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성격상 경어체는 생략합니다.
근래 축구에서 아무리 포지션 파괴에 대한 신앙심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포지션이 있으니 바로 골키퍼 포지션이다. 예나 지금이나, 골키퍼의 미덕은 상대방의 슛팅이 자신의 골문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골키퍼의 철학에 대해 묻는 기자의 우문에 "상대방의 슛팅을 막는 것을 제외하고는 골키퍼에게 철학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인상적인 현답을 남긴 올리버 칸의 사상은 이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이러한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골키퍼의 세계에서 또 다른 부업(?)을 가진 골키퍼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남다른 패션 감각과 공격 본능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 혹은 아찔한 실수로 팬들을 허탈하게 했던 - 이기타, 웬만한 필드 플레이어보다 킥에 있어서는 더 능통했던 칠라베르트 같은 선수들이 바로 그들이다. 전통적으로 좋은 골키퍼를 계속 배출해 냈던 독일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단아가 거의 없었는데, 이러한 점에서 한스-외르그 부트(33, Hans-Jörg Butt)는 독보적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덴부르크 출신인 부트는 92년부터 고향팀 VfB 올덴부르크에서 활약하며 프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는다. 젊은 시절부터 범상치 않던 기량을 인정 받은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97년 함부르크 SV로 이적하고 나서 부터다. 당시 북독의 명문 HSV의 주전 골키퍼는 현재 하노버 96의 백업 골키퍼로 대기하고 있는 리카르도 골츠였는데 부트는 입단 이후 곧바로 골츠를 밀어내고 팀의 넘버원으로 우뚝 서게 된다. 2001년까지 HSV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부트는 분데스리가에서도 손꼽히는 골키퍼로 자리매김했고 함부르크 시절 말년에는 독일 대표팀 부동의 'No. 3'로 발탁될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다. 비록 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에 밀려 A-Match 출장은 단 3회에 그쳤지만 당시 부트가 독일에서 차지하고 있던 비중을 잘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함부르크에서 챔피언스리그까지 경험한 부트는 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바로 팀의 전담 페널티 키커로 나서며 심심치 않게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부트는 입단 이듬해인 98년부터 페널티 킥을 차기 시작했고 99/2000 시즌에는 9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골키퍼 출신이라 페널티 킥에 대항하는 상대 골키퍼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부트는 '찰듯말듯' 상대 골키퍼를 혼란시키며 여유있게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곤 했다. 부트는 분데스리가 역대 페널티 킥 성공 횟수에서도 10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성공률도 85%를 상회한다. 이 정도면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명 페널티 키커로 포함시키기에 손색 없는 수치다. 비록 페널티 킥을 방어하는 것에 있어서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부트는 함부르크와의 계약 기간이 모두 끝난 2001년 바이어 레버쿠젠으로의 입단을 결정한다. 자유 계약 신분이었기 때문에 부트를 잡으려는 몇몇 팀들의 쟁탈전 또한 심상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트는 함부르크에서 그랬듯 곧바로 붉은 사자 군단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고 그 해 레버쿠젠의 '트리플 러너업'에 직간접적으로 공헌하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 부트는 지난 시즌 중반까지 레버쿠젠의 주전 골키퍼로서 통산 분데스리가 324경기 출장에 26골을 기록했다. 또한 부트는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에서도 도합 50회 이상의 출장을 기록, 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을 제외하면 가장 국제 경험이 많은 현역 독일 골키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레버쿠젠과의 계약 마지막 시즌에 부트를 막아선 자가 있으니 바로 지난 시즌 마누엘 노이어(샬케)와 함께 젊은 골키퍼 열풍을 불러 일으킨 레네 아들러다. 부트는 21라운드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에서 전반 중반 어이없는 퇴장을 당했고, 아들러는 부트의 출장 정지를 틈타 23라운드 샬케와의 중대차한 라이벌 전에서 데뷔전을 가진 것이다.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레버쿠젠은 11개의 유효 슛팅을 모두 막아낸 아들러의 신들린 활약 덕분에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결국 미카엘 스키베는 출장 정지에서 돌아온 부트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팀의 세대 교체 작업에 한창이던 레버쿠젠은 독일 U-20 팀의 주장으로서 이미 가능성과 기량을 인정 받은 아들러의 주전 등극을 시즌 전부터 미리 예고하고 있었던 터였다.
결국 부트는 레버쿠젠으로부터 새로운 계약을 제시받지 못했고 6년간 정들었던 바이 아레나를 떠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1부 리그의 중하위권 팀이나 2부 리그에서 조용히 선수 커리어를 마감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부트의 열정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필자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몇몇 클럽들로부터 제의를 받은 부트는 과감히 포르투갈 리그 벤피카와의 계약서에 싸인한다. 이 리스본의 명문은 마르셀로 모레토가 AEK 아테네로 이적하는 바람에 새로운 골키퍼를 물색하던 차였다. 부트는 이번 계약에 대해 오랜 기간 꿈꿔왔던 해외 진출의 꿈이 실현되었다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33살의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옌스 레만이 아스날로 떠날 당시의 나이도 부트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레만이 아스날 이적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열었듯이, 부트 역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또한 레만처럼 대박을 치지는 못하더라도 포르투갈에서의 '색다른' 커리어 말년은 오랜 기간 독일땅에 머물렀던 부트 본인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분데스리가 18개팀 중 골키퍼가 페널티를 차는 팀은 없다. 부트 역시 레버쿠젠에서의 말년에는 조용히 위험 지역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남았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독보적 캐릭터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필자는 분데스리가 531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올리버 칸이 동료들로부터 양보된 페널티를 거침없이 날려먹는 것을 보며 부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한 기억이 있다. 요새 젊은 선수들의 '조심성' 역시 이러한 우려의 한 가지 원인이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예전의 마리오 바슬러나 슈테판 에펜베르크 같은 호기가 없다. 경기 내내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은 노이어나 아들러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슛팅 막는 기계'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또한 필자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고 골문으로 돌아오는 사이 상대 선수의 중거리 슛에 실점하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당시 잔뜩 얼어붙어 있었던 부트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은 오랜 기간 여운을 남길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이 경험 많은 골키퍼의 첫 해외 나들이가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쩌면 이는 리그를 대표할 만한 캐릭터의 조기 퇴장을 바라지 않는 한 분데스리가 팬의 소박한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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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도 일종의 엽기동영상으로 떠도는 것 중 하나의 주인공으로 기억이 가득한데 떠난다니 아쉽네요.ㅜ
좋은글이네요.. 부트선수 부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