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지만 그래도 아직은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3월 어느날 천안의 몇몇 문화재를 만나고 왔다. 상당수는 이왕에 만난 일이 있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 흔적 중 우선 석탑만을 가려 별도의 글로 보인다. 천안의 석탑들은 보물이 하나 있지만 대체로 조형적으로 그다지 빼어난 편은 아니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다. 대략적인 동선은 천안의 최남단인 광덕면부터 시작하여 북쪽으로 올라오는 방향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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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삼층석탑(廣德寺三層石塔)은 광덕사 대웅전 앞에 있는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으로 높이 2.8m이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넓고 높직한 장대석 3매를 결구하여 지대석을 이루고 그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이중기단 중 하층기단 면석에는 가운데에 귀꽃이 소담스레 피어난 안상이 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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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의 초층탑신석 한쪽 면에는 문비형(門扉形)을 조각해 놓았는데, 그 문고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탑신석 조성방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1층만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2, 3층 탑신석은 각각 아래층 옥개석과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이렇듯 옥개석과 그 위층의 탑신석이 하나의 석재로 조성된 예는 고려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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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삼거리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인근에 흥타령관, 천안박물관, 천안삼거리주막이라는 이름의 먹거리촌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 공원에 삼용동삼층석탑(三龍洞三層石塔)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석탑 하나가 있다. 현재 전체 높이는 270㎝라지만 보완한 부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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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 지대석과 일석으로 조성한 아래층 기단에는 한 면에 2개씩 안상(眼象)을 옅게 새겨 놓았고, 탑신의 세 옥개석은 밑면에 2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에는 반전이 있으나 파손이 심하다. 1961년 안서동에 사는 주민이 밭을 갈다가 유려왕사(留麗王寺) 터에서 발견하였으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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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 때조차도 존재 자체를 몰랐던 석탑재 하나를 제외하곤 천안시 소재 석탑(석탑재 포함)은 이왕에 다 만난 일이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보고서-세종 충남편-(2014년 12월 발간)에 내가 몰랐던 석탑 하나가 수록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산리사지석탑재가 그것으로 장산리석불입상에서 불과 300m 남짓한 거리에 있는,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142-2번지 장명낙원의집(마을회관) 바로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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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리사지는 장산1리 장명마을에 있다. 사지로 추정되는 곳은 장명마을 남쪽으로 펼쳐진 평탄지 일원으로 1996년 기조사 자료에는 마을 일원에 석조유물이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현재 장명낙원의집 주변으로 모두 옮겨져 있다. 마을회관 뒤쪽에 있는 석탑은 원위치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오래 전부터 마을에 전해져오던 것이라고 한다. 나도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 한분께 여쭤봤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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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재는 총 9매가 전하고 있다. 지대석처럼 최하부에 놓여 있는 석탑재 둘은 하층 기단면석으로 길이 100~113cm 남짓이다. 이 부재들은 현재 잔디에 덮여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위에 있는 석탑재는 하층기단갑석으로 123*132*12cm 크기이다. 상면에는 각호각형의 괴임이 마련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에 내림마루가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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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는 66*68*46cm 크기로 너비 10.5cm의 우주가 있는 기단중석, 89*87*14.5cm의 크기의 갑석이 있다. 갑석 하면에는 높이 2cm의 부연이 있으며, 상면에는 각형1단의 굄이 있고 네 모서리에 내림마루가 표현되어 있다. 기단중석은 굄에 딱 들어맞지 않고, 재질이 달라 다른 석탑 부재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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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 1층 옥신석처럼 올려놓은 부재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지 않으면서 형태도 정방형이 아니다. 42*42*48cm의 크기로 정면에 OO堂이라는 당호로 추정되는 명문이 각자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부재는 석탑과는 관련이 없고, 별도의 승탑재일 가능성이 있다. 