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옹은 말하기를,
“옛날의 들음에 집착한 자와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할 수 없고, 이길 마음에 버릇된 자와 더불어 언쟁할 수 없다. 도를 들으려거든 너의 옛날의 들음을 씻어버리고 너의 이기려는 마음을 버리라. 마음을 비우고 입을 삼가는데 내 어찌 숨기겠느냐?
대저 크고 넓은 하늘[太虛]은 육합(六合)의 구분도 없는데 어찌 위와 아래가 있겠느냐?
또 대답해 보라. 네 발은 땅에 떨어지는데 네 머리는 하늘에 떨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냐?”
“이것은 위와 아래의 형세가 그렇게 된 때문입니다.”
“그렇다. 내가 또 너에게 묻겠다. 너의 가슴이 남쪽으로 떨어지지 아니하고 너의 등이 북쪽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너의 왼쪽 어깨도 동쪽으로 떨어지지 아니하고 오른쪽 어깨가 서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였다. 허자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는 남쪽ㆍ북쪽과 동쪽ㆍ서쪽엔 그러한 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니, 실옹도 웃고 말하기를,
“총명하다. 더불어 도(道)를 이야기할 만하다. 이제 이 땅과 해와 달과 별의 상하가 없는 것은 또한 너의 몸에 동ㆍ서와 남ㆍ북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 땅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데는 누구나 괴이하게 여기면서 해ㆍ달ㆍ별이 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대저 해와 달과 별은 하늘로 올라가도 오르는 것이 아니며 땅으로 내려와도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달리어 항상 머물러 있다. 하늘이 상하가 없는 것은 분명한데도 세상 사람들은 일상 소견에 젖어 있어 그 까닭을 찾아보지 않는다. 진실로 그 까닭을 찾아보면 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저 땅덩이는 하루 동안에 한 바퀴를 도는데, 땅 둘레는 9만 리이고 하루는 12시(時)이다. 9만 리 넓은 둘레를 12시간에 도니,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 빠른 셈이다. 땅이 이미 빨리 돌매 하늘 기(氣)와 격하게 부딪치며 허공에서 쌓이고 땅에서 모이게 되니, 이리하여 상하의 세력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지면(地面)의 세력이다. 땅에서 멀다면 이런 세력이 없을 것이다. 또는 자석(磁石)은 무쇠를 당기고 호박(琥珀)은 지푸라기를 끌어당기게 되니, 근본이 같은 것끼리 서로 작용함은 물(物)의 이치다.
이러므로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해에 근본한 때문이요, 조수(潮水)가 위로 솟는 것은 달에 근본한 때문이며, 온갖 물(物)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땅에 근본한 때문이다.
지금 사람은 지면(地面)의 상하만 보고 망령되이 하늘의 정해진 세력을 짐작하면서 땅 둘레에 모이는 기(氣)는 살피지 않으니, 또한 좁은 소견이 아니냐?
또 모두 이르기를 ‘하해(河海)의 물과 인물(人物)의 유가 한 면(面)에 모여 살게 되고 이ㆍ하(夷夏 오랑캐와 중국)의 수만 리가 먼 데나 가까운 데나 고루 판판한 바,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저 태산(泰山)과 거악(巨嶽)과 해외에 있는 나라끼리도 한번 보아 다 알 수 있다.’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일찍이 사람의 눈은 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치로 보아 혹 그럴지도 모릅니다.”
실옹이 말하기를,
“사람의 눈이란 진실로 한도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바다에서 보면 해와 달이 바다에서 나왔다가 바다로 들어가 보이고, 들에서 바라보면 해와 달이 들에서 나왔다가 들로 들어가 보인다. 하늘은 바다와 맞닿고 들은 막힘이 없으니 ‘눈은 한도가 있다.’는 말은 될 수 없다.
땅 측량은 하늘 측량에 표준하고, 하늘 측량은 남북 양극(兩極)에 근본한다. 하늘 측량하는 방법에 날[經]과 씨[緯]가 있다. 이러므로 선(線)을 드리워 놓고 그 직선(直線)의 도수[度]를 우러러 측량하는 것을 일러 천정(天頂)이라 하고, 극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를 측량하는 것을 기하 위도(幾何緯度)라 한다.
