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꽤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오랫동안 준비한 것보다 뜻밖의 여정같은 느낌으로 단기간에 결정한 일이라 일본어는 형편 없었고 일본 사정도 잘 몰라 고생 좀 했다.
한국에서의 전공과목이 학점으로
인정되어 사회복지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당시(20년 전) 한 학기 등록금이 40만엔 정도라 편입은 이득이었지만 언어 때문에 학업은 꽤 벅찼다. 전자사전을 늘 끼고 살았고 교수님 강의를 녹음해 밤 늦게까지 듣고 필기하고 모르는 건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세월은 대학 때 배운 지식과 어린 동기들을 자연스레 기억 저 어딘가에 까무룩하게 잠재웠는데 유독 잊혀지지 않는 단어가 있었다.
그건 '노멀라이제이션 ' 이란 이념이다.
사회가 이제는 이 이념의 흐름을 따라야한다는
걸 대학에서부터 사상주입하 듯 가르쳤다.
리포트, 토론, 실습, 시험 등 메인 메뉴로 늘 입에 올라왔다.. 아래 사진은 내가 쓴 리포트인데
어딘가에 노멀라이제이션 이념이 한자리 꼭 차지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컴퓨터라는 문명의 도구로 리포트 제출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당시 일본은 생활수준과 IT 인프라 간 간극이 꽤 컸고 대학생들이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한국은 요즘 탈시설이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장애에 따라 찬반 여론으로도 분열되고 있다.
이론은 파라다이스 같으나 현실적 대안이 미숙하니 자칫 밥그릇 투쟁처럼 비춰지는 게 안타깝다..
일본도 우리처럼 장애당사자 간 분열과 합의 등 치열한 과도기가 있었을 거다..
내가 경험한 2004년 일본은 이미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지역 사회에서 모델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4학년(2004년)이 되면 1학기, 2학기 때 복지시설 현장실습을 각 2주간 나가야 한다.
나는 1학기 때 지적장애자 갱생시설,
2학기 때는 주간보호작업장 및 주간활동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1학기 때 실습 나간 시설이 현재 생각해 보면 탈시설 모델로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
일본 각지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는데 그중 일본 최초로 장애인도 입욕의 즐거움(일본 목욕 문화 반영)을 누릴 수 있게 만든 욕조가 세심한 서비스 1위 아이템으로 시선을 끌었다.
실습 당시는 시설 운영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고 여기저기서 실습을 하느라 전체적인 이미지가 안보였는데 지금 보니 이걸 20년 전에 했다고?
복지 선진국이었네 하는 부러운 마음이 일어날 만큼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게 느껴진다.
사회복지 실습일지를 통해 당시 일본의 복지 현황과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고 뿌리내려 어울려 살아가는 지 이걸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 용기내어 글을 써본다.
1학기 2주간 실습일지를 다 소개하는 건
분량도 많고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사건사고
중심으로 몇가지만 공유하고 싶다.
* 실습기관 베니시다의 집
* 실습시기 2004년 6월 28일~7월 10일
기관 현황표(시설용) 2004년 기준
* 시설명..베니시다의 집(95년 9월 설립)
* 직원수.. 36명
소장1, 부소장1, 지원인17, 간호사1, 사무원1, 영양사1, 조리원3, 파트타임11
* 이용자수..남 21 / 여 9 총 30인
입소자는 30명인데 직원은 36명이다.
시설특징, 지도방침, 이용자에 관해(확대)
번역
굉장히 복잡한 구조인데 표를 풀어보면
베니시다의 집은 보통 동네에 있는 입소시설이고
정원은 30명(남21/여9 )이다.
