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정채봉
간이역의 지붕 위에 흰구름이 한 송이 걸려 있었다. 철로변에 있는 대추나무에는 올해도 대추꽃이 한창이었다. 오후 다섯 시 반에 완행열차가 도착했다. 내리는 손님 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있었다. 열 삼 남짓해 보이는 눈이 큰 사내아이도 있었다. 출구에 서 있던 늙은 역장이 사내아이를 알아보았다.
"원이로구나. 오늘도 엄마 만나러 가니?"
"네,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 흔들며 활짝 웃었다. 밀짚모자 아저씨가 뒤돌아보았다. 웃느라고 드러난 아이의 이가 물가의 차돌처럼 반짝거렸다. 바람이 성큼 불어왔다. 하마터면 아저씨의 밀짚모자가 날아갈 뻔하였다. 바람에는 보리 익은 냄새가 가득 실려 있었다. 들을 지나온 게 틀림없었다. 역의 남쪽 화단 가운데 있는 풍속계가 종종종 병아리 걸음을 치다가는 다시 벼슬이 긴 수탉 걸음처럼 늦어졌다. 밀짚모자 아저씨가 아이한테 물었다.
"순우면을 다니는 사람들은 지금도 성황당 고개를 넘니?"
"네. 아저씨도 순우면 쪽으로 가세요?"
아이는 처음으로 밀짚모자 아저씨의 머리와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머리카락이 짧고 눈동자가 깊숙한 데 있었다.
"그래, 그쪽으로 간다. 그런데 너는 어느 쪽으로 가니?"
"저두요. 성황당 고개를 넘어야 해요."
아이는 일행을 얻게 되어서 기쁜 모양이었다. '아'하고 나직한 환성을 질렀다. 역 마당가에 줄을 지어 앉아 있던 채송화들이 눈을 비볐다. 빨간 꽃은 빨갛게, 노란 꽃은 노랗게. 농협 창고 모퉁이를 돌자 자갈길이었다. 두 사람은 길가에 늘어선 아카시아 그늘을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밀짚모자 아저씨가 아이한테 또 물었다.
"넌 나이도 어린데 혼자서 어딜 가니?"
"엄마한테 다니러 가는 길이에요."
"엄마한테 다니러 간다아......? 그럼 넌 엄마하고 함께 안 사는 모양이구나."
"네. 저는 할머니하고 읍내에서 살아요."
"엄마는 뭘 하시는데?"
"나룻배 사공이어요."
"여자분이 사공일을 하다니, 거 참 힘들겠구나."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들녘으로 이어졌다. 고구마덩굴이 더러 길 쪽으로 나와 있기도 했다. 밀짚모자 아저씨는 고구마덩굴을 일일이 들어서 밭 안쪽으로 돌려 놓았다. 이번에는 아이가 밀짚모자 아저씨한테 말을 건넸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왜 고향에 남아 있는지 아세요?"
"글쎄다...... 다른 일보다 사공 벌이가 좋다거나...... 아니면 집에서 대대로 해 내려오는 일이거나......"
"둘 다 틀렸어요. 우리 엄마는요, 우리 아버질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아버질 기다린다구? 너희 아버지는 어딜 가셨는데?"
"먼 데에 가셨대요. 죽어서 가는 곳 말고요. 살아서 가는 가장 먼 데요."
"살아서 가는 가장 먼 데라아...... 어딘지는 모르지만 내가 다녀온 데 만큼이나 거기도 먼 모양이구나."
들녘을 지나자 길은 고갯마루로 이어졌다. 산에서는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고 있었다. 간혹 청솔밭에서 달려나온 바람 끄트머리에서 삐비꽃이 하얀 머리를 풀어뜨리기도 했다.
"아저씨가 다녀오신 데는 어디인데요?"
밀짚모자 아저씨는 한참 동안을 망설이더니 무엇을 결심했는지 불쑥 말했다.
"감옥이란다."
"거기는 죄를 지은 사람만 들어가는 곳 아녜요?"
"그래. 난 네가 상상도 못할 만큼 큰 일을 저질렀니. 그래서 십 년 내내 갇혀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란다."
"십 년이나요?"
아이의 큰 눈이 더 크게 열렸다. 그러자 밀짚모자 아저씨의 입가에 수수깡 울타리에 번지는 달빛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감옥에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단다. 거듭나기 위해서, 한 허물을 벗느라고 집에는 물론 누구한테도 내 소식을 끊고 살았지. 그렇게 살다 보니 십 년이란 세월도 녹이지 못할 무쇠는 아니더구나."
"아저씨네 집에선 그래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겠지요?"
"글쎄...... 아마 기다리는 사람이 한 사라도 없을지 몰라. 기다리는 사람편에서 본다면 십 년이란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니까."
그러나 밀짚모자 아저씨의 마음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고갯마루가 가까와지자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아이가 한 걸음 내디딜 때 밀짚모자 아저씨는 두세 걸음을 걸었다.
"아저씨, 같이 가요. 네, 아저씨!"
