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다. 그곳을 다시 가기가 무척 두려웠다
12년 전 6월 16일 친구들과 함께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올랐던 공룡 산행이 너무 힘들어 카페에
처음 공지 됐을 때 그때의 기억과 요즘 힘든 일을 겪고 난 후 짧은 산행에도 힘들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생각도 들어 다른 일행에게 민폐가 될까 두렵기도 하여 선뜻 신청을 하지 못했는데 산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욱 공룡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 시작한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가고픈 마음에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대기 자리를 신청하고 좌석이 확정된 후에도
몇 번이나 내릴까 망설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보기로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모친의 입원과 퇴원 시 늘 있는 시골의 농사일이지만 일손이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형님께 신신당부하였더니 주말 비 소식이 있어 금요일에 갑자기 감자 수확을 한다 하여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손을 보태고 잠시 여유도 없이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에서 눈은 감아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걱정과
두려움만 몰려온다.
새벽 3시 설악을 오르려는 산객들로 소공원은 어수선하다.
설악의 밤하늘 별들은 모처럼 잘생긴 산객이 와서 그런지 수줍어 모두 숨어 버렸다.
산행을 시작하는 산객들 틈에 끼어 바쁘게 소공을 빠져나가 비선대를 지나고 갈림길에서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하여 12년 전 친구들과 내려오면서 무척 힘들게 기억되는 아픈 기억을 상기하며 어둠 속에 마등령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른다.
그때 공룡의 풍광은 희미하게 지워졌지만 유독 마등령에서 하산하는 돌계단의 힘든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니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습기 먹은 숲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을 열심히 오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며 허벅지 근육이 피로감에 무거워져 오고 어두운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 할 때쯤
마등령에 올라서니 그제야 풍광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 일행이 누구인지 분간이 간다.
옛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하여 공룡의 능선을 보여 주면 부러워 약 올라 욕을 할 줄 알았더니
웬일 ! 욕을 하지 않는다.
친구와 일상의 대화는 욕으로 시작하여 욕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고 일상인데 공룡에 올라온
내가 부럽지 않은가 보다
약을 올리려는 작전이 실패다. 잠에서 덜 깬 친구의 목소리는 공룡을 오른 내 체력이 부럽다고 한다.
함께 왔으면 좋으련만 체력이 약해진 친구에게 함께 오자고 했으면 욕을 먹을 뻔했다.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고 드디어 공룡능선에 접어드니 12시부터 온다는 비가 이른 아침부터 빗방울 뿌린다
지난 산행에서도 예보시간보다 일찍 비가 오더니 역시 오늘도 이른 시간부터 비를 뿌린다.
높은 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마등령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오면서 땀으로 젖은 몸에 빗방울이 닿자 참으로 기분 좋게 시원하다.
비가 그치고 나타나는 공룡의 비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험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반복하고
1275봉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에 오면 에델바이스라고 더 잘 알려진 말린 솜다리를 사서 책갈피에
꽂아 두거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선물하곤 하였는데
그 예델바이스가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자생하여 찾아보니 있다. 행운이다.
드디어 설악에서 풍광이 제일 좋다는 신선대에 오르니 멀리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운무와 확 트인 시야
저 멀리 세존봉과 울산바위가 선명하게 보이고 1275봉과 범봉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비가 그치고 눈부신 햇살이 설악의 멋진 풍광을 모두 보여주는 행운 그 행운이 어디서 언제 또 있으랴?
맑은 날에도 변화무쌍한 날씨에 곰탕으로 변하여 설악의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참으로 행복하다.
아주 좋은 성능의 공기청정기로도 맛볼 수 없는 맑은 공기와 그 어떤 에어컨이나 전기 부채로도
경험할 수 없는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간밤에 힘들게 땀 흘린 기억은 잊은 지 오래다.
내려가려니 무척이나 아쉽다.
신선대에 눌러앉아 눈이 호강하고 폐가 호강하는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을 마냥 즐기고 싶은데 내려가야만 하는
신세가 한스럽다 교통비 사만오천원을 내고 사천오백만원어치 건강을 얻어가는 기분이다.
남아도 너무 많이 남는 장사다.
신선대의 풍광과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을 뒤로하고 무너미 고개를 지나 가파른 하산길에 접어드니 땀이 흐른다.