지금 중국에서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으로, 북쪽에 악라(鄂羅)가 있고 남쪽에 진랍(眞臘)이 있다. 악라의 천정은 북쪽으로 북극(北極)과의 거리가 20도(度)요, 진랍의 천정은 남쪽으로 남극(南極)과의 거리가 60도(度)가 되며, 두 천정의 상거(相距)는 90도가 되고 두 지역의 상거는 2만 2천 5백 리가 된다. 이러므로, 악라 사람은 악라로써 정계(正界)를 삼고 진랍으로써 횡계(橫界)를 삼으며, 진랍 사람은 진랍으로써 정계를 삼고 악라로써 횡계를 삼는다.
또 중국은 서양(西洋)에 대해서 경도(經度)의 차이가 1백 80도에 이르는데, 중국 사람은 중국을 정계로 삼고 서양으로써 도계(倒界)를 삼으며, 서양 사람은 서양을 정계로 삼고 중국으로써 도계를 삼는다. 그러나 실에 있어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으로서 지역에 따라 다 그러하니, 횡(橫)이나 도(倒)할 것 없이 다 정계다.
세상 사람은 옛 습관에 안착하여, 살피지 않는다. 이치가 눈앞에 있는데도 일찍이 연구하여 찾지 않는 때문에 일평생을 하늘을 이고 땅을 밟건만 그 심정과 현상에 캄캄하다. 오직 서양 어떤 지역은 지혜와 기술이 정밀하고 소상하여 측량에 있어서는 해박하고 자세하다. 땅을 지구(地球)라고 하는 설은 다시 의심할 여지도 없다.”
“지구의 체와 상하의 세력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신대로 믿겠습니다. 감히 묻건대, 땅덩어리의 회전이 그처럼 빠르고, 부딪는 기운도 그처럼 격렬하다면 그 힘이 반드시 맹렬할 터인데, 사람이나 다른 사물이 쓰러지고 넘어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실옹이 말하기를,
“온갖 물(物)이 생겨날 때는 모두 기(氣)가 있어, 그것이 휩싸고 있기 때문이다. 체(體)는 크기가 있고 기(氣)는 두께가 있으니, 마치 새알의 노른자의 흰자가 서로 붙어 있는 것과 같다.
땅은 덩어리도 크거니와, 싸고 있는 기운 또한 두껍다. 이것이 엉켜 뭉쳐져 하나의 공 모양을 이루어서 허공에서 돌게 된다. 천지의 두 기(氣)가 같고 비비는 즈음에 서로 빨리 부딪치는 것을 술사(術士)는 측량하여 강풍(罡風)이라 한다. 이 바깥은 크고 넓고 깨끗하고 고요할 뿐이다.
천지의 두 기가 서로 부딪쳐 땅으로 모이는데 마치 강과 하수의 물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소용돌이를 이루듯 한다. 상하의 세력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치 새가 공중에서 날고 구름은 피어나며 걷혀 물고기와 용은 물에서 놀고 쥐는 땅으로 다니듯, 모여진 기(氣)에서 활동하여 넘어지거나 쓰러질 염려가 없거늘, 하물며 지면에 붙어 있는 인ㆍ물이겠는가?
또 너는 너무도 생각지 못하는구나. 지구가 돌고 하늘이 운행함은 그 형세가 같은 것이다.
만약 쌓여진 기(氣)의 달림이 회오리바람보다 더 사납다면 인ㆍ물의 쓰러지고 넘어짐이 반드시 갑절이나 될 것이다. 개미가 맷돌에 붙어 빨리 돌다가 바람을 만나 쓰러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하늘의 운행은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땅의 회전에만 의심하니, 생각의 못 미침이 심하도다.”
“그러나 서양 사람의 정밀하고 자세함은 이미 ‘하늘은 운행하고 땅은 고요하다.’고 하였고, 중국의 성인(聖人) 공자께서도 또한 ‘하늘의 운행은 굳세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말들은 모두 잘못입니까?”
