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천사, 땅의 천사
다니 7,9-10.13-14; 요한 1,47-51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2022.9.29.; 이기우 신부
오늘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어야 할 교리로 가르칩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의 활약상에 대하여 계시하고 있는데다가, 신자 각 개인들을 영적으로 돕는 수호 천사들의 존재와 활약상에 대하여 신자들이 초대교회 시절부터 오랜 세월 동안 성령의 이끄심을 통한 신앙 감각으로 체험하고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느님의 계시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에 의하면, 미카엘 대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는 ‘하느님의 힘’이고(다니 10,13 이하; 12,1), 사탄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천상 군대를 지휘합니다(묵시 12,7-9). 또한 가브리엘 대천사는 엘리사벳의 남편으로 사제인 즈카르야에게는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리고(루카 1,5-25),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는 구세주가 태어날 것을 알리는 ‘하느님의 전령’입니다(루카 1,26-38). 그리고 라파엘 대천사는 토빗과 사라를 ‘하느님의 기운’으로 치유해 주는 천사입니다(토비 5, 8, 9, 11장).
과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면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 나타나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하느님께서도 천사들을 시켜 이를 도우시는 영적 현실을 알려주는 것인데, 기도하며 애덕 실천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생활은 신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영적 현실을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안목을 닮게 합니다.
또한 유다 광야에서 사십주야에 걸친 단식을 하던 중에 예수님께서는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으나 끝내 이겨내셨는데, 그러자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4,11). 이는 십자가 죽음 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비게 된 무덤을 천사들이 지키고 있다가 충격과 좌절에 빠진 사도들과 여인들에게 그분의 부활 소식을 전해 주어서 부활 신앙으로 이끌어 준 일로 이어집니다(마태 28,5). 우리도 악마의 유혹을 받을 수 있고 또 십자가를 짊어지며 마치 패배하고 실패한 듯한 좌절에 빠질 수도 있겠으나, 천사들의 시중과 도움으로 부활 신앙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 활동의 결과로 믿는 이들을 모으셨는데, 이때 믿기를 거부하고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하느님 앞에서 제 행실대로 갚게 할 존재도 천사들입니다(마태 13,41.49; 16,27). 그리고 믿는 이들 가운데 특히 하느님께로 돌아온 가난한 이들에게는 천사들이 따라 붙어서 그들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일할 것입니다(마태 18,10).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고 또 애덕을 실천하며 기도로 선포의 희생과 실천의 보람을 하느님께 봉헌할 때에도 가려내야 할 악한 자들과 따라 붙어야 할 가난한 이들을 챙기는 존재도 천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생겨난 인간관계의 희비쌍곡선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천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모처럼 열린 하늘 길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믿을 교리로 가르치는 영적 품계에 따르면, 천사들을 지휘하고 앞장서는 존재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등 대천사들입니다. 이 대천사들의 활약상에 비추어 보면, 사회악에 맞서야 할 때에는 미카엘 대천사의 도움을 청해야 함을 알 수 있고,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거나 사도직 활동 중에 하느님의 뜻이 궁금할 때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도움을 청해야 함을 알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나 또는 누군가 아픈 이들을 치유해야 할 경우에는 라파엘 대천사의 도움을 청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천사 교리에 따르면, 우리는 천사들의 도움만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로 인해 누리게 된 영적 안목과 신앙 감각을 발동해서 우리도 우리가 형성해 놓은 인간관계 안에서 천사의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모는 자녀들에게 아주 귀한 천사들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역시 신자들에게, 모든 어른들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또 모든 공직자들과 책임자들 또한 자신들에게 맡겨진 이들에게 아주 귀한 천사들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한민족에게 아주 귀한 천사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합니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마감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며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대천사들의 도움을 받고 하늘과 우리 사이에 천사들이 오르내리게 하려면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찾아갔듯이 우리가 예수님과 만나야 합니다. 그러자면 기도와 애덕 실천 행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때마다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길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하늘을 열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