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가운데 명암(明暗)을 일러 물과 흙이라고도 하고 혹은 지구의 그림자라 하는데, 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내가 사실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만 믿을 터이니, 너의 소견에 따라 너의 실견(實見)을 열어 주는 쪽이 낫겠다.
대개 속설에서 말하는 ‘계수나무와 토끼’라는 것은 달이 동쪽으로 올라올 때 바라보는 형체다. 진실로 그것이 물과 흙이라면 달이 중천에 왔을 때는 그 형체가 반드시 횡으로 비껴질 것이고 달이 서쪽으로 떨어질 때는 그 형체가 반드시 거꾸로 될 것이다. 이제 가는 대로 변하여 가로도 되지 않고 거꾸로도 되지 않은 채 각각의 형태로 이루어지니, 세 번 멈춰지는 형태는 옛부터 한결같은 것이다.
또 초승달이나 그믐달일 때는 그 반절만 나타나야 마땅할 텐데 전체의 모양이 갖춰져 있으며, 다만 쭈그러지고 좁을 뿐이다. 물과 흙이라는 설은 옳은 듯하나 실은 잘못이다.
대개 달의 체는 거울과 같은데 지구의 반면(半面)이 밝음을 따라 그림자를 짓는다. 동쪽으로 올라올 때의 그림자는 지구 동쪽의 반면이고 중천에 있을 때의 그림자는 지구 중간의 반면이며 서쪽으로 떨어질 때의 그림자는 지구 서쪽의 반면이다. 그러니 지구의 그림자라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느냐?”
“감히 여쭙건대 하늘에 두 극(極)이 있다 함은 무엇입니까?”
“지구 세계에 있는 사람은 지구가 도는 줄을 모르는 까닭에 하늘에 두 극이 있다고 하는데 실은 그것이 하늘의 극이 아니라 곧 지구의 극이다.
무릇 물체가 돌고 움직임은 허(虛)하고 실(實)한 데서 기인되는데, 몸 바깥에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저 하늘이란 그 체는 지극히 허하고 그 성(性)은 지극히 고요하며 그 크기는 한량이 없으며 그 가득함은 틈이 없다. 비록 돌고 움직이려고 한들 되겠느냐?
오직 여러 별세계만은 각각 돌고 움직인다. 세차론(歲次論)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돌고 움직임엔 각각 늦고 빠름이 있고 남북과 동서가 옮겨짐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다만 지구에서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고 시차(視差)의 각도도 아주 미세한 때문에 도상(圖象)이 시대에 따라 다른 바, 옛을 상고해도 증빙이 없는데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뿐이다.”
“감히 여쭙건대ㆍ유성ㆍ요성ㆍ혜성ㆍ패성[流妖慧孛]들은 어떠한 기(氣)로 생기는 것입니까?”
“이것은 한가지 때문이 아니라 공계(空界)에서 엉키어 어루어진 것도 있고 각 계의 기(氣)가 서로 마찰되어 이루어진 것도 있으며, 융계(瀜界)의 남은 기가 흘러서 이루어진 것도 있는데, 이 모두가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오직 사람과 지구의 기가 그 화기로움이 극도로 달하여 이루어진 자는 경성(慶星 상서로운 빛)의 유이고 사람과 지구의 기가 그 떳떳함을 잃고 이루어진 자는 혜발(慧孛 재앙이 생길 때 나타난다는 살별)의 유이다.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남은 망기(芒氣)가 성한 때문입니다. 감히 여쭙건대, 여러 세계의 기도 때로 성하고 쇠함이 있습니까?”
“태백성이 해를 싸는데 그 둘레가 반은 해의 바깥에 있고 반은 해의 안에 있다. 바깥에 있는 것은 지구에서 멀고 안에 있는 것은 지구에서 가깝다. 또 태백성은 광채가 없어 햇빛을 받아 밝게 되며 그믐과 보름이 생기는 것이 달과 같다. 지구에 가까워져서 밝은 빛이 아래에 가득한 것은 빛이 지구보다 성하여 해가 능히 가리울 수 없기 때문이요, 그 자체의 성쇠[衰旺]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일식(日蝕)이란 음(陰)이 양(陽)을 항거하는 것이요, 월식(月蝕)이란 양이 음을 항거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는 일식 때를 당해도 일식하지 않고 월식 때를 당해도 월식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음양(陰陽) 학설에 얽매어 이치에 막히고 천도(天道)를 살피지 않은 것은 선유(先儒)의 허물이다.