“좋도다. 너의 물음이여! 백성은 이치대로 말미암도록은 할 수 있어도 이치를 알도록 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니, 군자(君子)는 풍속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고, 지혜로운 자는 알맞음을 좇아 세상에 말을 세울[立言] 뿐이다. 땅은 고요하고 하늘이 운행한다는 말은 사람들의 평범한 견해로 백성의 뜻에 해로울 것 없고 책력(冊曆)을 만들어 반포하는데도 어그러질 것이 없으니, 이로 인해 다스림을 마련하는 것이 또한 가하지 않겠느냐?
송(宋) 나라 장자후(張子厚)가 이 뜻을 조금 발명했으며 서양 사람도 또한 주행안행설(舟行岸行說)로써 추설(推說)하였는데, 매우 분명하다. 그 측후(測候)에 있어서는 오로지 천운(天運)설을 주로 하는 것이 추보(推步)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하늘이 운행하는 것과 땅이 회전하는 것은 그 형세가 마찬가지며 나누어 말할 필요가 없다. 오직 9만 리를 한 바퀴 도는데 빠르기가 이와 같다. 저 성계(星界)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겨우 반경(半徑) 밖에 되지 않는데도 오히려 몇 천만 억인지도 알 수 없거늘, 더구나 성계 밖에도 또 별들[星辰]이 있음에랴? 공계(空界)도 다함이 없으면 별들도 또한 다함이 없으니, 그 한 바퀴를 말한다 하더라도 먼 거리는 이미 한량이 없다. 하루 동안에 그 도는 빠름을 생각해 본다면 번개나 포탄의 빠름으로도 여기에 견줄 수 없다. 이것은 추수(推數)를 잘하는 자도 능히 계산할 수 없고 말을 잘하는 자도 능히 이야기할 수 없다. 하늘이 운행한다는 설이 이치에 맞지 않음은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다.
또 내가 너에게 묻겠다. 세상 사람들은 천지를 이야기함에 있어 지계(地界)가 공계(空界)의 중심이 되며, 삼광(三光)의 두루 싸인 바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느냐?”
허자가 말하기를,
“칠정(七政)이 지구를 싼 것은 측후(測候)에 증거가 없으니 마땅히 의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 하늘에 가득한 별치고 세계로 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성계(星界)로부터 본다면 지계(地界)도 또한 한 개의 별이다. 한량없는 세계가 공계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이 지계만이 바로 중심에 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모두 세계로 되지 않음이 없고 모두 돌지 않음이 없다. 여러 다른 세계에서 보는 것도 이 지구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기 스스로 중심이라 하나니 각별히 모두가 세계로 된 것이다.
또 칠정이 지구를 휩싸고 있다는 것은 지구에서 보면 진실로 그렇게 되었으니, 지구로써 칠정의 중심이라 한다면 가하려니와, 바로 여러 성계의 중심이라 한다면 이것은 우물에 앉아 하늘 보는 소견이다.
이러므로 칠정의 체는 수레바퀴와 같이 스스로 돌고 연자매의 나귀처럼 두루 휩싸고 있다. 지구에서 볼 때 지구와 가까움으로 인하여 크게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해와 달이라 이르고 지구와 멀므로 인하여 작게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오성(五星)이라 부르지만 기실은 모두 성계(星界)이다.
대개 오위(五緯)는 해를 휩싸고 있어 해를 중심으로 삼고 해와 달은 지구를 휩싸고 있어 지구를 중심으로 삼는다. 금성(金星)과 수성(水星)은 해에 가깝게 있는 까닭에 지구와 달은 포권(包圈)밖에 있으며, 오위는 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지구와 달은 포권(包圈) 안에 있다. 금성과 수성 안의 수십 개의 작은 별은 모두 해를 중심으로 삼고, 오위 곁의 너덧개의 작은 별은 모두 각위(緯)를 중심한다. 지구에서 보는 관점이 이와 같다면 각계(各界)에서 보는 관점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럼으로써 지구가 해와 달의 중심은 되지만 오위의 중심은 될 수 없고 해가 오위의 중심은 되나 여러 성계의 중심은 될 수 없다. 해도 중심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지구에 있어서랴?”
