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안산 다이아몬드의 거부감 증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다이아몬드 시장이 산업의 본질적인 의미를 재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3월 11일에 미국 정부는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에 대한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수입 제재는 러시아산 원석과 러시아에서 연마된 스톤으로 확대됐다. 러시아에서 채굴되었으나 다른 나라에서 연마된 상품은 포함되지 않았다.(대부분의 러시아산 다이아몬드가 이에 해당된다.) 연마지와 상관업이 모든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수입이 금지되었다면 보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JVC(Jewelers Vigilance Committee, 주얼리상인윤리위원회)는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수입 전면 금지의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 공급의 약 28%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산 원석을 타국에서 연마한 나석은 아직까지 미국에 합법적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이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구명줄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산 다이아몬드의 전면적 수입 금지가 당연하다거나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컨플릭트(Conflict) 혹은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중량 기준 원석 생산업체인 알로사(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생산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러시아 정부가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원론적 정의에 따르면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컨플릭트 다이아몬드로 볼 수는 없다. 컨플릭트 다이아몬드란 내전을 일으킨 반군 활동에 자금줄이 되는 다이아몬드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광산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고문이나 인권 유린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없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단순한 수입 제재 조치를 내린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분명 다이아몬드 산업에 윤리적 딜레마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몇 년 전부터 업계가 추진해 온 원산지 추적(다이아몬드가 광산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밟게 되는 모든 단계를 추적)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 업계의 원산지 추적 프로그램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생산되는 광산 혹은 국가를 시작점으로 한다. 반면 추가 제재시‘상당한 변화’, 즉 ‘다이아몬드가 원석에서 나석으로 형태를 바꾸게 되는 지역’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원산지 추적의 어려움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파이프라인의 다양한 단계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쉽게 추적할 수 있게 됐다. 드비어스, GIA, 사린 테크놀러지스 등이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섰으며, 알로사도 동참했다.
작년에 알로사는 나노테크놀러지 기술을 활용한 생산지 증명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알로사는 신기술을 이용한 다이아몬드 추적이라는 아이디어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원석을 GIA와 사린의 프로그램에 공급했고 드비어스의 트레이서 프로그램에도 초기 가입했다. 원산지 추적은 업체들이 각자 주관했다. 브랜드 구축 기회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적어도 드비어스의 경우에는 그랬다.
트레이서 프로그램이 원래 목적이었던 중앙 집중적 산지 추적 시스템의 경우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물류 및 신뢰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하지만 현존하는 프로그램들은 초기 단계에 있으며 각자 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난이도 있는 프로그램은 드비어스의 트레이서 프로그램이다. 드비어스는 보츠와나, 캐나다, 나미비아, 남아공에 위치한 다양한 광산에서 생산된 상품을 한 곳으로 모은다. 따라서 사이트홀더들이 드비어스 다이아몬드에 원산지를 표기할 경우 ‘DTC 생산’으로 표시해야 한다.(다이아몬드가 드비어스의 광산이 위치한 4개 국가 중 하나에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생산됐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정책이다.)
상품을 ‘드비어스 다이아몬드’로 마케팅해서는 안 된다. 드비어스라는 명칭이 산하 소매 브랜드에 사용되고 있어 중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비어스는 작년부터 ‘코드 오브 오리진’ 프로그램을 추가 운영 중이다. 협력 관계에 있는 사이트홀더사의 다이아몬드에 드비어스가 윤리적 방식으로 채굴한 다이아몬드임을 뜻하는 코드를 각인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4개국의 다이아몬드를 한 데 모으는 시스템은 원석이 생산된 광산 혹은 국가 관련 세부 사항 표기를 원하는 소매업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GIA 역시 ‘다이아몬드 오리진 리포트’ 서비스와 관련하여 동일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GIA의 경우 연마 전 원석을 검사하여 데이터를 도출, 축적한다. 이 때 GIA는 원석의 소유주(광산업체, 연마업체, 도매업체, 경매업체 등)가 원석 의뢰시 제시한 원산지를 신뢰한다. 원석 소유주는 원석을 받아 나석으로 연마 후 다시 GIA로 보낸다.
GIA는 나석이 원석 검사시 확인해 둔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광산업체가 직접 GIA로 원석을 보낼 경우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여러 곳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가 믹스되어 있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사이트홀더 혹은 경매업체가 드비어스의 상품을 구매한 후 다른 광산업체로부터 사들인 다른 원석을 믹스할 수도 있다. 이를 한 데 섞어 의뢰할 경우 스톤의 산지는 여러 곳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GIA는 증명서에 7곳의 산지를 기재하고 해당 나석이 이 중 한 곳에서 생산됐다고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린은 광산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사린의 검사를 허락하는 광산업체들만 시스템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스톤을 생산 시점부터 추적 프로그램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산지 증명 상품 시장 성장, 수요가 주도
사린은 또 자사의 경우 공급보다는 수요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 중이라며, 이것이 타사 프로그램과의 분명한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사린은 자사의 지속 가능성 프로그램의 기초를 바로 세우기 위해 소매업체들과 협력 중이다. 부쉐롱(1월에 사린과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등 주얼리 브랜드가 컬렉션 제작을 위해 원산지가 분명한 상품을 원할 경우 사린은 광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사의 공급 체인을 제시하며 이에 부응한다. 이쯤에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생산된 상품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궁금해진다. 수요가 이를 주도 중이라면 (사린은 수요가 이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은 아직 유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며,앞으로 서서히 성장할 것이다.
