 보자니
우리가 다니던 시대와는 상당부분 그 수준이 다른 상아탑으로 상상되는군요.
특히나 일본어 강의 내용에서 그런 감흥을 느끼게 되는 바..
이전에도 그런 형태로 영어를 교육받을 수 있었다면..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가리늦게 생겨납니다.
이제는 질적으로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는 높은 수준의 한국 대학들인데..
학생들의 숫자가 점차로 부족해질 여건이라..이 점도 아쉬워지네요.
밎소이다. 우리 인서울 대학들은 여러모로 진화되어 내가 강단생활했던 2000년대 초반과도 또 다른 배움터의 분위기를 연출합디다. 교수나 강사들도 쉴새없이 창의적인 강의빨을 계속 개발하면서..
오늘 일본어 강사를 불러내 한식집에서 식사대접을 했고, 신년초에는 젊은 중국어 교수와 중국인 부인까지 동반초청해 밥 한 그릇 대접할 작정임다. 프라우 송은 독일에 한 두달 간 다녀오겠다 하니 돌아오면 그때 밥 한번 살까 하네요.. 모두 고마웠던 선생들임다.
김박사는 이제 중급이상의 다양한 외국어를 습득해 있는 위상이기도 하니..
오래전 옥자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했던 기억을 되살려...
다리힘 다 빠져버리기 전에.. 다시금 세 사람이 같이 그룹하여.. 김박사를 앞세우고(?)..
유럽과 동남아를 포함한 세계 각지를 함께 싸다니는 기회를 만들어 보아야 겠다는
엉뚱한 꿈이 갑자기 만들어 지는군요.^^
잘 정리된 만학기 흥미있게 잘 읽었으며, 다시금 김박사의 건강을 소원합니다.
내 할말을 서토가 다하니 난 유구무언 ㅎㅎ
나도 그럴 만남의 행운 아다리가 왔으면 여한이 없겠네요. 하지만 옥자는 몰라도 서토와 나는 경제력이 미미한 관계로 가까운 장래에 해외동반 여행꿈이 쉽지는 않을거라 여겨짐다. 하지만 꿈은 계속 품읍시다. 복권 당첨되는 기분으로..
한양대는걍 인 서울大가 아니고 왕십리 하버드,조선시대 국립 서울대 입니다 ㅎㅎ
나도 한대가 요렇게 까진 대학이 되었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SKY와 카이스트 다음으로 성대, 한대, 서강대라 해쌌습디다. 수인공이 나온 민족 고대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많이 진화됐을거라 믿어짐다.
@김재민 우리의 대학이 제대로 될려면 그들만의 리그가 사라져야합니다.
학과장보다 원무과의 말단 직원이 학과의 일정을 좌지우지하고
교수채용도 실력보다 정실에 의하여 채용하는 악폐가 사라져야 합니다.
서울대,연고대도 그 학교의 학부 출신이 아니면 교수로 임용 안합니다.
자연계는 그나마 낫지만 인문계에서는 세계유수의 학술지에 논문이 채택되거나 일류 국제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경우가 미천합니다.
@이길영 길영공의 말씀이 어느 정도 맞지만 요즘은 모두다 그렇지는 않는 듯 합디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위의 말들이 거의 맞았지만 최근에는 좀 다른 듯 하데요. 하지만 교수채용 비리는 여전히 기존 교수들의 역학관계와 텃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심다. 외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를거라고는 여겨지지 않네요.
인서울 대학들에서는 나머지 사항들이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많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보입디다. 글로벌 랭킹을 올리기 위해 구태의연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의식이 상당히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니 말임다.
그 동안 싸이트에 못 들어와서 오늘에야 재민공 글을 읽었네요.
축하하고 감탄합니다.
법학에다 언어까지 두루 갖추시니 선비의 덕목을 다 꿰차셨네요. 옛날 식으로라면 이제활쏘기와 말타기, 서예 정도만 더 익히면 완전한 군자가 되실 길이라...
그건 그렇고, 공부해서 남주나가 아니고 공부해서 남주자 세상이니 어디 강의라도 나가서 베푸심은 물론이요, 이곳 카페에도 좋은 글로 많이 올려 주사이다.
법사, 신년 잘 보내고 있능교? 올해도 좋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드림다. 여러분들 덕분에 오래 잊었던 학창시절의 대학생 과정을 감회 어리게 잘 마쳤네요.
법사 말대로 세상이 기회를 준다면 사회로부터 받은 수혜를 되갚는다는 생각으로 한 역할을 해보려 항상 마음 먹고 있소이다. 우리 카페에도 글보시 열심히 할거고요. 법사도 우리한 글 자주 올려주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