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었다. 단풍철의 연례행사인 설악산을 종주하려고 방짝과 길을 나섰다. 한계령을 넘으니
비가 내린다. 그 날은 천불동계곡의 초입인 양폭산장까지 가니 별 걱정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설악동을 출발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빗줄기가 점점 세차 진다. 드디어는 쏟아졌다. 와! 비가
그렇게 쏟아질 수도 있나? 귀면암을 지나 골짜기 길을 걷는데 순식간에 길에 물이 넘쳐흘러 물
속을 걷기도 했다. 계곡물이 아우성이다.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데 다리가 좀 불편하였다. 왜 이
러지?
양폭산장에 도착하여 일박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일찍 대청봉으로 향할 참인데 아직도 날
씨가 안 좋다. 좀 지나면 좋아질 듯도 싶었다. 아침에도 다리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이
다리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방짝에게 내색은 안 하고 날씨 핑계 대고 등산을 포기하였다.
다음 날이다. 새벽의 일과대로 테니스를 쳤다. 동호인과 짝을 맞춰 공을 치는데 다리 걸음이 이
상해진다. 바라보던 동호인이 나오라고 한다. 틀림없이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 좀 지나니 오히
려 걷기가 더 힘들어져 절뚝거리게 되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설왕설래를 듣다가 한 동호인
이 권하는 신경외과를 갔다.
사진을 찍어 판독하며 진찰하더니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물리 지료도 받고 약도 먹으
며 2주가 지났으나 불편한 걸음걸이에 차도가 없다. 방짝이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력히 권한다.
서울에서 살 때 방짝이 발목 때문에, 손목 때문에 치료를 잘 받은 재활병원을 권한다. x레이 결과는
척추협착증이란다. 주사 맞고 물리치료 받고 약 한 봉지 먹고 걸어 나오는데 조금 걸으니 걷기가
조금 편하여 진다. 사진 판독에 그리 차이가 있을 수 있나? 이름이 제법 났다고 알려진 앞서의 의
사의 판별에 어이가 없었다. 2주 후에 또 가서 치료를 받았다. 걷기가 한결 편해졌다고 하며 상담
을 하였다. 수술 문제도 꺼내보았다.
그 의사의 말인즉 연세가 있으셔서 어느 의사도 수술을 권하지 않을 거란다. 수술을 받을 수 없으
니 자연 완치 방법도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절망감이 앞선다. 이런 상태로 일생을 살아야 하
나? 여의사였다. 처음부터 환자를 대하는 말투가 쌀쌀 맞다 했더니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는 그날은
아주 매정하게까지 느껴졌다. 당분간은 2주마다 오셔서 치료를 받으라 한다. 상태가 더 나아지면
그만 오시고 그 후엔 아프면 오시란다.
내 여동생이 관절에 문제가 생겨 다니던 병원이 있었다. 동생 말이 척추협착증을 수술하지 않고 치
료하기로 이름 난 의사가 그 병원에 있단다. 주저 없이 찾아갔다. 진료를 받고 아주 비싼 주사도 맞
고 물리 치료에 처방약도 받아왔다. 한 달 후에 오란다. 적어도 주사를 세 번은 맞아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 부치며. 그 의사의 치료를 받은 이후로 걷기가 평소와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호전되
었다. 거의 정상인 상태로 호전된 걸 믿고 중남미 여행을 예약하였다. 의사에게 그 말을 하니 현재의
내 상태를 들어보고는 다녀오시라고 선선히 응대 해 준다. 그날도 비싼 주사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3주간의 긴 여행을 비행기를 17번이나 갈아타며 갔다 왔으나 여행 중 아무 불편도 없었다. 예약 날짜
에 의사에게 갔다. 별 불편 없이 잘 다녀왔다 하니 의사가 아주 반색하며 곧바로 악수를 청하며 ”축하
합니다.“ 한다. 더 이상 병원에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혹시라도 이상 증세가 온다면 오시라고 한
다. 그날은 주사도 물리치료도 받지 않고 진료를 끝내었다. 뛸 듯이 기뻤고 환희에 찬 얼굴로 감사의
말을 하였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멋진 유쾌한 의사였다.
다리에 이상이 온 이후 그 즐기던 테니스도 골프도 접었다. 설악산 종주야 더 엄두도 못 냈다. 일 년에
몇 번 한 두 시간여 등산이나 즐긴다. 그 후 지금까지 9년이 흘렀다. 나이도 나이이니 예전 같지는 않지
만 그런대로 정상 생활을 죽 이어가고 있다. 그 후 해외여행도 국내 여행도 몇 번이나 하였다. 지난겨울
엔 40여 일 외국에서 지내다 왔고 며칠 전에는 사진 출사 가서 1만 3천보도 넘게 걷기도 하였다.
첫 번째 의사는 사진 판독을 하고도 오진을 하였다. 고생, 고생만 했다. 두 번째 의사는 척추 상태가 호전
되지 않을 터이니 증상이 나타나면 그 때마다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그 의사의 치료로 걷기는 좀 나아졌
으나 일말의 회생의 희망마저 잃게 하였다. 세 번째 의사는 병을 고쳐 주고 확인이 되니 축하한다고 악수
까지 청하며 더 이상 병원을 오지 말라고 하였다. 나에게 건강회복과 기쁨을 선물하였다.
나라는 한 환자가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는데 이런 세 의사를 만났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의사라도 그
런 판단을 내릴 수 있기야 하겠지만 건강을 되찾은 이후 살아가면서도 언뜻언뜻 세 의사가 비교가 되며
떠오른다. 세 번째 의사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게 한 건 요즈음 정부와 의사들의 대립 때문이었다. 의대 학생 증원 문제로 의
료대란이란 말로까지 표현되는 정부와 의협이 대치중이다. 갑작스런 정부의 발표와 그 안을 철회하려는
의협간의 타협은 아직도 두 달이 가까워 와도 계속 중이다.
의협의 어느 분은 정부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 방법은 의사 증원 문제가 제
기될 때마다 이제까지 그들이 행하여 온 환자 치료 거부다. 병원을 떠나는 거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것
같다. 거의 전 의사가 합세한다. 총대는 수련의가 잡는다. 의협이 뒤를 밀어준다. 이번 사태는 학생까지 합
류하였다. 교수는 교수대로 사직서를 낸다. 허, 참.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우리야 왈가왈부에 끼어들 처지는 되지 못하지만 의사들의 거친 말과 치료 거부도
불사하며 병원을 떠나는집단행동은 지나치다는 말도 모자를 만큼 언제나 도를 넘어선다. 그들의 반대는 자
기 지갑 챙기기가 최우선인 것 같다. 참 뻔뻔스럽고 저열한 의사집단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첫댓글 같은 병을 가지고 의사마다 진단과 처방이 달라지는군요.
정말 본인하고 맞는 의사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인공관절수술을 했지만 좋은 분을 만나서 별 탈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한 번 출사 나가면 만오천보는 보통이에요.
좋은 분 만나서 잘 치료하시고 여행도 잘 다니시니 다행입니다.
그래요.
늘 고마워 하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