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컴퓨터
1970년대의 기술 업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당연히 퍼스널 컴퓨터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70년대 동안 컴퓨터는 수만 달러에 달하는 냉장고 크기의 기계에서 1000달러 미만의 작은 탁상용 시스템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를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1972년 싱글 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명(인텔 4004), 1975년 MITS 알테어 8800 키트의 등장, 그리고 1977년 애플 II(역사상 가장 훌륭한 PC 중 하나)의 등장이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컴퓨터를 소유한 개인은 극소수였지만 1979년 미국 소비자들의 홈 컴퓨터 구입 추세는 연간 50만 대에 이르렀다.
사진 : Apple
워키 토키
휴대폰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는 외부에서 친구와 무선으로 통신하는 기능이란 환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배터리로 작동하는, 각각 13달러짜리(현재 가치로 약 54달러) 휴대용 양방향 라디오(보통 워키 토키라는 애칭으로 통했음) 한 쌍이 그 환상을 현실화했다. 사진의 1975년 시어스 모델의 통신 가능한 거리는 평평한 지형에서 1.6km 미만이었지만 사실 10m 정도의 거리면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가지고 놀기에 충분했다.
사진 : Sears
비디오 게임
1970년대에는 상업용 비디오 게임이 처음 등장했고, 곧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 매체로 발전했다. 1971년 아케이드에 등장한 컴퓨터 스페이스가 불씨를 당긴 후 1972년 퐁(Pong)이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을 주류 산업으로 이끌었다. 1972년 출시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Magnavox Odyssey)는 최초로 가정용 TV를 통해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사진의 아타리가 1975년 퐁 게임의 가정용 버전으로 그 뒤를 이었다. 홈 비디오 게임은 1977년 아타리 VCS(또는 2600) 출시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이 게임기는 70년대가 끝날 때까지 최고의 가정용 게임 콘솔 자리를 지켰다.
사진 : Sears
손목 시계
1972년에 처음 등장한 전자 손목 시계의 가격은 2,100달러(현재 가치로 11,387달러)였지만, 70년대 말에는 10달러 미만까지 떨어졌다. 최초 상품인 해밀턴 펄사 P2는 18K 금 프레임과 버튼을 눌렀을 때만 볼 수 있는, 배터리 소모량이 큰 빨간색 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1976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플라스틱으로 된 끈이 달린 LED 시계를 개당 20달러에 판매했다. 1970년대 말에는 배터리 효율성이 훨씬 더 높은 LCD 시계의 인기가 LED 모델을 앞질렀다. 사진의 1977년 시어스 카탈로그 페이지에서 가장 저렴한 LCD 시계(#3)는 70달러에 판매됐다.
사진 : Sears
폴라로이드 SX-70 랜드 카메라
폴라로이드의 SX-70 랜드 카메라는 즉석 현상 카메라의 시초가 아니다. 폴라로이드의 공동 창업자인 에드윈 랜드는 1947년에 이 기술을 이미 시연했다. 그러나 SX-70 이전의 즉석 카메라는 크고 투박했으며, 필름은 다루기가 힘들어서 손가락 끝에 눌러 붙는 현상 화공약품 자국이 남곤 했다. 1972년 180달러(현재 가치로 약 976달러)에 출시된 SX-70은 작고 간편하고 생김새도 산뜻했다. 뷰파인더를 통해 구도를 잡고 셔터 버튼을 누르면 현상된 사진이 바로 튀어나왔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가죽을 덧씌운 작은 상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 못지않게 멋진 SX-70은 당시 최고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사진 : Matt Flynn/Cooper-Hewitt Design Museum, Polaroid
CB 라디오
CB 라디오(생활무전기) 사용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계기는 1973년 석유 위기다. 전국적인 석유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운전자들의 기름 소비를 줄이고자 시속 55마일 속도 제한을 만들었다. 그러자 민간 트럭 운전사들은 CB 라디오를 사용해 다른 운전사들에게 과속 단속 위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위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미디어의 관심을 끌게 됐고, 곧 CB 라디오는 주요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에는 평범한 운전자들도 차 안에 CB 라디오를 달고 다녔으며, 집에서 라디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사진에 있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CB 라디오의 가격은 1977년 대략 150달러(현재 가치로 약 561달러)였다.
