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X에 당하다.
⑴ 군 제대(라기보단 방위병 소집해제)후 나는 곧바로 일반예비군으로 편성되어 나보다는 족히 예닐곱살이상은 많을 듯한 BOK(BANK OF KOREA)의 늙수그레한 예비군들과 같이 훈련을 받게되었다. 이 예비군 훈련의 백미는 훈련이 끝난 뒤 집으로 귀가하는 대절버스안에서 같은 사무실의 직원들과 눈짓을 주고 받아 가까운 전철역에 이르기 전 어떻게든 중도에 버스에서 내려 민가(라기보단 이를 빙자한 영양탕집)를 찾아들어가서는 전골을 머릿수대로 주문해 놓고서 벌리는 고스톱판이었다. 남들보다 탕을 선호하는 이는 탕이 떨어질때까지 광을 파는데 중점을 둔 처신을 주로하고 나같이 돈 벌이에 급급하는 이들은 드물게 부루스타곁으로 가곤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 해가 가기전에 어떻게든 예비군계에서 본인의 훈련출석을 때워주길 바래서 예비군계의 골치를 썩히곤하는가 했지만 우리 과의 탕맨들은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출석률을 보였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예비군 훈련장에 아침 일찍 도착하여 간단한 요기거리를 사고 당연한 듯이 담배 한 갑에 불티나 라이타를 구입한 나는 무언가 뒷 골이 땡기는 느낌을 받는다. 아! 고가 판매. 이글중 밝히겠지만 평소의 무던한 성격탓에 그냥 넘어가버린 예비군 훈련장 PX 방위병이 불과 몇 년전만해도 같은 입장이었던 선배 육군 복지단 소속 방위병 출신에게 떠넘긴 물품 고가 판매. 내가 당하다니. 씁쓸할 수 밖에. 현역 시절 그 분야에 탁월했으며 불후의 솜씨를 보였던 내가 결국은 당하고 말았다.
⑵ 남대문시장입구에 지금으로서는 별로 우아하지않은 그렇다고해서 내가 주로 활약했던 1982년부터 1987년무렵에도 우아하지 않은 BOK 조사부 등이 입주하고 있던 건물인 대한화재보험Bld.에 어느날 지모 선배가 찾아 왔다. 조금은 의기소침한듯한 표정의 그와 한과점 보름에서 고가의 쌍화차를 앞에 두고서 그가 나에게 온 용건은 내가 바로 한달 전만해도 근무하고 있던 육군사관학교 사병PX의 결산결과와 그 펑크에 대한 읍소였다. 내가 같이 있을 때야 월급에서 기본급은 수령하고 있던 우월한 처지의 나에 의해 쉽사리 처분될 사안이었으나 이제 나는 영외자아닌가? 그러나 어디 감히 PX의 결산이 펑크를 용납하리요. 결국은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자금을 구하러 그는 나를 찾은 것.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너무나 동정적이었다. 불과 몇 달전만해도 미우나 고우나 한 배를 탔던 동료 방위병이 아니었던가. 월요일의 휴식도 반납하고 나를 찾은 그에게 가계수표 한 장이 조만간 반환할 것을 약속하며 건네졌다. 그러나 우리 상고 출신으로 참으로 드문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79학번인 그는 그일 이 있은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느곳에서도 종적을 보이지 않고 있다.
★ 육사 PX 이야기
⑴ 방위병 훈련소인 57사단에서 무난히 훈련을 마치고 내가 가게된 근무지는 육군사관학교. 몇 몇의 동기들과 한 후미진 장소에서 각 부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장 먼저 우리들을 찾은 사람은 사병 PX의 조모 상사님. 요즘이야 '스펙'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어 버려 흔히 쓰이지만 그 당시엔 그런 말이 거의 쓰이지 않았고 그저 경력사항이었는데 조 상사님은 우리 일행들에게 대뜸 은행 경력이 있는 사람?하고 물었다. 손을 들고 보니 나 혼자. 자네 어느 은행 다녔고 몇 개월 짜리 근무냐는 질문을 이어서 나에게 하였고, 나는 이실직고할 밖에. 6개월짜리라고? 흐흠. 그래도 한국은행이라. 좋았어. 자네 나 따라 오게나. 그날 부터 난 우리 상고출신의 선배기수 방위병에게 딱 한 대 뺨따귀를 맞은 적이 있었던 행복하고도 추억이 서린 방위병 시절에 입각한다. 육사 사병HQ와 사병 식당을 배후로 한 사병PX에서 내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홀 청소였고 점차 지평을 넓혀가 결국은 중차대한 보직인 판매병으로 보임받았다. 그리고 6개월 짜리 방위라는 것 때문에 선배 기수 방위병들이 매달 머리를 싸매며 물품 시재를 맞추곤 했던 결산업무에서도 열외가 되는 영광(?)도 부여받는 말그대로 만고.
