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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와룡 선돌(立石) 문화여행
[소재지] 안동 와룡면 와룡산 일대 안동와룡산은 선조들이 돌에 생명을 심어 놓은 명산터로 능선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진 선돌들이 특이하며, 옛날 이곳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곰이나 나무 혹은 돌이나 태양, 달 같은 것에 소원을 빌었다. 이처럼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애니미즘이라고 하고, 이와 비슷하지만 특정한 동식물 등을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하는 것을 토테미즘이라고 한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곰을 숭배하는 부족의 믿음이 토테미즘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러한 풍습은 신석기 시대부터 생겨났다 선돌은 원시인들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과 한 집단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석에 역할도 했으며, 선사시대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주고 있다. 이곳은 미래의 주인공이 될 우리 어린이들에게 색다른 자연환경과 고대 선사시대 체험장으로써 역사기행에 큰 무대가 되고 있다.
■ 선돌 1호 【위치】: 와룡산 능선 옥좌바위 옆 등산로에 위치 【규모】: 높이 1.5m, 남근의 길이 80cm, 둘레 70c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1호인 곰신바위는 원시사회 당시 출산의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남근과 여근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음기와 양기가 섬세하게 표현된 것으로 보아서 성을 숭상한 성교모의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남근은 분명 주술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 남근을 신앙적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음양의 합치, 혹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앙체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의 성신상 보다 선사시대 와룡산 희귀한 선돌의 성신상(聖身像)이 역사적으로 앞서고 있어 귀중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선돌 2호 【위치】: 와룡산 능선 두꺼비바위 옆 등산로에 위치 【규모】: 미륵부처 높이 1.4m, 남근석 높이 2.2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2호인 부처바위는 능선 비탈에 남근석과 쌍으로 세워진 것으로서 둥근기둥(圓椎)모양이고 뒤에는 미륵부처 형상이며 전자는 남성을 상징하고 후자는 여성을 상징하여 성별구분이 뚜렷한 남성 상징물인 남근이 여성 상징물 보다 더 크다. 후대에 이르러 부처바위는 성신신앙의 기능인 마을의 풍요를 빌거나 집안 자손에 번성과 풍요로운 수확을 비는 생식적인 기능을 행하고, 동양 정신적인 뿌리의 한 형태로서 고을민의 민간신앙 처로 보호받고 있다. ■ 선돌 3호
【위치】: 와룡산 능선 부처바위 옆 등산로에 위치 【규모】: 높이 2.7m 제단 둘레 5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3호인 두꺼비바위 형태는 각근뿔 모양(圓錐形)을 한 것으로서 축조 목적은 원시사회의 태양점령숭배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이며, 선돌이 산 정상능선에 세워진 위치나 선돌 앞에 제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사신앙과 태양숭배 신앙인 일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해가 뜨는 방향으로 세워놓는 것은 선사 인이나 현대인이나 해 뜨는 것이 일상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민간신앙인 큰 바위돌을 숭배하는 고을에 민초들은 자식의 번창과 가정의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 처로 성역시 하였다. ■ 선돌 4호 【위치】: 와룡산 능선 등산로에 위치 【규모】: 높이 1.3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4호는 청동기시대 선사인들이 초기 선돌은 자연석을 사용하다가 차츰 다듬어서 남성의 성기를 닮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출산을 기원하는 성기숭배사상에 의한 것이다. 청동기 인들이 미륵바위 선돌을 세운 목적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으로 용두봉 정상에 축조 한 것으로 보이며, 이곳 와룡산 일대 민중들은 삼국시대 들어와 미륵이라 하여 의인화(擬人化) 또는 신격화시켜 가정의 안녕과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고 후대에 이르러 민중들의 삶을 달래어주는 미륵신앙의 수호석(守護神)에 기능을 하였다. ■ 선돌 5호