“지구가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가르쳐 주심을 삼가 들었습니다. 감히 묻건대, 은하(銀河)는 어떤 세계입니까?”
“은하란 여러 세계를 묶은 한 세계로, 공계에 두루 돌아 한 큰 테두리를 이룬 것이다. 이 큰 테두리 가운데 많은 세계의 수효가 몇 천 몇 만이나 되는 바, 해와 지구 등의 세계도 그 중의 하나일 뿐, 이 은하는 하늘에 한 큰 세계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볼 때 이와 같을 뿐, 지구에서 보이는 외에도 은하 세계와 같은 것은 몇 천 몇 만 몇 억이나 되는 줄을 알 수 없으니, 나의 자그마한 눈에 의하여, 갑자기 은하가 가장 큰 세계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러므로 밝은 세계[明界], 어두운 세계[暗界], 따뜻한 세계[溫界], 추운 세계[冷界]가 모두 있는 것이다. 밝은 세계에 가깝게 있는 자는 밝음을 받기 때문에 밝다고 하고, 따뜻한 세계에 가까운 자는 따뜻함을 받기 때문에 따뜻하다 한다. 밝고 따뜻한 세계는 해의 세계이고 어둡고 추운 세계는 지구와 달의 세계이며, 어둡고 추우면서도 밝고 따뜻하게 된 세계는 지구와 달이니, 해의 광선(光線)을 가깝게 받는 세계다.”
“여러 별이 모두 제각기 한 세계라면 각 세계의 형용과 실정을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실옹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소요부(邵堯夫)는 ‘천지가 개벽(開闢)이 있는데, 일원(一元)인 12만 9천 6백 년으로써 개벽의 주기를 삼는다.’고 하여 크게 보았음[大觀]을 자부하였으며, 세상 사람 또한 대관으로 기대하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였다. 허자가 말하기를,
“개벽에 대한 주기는 말만 들었을 뿐, 그 이치는 능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하다. 체질(體質)이 있는 물(物)은 끝내는 반드시 괴멸하는 법이다. 엉키어 체질을 형성하고 녹아서 기(氣)로 되돌아 가게 되다니, 땅이 개벽이 있음은 이치로 보아 당연하다. 하지만 하늘이란 것은 빈기[虛氣]라, 한없이 크고 넓을 뿐 형체도 조짐도 없는데 열리어 무슨 물(物)을 이루며, 닫히어 무슨 물을 이루겠느냐? 너무나 생각지 않은 말이다.
대개 내가 세상에 난 것을 1원(一元)으로써 계산하여도 그 햇수가 몇 천만억 년인가를 알 수 없고 각 세계에 두루 다니면서 엉기어지고 녹아진 것을 본다 하더라도 또한 그 햇수가 몇 천만억 년인지 알 수 없다. 나보다 앞서 간 자도 또한 그 햇수가 몇 천만억 년인가를 알 수 없고 나보다 뒤에 올 자도 또한 그 햇수가 몇 천만억 년인지를 알 수 없으리라.
이러므로 각 세계의 형색(形色)과 실정을 너도 능히 알 수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으며, 나도 능히 이야기할 수 없고 또한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혹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네가 반드시 놀라고 의심하여 꼭 믿지 않을 것이니, 지금 네가 보는 바에 따라 네가 알 만한 것을 이야기하겠다. 해는 그 체(體)가 지구보다 크고 그 도는 도수(度數)도 여러 갑절이다. 그 바탕[質]은 불[火]이요 그 빛은 붉다. 바탕이 불로 된 까닭에 그 성(性)이 따뜻하고, 빛이 붉은 까닭에 그 빛이 밟다. 그 광선은 사방으로 퍼지는데, 멀수록 점점 약해져서 수천만 리를 넘지 못한다.
