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정보 신체장애 극복하고 특수교사와 의사의 꿈 이뤄낸 홍여경&홍사민 자매

[남기윤]

신체장애 극복하고 특수교사와 의사의 꿈 이뤄낸 홍여형 & 홍사민 자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게 가장 서글펐어요” 며칠 사이 차례로 세상을 놀래킨 자매가 있다. 청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지역 특수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언니 홍여형씨와 6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동생 홍사민씨. 장애라는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이 자매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유학의 꿈 접고 특수교사의 길 선택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눈만 봐도 알아요”

홍여형(27, 청각장애 2급), 홍사민(25, 지체장애 4급) 자매와의 만남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합격소식이 알려진 후 너무 많은 전화가 밀려와 어리둥절했다는 여형씨. 어린 시절 알 수 없는 이유로 청력을 잃어 보청기를 껴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녀에게는 문자메시지가 유용한 소통수단이었다.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좋은 하루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등의 따뜻한 인사를 잊지 않았던 그녀. 그렇게 생긴 자연스런 친근감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은 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보다. 여형씨는 만나자마자 손을 꼭 잡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 따뜻한 손을 잡고 동생 사민씨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약간 마른 듯 귀여운 언니와 길게 땋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통통한 동생.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아있었다.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네자 언니 여형씨가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선다’며 말을 꺼냈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해준 사람은 바로 학생들이에요. 펄쩍펄쩍 뛰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나중에 제가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선생님이 가면 다 같이 죽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예요. 장난이긴 했지만 어린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작년 8월 이화여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한 여형씨는 이번 임용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미아동에 있는 애화학교의 보조교사로 근무했다. 어릴 때 이 곳에서 유치부 교육을 받아 그녀에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지던 곳. 낮에는 보조교사로 일하며 밤에는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잠 못 자며 27과목을 공부하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마음이 불안하다는 거였어요. 청각장애인이 임용고시에 합격한 전례가 없었거든요. 솔직히 마음이 흔들린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죠. 저는 장애학생들이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끌어 내 주고 싶어요.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그림이 좋은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여형씨는 사실 같은 학교 미술학과 95학번이다. 그것도 오로지 그림밖에 모르던 욕심많은 미술학도. 사정이 그렇다보니 외모에는 통 신경을 안써 본의 아니게 ‘튀는 학생’이 됐다. 졸업 때까지 화장을 안 한 것은 물론 늘 청바지 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녀 ‘고등학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졸업 후 유학을 가 그림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신입생 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프리카 탐사에 나선 것도 그림 욕심 때문이었단다. 한솔그룹에서 지원하는 ‘청년정신탐사단’ 일원으로 한 달 동안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를 횡단한 것.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킬리만자로인 것 같아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컨디션 난조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너무 안타까워 눈물이 났지만 앞으로 보이지 않는 정상이 훨씬 더 많을 테니 이렇게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위안을 삼고 내려왔어요.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아프리카를 생각해요.”

자나 깨나 그림 생각뿐이던 그녀의 생각이 바뀐 건 1999년.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 상도동에 있는 서울삼성학교에서 초등부 미술반을 지도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동안 알게 모르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열심히 살려고 하면 할수록 정상인과 장애인 양쪽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게 늘 가슴 아팠죠. 정상인들은 자기가 정상인인줄 안다며 함부로 말하고, 장애인친구들은 왜 일반인처럼 행동하냐며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삼성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달랐어요. 저에게 먼저 말도 걸어주고, 와서 손을 잡아주는 학생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한다는 게 참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정식 교사가 되어 자신과 똑같은 과정을 겪으며 자라날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싶어서. 결국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화여대 ‘특수교육과’에 편입했고, 정상인도 힘들다는 특수교사 임용고시 합격의 꿈을 이뤘다.

어깨 너머로 한글 깨우친 똑똑이
“언니는 제가 화내는 모습도 예쁘기만 하대요”
여형씨가 기자의 말을 놓치면 금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일러주는 다정한 동생 사민씨. 그녀는 서울과학고와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우등생이다.