천불동 계곡의 천당 폭포 아래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에 들어만 갔다 나오기만 해도 피로가 싹 가실 것만
같은데 아쉽다. 아쉬움에 발만 살짝 담그고 있는데 뒤에 하산하는 동림산 산대장께서 신고한다고 소리쳐 놀라
얼른 일어나 하산을 서두른다.
긴 천불동 계곡 비선대를 지나니 온몸에서 익숙한 음식 냄새가 난다.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충동에 몰래 혼자 산길을 벗어나 계곡으로 향하는데 함께 산행하신 한분이 따라오신다.
옷을 모두 벗고 알몸이 되어 말 그대로 설악의 맑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니 천국에 온 기분이다.
신선대에서의 눈이 호강하는 풍광과 신선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쉽게 경험할 수 없기에
이 글을 읽은 몇 분은 아마 나처럼 힘든 경험으로 용기를 내지 못하고 글을 읽고 무척 부러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차마 존함을 밝힐 수는 없으니 아쉽다. 함께 하였다면 참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늘도 도시의 하늘은 흐리면서 무덥기만 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어쩔 수 없어 에어컨을 켰다가 에어컨 바람이 싫어 꺼버리고 어제의 공룡에서 맛본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을
생각하며 다시 갈 것을 다짐하고 이 글을 읽고 부러워하실 몇 분 얼굴을 떠올리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첫댓글 부러워 하고 있는 1인입니다. 흰수염 휘날리는 신선과 등 지느러미 한껏 세운 공룡들이 노닐고 있을 것만 같은 설악.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부풀어오릅니다. 나리님의 담백한 설악 인상, 보드라운 솜다리꽃. 흐뭇하게 감상하고 갑니다.
신선대에서 신선은 못 봤지만
신선대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은 천하제일 입니다
1275봉에서 짧지만 함께 공룡능선 감상에 정말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그때는 너무 지쳐 1275봉을 오르지 못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오르고 싶네요
@나 리 저도 그때 주저하고 있었는데 형님이 1275봉 안오른다 하시니 저도 주저 앉았습니다. 다음엔 함께 오르시죠?ㅎ
신선봉에서 바라본 경치는 왜 국내산1경으로 평가받는지 알수 있었던 멋지고 황홀한 산행이었읍니다. 신고사진은 나중에 대비하여 보험으로 준비해두겠읍니다
멋진글과 사진 잘감상합니다
앞으로 조심 하겠습니다.
캐비넷은 비워 주세요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할까요!?
부럽~부럽
경치는 즐겨도 기록은 영 꽝입니다.
공룡무박을 오색약수.한계령코스로만 올랐는데..무거운베낭으로 이번에는 기대반 걱정반으로?함께 동행했기에 망중한도 느끼며 보람있고 의미있는 산행이었어요.반가운 서영님도 수고했구여.
정말 멋지신 "낭만가객" 나리님이시네여♤♤
설악산 구석구석을 다 도는 것 같네요
2년전에 오색에서 올라 어렵게 공룡을 만났던 기억이 오롯이 떠오르네요. 지우고 싶지도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은 것은 아마도 공룡이 거대하기도 했으며 사진속에서만 멈춰버린 쉽게 접하기 어려운 형상을 마주한 때문인것 같네요.
가고 싶었지만 극한 봉사 일정이란 핑계로 만나길 거부한것은 아마도 2년전 아주 힘들게 만났던 기억이 더 살아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럼에도 보고 싶었던 솜다리 사진을 보는 순간 탄식이 절로 나오네요.
아~~
내 몸이 두개 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는 12년전에 갔다가 죽는줄 알아서 너무 겁이 났는데
막상 갔다오니 또 가고 싶네요
나리야, 니 생각대로 나 부러워서 디져부렀다. 약 올라서 뻗었다니깐?
그래, 천불동 계곡 맑은 물에 조각 같은 근육질 몸매 담근 거보다 씨워~ㄴ하냐?
어쨌든 나 디져버렸으니께 부의금 봉투 하나 두둑히 담아 보내거라!^^
12년 전의 두려웠던 기억을 극복하고 거듭난, 자랑찬 얘기들과 멋진 사진은 즐거이 접수하겠다.
아, 나는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나리의 글과 사진 앞에서 스러져야 할까나!흑~
신선대에서 서방님께 영상 통화를 하여
신선이 노는 모습을 보여 드릴껄 그랬나 봐요
마음까지 정화되는 신선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은 영상으로 보여 드릴수 없어서...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