대저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되고 지구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된다. 경도ㆍ위도가 같고 삼계(三界 해ㆍ달ㆍ지구)가 일직선에 놓이면 서로 가려져서 일식과 월식이 생기는 것이 운행의 떳떳한 법칙이다.
또 해는 지구에게 먹히고 지구는 달에게 먹히며, 달은 지구에게 먹히고 해는 달에게 먹히는 것이 삼계의 떳떳한 도수며, 지구 세계의 정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해가 지면 밤이 되는 것은 역시 해의 변(變)이니, 낮에 처하는 도(道)로써 밤에 처한다면 어지럽게 되는 것이다. 일식의 변도 또한 이와 같으니, 변을 당해 닦고 반성함은 사람의 일로서 당연한 것이다.”
“바람과 구름ㆍ비와 눈ㆍ서리와 우박ㆍ우레와 무지개 등, 천도(天道)의 변에 대하여 들을 수 있습니까?”
“허(虛)란 하늘이다. 이러므로 우물과 구덩이의 공(空)이나 병의 공 또한 하늘이다. 무릇 바람이나 구름 따위는 모두 허(虛)에서 나왔다 하여 도(道)라고 이르지만 실은 지기(地氣)의 증발로 생긴 것이지, 하늘에 전속된 것이 아니다.
시험삼아 이야기하겠다. 바람이란 지구의 한 모퉁에서 난다. 지구가 회전하자니 높은 산고개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깊은 골짜기가 격동하지 않을 수 없다. 까닭에 허한 기(氣)가 나부끼고 일렁거려 사방으로 나와 바람이 되는 것이다.
격동이 빠르면 바람이 사납고 격동이 느리면 바람이 조용하다. 격동에 가까우면 그 세력이 크고 격동에 멀면 그 세력이 미약하다. 일단 격동하여 서로 부딪치면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멋대로 몰아친다. 또 이무기와 용이 날치고 우레와 소낙비가 갑자기 쏟아지는데도 능히 선동하고 호령하는 것이 모두 지면(地面)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지구에서 수백 리 거리를 떨어지면 바람이 있지 않다.
구름이란 산천의 기(氣)가 올라가 엉기어 형체를 이룬 것으로 그 빛이 본디는 맑은데 햇빛의 작용으로 여러 가지의 색깔을 낸다. 한낮에 흰 것이 맑은 까닭은 햇빛을 바로 받기 때문이요, 검은 것은 두껍게 쌓여 그늘진 때문이며, 아침 저녁으로 붉은 빛깔이 많은 것은 지기(地氣)가 해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비는 시루 속에 이슬이 맺히는 형상으로, 수토(水土)의 증기(蒸氣)가 공중에 증발하여 오르다가 빽빽한 구름에 막혀 샐 데가 없으면 엉기어 비가 된다. 그러므로 증기는 있어도 구름이 빽빽하지 않으면 비가 되지 못하고 구름이 빽빽해도 증기가 없으면 역시 비가 되지 않는다.
눈은 냉기(冷氣)가 증발한 것이요, 서리는 온기(溫氣)와 냉기가 섞인 것이며 우박은 온기와 냉기가 서로 부딪쳤을 때 급작스럽게 내리던 비가 언 것이니, 이 모두 증기(蒸氣)에서 생기는 비의 종류다.
천둥이란, 꼭 갇히었던 증기가 서로 부딪치면 불이 나는데, 그 빛은 번개요, 그 소리는 천둥이다. 불에 닿으면 물체는 부서지고 뭉크러진다. 번개가 먼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뒤에 나는 것은 멀기 때문이요, 번개와 우레가 한꺼번에 이는 것은 가깝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먼 것은 공계(空界)로 흩어지는데 지구에서 가까운 것은 물(物)에 닿게 된다. 천둥 없이 번개만 치는 것은 백 리 이상 먼 것이며, 번개 없이 천둥하는 것은 쌓인 구름이 막혔기 때문이다.
철겸(鐵鎌)으로 돌을 두드려 화령(火鈴)이 땅에 펴지는데도 젖은 데는 피하고 반드시 마른 곳으로 나아감은, 대개 젖은 것은 불이 두려워하고 마른 것은 불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저 천둥이란, 그 성(性)이 굳세고 그 기(氣)가 맹렬하여 바르고 곧음은 피하고 반드시 사뙤고 요망함에로 나아간다. 대개 바르고 곧음은 천둥이 두려워하고 사뙤고 요망함은 천둥이 좋아하는 바이다.