“엄마 말씀이 제가 어느 날 갑자기 ‘곶감과 호랑이’를 읽어주더래요.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세 살짜리 꼬마가 책을 읽어대니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엄마가 언니에게 글을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배운 거였나 봐요. 그러니 제가 공부를 잘 하게 된 건 순전히 언니 덕분이죠.”

공부 잘하는 것도 ‘언니덕분’이라고 말 하는 귀여운 동생.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 다. 여형씨의 애화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어딘가에 꼭 사민씨가 있다. 소풍가는 언니를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교실에서 수업도 같이 했단다. 자매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사이좋기로 유명했다.

늘 손을 잡고 등교하는 것은 물론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 얼굴을 보고 가기 일쑤. 여형씨는 동생이 친구들과 싸우기라도 하면 금새 달려와 혼내 주곤 했다.

“여섯 살 때였나? 밖에서 우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나가보니 언니가 나보다도 조그만 애들에게 맞고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맞고 있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때리는 거 아니라서 그냥 맞고 있었다는 거예요. 제 생각이 나서 그랬대요. 쑥스럽지만 언니는 정말 절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소리 지르면서 대들어도 절대 화를 안내요. 그래서 어쩌다 싸움이 나도 5분도 안 되서 같이 앉아 놀고 있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며 기습 뽀뽀를 하기도 하고요, 가끔씩은 업어주기도 해요. 심지어는 저 같은 남자와 결혼해 살고 싶대요. 하하하.”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감춰야 할 것도 감추고 싶은 것도 없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물론 친구들과 다툰 일, 심지어는 그 날 들어온 문자 메시지도 보여주면서 대화를 나눈다.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두 사람. 그래서 기쁨도 슬픔도 항상 반반씩 나눠 가진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어요. 주위에는 항상 친구가 많았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조금 달라졌어요. 그림 공부를 위해 예고에 갔지만 공부 욕심도 많았거든요. 선생님의 입 모양과 보청기에 의지해 공부하면서도 내신 1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친구들이 노트 필기를 보여주지 않더래요. 입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언니를 경쟁자로 생각했나 봐요. 그 때 언니가 많이 힘들어했던 게 생각나요. 공부는 아무래도 좋지만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했어요. 제 마음도 너무 아팠죠.”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여형씨는 차분한 성격인 반면 사민씨는 활달 그 자체. 세 살 때 결핵성 고관절염을 앓아 왼쪽 다리를 절게 됐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내내 동네 제일의 골목대장이었다.

세 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페달을 빨리 밟는 대신 들고 뛸 정도로 씩씩했단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해마다 다리뼈 고정수술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수영을 해 온 스포츠 광이기도 하다. 웬만한 정상인은 따르지 못할 정도로 그 실력도 수준급. 체육시간은 물론 운동회, 소풍, 등산 등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유머감각 넘치는 호탕한 성격 덕분에 학창시절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인기도 많았다. 의대를 택한 것도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앉아서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고 싶었다.

사민씨는 환자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병원실습을 하던 4학년 때는 온 병원이 다 아는 ‘스타 선생님’이었다. 감사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지방에 있는 아들을 불러올린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일부러 찾아온 아주머니도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에게 따뜻한 벗이 되어 준 사람도 사민씨였다.

“환자들은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거나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식의 말을 제일 싫어해요. 하지만 제가 말을 하면 잘 받아들이시는 편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좋지만은 않았어요. 의사이기 이전에 아픈 사람으로 인식이 된다는 사실이 서글프더라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의사가 가장 훌륭한 의사니까요.”