그 위에는 옥개석, 옥신석, 옥개석이 올려져 있으며, 옥개석 층급받침은 모두 3단이다. 상부에는 석탑과 관련 없는 자연석이 상륜과 같은 모습으로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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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8매의 석탑재는 서로 크기가 맞지 않는 석탑재들을 쌓아올린 것으로 2기 이상의 석탑재와 석탑재 외의 부재가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석탑은 소규모의 삼층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제작시기는 고려전기 이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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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읍 동리 용화사지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입상과, 비지정 석불입상 및 석불좌상, 그리고 석탑부재가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조영되었 던 곳으로 사역의 전체 범위는 약 500여 평의 면적으로 추정된다. 용화사지 삼층석탑은 2010년 방문 당시만 해도 기단부 없이 석불 앞쪽 화단에 탑신부만 세워져 있었다. 1층 탑신은 뉘어진 상태로 결구되어 있었다. 당시 높이는 2.5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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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당시의 용화사지삼층석탑]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석불 우측에 새로운 이중기단의 기단부를 높직하게 마련하여 다시 세워놓았다. 평면 팔각의 지대석은 이미 석탑재가 아닐 것으로 본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이번 복구에서 제외하여 원래의 자리에 남아 있다. 아쉬운 것은 한쪽 우주부분이 잘려나간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1층 옥신석을 살리지 못하고 신재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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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신석은 1층부터 너비는 69-53-41, 우주 폭은 12-10.5-9로 체감되고, 높이는 45-37-25.5로 줄어든다.[이 수치는 복원하기 전 석탑 기준이다.] 2층 옥신석 한 면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는데 상하 인방과 비교적 보기 힘든 빗장 형태의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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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석 폭은 115-109-87로 줄어들고, 높이는 46.5-35-35.5의 비율을 보인다. 층급받침은 4-3-3으로 변화를 보이는 석탑이다. 이 석탑은 평박한 층급받침, 문비의 독특한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중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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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읍으로 넘어간다. 천흥사지의 당간지주와 석탑은 우선 지나치고 만일사 晩日寺)로 향하는데 3.5km가 넘는 이 길은 포장은 깔끔하게 되어 있지만 마주 오는 차를 비끼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이다. 만일사에 들어서면 정면에 관음전이 보이고, 우측 언덕 위에 오층석탑이 있다. 석탑은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 2.27m의 규모로 암반 위 지대석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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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사오층석탑의 큰 특징은 독특한 상기단 갑석과 탑신석 전층 사방불 조식으로 볼 수 있다. 기단부는 하대중석, 상대중석, 상대갑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대중석의 각 모서리에는 우주와 안상을 얕게 새겨 놓았다. 상대갑석 밑면에는 부연이 조식되어 있고, 상면에서 측면 상단까지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각 면에 4개씩의 안상이 조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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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의 각 모서리에도 우주를 새겼다는 설명도 있지만 우주라기보다는 2~2겹의 네모난 상자를 새겼다고 봐야할 것 같다. 특히 5개층의 탑신 각 면마다 여래좌상(如來坐像)이 조각되어 있어 비교적 드문 전층 사방불 조식석탑 가운데 하나다. 대략 고려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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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탑 옆에는 심하게 부서진 석탑재 5개가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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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지(天興寺址)로 내려간다. 천흥사는 921년(고려 태조 4)에 창건된 후 1010년(현종 원년)에 대대적인 불사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폐사되어 지금은 그 절터와 오층 석탑 1기와 당간 지주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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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천흥사지오층석탑은 천안지역 석탑 중 유일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354호)이며, 이 터에서 발견되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제280호]’과 비슷한 1010년(고려 현종 원년)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본다. 