사진 : Cobra, Pace
사이키델릭 조명
1960년대의 마약 문화는 1970년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전제품도 영향을 받았는데, 사진에 나온 1974년 시어스 카탈로그의 사이키델릭 조명 박스와 "컬러 오르간"에서 이러한 영향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이 기기는 전기적 원리를 사용해 무작위로 소용돌이치는 컬러 효과를 낸다. 컬러 오르간은 조금 더 지능적이라서, 음악에 반응한다. 사진에 나온 가장 복잡한 컬러 오르간(#5)은 16개의 전구로 세 가지 음악 주파수 범위(높음, 중간, 낮음)에 반응했으며 가격은 38달러(현재 가치로 약 174달러)였다. 이와 비슷한 제품들이 70년대 내내 카탈로그에 등장했다.
사진 : Sears
홈 오디오
1970년대의 4가지 주류 소비자용 오디오 포맷은 45rpm, 33 1/3rpm 비닐 레코드, 필립스 컴팩트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흔히 캐리커쳐가 그려진 8트랙 테이프였다. LP는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정착됐고 8트랙 테이프는 자동차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감개가 1개였던 8트랙 테이프의 구조 덕분에 테이프 데크를 더 저렴하고 작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자동차 대시보드와 휴대용 플레이어용으로 널리 보급됐다. 8트랙 테이프는 가정용으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 사진의 8트랙 플레이어/턴테이블/AM-FM 스테레오 수신기 조합은 1974년에 125달러(현재 가치로 약 574달러)에 판매됐다. 70년대 말에는 컴팩트 카세트 포맷이 음질, 편리함, 테이프 데크 품질 면에서 8트랙 테이프를 앞지르면서 8트랙 테이프 시대도 저물게 됐다.
사진 : JCPenney, Capitol Stereo Tape Club
전화기
이 슬라이드쇼에 나오는 다른 기기들과 달리 전화기 기술은 1970년대 내내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벨 시스템이 1984년까지 미국 전화망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없었으므로 벨 입장에서는 굳이 혁신할 이유가 없었다(아니면 실제로 혁신은 했지만 그것을 상용화할 동기가 없었거나). 이 문제는 전화기 디자인에서 잘 드러난다. 오른쪽의 전화기 디자인은 모두 1970년대에 인기를 끌었지만 실제 70년대에 만들어진 디자인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회전식 탁상용 전화기 스타일은 1949년에 나온 것이다. 70년대의 가장 큰 전화기 혁신이라고 해봐야 1976년에 등장한 ATC 미키 마우스 전화기 정도일 뿐이다. 미래에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이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진 : OldPhoneWorks.com, Pacific Telephone
탁상 시계
1970년대 초반 대부분의 침실용 탁상 시계는 왼쪽 사진의 제품과 같이 전기기계식 디지털 모델 또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전기기계식 시계는 1분마다 한 장씩 넘어가는 플라스틱 판 위에 시간을 표시했다.) LED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초기 전자 디지털 시계는 아날로그 모델보다 더 정확하고 조용하게 작동한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 오른쪽의 웨스트클록스(Westclox)의 LED 디지털 알람은 1974년에 45달러(현재 가치로 약 206달러)에 판매됐다. 지금은 무려 206달러를 주고 디지털 탁상 시계를 살 사람이 있을까?
이 슬라이드쇼에 나온 대부분의 기기가 그렇듯이 탁상 시계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렴한 일용품이 됐다. 지금은 벼룩 시장에서 이러한 시계를 1달러에 파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변화 속도는 그렇게 빠르다. 지금까지 봤듯이, 1970년대는 이런저런 것들이 무척 많이 바뀌었다.
사진 : JCPenney
지금은 정말 아련한 추억의 기기들이 되고 말았네요~^^
난향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향수어린 상품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