대개 사람의 영각(靈覺)이 곧 한 몸의 화정(火精)인데, 더구나 천둥이란 천지의 정화(正火)이다. 굳세고 맹렬함이 살리기를 좋아하고 악한 자를 미워하여, 삽시간에 벼락을 때리는데도 그 영각이 신(神)과 같다. 무릇 사람이나 물체가 벼락을 맞을 때 기적(奇跡)을 나타내고 기교를 베푸는데, 이것은 뇌신(雷神)에게도 정(情)이 있기 때문이다. 화정과 영각이 실로 사람의 마음과 같다.
무지개는 수기(水氣)로서 아침에는 동쪽, 저녁에는 서쪽에서 햇빛을 빌어 이루어진다. 해가 비스듬히 비치면 반드시 둥근 형태가 반원을 이루며 해가 정오가 되면 무지개가 없어지는 것은 수기가 두텁지 못한 때문이다. 해무리와 달무리도 무지개의 한 종류인데, 허공에 생기는 까닭에 반드시 원모양을 이룬다. 무지개와 해무리가 원을 이루는 것은 해와 달이 둥글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구 위에 있으면서 하늘을 반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해가 이미 동쪽으로 올라왔는데 서쪽에는 월식하는 것을 봅니다. 또는 해와 달이 지면(地面)에 있을 때는 사람과의 거리가 멀지마는 그 둘레가 반드시 크고, 해나 달이 중천에 있을 때는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운데도 둘레가 도리어 작아집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이것은 기(氣)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시험삼아 동전(銅錢)을 대야에 넣고 물러서서 보면 겨우 한 쪽만 보이다가 깨끗한 물을 다시 부어주면 동전 전체가 드러나게 되니, 이것은 물의 힘이다. 눈에 파려(玻瓈 유리ㆍ수정 따위)를 대고 보면 미세한 털도 손가락만큼 크게 보이니, 이것은 파려의 힘이다.
지금 수토(水土)의 기가 증발하여 지면을 싸고 있어, 밖으로는 삼광(三光 해ㆍ달ㆍ별)을 약하게 하고, 안으로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한다. 물처럼 비치고 유리처럼 어리어리하여 낮은 것은 높게 만들고 작은 것은 크게 만든다. 서양 사람은 이에 대한 견해가 있어 이것을 청몽(淸蒙)이라 이름하였다. 쳐다보면 작게 보이는 것은 청몽이 얕은 때문이고, 비스듬히 보면 크게 보이는 것은 청몽이 두텁기 때문이다.
대저 천둥소리가 웅장하다 해도 백 리를 넘지 않고 총탄(銃彈)이 사납다 해도 천 걸음을 미치지 못하니, 이것은 멀고 가까운 형세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멀고 가까움이 그렇게 되는 것도 반드시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대개 유기(遊氣 공중에 떠다니는 운기(雲氣))가 꽉 차서 뚫고 빼는 것이 한도가 있으므로 소리가 울리고 탄환이 나는 데도 힘이 다하면 멈추는 것이다. 사람의 보는 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저 해와 달의 직경(直徑)은 끝내 헤아릴 수 없다.
달의 체가 초사흘 저녁에 새로 나타날 때, 훤한 둘레가 언저리 밖으로 빙 두른 것은 광채가 무리[暉]로 된 것이고 달의 본체(本體)는 아니다. 반달과 망월(望月)의 경위(徑圍)도 어디를 표준해야 할는지 모르는데, 하물며 태양(太陽)은 순화(純火)로 광선과 둘레가 갑절이나 큰 데에 있어서랴? 진계(眞界)의 깊고 얕음은 마침내 헤아릴 수 없다.
또 둥근 형체를 헤아려 바라볼 때 가까이서 보면 작고 멀리서 보면 크다. 포탄처럼 작은 것도 본 형체를 분변할 수 없거늘 하물며 해와 달에 있어서랴?”
“지구의 형체가 둥글다는 것과 분야(分野)의 허망함은 이미 가르침을 받아 알았으나, 감히 묻건대, 하루 동안에 아침과 낮의 기후가 다르고 한 해 중에 겨울과 여름의 기후가 다르며 한 지구 가운데 남쪽과 북쪽의 기후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실옹이 대답하기를,
“차가움은 지구의 본기(本氣)이고 따뜻함은 태양 화기의 쪼임이다.
