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감사하며, 5월의 일기, 서울나들이/젊은 함성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무적’(無敵)이라고도 했고 ‘천재’(天才)라고도 했고 ‘전무후무’(前無後無)하다고도 했다.
“내가 본 투수들 중에 저런 놈은 없다.”
“정말 물건이 하나 나왔다.”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속된 평가는 대충 그런 식이었다.
4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당시 우리 한국의 프로야구계에서 ‘무쇠팔 사나이’로 불리던 롯데 투수 최동원과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해태 투수 선동렬, 그 둘이 바로 그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맞대결의 마운드에 섰다.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 마운드였다.
그 이전에 있었던 두 차례의 맞대결에서, 각각 1승 1패의 전적인 상황이어서, 이날의 맞대결은 마지막 승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한 판의 승부로 한 쪽은 승리의 기쁨을 안는 한 편, 다른 한 쪽은 패배의 쓰라림을 안아야 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빅 매치였다.
때는 지역주의와 학연의 골이 깊었던 불안과 격동의 시대로, 그때 전 국민이 환호했던 유일한 위안은 프로야구였던 시절이었다.
최동원 선동열 그 둘은, 인간적 감성이 메말랐던 그 시절의 대한민국을 하얀 야구공 하나로 열광시켰고, 그리고 전 국민의 슈퍼스타라는 값진 명성을 이미 얻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선동열 앞에서만큼은 큰 산이고 싶었던 최동원, 그리고 그 산을 뛰어 넘고 싶었던 선동열에게 있어서는, 둘의 맞대결은 늘 고독하고 치열한 승부처일 수밖에 없었다.
승부만을 강요했던 비정한 세상에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들의 꿈을 걸어야 했던 최동원과 선동열,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그 둘은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바로 그 맞대결의 마운드에 선 것이었다.
‘지지 않는 태양’이고 싶었던 최동원과, ‘떠오르는 태양’이고 싶었던 선동열, 그 둘의 명예와 자존심이 온통 걸린 그 한 판 승부는 토요일이었던 그날 오후 2시 정각부터 시작됐다.
연장 15회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음에도 2대 2의 무승부를 기록하는 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장장 4시간 56분에 걸친 그 긴 시간, 둘은 지쳤으나 스탠드를 꽉 메운 관중들은 열광했다.
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 모두가 기립박수로 화답을 했다.
그리고 영남과 호남의 동서 화합 무드가 일어났다.
오랜 독재와 동서 간 지역 갈등으로 암울했던 80년대 우리들 가슴을 시원하게 한 덩어리로 엮어버렸던 그때 그 승부, 그것은 훗날의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빅 매치였다.
그렇게 그들은 ‘전설’(傳說)을 하나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그 치열한 승부의 현장을 지켜본 관중들 모두가 그 전설의 목격자들이 되었다.
그렇게 전설이 되어버린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그 시절 전설적 경기가 부활했다.
14년 전으로 거슬러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오후 4시, 서울 광진구 자양동 스타시티 2층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의 일이었다.
‘퍼펙트게임’이라고 해서, 그때 그 경기를 재구성한 영화에서 바로 그 전설적 경기가 부활된 것이다.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당대 최고라고 불리던 두 남자가 겪었던 인간적 고뇌까지 담아낸 휴먼드라마였다.
“누가 뭐래도 최동원이 게임은 최동원이 나간다고!”
냉철한 집념의 승부사다운 최동원의 오기서린 외침이었다.
“제 2의 최동원이라는 말, 이제는 지겹습니다. 차라리 붙어버리고 그리고 이겨버릴랍니다!”
뜨거운 열정의 풍운아 선동렬의 당찬 꿈이었다.
화면 가득 담겨있는 그 집념과 열정과 함께 하면서, 내 가슴에도 뭔가 내 꼭 이루고 말리라는 집념과 열정이 샘솟는 듯했다.
최동원과는 경남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서 롯데의 사고뭉치 4번 타자 김용철의 진정한 우정이 돋보이고, 한 번도 실전에 나가 본 적이 없는 해태의 만년 2군 포수 박만수의 동점 홈런은 일상에 지친 우리들 삶을 시원하게 적셔준 청량제 같은 반전이었다.
모처럼, 참 좋은 영화 한 편 봤었다.
내 그날 못 볼 것도 봤었다.
극장 로비를 인산인해로 꽉 메운 젊은이들이 한 순간에 쫙 갈라지고 있었다.
누군가 그 인파 사이를 치고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싶어서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봤다.
낯익은 여당 정치인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다음 대권을 꿈꾸는 그 정치인이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그 극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대쪽 같은 자세 그대로였다.
인산인해의 젊은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어느 누구하고도 손을 잡지 않았고, 눈길 한 번 맞추지 않았다.
갈라지는 젊은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하나 관심이 없었다.
다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내 그로부터 느낀 것이, 차가운 권위의 모습이었다.
인산인해였다.
내 나이 일흔일곱인 희수(喜壽) 생일에, 내 사랑하는 다섯 살배기 손자 서율이와 함께 찾은 잠실야구장의 풍경이 그랬다.
서율이 저 어미 아비도 동행이었고, 아내도 동행이었다.
맞붙은 팀이 어디고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터져 나오는 함성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그 함성, 젊은 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