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기도의 에너지
사람은 누구나 충분히 낙심하고 충분히 좌절할 때까지는 깊은 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사는 것이 때때로 너무나 고통스럽워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여러 번 도달했다면 당신은 깊은 기도를 경험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넘치고 어떤 일도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쉽게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면 당신은 아마 기도를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보아도 전혀 도울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제 기도를 배울 수 있으며 그 사랑의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
근심과 절망은 하나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를 통해 주님께로 가라. 그 좋은 기회를 낭비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많은 기회가 있어도 혼자서만 끙끙거릴 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는다. 낙천가들은 절망의 에너지가 없어 주님께로 가지 못한다. 강심장은 너무 두려움이 없어서 주님께로 가지 못한다. 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억지로 강해지려고 애쓰지 말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 슬플 때 눈물을 참지 말고 괴로울 때 탄식을 억제하지 말고 외로울 때 슬픔을 억누르지 말라.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을 누를 때 조용히 주님께로 가라.
사명을 따르는 삶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수도원을 떠나갔다. 그러자 어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물었다. “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좇아간다. 그러면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그렇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좇아간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교회 구성원들이 싫다고, 교회의 단체가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남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해서 무턱대고 좇아만 간다면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때 쉽게 주님을 포기하고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절박한 기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50/15)
가장 진실하게 하나님께 아뢰게 되는 것은 가장 절박함에 처해 있을 때이다. 가장 진실해 질 수 있고 가장 겸손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일한 삶은 교만과 위선과 거짓만을 드러내게 된다. 경건의 모양만 내게 되고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는 기도하지 못한다. 위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 닥친 역경은 하나님의 체험할 수 있는 은혜가 되기도 한다.
역경 속에 있는 사람은 믿는 자이든지 믿지 아니한 자이든지 진실함이 배어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 때에 정말 응답하시며 그 응답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은 간증으로 나온다.
역경에서 부르짖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불평 불만하기 전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라! 응답하시리라....
왜 환난이 있는가?
자식을 잃었던 C. S. 루이스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환난이 있는가?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큰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을 향해서 고통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확성기다." 작은 귓속말로 안 되니까 하나님은 환란이라는 확성기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비로소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 구원 얻을 때요 은혜 받을 때라는 것은 바로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허물을 토하고 용서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중에 바이런 자니스 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렸을 때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손에 심한 신경통과 신경마비 증세를 갖게 되었다. 한 때는 열 손가락 중에 왼손 중지 하나만 제대로 움직였고 모든 손가락이 10% 정도 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새끼손가락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오른쪽 손목은 40퍼센트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영국의 잡지인 “Parade”지 기사와 인터뷰를 통해서 이렇게 고백했다. “여러 의사들이 수고하였고 침도 많이 맞았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내손을 성경책에 올려놓고 매일 1 시간씩 기도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이 고통과 싸울 용기를 주셨고, 힘을 주셨고, 희망을 주셨고, 나아가서는 내게 오히려 감사를 주셨고, 기쁨을 주셨다. 그랬기에 가능했고 지금은 아무리 오랫동안 피아노를 쳐도 고통이나 아픔이 없다.” 고 고백했다. 기도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Upgrade 시키는 비결이다.
기도의 결과
“존 브렌츠” 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친구이자 또한 용감한 종교 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미움을 받게 되어 체포당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스페인의 왕실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 너무나도 강한 음성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들려왔다.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어라." 하는 음성이었다. 존은 강력하게 마음으로 지시받은 대로 아랫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다. 이후 수색은 계속되었지만 존이 있는 곳까지는 수색이 미치지 않았고 존은 그 다락방에서 약 14년 간 숨어 지냈다. 존이 집을 나설때 가져 나온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간의 양식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존은 그 곳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은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아침마다 기도했는데 아침 기도를 마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암탉이 한 마리가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계란을 하나씩 낳는 것이었다. 이 일은 14년 간 단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결국 존 브렌츠는 알 수 없는 암탉이 매일 낳아 주는 달걀을 먹고 간신히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14년이 지난 어느 날 닭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기이하게 여긴 그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병사들이 마침내 모두 다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존은 아무 탈 없이 14년 만에 그 다락방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를 14년간 지켜 준 것은 아침마다 하나님께 올린 기도의 결과이다.
생사가 걸린 기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여러분! 기도를 더 배우기 바랍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에는 [지금 내가 드리는 이 기도에 내 생사가 결려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문학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가 낳은 천재적 작가 입니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불행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가난한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습니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폐병으로 여의고, 18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잃은 발작증세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고아처럼 외롭게 지냈습니다.
그의 청년 시절 역시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는 사회주의적 결사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총살 직전에 극적으로 황제의 특사를 받게 됩니다.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받아 사형은 면했지만, 대신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간 징역을 살게 됩니다. 그 후 5년간 중앙아시아에서 기막힌 고생을 하며 그는 불행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결혼 생활도 불행하였습니다. 36살에 맞은 아내, 마리아 이사예프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43살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병들어 죽습니다. 3년 후 재혼하여 아들을 얻었지만, 아들을 안아 본 기쁨도 잠깐, 그 어린 아들은 러시아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병들어 죽고 맙니다. 피를 토하는 아픔의 순간을 지냈다.
설상가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도 치명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한평생 이 병에 시달렸습니다. 간질병이었습니다. 종종 쓰러지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는 오히려 고난을 받고 고통을 받는 만큼 신앙은 빛이 났습니다. 고난으로 점철 된 자신에게 신앙은 삶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신앙적 안목으로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평생 질병과 싸우고, 평생 고난과 시련 속에서 누에고치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글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인 '분신', '백야' 등에 보면, 불행한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요 자신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후 1866년에는 ‘죄와 벌’을 썼고, 1880년에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 많은 명작들을 남기게 됩니다. 이처럼 극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 불후의 명작이 창작된 것입니다. 특히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죄와 벌』은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다룬 너무나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은 그의 나이 44세 때 쓴 것입니다. 그 해는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움에 시달리던 때요, 곧 빚쟁이를 피해 4년간이나 도망 다녔고, 아내 마리아가 죽고, 형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던 해였습니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한가운데서 그의 간질병도 더 자주 발작하여 가장 참담하던 때에 불후의 명작『죄와 벌』을 쓴 것입니다.
<옮긴글>
[출처] 몇 가지 예화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