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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 일기-인생 메들리
아내와 나의 만년 삶을 위해, 내 고향땅 문경에 텃밭 650평을 장만한 때가 어언 8년 세월이다.
그 텃밭에 ‘햇비농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농사를 지은 것도 그때부터다.
“3년만 지어봐라. 덧정 없을 거다.”
고향 친구 누군가가,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는 내게 그렇게 귀띔을 하기도 했었다.
“염려해줘서 고맙다.”
입으로는 그렇게 고마움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콧방귀 뀌듯 했다.
다들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으로 내 알고 있는데, 게을러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거니 한 것이다.
현실에서, 내 그 짐작과는 달리 만약 힘이 든다면, 어차피 피할 수도 없으니 감당해내고 말겠다고, 농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건 전쟁이었다.
쓸모없이 피어나는 잡초들이 그 전쟁의 상대였다.
한 판 붙어 끝나는 전쟁이 아니었다.
끝냈다 하면, 금방 또 시작되는, 그래서 한 해 내내 치러내야 하는 끊임없는 잡초와의 전쟁이었다.
하도 지겨워서 잡초에 강한 농작물을 골라서 지어보기도 했다.
감자 농사도 지어봤고, 고구마 농사도 지어봤고, 콩 농사도 지어봤고, 땅콩 농사도 지어봤고, 메밀 농사도 지어봤고, 부추 농사도 지어봤고, 마늘 농사도 지어봤고, 고추 농사도 지어봤고, 호박 농사도 지어봤고, 토마토 농사도 지어봤고, 가지 농사도 지어봤고, 오이 농사도 지어봤다.
말하자면 농사 메들리였다.
그러나 감당이 불감당이었다.
모든 농사가 잡초와의 한 판 전쟁을 이겨내지 않으면 지으나 마나 하는 농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좀 낫다 싶은 농사가 참깨 농사에 들깨 농사였다.
조밀하고도 무성하게 자라는 그 이파리들 덕분에, 그 아래쪽 잡초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경험 끝에 올해는 들깨 농사를 주로해서 가을걷이를 했다.
가을걷이를 마치 텃밭을 내다봤다.
뿌듯한 성취감이 가슴 가득 담겨들고 있었다.
인생도 그리 살았다.
한 곳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바둑을 배웠지만, 그 바둑에만 빠져들지 않았다.
명문 고등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던 엄마의 등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해도 한 과목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해서 기본 과목에도 열심을 다 했지만, 지리 물리 화학 역사 자연 같은 전문 과목에도 열심을 다했다.
그래야 다방면에서 아는 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그리 했듯, 인간관계도 그리 했다.
핀셋으로 집듯, 입맛에 맞는 주위만을 콕 콕 찍어서 인연을 맺지 않았다.
내 편 네 편 하면서 편 가르기 하기 십상이고, 그렇게 가른 편의 진영논리에 빠지기 십상이고, 자기 논리만 옳다는 편견이 생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파멸이 싫었다
그래서 오는 사람 손사래 쳐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발목 붙잡고 늘어지지 않는다는 나름의 인생철학을 세워놓고, 주위와 두루두루 어울려 살아온 인생이다.
밥 한 그릇을 먹으러 가도, 꼭 이 말을 앞세웠다.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곧 인생 메들리의 삶이었다.
어쩌면 늘 행복하다 하면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은, 그렇게 인생 메들리로 두루뭉술하게 어울려온 그 삶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메들리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번도 메들리로 노래 부르지 않았다.
한 곡 부르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싫고, 그 각각 다른 가사를 외우는 것도 싫고, 노래 부르다가 도중에 숨이 차는 것도 싫어서였다.
그래서 쉬었다 부르는 한이 있어도, 꼭 한 곡 한 곡씩만 부른다.
우리들 텃밭 햇비농원에서도 그랬다.
지난 일요일인 2019년 11월 10일 오후 3시쯤 해서, 올 가을 마지막 농사를 짓고 난 뒤의 일이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문득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 것이다.
내 스스로 기타 반주를 하면서 한 곡 부르고 나니, 또 한 곡 더 부르고 싶었고, 그 곡을 부르고 나니 또 더 부르고 싶어서, 자꾸 자꾸 불렀다.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이고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조영남의 ‘서시’로 시작해서, 방주연의 ‘그대 변치 않는다면’도 부르고, 트윈 폴리오의 ‘하얀 손수건’도 부르고, 라나에 로스로의 ‘사랑해’도 불렀다.
그리고 끝으로 송민도의 ‘청실 홍실’을 불렀다.
청실 홍실로 아름다운 수를 놓듯, 주위 두루두루 인연 잘 엮어가고픈 마음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