아이가 턱까지 오른 숨을 가누며 불러 보았지만 밀짚모자 아저씨는 갑자기 귀가 먼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리나무 숲을 지나서, 돌무덤을 돌아 성황당터를 지났다. 아이가 칡덩굴에 걸린 발을 풀고 고갯마루 위에 올라섰다. 밀짚모자 아저씨는 등이 굽은 늙은 소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아저씨, 왜 그렇게 혼자서만 빨리 가세요?"
그러나 아저씨는 벙어리가 되었는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저 아래 시퍼렇게 출렁거리고 있는 거대한 댐의 물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산대밭 속에서 산까치가 울었다.
"아저씨, 하늘 한 자락을 담갔다가 헹굴만도 하지요?"
"......"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댐이래요. 우리 엄마가 저기에서 노를 가장 잘 젓는다구요."
그제서야 밀짚모자 아저씨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저씨의 목소리는 비에 젖은 지푸라기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오늘 길을 잘못 들은 모양이다. 우리 고향에는 저렇게 큰 호수가 없었어. 작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아저씨 고향은 어떤 곳인데요?"
"시골이었지...... 옆으로 사철 푸른 강이 흐르고, 뒤로는 달덩이같이 둥그런 달산이 있었고...... 마을의 집 수는 백이 좀 더 되었을 걸 아마. 그리고 집집마다 감나무와 우물이 하나씩 있었고...... 작았지만 오래된 국민학교도 하나 있었지......"
"그럼 옛날 우리 마을하고 비슷하네요. 지금은 저기 저 물 속에 들어가 버렸지만요. 우리 마을도 그랬어요. 그리고 동쪽에는 달내가 흐르고 있었고요. 감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집이랑 학교랑 토끼장이란 닭장이랑 모두모두 두고 떠나던 날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군에서 나온 군수님도 울었어요."
아이의 눈에는 그날이 선하게 떠올랐다. 마을 사람이 온통 이사를 하던 날도 무심하게 감꽃은 피고 있었다. 장다리 핀 밭에서는 노랑나비, 흰나비가 날고 있었고, 두더지들은 그 날도 들녘 한귀퉁이를 열심히 파고 있었다. 사람들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제비들이었다. 먼저 떠나가라고 제비집을 헐어 버렸는데도 번번이 다시 짓고 짓고 하는 제비들. 아이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면 말이야, 정말로 짐승이 되어서 이 세상에 다시 오게 돼?
-왜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묻니?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
-물고기가?
-물고기가 되면 엄마, 우리 마을에서 마음놓고 살 수 있잖아. 물에 잠긴 우리 마을을 용궁처럼 지키면서 말이야.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엄마의 파란 치맛자락 사이로 본 고갯마루에는 온다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흰구름만 솔개처럼 맴을 돌고 있었다.
"너희 고향 마을 이름이 무엇이지?"
"마을 사람들은 그냥 감나무골이라 했어요. 면사무소에서 부르는 이름은 연촌리구요."
"감나무골이라구?"
되묻는 밀짚모자 아저씨의 목소리에 풀이 섰다. 서리를 뒤집어쓴 지푸라기처럼 윤도 났다.
"아저씨도 우리 감나무골을 잘 아셔요?"
"알다마다."
"아저씨, 우리 감나무골은 정말 살기 좋은 동네였지요? 그지요? 읍내 학교 동무들은 내가 아무리 말해 주어도 곧이듣지 않아요."
"몰라서 그러겠지. 내가 이 다음에 시간이 나면 그 애들을 한번 만나서 설명해 주도록 하지."
"정말이세요, 아저씨?"
"그럼, 정말이고 말고. 오늘은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너희 엄마를 만나서 감나무골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들어 보도록 할까?"
"야아 신난다."
올라올 때와는 반대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아이가 빨랐다. 밀짚모자 어저씨가 이끼긴 바윗길에서 더듬거리다 보니 아이는 벌써 저만큼 참나무가 무성한 산굽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하늘에 번져 있는 노을이 물 속에는 더 진하게 퍼져 있었다. 나룻배는 건너편 둑을 출발해서 빨갛게 깔린 비단같은 노을 위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엄마 배에요. 저 보세요,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서 흔들잖아요. 오늘이 토요일이여서 제가 올 걸 알고 있거든요."
아이가 팔을 마주 흔들었다. 밀짚모자 아저씨는 처음으로 모자를 벗었다. 물 속에 손을 담그고 그리고 얼굴을 씻었다.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는 아이의 빠른 발소리를 들으며...... 밀짚모자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한동안 그는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꿈에도 잊지 못하던 얼굴이 뱃머리에 오롯히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십 년이란 세월 동안 주름살이 생기고 그을렀을 뿐 눈, 코, 입, 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밀짚모자를 가리키는 아이의 손을 좇아서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이 순간 석고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두 뺨에 노을이 번졌따. 물 위로 작은 물고기가 은빛나는 몸매를 반짝이며 뛰었다. 그는 천천히 뒷주머니 속에 든 손수건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아내와 아들이 있는 나룻배 쪽으로 다가갔다. 호수 속에 비친 세 사람의 모습을 노을이 환하게 감싸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