또 중국을 가지고 말한다면 북경(北京)에서는 하지(夏至)날 해가 천정점[天頂]에 16도를 못 미치기 때문에 햇빛은 조금 비껴지고 따뜻한 기후도 이미 줄어지게 된다. 이로부터 북쪽으로 극에 이르면 여름 기후는 겨울 기후와 같으며, 만약 거기에 겨울이 되면 땅이 얼어 터지며 얼음만 있고 물은 없다.
남해(南海)에서는 하짓날 해가 바로 친정점에 닿으므로 여름엔 햇볕이 직사하여 더운 불꽃이 타는 듯하여 옛부터 얼음이 없다.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적도(赤道) 남쪽 20여 도(度)에 이르기까지는 한 해 가운데 따뜻한 기후가 서로 조금씩 차이가 있고 오직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만은 겨울과 여름의 기후가 아주 다르다.
적도(赤道)로부터 수십 도 남쪽은 동지에 여름이 되고 하지에 겨울이 되는데, 그 기후의 차고 더움은 대개 중국과 비슷하다. 여기서부터 더욱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여름 기후가 겨울과 같으며, 겨울철엔 땅이 얼어 터져서 얼음만 있고 물이 없어 북극의 기후와 같다.
남극에서 남쪽으로, 북극에서 북쪽으로 간다면 기후는 차츰 따스하고 차츰 추우며 극도로 따스하고 극도로 추운 것은 모두 같은데, 이 지계(地界)는 오직 남과 북이 그 기후가 바꾸어진 것뿐이다.
대개 해는 황도(黃道)로 말미암아 적도(赤道)에 드나드는데 안과 밖이 각각 23°다. 지구 세계로서 적도에 가까운 지대는 햇빛이 직사하여, 그 기후가 극도로 따스하고 적도에서 조금 먼 지대는 햇빛이 비스듬히 쏘이므로, 그 기후가 약간 따스하며, 적도에서 동떨어지게 먼 지대는 햇빛이 횡으로 쏘아 그 기후가 몹시 차다. 그러므로, 지구가 따스한 것은 햇빛을 받는 때문이며, 그 따스함에 약간 따뜻함과 극히 따스함이 있음은 햇빛이 비스듬히 쏘느냐 직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을 자세히 안다면 아침과 낮의 기후가 다른 이유가 분명하며, 아침과 낮 기후가 다름이 분명하다면 겨울과 여름 기후가 다름이 분명하며, 겨울과 여름 기후가 다름이 이미 분명하다면 남과 북의 기후가 다른 것도 분명할 것이다.”
허자가 말하기를,
“해가 남지(南至 곧 동짓날을 말함)하면 한 양(陽)이 생하고, 해가 북지(北至 곧 하지날을 말함)하면 한 음(陰)이 생하게 됩니다. 음과 양이 서로 바꿔짐에 따라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며, 천지가 닫겨짐에 따라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니, 남쪽이 양으로 되고 북쪽이 음으로 됨은 지세(地勢)의 정해진 국면이며, 여름이 따뜻하고 겨울이 추운 것은 음과 양이 번갈아 닫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부자는 음과 양으로 정해진 국면과 바뀌고 닫기는 참 기틀은 버리고, 태양[日火]의 멀고 가까움과 비스듬하고 바름[斜直]을 가지고 통틀어 설명하시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양(陽)의 종류가 여러 가지로 있지만 모두 불에 근본했고, 음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땅에 근본했다. 옛사람이 여기에 깨달은 바가 있어 음양의 학설이 있게 되었다.
만물이 봄과 여름에 화생(化生)하는 것을 교(交)라 하고, 가을과 겨울에 거두어 저장하는 것을 닫긴[閉]다 했으니, 옛사람이 말을 세운[立言] 것도 각각 까닭이 있다. 그러나 그 근본을 미루어 본다면 실상 태양빛[日火]의 얕음과 깊음에 속할 뿐, 후세 사람의 말대로 천지 사이에 별도로 음양 두 기(氣)가 있어서 때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며 조화(造化)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세계의 생물이 모두 태양빛에 속했다면, 가령 해의 세계가 일조에 녹아 없어진다면 곧 이 지구의 세계에는 한 물체도 없게 될 것입니까?”
“얼음과 흙이 서로 얼어붙어 물(物)이 생성할 수 없다면 어두움과 싸늘한 한 덩어리 죽음의 세계가 될 것이다. 허공(虛空)의 중간에 태양빛이 단절된다면 다만 죽음의 세계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늘이란 오행(五行)의 기(氣)요, 땅이란 오행의 질(質)입니다. 하늘이 그 기를 갖고 땅이 그 질을 갖기 때문에 물(物)의 생성이 절로 갖추어지는 것인데, 어찌 태양에만 전속됩니까?”
