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검시관은 옥수수라는 단어를 가지고 추리를 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며, 그 여자의 이름에서 떠오른 직감을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영능력 협회의 임원진들의 옆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가진, 이상스러운 귀기와 살기들.
귀살쩍은 느낌을 주는 그 것들.
그는 검시관 생활을 오래 한 자신의 직감을 신뢰하고 있었다. 분명 그 것들의 느낌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죽어간 아키라와 오오타의 시신이 떠올랐다. 사라진 그들의 시신. 죽을 당시에 성기가 뽑힌 아키라. 그리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옥수수 알갱이가 가득 채워져 있던 오오타...
...문득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좀 다른 방향의 추리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란 기묘한 존재라서,
어떠한 일에 암묵적으로 [옳다]고 믿게 되면 그 것을 뒤집어 다른 가설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그는 옥수수라는 스펠링으로, [북쪽 반지름의, 열등감을 가진 자손]이라는 문장을 추론해 내고 그 문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수사의 방향을 틀었었다.
그 것이 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지금 모든 정황이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 것은 모두가 인정한 바이므로.
그러나...
그는 문득 자신이 그 추리가 옳다고 믿다보니 간과했던 것이 없었나 돌아 보고 싶어졌다. 분명히 옥수수라는 물건 자체가 가진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눈알을 뽑아 버리고 그 자리에 옥수수 알갱이들을 채워 넣은, 상상을 초월한 그 엽기적인 행위가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옥수수라는 사물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에 처음으로 이게 아니다 싶어진 카미유는,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무엇인가를 건져 보려고 낚시질을 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옥수수.
식량.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식량으로 쓰였으며,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 서양에서는 고대의 여러 문명에서부터 옥수수가 중요한 식량원으로 쓰였음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자료들이 있다.
눈.
사람의 눈. 욕망의 근원이라 불리는 눈. 모든 범죄는 바로 눈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의 욕심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
...옥수수, 곧 식량을 눈에 채워 넣은 의미를 왜 그 때 생각해 보지 않았던걸까.
카미유는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그 필터가 자신의 침으로 젖어드는 것을 그 때서야 의식했다.
침이 배어든 담배. 그는 투덜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물기어린 담배는 묘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류타로, 옥수수에 대해서 좀 생각을 다시 해보자구. 우리가 전에 했던 추리도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그 것 이외에도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는 나나세라는 여자의 이름을 가지고 생각했던 자신의 추리를 이야기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빠졌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너무나 철저한 그 함정-추리의 함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식을 해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류타로는 그 부분에 대해 수긍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이 웬지 느른한 기분을 준다.
...피곤하겠지. 잠을 좀 자려고, 꿈의 세계로 좀 달아나 보려고 해도...집요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낯설면서도 불안한 예감들 덕분일게야...하지만...
처음에 나는 옥수수를 눈에 채워 넣은 것에 대해, 뭔가에 대한 의식 또는 제사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pandango, 그 것으로 인해 악마를 불러내는 주술로 이용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건 틀린 생각은 아니었어. 분명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행해진 살인이라는 확신에는 지금도 변화는 없다. 그러나...
...이젠 순수하게 그 의식 자체만 가지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때야. 지금도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다시 노트북으로 옥수수라는 단어와, 그 내용에서 나온 단어인 인디오를 쳤다.
...옥수수.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한해살이풀. 원산지는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 북부라고 하나 그 원종이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으므로 그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적어도 수천 년 전에 재배된 이래 주작물(主作物)로서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널리 재배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인디오들이 옥수수 재배하는 것을 보고 종자를 에스파냐로 가지고 돌아간 후부터 30년 동안에 전유럽에 전파되었다.
...인디오. 라틴 아메리카(중앙 아메리카·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에스파냐 식으로 인디오라 부르고, 앵글로 아메리카(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영어식으로 인디언이라 불러 구별한다.
인디오들의 것들. 자연숭배, 아스테크어(語), 마법사의 피라미드, 마야문명.
...마야문명.
영능력 협회의 후지무라 미호라는 자의 옆에 그려진 그림, 마야문명에서 숭앙되었던 지옥의 주(主) 아보푹. 그 존재의 이유가 분노, 복수, 살육인, 고대 마야의 전쟁과 피흘림의 화신.
...........묘한 연결고리군. 옥수수와 인디오, 그리고 아보푹이라...
옥수수를 눈알을 뽑은 자리에 채워 넣은 의미는...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물을 보아야 하는 눈을 없애고 거기에 옥수수를 채워 넣었을 때, 그 살해당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은 분명, 살해되기 전에 뽑힌 것이었다. 그가 부검결과를 다시 검토해 보았을 때 그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오오타는 분명 압도적인 공포와 아픔을 느끼며, 자신의 눈에 채워 넣어지는 옥수수의 [냄새]를 맡았을테고, 그 [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눈알이 뽑힌다고 해도, 이목구비가 하나로 연결된 인간의 신경은 분명 그 것이 무엇인지 감지해 냈으리라.