러시아의 위기가 원산지가 분명한 상품의 수요 증가를 부추겼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국의 수입 제재는 제한적이며, 때문에 주얼리 업체들과 딜러들은 타지에서 연마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나석의 구매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이 강력하고 투명한 원산지 추적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은 업계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미 태도를 분명히 한 주얼리 업체들도 있다. 브릴리언트 어스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트위터를 통해 자사의 사이트 판매 상품에서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전량을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업체들이 이와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리고 전쟁이 길어진다면) 원산지 추적이 가능한 상품의 소매 수요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공급 체인의 역학 역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매출 성장 이어질 듯
미국의 수입 제재가 알로사의 다이아몬드 판매를 막지는 못한다. 알로사의 원석 바이어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금 지불 방식이다. 러시아의 은행들이 국제 송금 시스템인 스위프트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로사의 3월 둘째 주 경매는 정상 개최됐으며, 대금 지급은 이태리와 UAE의 은행들이 담당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처럼 글로벌 공급량의 30%가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시장은 공급 부족을 겪고 원석 가격은 추가 상승했을 것이다. 만일 더 많은 미국의 주얼리 업체들이 러시아산 상품을 거부할 경우, 연마업체들은 알맞은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즉,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기꺼이 구매하려는 고객에게 이를 공급한 후 남는 상품은 제재 조치를 취하는 업체들을 위해 보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품 공급 채널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소매 시장은 진퇴양난
문제는 알로사의 대량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소매 주얼리 업체들이다. 예를 들어 시그넷 주얼러스는 피케 등급(I2~I3 등급)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업체다. 영업 중인 매장이 2,800개에 달하기 때문에 꾸준한 상품 공급이 필수적이다.러시아 상품 없이는 물량을 채울 수 없다. 시그넷 역시 전쟁 발발 직후 알로사(시그넷은 알로사의 장기 계약 고객이다.)를 비롯한 러시아 업체들과의 거래 중지를 선언했지만 러시아산 원석을 연마하는 연마업체가 공급하는 나석 구매의 중지 여부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다.
시그넷의 대변인은 대신 시그넷에는 원석의 직접 공급에 관한 ‘책임 있는 소싱 프로토콜’이 있다며, 거래처에 원석의 모든 유통 단계를 표시해 줄 것을 요구하라고 요청했다. 이 프로토콜은 업계의 다른 산지 추적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가 어디에서 연마됐는지에 상관없이 러시아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의 나석은 모두 러시아산으로 간주한다.
시그넷은 또한 공급처에 대해 RJC(책임있는주얼리카운실)회원들하고만 거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알로사는 RJC회원직은 유지 중이나 이사직에서는 사임했다. 곧 일부 회원과 업계의 요청에 따른 알로사의 RJC 회원 탈퇴 심의가 있을 예정이다.
티파니 역시 결정을 내려야 한다. 2019년부터 티파니는 자사가 판매하는 모든 약혼 반지 자재의 산지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현재 웹사이트 상에서 자사가 사용하는 스톤의 원석이 보츠와나, 캐나다, 나미비아, 러시아, 남아공 중 한 곳에서 생산됐다는 점을 공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티파니의 연마 부서는 드비어스와 알로사의 원석을 사들인다. 자사가 직접 연마하지 않은 나석 수급에 있어서는 시그넷과 동일한 딜레마에 당착해 있다. 티파니는 관련 정책을 밝혀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답하지 않고 있다. 티파니의 모기업 LVMH는 러시아 내의 모든 소매 사업체 운영을 중단했다.
이들 브랜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공급이 필요하지만 ESG(지속 가능 경영)와 관련한 명성이 훼손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악화될 경우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공급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리고 나석 공급처를 비밀에 붙인다면) 더 큰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입장 변화
물론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도 많다. 러시아산 다이아몬드가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수십 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는 강한 제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다이아몬드 딜러들과 주얼리 소매업체들의 소득원이며, 우리 생태계의 일부분이다. 시그넷에 대한 공급이 줄어들 경우 매출이 감소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그넷의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 역시 소비자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위기로 인해 업계의 여러 책임 있는 소싱 프로젝트의 입장은 변화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업계가 (미국 정부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산지보다는 상품에 변형이 일어난 지역(연마 지역)을 중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또한 업계는 보다 섬세한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과 책임 있는 소싱 이슈를 부상시키기 위한 모든 훌륭한 활동에 있어 실사 기준의 세부적 조정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미국 정부의 RJC 자문이자 과거에 미 국무부의 킴벌리프로세스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브래드 브룩스 루빈은 링크드인(LinkedIn) 블로그를 통해 업계의 지도자들이 솔직하게 다가간다면 소비자들 역시 업계의 딜레마를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솔직 담백한 결정이 가장 좋은 결정이다. 딜레마를 고백하는 것이 맞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을 감사할 것이다. 투명해질 필요가 있다. 러시아산 상품에 대한 업계의 입장을 투명하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업계 불안은 심화될 것이며 이는 소비자 신뢰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업계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촉발될 수도 있다.
/ 라파포트 뉴스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