“우하(虞夏) 때 육부(六府)를 말했는데 수ㆍ화ㆍ금ㆍ목ㆍ토ㆍ곡(水火金木土糓)이 이것이고, 주역(周易)에 팔상(八象)을 말했는데 천ㆍ지ㆍ화ㆍ수ㆍ뇌ㆍ풍ㆍ산ㆍ택(天地火水雷風山澤)이 이것이며, 홍범(洪範)에는 오행(五行)을 말했는데 수ㆍ화ㆍ금ㆍ목ㆍ토가 이것이고, 불(佛)은 사대(四大)를 말했는데 지ㆍ수ㆍ화ㆍ풍(地水火風)이 이것이다.
옛사람이 때에 따라 모범될 만한 말을 세워 만물(萬物)의 총명(摠名)을 지은 것은 여기에 한 가지도 보탤 수 없고 한 가지도 줄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천지 만물이 이런 수(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행의 수(數)는 원래에 정해진 의론이 아닌데, 술가(術家)는 이를 조종(祖宗)으로 삼아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로써 억지로 맞추고 주(周易) 상수(象數)를 파고 들어가 생극(生克)이니 비복(飛伏 점치는데 쓰는 술어로, 비신(飛神)과 복신(伏神)을 말함)이니 하는 지리한 수작으로 여러 술수(術數)를 장황스럽게 이야기하나 끝내 그런 이치는 없는 것이다.
대저 화(火)는 태양이요 수(水)와 토(土)는 땅이다. 목(木)과 금(金) 따위는 해와 땅의 기(氣)로 말미암아 생성하는 것이니, 당연히 이 3자(화ㆍ토ㆍ수)와 더불어 병행될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늘이란, 맑고 허한 기(氣)가 끝없이 가득한 것인데, 자그마한 지구세계의 움직임을 가지고 이 지극히 맑고 지극히 허한 데 비겨 논할 수 있겠느냐?
이래서 하늘은 기(氣)뿐이요 해는 불 뿐이며 땅은 물과 흙일 뿐임을 안다. 만물(萬物)이란 기의 찌꺼기[糟粕]이고 불의 거푸집[陶鎔]이며 땅의 군살[疣贅]인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조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느냐?”
허자가 말하기를,
“사람이나 물체가 생길 때에 태와 알과 뿌리와 씨(胎卵根子)가 각기 근본이 있는 것인데, 어찌 태양의 화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인과 물의 생동이 태양빛에 근본한 것이다. 가령 하루아침에 해가 없어진다면 온 세계는 얼어붙고 온갖 물체는 녹아 없어질 텐데, 태ㆍ난ㆍ근ㆍ자가 어디에 근본하겠느냐? 까닭에 이르기를 ‘땅은 만물의 어미요, 해는 만물의 아비이며, 하늘은 만물의 할아버지다.’고 하였다.”
“옛사람이 이른 말에 ‘하늘은 서쪽과 북쪽이 가득 차지 않고 땅은 동쪽과 서쪽이 가득 차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도 과연 가득 차지 않은 곳이 있습니까?”
“이것은 중국의 야언(野言)이다. 북극(北極)이 낮게 도는 것을 보고 하늘이 가득 차지 않은 줄로 의심하며, 강하(江河)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땅이 가득 차지 않은 줄로 의심한 것이다. 땅 형세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에 얽매어 온 지구의 다른 관점을 살피지 않으니, 또한 어리석지 않느냐?”
“지구의 표면에서는 밤낮의 길이가 저쪽과 이쪽이 다 같고 차이가 없습니까?”
“어찌 그렇겠느냐. 가령 여기서 낮 정오라면 여기서 동쪽 90°인 곳은 석양일 테고, 거기서 또 90°쯤 지나가면 밤일 것이다. 여기서 서쪽 90°인 곳은 아침일 테고 거기서 또 90° 지나면 새벽일 것이다. 동쪽과 서쪽이 각각 1백 80°의 이곳과 맞서는 곳은 밤 자정일 것이다. 적도(赤道)의 남쪽과 북쪽은 각각 20° 남짓한데 1년 중 밤낮의 길이는 균일하여 차이가 각ㆍ분(刻分)에 불과하며 여기에서 더 지나가면 밤낮의 차이는 점점 많아진다.