그렇다면 그 애가 느낀 것은...? 또는 살인자가 그 눈알에 옥수수를 채워 넣으며 했던 생각은...? 만약 내가 그 살인자였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그 눈에 옥수수를 채워 넣었을까. 피흘리는 그 구멍에.
"류타로, 무슨 생각을 하고 옥수수를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채워 넣은 것이라고 생각해?"
"글쎄요. 저는 웬지 이 것이...인간의 눈. 즉, 모든 범죄의 근원이라 불리우는 눈에 대한 징벌의 의미로 보여집니다."
"음, 그 생각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나 눈에 대한 징벌만 하려면 눈알을 뽑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굳이 거기에 [옥수수]라는 사물을 채워 넣은 것은 옥수수라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나?"
"그렇...죠. 그렇긴 합니다만 아직도 그 의미는 잘...이해가 안됩니다."
"흐음...옥수수..."
답답스러웠다. 더이상 추리는 진전이 없었다. 그들은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검색엔진을 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단어들을 집어 넣으면서.
그러다가 두 사람은 문득 다시 아보푹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고 그 검색결과를 보았다. 아보푹이라는 신이 무엇 때문에 분노, 복수, 그리고 살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검색결과를 보고 한동안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나오지 않았던 결과였다.
-아보푹의 사상은 대략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자신의 탐심(貪心)과 자신의 이기로 인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자에게 저주와 피의 근원이 될 것이요, 나는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다른 이들의 땀방울이 들어가 있음을 감사하지 않는 자들을 미워하는 자라,
나는 다른 자에게 해악을 끼친 적이 없으나 힘이 없어 그들에게 짓밟히는 모든 자들에게는 사랑과 희망을 줄 것이니,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도 그 누구도 그 억울함에 귀기울여 주지 않는 억울함을 가진 힘없던 자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사무친 원한을 준 그들의 살을 찢고 피를 마실 것이니.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너희가 가진 지극히 작은 것들을 빼앗기 위해 너희에게 채찍질과 고문을 안기는 자들을 나는 저주하나니,
나에게 와 내 앞에서 너희의 작은 밥그릇을 나누어라, 너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에게 주라. 그 것이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너희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들을 나에게 주라.
나, 지옥의 主 아보푹은 너희의 작은 밥그릇을 나누어 먹고 그 힘을 얻어 피로 피를 씻을 것이요, 너희 억울한 자들에게는 안식과 희망을 줄 것이나 너희를 억울하게 한 자들에게는 번개와 창이 되어 그들의 정수리를 찌를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있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 복수의 신에 대해 마야인들은 상당히 열렬한 지지를 하였는데, 그 것은 가진 자, 곧 기득권자를 옹호하는 신이 아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비호하는 신이라는 인식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야에서 잉카로 넘어가면서 스페인의 침략을 받은 잉카인들은 아보푹이 대지에 나타나 스페인을 응징하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장남인 남자 어린이들을 피의 강으로 던지면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 아이를 죽인 뒤 아이의 두 눈을 뽑고 그 자리에 옥수수를 채워 넣어 [작은 밥그릇을 나누라]는 아보푹의 메시지를 지키려고 하였다.
[작은 밥그릇]이라는 것은 마야의 문자로 [장남]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오죽 억울하면 우리의 아이들을 죽여가면서까지 당신이 세상에 강림하기를 바랬냐며 아보푹의 현신을 바라고 울부짖던 그들은 결국 열악한 무기의 차이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거의 소멸되었다.
현재 잉카의 피를 받은 그 자손들은 지극히 소수가 남아 그 문명이 단지 이 세상에 존재하였다는 것만을 알려주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의 문명과 종족을 말살시킨 스페인에 대한 보복심리는 아직도 존재하여, 그들은 해마다 태양월 태양일 (세계력으로 8월 8일) 아침에 또스까띠야라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그 날을 기다리며 깎아 둔 목각인형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옥수수를 채워 넣어 아직도 피의 강이라 불리는 강에 던지며 아보푹에게 제를 지낸다.]
"...뭐...뭐야, 이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없던 것이잖아...?"
"............."
"어떻게 된거야 대체? 이렇게 세세한 검색결과가 전화통화 끝나고 몇 분이나 지났다고 올라올 수가 있는거냐고. 도무지 말이 되는 것이라고는 없군, 제길~!"
카미유와 류타로는 서로 마주보다가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 보곤 머리털이 끝까지 곤두서는 전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