해의 본 세계에 태어난 자는 순수한 화(火)의 기를 받아 생겼기 때문에 그 체(體)가 명랑하고 그 성(性)이 강렬하며, 그 지(知)는 투절하고 그 기(氣)는 드날린다. 낮과 밤의 구분도 없고 겨울과 여름의 기후도 없으며, 옛부터 불의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따뜻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달은 그 체가 지구보다 작은데 지구의 3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 바탕은 얼음으로 되었고, 빛은 맑다. 바탕이 얼음으로 된 까닭에 그 성이 차갑고 빛이 맑은 까닭에 해에 비치어 빛을 낸다. 해가 멀어지면 빛은 엉키어 거울처럼 밝고 해가 가까워지면 빛은 퍼져서 바다처럼 일렁인다.
달의 본 세계에 태어난 자는 순수한 얼음기를 받았기 때문에 그 체가 맑고 그 성이 깨끗하며, 그 지가 밝고 그 기가 가볍다. 낮과 밤의 구분과 겨울과 여름의 기후는 지구의 세계와 마찬가지며 옛부터 얼음의 세계에 살아왔기 때문에 그 추위를 깨닫지 못한다.
지구는 칠정(七政)의 찌꺼기로 그 바탕은 얼음과 흙으로 되었고 그 빛은 어둡고 흐리다. 바탕이 얼음과 흙으로 된 까닭에 그 본성이 차고, 빛이 어둡고 흐린 까닭에 해에 비치어도 밝은 빛이 적다. 해에 가까운 데에만 따뜻함을 받아 토지가 기름지고 얼음도 풀리게 된다.
지구의 본 세계에 태어난 자는 그 체질이 순일하지 못하고 그 성이 조잡하며 그 지(知)가 어둡고 그 기가 미련하다. 해가 비추면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되며, 해가 가까워지면 여름이 되고 해가 멀어지면 겨울이 된다. 해의 불꽃이 이글거리매 물산이 늘어나고, 형체가 교합하여 생산하매 인과 물이 번성하다. 정신과 지혜는 날로 줄어든다느니 잔꾀만 날로 자라난다느니 이욕에 빠져 살고 죽음을 소홀하게 여긴다느니 하는 것이 지구세계의 실정으로 네가 아는 바이다.”
허자가 말하기를,
“해의 세계에 있는 자는 화서(火鼠)가 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고, 달의 세계에 있는 자는 수족(水族)이 물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음은 그 이치가 그러합니다. 감히 묻건대, 해와 달의 두 세계에 나서 서로 통해 돌아다닐 수 있습니까?”
하니, 실옹이 말하기를,
“이 무슨 어리석은 말이냐. 육지에 살던 자가 물에 들어가면 숨막혀 죽고 물에 있던 자가 물으로 나가면 숨이 차서 죽는 것이다. 남쪽 사람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북쪽 사람은 더위를 견디지 못한다. 같은 세계에서도 오히려 서로 통할 수 없는데 각각 딴 세계에서 태어나서 얼굴과 기질이 물과 불처럼 동떨어지게 다름에랴? 물과 불이 그릇을 같이 한다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이치인가?”
허자가 말하기를,
“허자는 흐린 세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부자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태허(太虛) 중간에 이 여러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의 힘을 입어 저 구소(九霄)로 올라가 태허에 돌아가면서 놀기를 소원했던 것인데 지금 해와 달의 세계에도 오히려 서로 통할 수 없다 하니, 소자(小子)는 마침내 흐린 세계에서 답답함을 면치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실옹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과연 저 구소로 올라가고 싶다면 술법이 없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개 못의 물고기가 용이 되고 바다의 곤어(鯤魚)가 붕새[鵬]로 변하며, 흙덩이의 굼벵이도 매미가 되고, 들의 누에도 나비로 변화한다. 사람의 신령한 지혜로서 술법이 없음을 어찌 걱정하겠느냐?
10년 동안 태식(胎息)하면 단(丹)이 이루어지고 껍질이 벗겨지며, 법신(法身)이 영(靈)으로 변하면 하늘[雲霄]에도 뛰어 오른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여러 세계에 노닐면서 깨끗하고 상쾌함을 길이 누릴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으냐?”
