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우정의 발걸음, 우정의 풍경
1km 남짓 걸었을 때였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바로 고속철도 건설현장이었다.
평탄한 도로를 놔두고 일부러 그 길로 들어섰다.
공사 진행 상황을 챙겨볼 요량에서였다.
지난해만해도 철길 놓을 자리에 높다랗게 둑을 쌓아놓기만 했다 싶었는데, 어느덧 철길에 전선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분위기로 봐서, 올 연말 전에는 개통이 되겠다 싶었다.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우리 고향땅 문경의 발전된 미래상을 그려봤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도로로 나섰다.
다시 1km 남짓 걸었을 때, 길 왼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있었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풍경이었고, 검게 그은 50대 남자가 삼발이로 진흙 밭을 캐는 풍경이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이고, 수고하십니다. 뭘 하시느라 이 이른 아침부터 허리 굽혀 땀을 뻘뻘 흘리시나요?”
하는 일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 그 한마디로 위로를 받을까 싶어서 일부러 그리 말을 걸어간 것이다.
내 그 물음에, 그 남자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연 종자 캐는 중입니다.”
답이 그랬다.
나로서는 놀라운 답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역시 그 길을 걷다가 연꽃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발걸음을 멈춰야 했던 바로 그 자리였기 때문이다.
“아하! 여기가 지난여름에 아름답게 연꽃을 피워냈던 그 자리구나! 덕분에 좋은 구경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그렇게 그 남자의 수고를 칭송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그 남자가 그렇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멀리 주흘산이 우리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암봉으로 쭉 이어진 그 봉우리를 보면서, 내 문득 떠올린 얼굴들이 있었다.
이날 저녁으로 만나게 된 내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 역시 칭송받아 마땅했다
다들 그 남자와 같이 수고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흔 나이를 훌쩍 뛰어 넘은 지금 이 세월까지 살아와서, 이날로 만나게 되는 그 우정의 풍경이 고맙다 싶었다.
그 얼굴들 위에 특별히 오버랩 되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같은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서울 양평동 전철 9호선 선유도역 인근에서 ‘김명래 치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김명래 그 친구의 얼굴이었다.
이제 사흘 뒤인 5월 24일 금요일 저녁에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
가벼운 치과진료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날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나만 초대한 것이 아니다.
중학교 동기동창 모두를 두루 초대했고,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넉넉한 초대를 했다.
핀셋으로 집듯 하는 초대가 아니다.
너도 좋고 자도 좋고 가도 좋다는 식의 마음 활짝 연 초대다.
마음 내켜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누구 오고 또 누구 올까, 그 만나는 자리에서 펼쳐질 우정의 풍경을 기대하면서 다시 길을 걸었다.
막 발걸음을 내디디는 그 곳은 마침 버스 정류장이었다.
그 정류장에 걸린 글귀가 내 시선에 잡혀들었다.
문경문학관에서 내 건 것으로, 시인 김시종이 읊은 ‘모전천변’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었다.
나 역시 이날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우정의 풍경을 그려보면서, 설레는 가슴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은 그 대목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하얀 벚꽃의 관능적 살결
내가 사는 모전동은 아름다운 동네
지천명의 나이에도
가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