【위치】: 와룡산 능선 등산로에 위치 【규모】: 남근모양 높이 1.5m와 1.4m, 판석모양 1.4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5호인 직녀암은 쌍으로 축조된 것으로서 인공으로 다듬어진 형태는 모난 기둥(角椎)모양의 2기와 인공미가 가미된 모난 넓적한 판석모양을 한 표지석 1기가 세워진 옆에 유사고인돌인 다지석식 고인돌로 여겨지는 부근에 선돌을 세운 것은 신성 공간의 영역 표시일 가능성도 있고, 또한 제의 공간을 의미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옆에 상석이 지석 위에 얹혀 있는데 덮개돌을 고이고 있는 받침돌은 자연석과 인공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다지석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이 적절이 배치되어 있다. 선돌과 고인돌이 공존관계로 보아 이는 같은 시대에 유적으로서 피장자를 상징하는 추모적 의미에서 세워진 모표석(墓標石)과 남성과 여성을 의미한 쌍근석을 축조한 청동기 선사 인들은 당시 풍속습관으로 성기신앙을 깊이 숭배하여 표현했던 독득한 형태로 거석신앙의 대표적인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 선돌 6호 【위치】: 까투리봉 정상 등반로 절벽능선에 위치 【규모】: 높이 8m 【축조 시대】선사시대 【축조 의미】 선돌 6호는 까투리봉 정상 자연석에 인공미가 가미된 우뚝 솟은 용신상 선돌에 옛 선인들은 간절한 바람을 실현시켜 줄 신앙체로 삼고, 당시 사람들은 까투리바위에 치성을 올렸다. 이는 선사시대 이래 오랜 전통의 하나로 농경문화의 풍요 기원적 의미에서 행하여진 자연숭배사상은 무사태평과 그들의 염원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와룡산에 선사유적이 많이 자리한 것으로 보아서 얼핏 삼한시대 소도 즉 천군을 선발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와 국민의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였던 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신성한 선야(先夜) 지역으로서 고대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일류문명의 증거의 시작은 돌의 문명이 발달된 것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우리 선조들이 간직한 소원과 염원(念願)을 돌에 비는 돌 문화는 선사시대 선조들의 삶과 생활상을 볼 수 있어, 안동와룡 유적지는 꿈나무들의 선사 역사교육에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 선돌 7호 【위치】: 와룡산 능선 곰신바위 옆 등산로에 위치 【규모】: 높이 1.4m, 하인석 높이 1.0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7호 옥좌바위는 특이하게 다른 선돌들과는 달리 경계를 표시하거나 기자신앙의 기능을 했다기보다는 이는 계급의 상징성이 내포된 의미 있는 특이 선돌로서 와룡산을 중심으로 독창성이 뛰어난 석공 선사 인들이 이곳에 새로운 형태의 거석문화를 창조했던 산물들은 그들의 언어이고 유산이다. 선돌 7호가 세워진 위치나 형태면에서 이미 청동기 인들도 조상이나 절대자를 숭배했다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이것은 한반도 청동기 거석문화의 다양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 선돌 8호
【위치】: 와룡산 아래 구선대 병풍바위 옆 마을 어귀에 위치 【규모】: 높이 4.7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8호는 할미바위 또는 기자바위 선돌이라 하며 옛 사람들은 이곳을 아들 낳는 터라하여 비탈진 곳에 세워진 바위 위에는 갓처럼 생긴 머리석이 얹혀 있고 아래에는 턱이 있는데 이곳에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돌들이 쌓여있는 기자 신앙처로 부락민들이 신성시하였다. 옛날 이곳 민중들은 기자바위 선돌을 신앙체로 삼고, 마을의 기자(祈子)와 풍요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바람이 강하게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 선돌 9호
【위치】: 와룡산 용두봉 남서쪽 아래 구륭지 논들 판에 위치 【규모】: 높이 3m, 둘레 4.5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선돌 9호는 규모가 거대한 선돌이 자리하고 있어 선조들은 이곳을 선바위골 이라고 부르며, 선바위골 어귀 논들 판에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는 어떤 동물형상을 한 우뚝 솟은 선돌(立石)이 축조되어 있다. 농경지 정리로 인하여 아래 부분은 알 수 없으나 지상에 드러난 높이가 약 3m 이며, 이것은 선사 인들이 집단의 위력을 과시하거나 집단의 표석 혹은 어떤 의식을 행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기념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 선돌 10호 【위치】: 가구리 와룡산으로 진입하는 도로 어귀에 위치 【규모】: 높이 3m, 둘레 1.5m 【축조 시대】청동기 철기시대 【축조 의미】 우리나라에는 많은 선돌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특히 안동 와룡일대 세워진 선돌들의 형태와 규모가 가장 다양하고 특이 선돌이 많이 산재해 있다. 선조들은 주술적 마력이 있는 돌에 주술적인 수단이자 삶의 목표를 만들어 축조한 것이 바로 선돌이며, 이것이 신앙적인 사고의 표출이라고 믿어진다. 이 선돌은 와룡면에서 와룡산으로 가는 옛 도로 옆에 있으며 야산 기슭 밭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농경 문화의 풍요 기원적 특징도 있다. 선돌 꼭대기는 양옆이 약간 잘록하게 들어간 채로 중심부 보다 가늘어 졌으며 맨 끝에서 밑으로 약 50cm 가량은 돌기둥을 반으로 나누는 듯 깊은 성혈이 나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손질이 가해진 것으로서 이 선돌 역시 남자의 성기 형태로 다듬어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성기숭배사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표현하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하여 축조한 산물인 선돌에 간절한 마음을 모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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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 선돌이 인상적이네요 마치 광개토대왕비 같은~~
푸른세상님 안동에서도 와룡 홍보대사 이군요~~ 와룡고구마,와룡참마,고추,생강,도라지 이런 특산물도 홍보 좀 해주이소~~^^
참 사과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