이용 장애별로 보면 자폐증15, 레녹스(뇌전증)1, 뇌성마비3, 소두증2, 기타9
연령대는 20대 15, 30대 13, 40대 2
시설 정원은 30명인데 자립 훈련을 통해 서서히
소규모 입소시설인 그룹홈으로 자립시켜 나간다. 최종목표는 그룹홈이지만 적응하지 못할 시 언제든지 베니시다의 집에서도 지낼 수 있다. (보호자의 의견도 반영)
입소시설에서 바로 그룹홈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자활훈련동에서 적응훈련을 한 후 그룹홈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당시 베니시다의 집 이용자 중 8명이 자활훈련동에 있었고 시설에는 22명이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모체인 베니시다의 집ㅡ>자활훈련동ㅡ>그룹홈
그룹홈은 반드시 시설 이용자만 이용하는 게 아니다. 표를 보면 베니시다의 집 이용자와 재택 이용자가 섞여 있다. 그룹홈이 4-7인 규모지만
여기도 결국 입소시설이다. 탈시설을 했다고 해서 다 자택에서 수용할 필요가 없다..지역내에서는 좀 더 작은 단위의 입소시설이 운영에 효율적일 것이다..
그룹홈은 대부분 베니시다의 집 근처에 있어
다들 아침이면 도보로 출퇴근을 한다. 그룹홈 시설에 작업장이 있는 경우도 있고( 박스접기 등) 부품조립 같은 작업장은 베니시다의 집에 있기에 시설에서 그룹홈에서 자택에서 출근한다.
당시는 그룹홈이 3곳이었는데 현재 검색결과 7개정도가 나오고 단순작업에서 세탁소, 빵집, 카페 등 직업 영역도 넓혀 지역에서 탄탄히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베니시다의 집 제2 작업실
2층이 거주공간, 1층은 작업실
다음편 예고..
이용자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가?
어느 보호자는 나에게 'もう死んでも安心'
(이제 죽어도 안심) 이라고 했다.
첫댓글 이제 죽어도 안심 이란 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당시 제 감정을 회상해 보면
시설이긴 하지만 가정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부모가 평생 안심할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희망적인 귀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이 최근 환율이 오르고 물가가 상승하고 있어서 20년간 물가상승이 없던 시대를 경험하던 사회에서 장애인의 임금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 집니다.
임금 관련 정보가 있다면 공유 부탁 드려요.
임금관련 정보는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찾아봐서 실습경험과 함께 올려보겠습니다.
너무 소중한 경험 감사합니다~♡
탈시설이니 자립이니 싸움 붙일게 아닌데 20년전에 시스템이 지금은 얼마나 더 발전했을지 지금당장 그대로 도입되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설 입소자가 꼭 자립하지 말라는 법 없고 자택 장애인이 시설 입소 하지 말라는 법 없이 입소시설의 다양화와 자립의 지원구조를 좀더 꼼꼼히 짜 봤으면 좋겠어요.
발달장애인 복지 부분에서 일본이 확실히 우리보다 선진국이네요.
소중한 내용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럽습니다
맞아요. 부러워 죽겠어요..
부럽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일본은 앞서 있었군요
지금은 우리나라 시설들도 대부분 저러한걸로 알고 있습니다(올해 서울시에서는 일자형 거주시설을 가정형으로 바꾸도록 지원해주고 있음 )
20년전 시설 견학을 다닐땐 참으로 열악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외국에서 한국으로 견학오는 시설들도 제법 있습니다
시설이 가정집처럼 꾸며져있고
화장실도 두군데 이상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바뀌어 낯설어도
가족구성원이 바뀌지 않으니
외로움타지 않아 좋은것 같아요
자립을 원하는 사람은 자립을
시설을 원하는 사람은 시설에서 살도록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늙고 연로할때 선택할 시설의 존치도 자립생활만큼 중요하기에 이렇게 글 남겨봅니다
저는 지금 죽어도
죽을 상황이 와도 아들 걱정을 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걱정꺼리가 사라지니
죽음까지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립도 중요하고
시설존치도 중요함을 얘기해주는 부분도
공감합니다
외국의 좋은 사례 감사합니다
현재의 외국 자립추진상황이나
시설방향도 궁금합니다
일본에서는 다시 공동생활을 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것 같습니다
외로움
즉
고립된 생활때문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시설들도 좋아지고 있군요. 그룹홈도 제법 있던데
저도 이제는 우리나라 시설들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겠어요.. 아드님 걱정 안하신다니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생활하시는 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