두 딸 모두 일반학교 보낸 억척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울 엄마예요 ”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궁금증이 생겼다. 일반인도 해 내지 못할 일을 이토록 훌륭히 해 낸 두 사람을 키워낸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그러나 ‘모든 식물이 물만 주면 쑥쑥 자라듯 그저 물을 줬을 뿐’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피하는 바람에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처음에는 두 분 다 평범한 분이라며 말하기를 꺼려했던 자매는 ‘사실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엄마’라며 얘기를 들려줬다. 알고 보니 이들을 길러낸 어머니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미술가. 자매가 아프기 전까지 대학에 강의를 나갔던 실력 있는 서양화가다. 딸들을 돌보기 위해 강의를 그만뒀지만 집에 화실을 만들어 놓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그러고 보니 집안 구석구석에 오래된 석고상이며 미술 도구들이 눈에 띈다. 그림 이야기가 나오자 사민씨가 ‘한이 맺혔다’며 열을 올렸다.

“전 이담에 딸 낳으면 꼭 그림 시킬 거예요. 왜 나는 그림을 안 가르쳐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그러세요. 크레파스 잡는 것만 봐도 안다고. 저는 재능이 하나도 안보였다는 말이죠. 어릴 때 그린 그림을 보면 저는 참 열심히 그려놨어요. 되도록 실물과 똑같이, 아주 꼼꼼하게요. 그런데 언니 그림은 좀 달랐어요. 그래서 전 일찌감치 포기했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일어나지 않으면 억지로 깨우는 대신 함께 눕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오늘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전화하고 빈대떡을 부쳐주던 어머니. 그러나 일단 학교에 가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어머니는 절대 학교로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으셨단다. 비를 맞든 기다렸다가 저녁이 다 돼서 돌아오든 본인의 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머니는 비를 흠뻑 맞고 돌아온 자매를 커다란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잘 삶아진 고구마를 내 놓곤 하셨다. 게다가 어머니는 딸들 성적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1등 한 성적표를 가지고 와도 엄마는 봐 주시질 않았어요. 제발 봐 달라고 따라다녀도 관심을 안 보이시다가 선생님이 뭐라도 적어주시면 그제서야 달라고 하세요. 대신 학교에 행사가 있으면 달려오셔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였는데 달리기를 할 차례가 되자 선생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엄마가 제 손을 잡으시더니 끝까지 뛰자고 하셨어요. 그 날 이후로 저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어머니는 성격이 다른 두 딸을 다른 방식으로 교육했다. 억지로 하는 것을 싫어하는 동생에게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유도한 반면, 집중력이 강한 여형씨에게는 강하게 동기부여를 해 엄하게 가르친 것. 그림공부를 할 때는 물론 한글을 배울 때, 말하는 법을 배울 때도 늘 엄한 선생님 역할을 자처했다. 덕분에 여형씨는 거의 일반인 수준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엄마는 저희에게 늘 말씀하셨어요. 소리가 안 들리고 다리가 불편하지만 그 것 때문에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기 싫어서 안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장애 때문에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요. 눈이 나빠지면 불편해도 안경을 쓰는 것처럼 우리들의 장애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하셨죠. 몸의 불편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늘 강조 하셨어요.”

고이고이 기르기 보다는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던 어머니. 그녀는 자매에게 어머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여형씨와 사민씨는 어머니 몰래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이 다음에 결혼을 하면 꼭 5층집을 지어서 부모님과 두 자매의 가족이 알콩달콩 어울려 살기로. 한 층은 사민씨의 병원으로 쓰고 나머지 한 층은 어머니를 위해 멋진 화실을 만들어드릴 생각이란다. 함께 5층집을 지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애교스럽게 ‘노코멘트’를 선언. “좋은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달라”며 웃음지어 보인다.

이제 두 사람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여형씨는 2월 10일부터 2주 동안 연수를 받은 후 첫 발령을 받게 되고, 동생 사민씨는 2월 말부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찾아 온 장애를 이겨내고 특수교사와 의사의 꿈을 이뤄낸 자매. 이들이 장애인 복지시설이 열악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인력이 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닐까. 이 아름다운 자매의 도전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도록.

글/오유리(자유기고가) 사진/김현희 - 2003년 3월 레이디경향 -

[럭키]

어머니와 두 자매의 승리에 기쁨의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힘겨운 성공의 여정에 축복이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