“이것은 세속에서 이르는 선인(仙人)의 술법입니다. 소자도 그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감히 믿지는 않았었는데, 과연 이런 술법이 있다면 아내와 자식 버리기를 떨어진 신짝처럼 하겠습니다.”
실옹은 노여워 거친 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너를 가르칠 만하다고 하였더니, 어리석고 막힌 소견을 열기가 이렇게 어려우며, 이욕에 흐려진 마음을 깨끗이 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냐? 저 태(胎)로 호흡하는 방법과 단(丹)을 이루는 술법은 실상 그런 이치도 있고 또한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오래면 만 년을 살고, 작게는 천 년을 살 수 있을 뿐, 끝내는 죽음으로 돌아가니, 또한 무슨 이익이 있느냐?
사람이 세상에 나서 소원과 욕심은 한량이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거처, 살결 좋은 여색, 높은 직위와 빛나는 권세, 진귀한 물품과 이상한 구경 따위는 사람마다 모두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중에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그 직위가 위태로워질까 염려하고 남이 헐뜯음을 괴롭게 여기며, 혹 갑자기 화나 닥칠까 근심하는데 반드시 그 계획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곧 자신에 반성하여 깨끗이 닦고 욕심을 세속 밖으로 드러내서 천만 년이 지나도록 쾌락하게 살기를 도모한다.
신선으로 된 다음에는 정신과 생각이 고요하고 까마득하여 여러 세계에 두루 노닌다. 칠정(七情)이 길이 없어지면 귀엔 들림이 없는 듯하고 눈은 보임이 없는 듯하나니, 세속의 실정으로 참작한다면 그것은 한가지도 즐거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은 그가 날아다니면서 한 세상 지내는 것을 보고 망령되이 생각하기를, ‘신선은 용과 바람을 타고 신선 친구를 부르면서 별천지에 노니, 모든 쾌락이 구비할 것이다.’고 하니, 또한 어리석지 않느냐?
대저 신선의 술법은 요점이 무위(無爲)에 있을 뿐이므로, 마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다. 만약 고운 여색을 탐내는 속된 생각이 한번만 마음속에 싹튼다면 진원(眞元)이 흩어지고 법신(法身)이 하락되는 것이다.
만약 신선을 그리워하는 세속 사람으로 하여금 이 경지에 있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 고요함과 쓸쓸함를 싫어하고 간솔(簡率)함과 담박(淡泊)함을 괴롭게 여겨 잠간 동안도 있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또 세상엔 혹 남을 속이는 허망한 술법을 가진 자가 있어 신선을 칭탁하고 여기 번뜩 저기 번뜩하는 기괴한 짓으로써 위치와 풍속을 우롱하나니, 어리석은 자의 망령된 생각은 실상 여기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대저 참된 신선은 표표히 세상을 버리고 친척의 은의를 잊으며, 고향의 그리움도 끊어버리거늘 하물며 혼탁한 세상에 냄새나고 더러움은 가까이 할 수도 없는데, 어찌 그 몸을 욕되게 하고 뜻을 굽히고 술법을 자부하고 세상을 놀래게 하며, 자기의 신분을 다 드러내고 스스로의 죄과(罪過)를 짓겠느냐? 세상의 어리석고 혼미함이 너무도 심하구나.
이러므로 신선의 무리는 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진원(眞元)을 보전하지만 만년이나 천년을 지낸 뒤엔 결국 소멸(消滅)로 돌아가 육체도 진원도 다 없어지고, 오램과 빠름의 구별없이 모두 부싯돌의 불이요 물거품과 눈어리[幻]로 되니 실로 상자(殤子)와 마찬가지다.
그 원을 발한 마음을 캐보면 사실은 자기 이익을 위한 마음에서 나왔던 것인데 결과는 이익이 없었으니, 그 생각이 교하였으나 실은 졸렬함이요, 꾀스러웠으나 실상은 어리석음이다. 너는 도(道)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 이러한 원을 두었으니, 또한 잘못이 아니냐?”