석탑의 전체적인 양식은 신라의 석탑을 계승하고 세부 양식에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전형적인 고려전기의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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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의 높이는 5.27m로 기단부에서는 하층기단 중석의 각 면에는 각기 일곱 개의 안상(眼象)이 조밀하게 조각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띠는 특징이다. 탑신부는 전반적으로 탑신석의 너비나 높이에 비해 옥개석이 좁고 낮은데다 처마의 귀퉁이와 낙수면에서도 현저한 반전을 보여 쉬 볼 수 없는 미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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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에서는 만나지 못한 석탑(재) 셋을 이어 소개한다. 성환읍 대홍리에 있는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사적갈비 옆에는 온전치 못한 삼층석탑이 서 있다. 석탑재는 많은 부재가 결실된 상태로, 옥개석 1매, 탑신석 1매, 기단석 2매, 지대석 추정 3매의 석재가 남아 있다. 하층기단으로 추정되는 석재 각면에는 4구씩의 안상이 새겨졌고-그러고 보면 천안지역 석탑에는 안상이 새겨진 경우가 무척 많다- 상부에는 각호형의 굄이 마련되어 있다. 기단부 크기로 보아 소규모의 석탑으로 창건 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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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읍 서흥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절터에도 ‘서흥리사지석탑’이라 불리는 탑이 있다. 총 9매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최상층 부재는 갑석의 결락된 모서리 부분이므로 8매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부분이 불완전하지만 연화문이 새겨진 하층기단 등 눈여겨볼만한 부분도 있다. 소규모의 오층석탑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려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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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면 봉양리 절터에도 ‘봉양리사지석탑’로 불리는 옥개석과 옥신석이 남아 있다. 집 뒤 과일나무 사이에 힘겹게 서 있는 이 탑은 현재 지대석의 역할을 하는 큰 암석 위에 하나씩의 옥신석과 옥개석만 남아있는 것으로 사지 내에서 반출되어 그 부재의 일부만 여기에 재조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옥개석은 1매의 별석으로 조성했고, 탑신석은 판석과 방형 석재 1매가 결합된 형태이다. 옥개석은 4단의 층급받침이 있으며 조형적으로 꽤 뛰어난 삼층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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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천안답사 때 삼태리마애불을 보기 위해 두 번째로 풍세면 삼태리사지를 들렀는데 이곳에 석탑재가 있다는 것은 까맣게 몰랐다. 이미 이곳을 떠나 다른 곳을 답사하던 중 쥔장님이 알려주셨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국의사지』에 사진과 함께 설명이 나오는데 옥개석 2매와 탑신석 1매로 이뤄져 있다. 태학사 뒤편 잔디공원이 조성된 지역에서 발견되어 태학사 산신각 옆으로 옮겨져 있으며, 탑신석은 너비와 두께 30cm 남짓, 옥개석은 각각 너비 55, 49cm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소형석탑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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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리사지 석탑 부재: 선과님 제공]
[인용설명문 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의사지-세종․충남편, 향토문화전자대전]
첫댓글 장신리석탑 다음주 토욜 홍성 가는 길에 뵐 예정. 감사합니다.
삼태리사지까지는 좀 멀까요....
조사가 미흡하여 쥔장님이 알려주시기 전까지 알지 못하여 놓친 것이 아쉽습니다.
@시니브로 옛님방에 사진 있습니다. 톡으로 보낼테니 추가하십시요 ㅎㅎ
@선과 감사합니다^^
비지정석탑 은 미답지 입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요. 봉양리 서흥리 등은 이미 오래 전에 카페에 올라와 있을 겁니다~
어~~언제 만일사 오층석탑의 기단부 갑석(상대석)이 뒤집혀져 있었지요,,,,,
2000년 이전에는 현재상태의 반대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최소한 2010년 이후에는 현재의 상태네요. 현재 상태가 맞는 것 아닌지요?
@시니브로 현재 상태가 맞는다면 2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1.현재 상태로 보면 기단갑석 상면에 연화문이 조식된 석탑으로 보아야 하는데 연화문과 초층탑신석과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2.가장 큰 문제점인데 현존하는 석탑 중 기단갑석 면석에 안상이 새겨진 석탑은 모두 연화문 위에 배치되어 있고 본문처럼 연화문 아래에 배치된 석탑은 없다는 점입니다.
해서 현재 상태는 반대로 배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달넘새 현장에서 보면서 1번은 조금 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2번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의문조차 가질 수 없었고요. 상세사진도 다시 검토해보고 작례도 찾아보며 공부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留麗王寺
절 이름이 심상치 않네요....
고려 태조사 머물렀다는 왕자산 마점사라는 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