⑵ PX의 물품판매는 구조적으로 펑크가 나게 마련이다. 물건을 사가는 이들(사병, 장교 및 그 부인들과 가족)이 거스름돈이 계산과 부족할 경우 이의 시정 조치를 요구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는 경우 비양심적인 이들을 포함하여 이에 관심이 없는 경우는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갈길을 가곤 하지않을까? 또한 물품 보관창고의 노후화 등으로 창고를 침입하여 물품에 훼손 및 취식을 하는 서생원들의 횡행도 만만치 않고, 더군다나 단순히 서리라고 판단해야할까를 망설이게하는 인쥐들의 처사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매월 결산때 일정액의 물품부족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결국 이를 벌충하기 위한 수단이 강구되어야만 했다. 말하자면 고가판매. 판매병으로 나선 나는 마치 암산왕이나 되는 듯이 공중에다 손가락으로 주판알을 튕기는 시늉을 하면서 구입하는 총 금액보다 100원 내지 200원 정도를 덧붙여 계산하여 판매를 한 뒤 고객이 물품을 갖고 돌아서면 고가판매한 금액만큼을 따로 떼어서 별도의 장소에 비축했던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런 방법으로 모아진 돈이 매월 결산시의 펑크에 요긴하게 씌여졌던 것이다.
⑶ 흔히들 PX하면 생각나는 물품이 바로 술일 것이다. 요즘이야 어떨지 확인한 바 없으나 그 당시 PX를 통한 대 장교앞 양주 지급은 병수제한이 있었으며 사병 등에 대한 지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운용의 묘미가 어찌 없었겠는가. 특히 육사 PX에 내가 있을 때에는 은행에서 기본급을 수령하고 있던 차여서 네다섯명의 방위병을 위한 거의 정례적인 우리 까리의 회식 자리를 위한 경비지출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우리라고 양주에 군침이 돌지 않았겠는가? 불과 반올림이 필요없는 몇 천원대의 양주를 빼돌릴 수 만 있다면. 한 번은 간 큰 우리 사병 PX의 방위병들이 어느 겨울 월요일의 PX 공식휴일을 이용하여 당일 치기로 원주의 치악산을 다니러 간 적이 있었다. 대뜸 좌판에 꺼내놓은 게 특급 군납용 양주 두 병. 근데 지나가다가 우리 일행의 작태를 본 한 사복의 중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내가 육본의 태권도 교관인데 아니 댁에들이 대관절 어느 보직에 계신줄 모르겠으나 이렇게 대담하게 자리를 펼쳐 놓으신 것을 보니 대단합니다. 하고 말을 건네더니만 뭔가 짚히는 게 있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더이상 시비를 걸지않고 지나쳐가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⑷ 물론 사병 PX말고도 육사내에는 생도 PX가 있으나 그쪽 근무 방위병의 인적구성원이 우리와는 많이 달랐던 시절이다보니 그들보다는 지리적으로 조금 떨어진 육사 건너편의 국가대표 사격단 PX 방위병들과 많이 어룰렸던 것은 그들중 은행원 출신이 대부분이었고 그중 한 명은 조흥은행 출신의 나의 상고 동기였던 까닭이었다. 그들과 무슨 종목으로 자웅을 겨루었냐면 한달에 두어번 있었던 빌리어즈 태그매치이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태릉 입구에서 벌어졌던 우리 동문끼리의 어떤 달을 결판짓는 일요일부터 월요일에 걸쳐의 승부였는데 마지막 위닝샷을 득의의 원쿠션뒤걸어치기 쓰리쿠션으로 내가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날의 모든 밤샘 경비였던 식대, 담배값 및 게임비 등은 바로 사격단 PX가 물을 수 밖에.
⑸ 육사내에서 PX의 독보적인 위치는 바로 '돈'때문일 것이다. 판매병이었던 내게 드문드문 하달되는 업무가 가계수표 무이자회전이었다. 급전이 필요한 장교들이 가계수표를 가져오면 이를 현금화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날에 은행에 교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인데 이때문에 나는 몇몇의 장교들과 은연중 아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고 그중에 화학과 모 교수로부터는 오래전 내가 불과 만 두살 때 돌아가신 엄친의 사망에 대한 단서를 듣게 된다. 약주를 즐기셨지만 그닥 많은 양의 약주를 하지 않은 날, 동네 지인으로 부터 전해 받은 소량의 술잔때문에 각혈을 하시고는 이것이 빌미가 되어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나의 얘기를 들은 그 교수의 추측은 아마도 담근지 1년 이상이 된 산성술을 드신 것같다는 것이었다. 산성술은 1년내에 마시지않으면 독이 된다고 보는게 원칙인데 이것이 알카리성 술과의 차이점이란 첨언도 함께 들었다. 한편 PX의 위세는 육사내 어느곳에서든 통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장교나 군무원 전용인 출근버스를 편승할 수 있도록 조치를 받았던 것도 그러거니와 어느날엔가 편도가 퉁퉁 부은 내게 의무실에서의 무료 시술의 은전까지도 베풀어졌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