하였다. 허자는 깜짝 깨닫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감히 여쭈옵건대, 모든 세계가 다 돌고 또한 능히 다른 세계를 싸고도는데, 유독 이 지구의 세계만이 스스로 돌 뿐, 능히 싸고돌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 세계의 구성을 보면 체(體)엔 가볍고 무거움이 있고 성(性)엔 둔하고 빠름이 있다. 가볍고 빠른 자는 스스로 돌고 또 싸고 돌 수 있으나 무겁고 둔한 자는 스스로는 돌지만 싸고돌지 못한다.
가장 가볍고 빨리 도는 것은 주권(周圈 공전의 궤도)이 가장 넓으니, 오위(五緯)의 따위이고, 가장 무겁고 둔하게 도는 것은 주권이 절면(切面)으로 되었으니, 지구 따위다. 가벼운 세계에서 사는 자는 비어[虛]서 신령하고 무거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자는 차서[實] 둔하다.”
“그렇다면 오위는 오행(五行)의 정기(精氣)요, 항성(恒星)은 온갖 물(物)의 상징인데 아래로 지구 세계에 응해서 화복(禍福)의 경험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오성(五星)의 체가 각각 그 덕성(德性)을 가졌지만 오행에 나누어 붙인 것은 술가(術家)의 좁은 소견이다.
또 지구로부터 보면 많은 별들이 잇달아 있는 것이 묘수(昴宿 별의 이름)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것처럼 끼리끼리 떼를 지어 모여 있다. 그러나 그 실에 있어서는 그 10여 개의 종횡의 거리가 천만 리도 넘는다.
다른 세계로부터 보면 해와 달, 지구 세 점이 꿴 구슬처럼 반짝인다. 이제 이 해ㆍ달ㆍ지구를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삼성(三星)으로 부른다면 되겠느냐?
오직 역상(曆象)은 추산하는 법은 궁도(宮度)에 따라 하는 것인데 별에 명칭이 붙은 것은 역가(曆家)에서 방편으로 전한 것이거늘, 이를 부연하고 억지로 맞추며 속된 것을 곁들여 복술가(卜術家)의 무기로 전변하였으니, 그 지리하고 난잡하고 허망함이 분야(分野)에 극하였다.
이 지구 세계를 태허(太虛)에 비교한다면 미세한 티끌만큼도 안 되며, 저 중국을 지구 세계와 비교한다면 십수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 지구로써 별의 도수[宿度]에 나누어 붙인다면 혹 할 말이 있으려니와, 한쪽에 있는 구주(九州)로써 여러 별세계에 억지로 배합시켜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여 재앙과 상서를 엿보다니 그 허망하고도 또 허망함을 말할 나위도 없다.”
허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분야라는 말은 전해온 지 이미 오래고 혹 분명한 징험도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좋은 바람이 불었고 어느 때는 좋은 비가 왔으며, 어느 때는 형혹성(熒惑星)이 심성(心星)을 지켰는데 이러한 천체 현상의 부응(符應)도 모두 믿을 것이 못됩니까?”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이고 비방을 쌓으면 뼈도 녹인다 한다. 입이 금을 녹일 수 없고 비방이 뼈를 녹일 수 없지마는 오히려 녹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여럿이면 하늘도 이기기 때문이리라.
기술이란 비록 허망한 것이나 마음에 느꺼워 몹시 믿고 의지하게 되면 혹 징조의 감응이 있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허공에 헛 그림자를 잡는 것이다. 헛 그림자에 현혹되어 실제는 살피지 않으니 미혹됨이 심하다. 또 ‘기성(箕星)이 나타나면 바람이 불고 필성(畢星)이 나타나면 비가 온다.’는 말은 세속에 전하는 말을 끌어다가 민정(民情)을 밝힌 것뿐이요, 기성과 필성 두 별이 참으로 이런 것은 아니다.
형혹성이 가다가 때로 싸기도 하고 돌기도 하는데, ‘머물고 지키고, 나아가고 물러선다.’는 말은 지구 세계에서 보는 관점이 그러한 때문이다. ‘하늘이 높아도 낮은 데의 말을 듣는다.’ 함은 역가(曆家)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