극도로 긴 데는 열한 시가 넘고 극도로 짧은 데는 한 시간이 차지 않는다. 두 극(極)에 이르러 적도가 지평선(地平線)처럼 되면 해가 적도 위에 있을 때는 반년 동안 낮이 계속되고, 해가 적도의 밑에 있을 때는 반년 동안 밤이 된다.”
“바다라는 물체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장마에도 넘치지 않으며 추워도 얼음이 얼지 않는다. 여러 냇물이 흘러들어도 그 짠맛이 변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 밀물과 썰물이 져도 그 주기는 잃지 않는데, 그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달은 물의 정기[水精]라, 물이 달을 만나면 감응하여 솟아 물결을 이룬다. 달은 일정한 길이 있고 조수는 일정한 시간이 있는 바, 물결 형세가 나부끼고 흔들리어 스스로 나아가고 물러서게 된다.
본 물결에 가까운 데는 간만의 차가 심하고 본 물결에 먼 데는 간조와 만조가 모두 미약하며, 본 물결에 더욱 먼 데는 물결 형세가 못 미치게 되므로 밀물과 썰물이 이뤄지지 않는다.
바닷물은 아무리 많이 모여도 새지 않는다. 적도 가까이는 태양열이 찌는 듯 볶는 듯하여 점점 짠맛이 되는데 그 맛이 소금 같고 솟는 물결은 여울물과 같으며, 육지 또한 해에 가까우므로 겨울에는 얼음이 얼지 않는다.
또 남극ㆍ북극은 기후가 극도로 냉하고 태양열도 따라서 미약하며 밀물이 미치지 않는 데에는 얼음 바다[氷海]도 있다.
또 모인 물이 크고 넓어, 왕양(汪洋)함이 가이 없으므로 모여드는 강해의 물과 끊임없는 장마비도 한 잔의 물과 같아 천 경(頃)의 물결엔 아무런 보탬도 손실도 없다.
또 강하(江河)의 근원은 샘물이고 샘물의 근원은 바다다. 물은 토맥(土脈)에 따라 부딪치는 듯 호흡하는 듯 옆으로도 흐르고 거꾸로도 흘러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스며들어 흙을 윤택하게 만들고 짠물을 변해 민물로 만들며 넘쳐서 우물과 샘이 되고 모여서 강ㆍ하수[江河]가 된다. 곧 서로서로 넘나들면서 이루어 주는 것으로 모두가 바다물이다.
또 바람과 햇볕에 증발되고 사람과 만물에게 소비되는 양이, 비와 눈으로 인한 불음과 서로 맞먹게 되므로, 그 물은 자연 마르지도, 붇지도 않기 마련인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한다.’고 하였는데,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내가 보건대, 지구 세계에서 인간의 수(壽)는 백 년을 넘기지 못하고 국사(國史)에도 그 실적이 전하지 않는다. 땅과 물의 변화는 점차로 되는 것이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인간이 능히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조개껍질과 조약돌이 혹 높은 산에서 나타나고 바다 가까운 산의 모래가 흔히 흰 모래인 것으로 보아 산과 바다가 서로 넘나든 흔적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을 보더라도 요동 들[遼野] 천 리는 곧 구하(九河)의 옛 길이요, 사막(沙漠) 밖에 모래와 자갈은 곧 황하(黃河)의 옛 길이다. 맹자(孟子)가 이르지 않았느냐 ‘홍수(洪水)가 가로 흘러 중국으로 넘어들었다.’고.
대개 흘러내리는 모래가 쌓여 막히고 물길이 점점 높아지면 둑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황하(黃河)가 넘쳐흐른 것은 바로 요(堯)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숭백(崇伯 우(禹) 아버지 이름은 곤)이 시대의 운수를 살피지 못하고 중국을 위해 먼 계획을 세운다고 그 옛 길만 회복하고자 하여, 9년 동안 막았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제방(堤防)이 한번 무너지매 구주(九州)가 물속에 빠져 버렸다. 우(禹)가 곧 잇달아 일어나 용문산(龍門山)을 뚫어 물의 성질대로 인도하여 그 다급함을 구제하긴 하였으나, 마침내 중국의 후환이 되었다. 이로 본다면 뭍이 바다로 되고 바다가 뭍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땅에 지진(地震)이 있고 산이 옮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땅이란 활물(活物 움직이는 물체)이다. 맥락(脈絡)과 영위(榮衛)가 실상 사람의 몸과 같은데 다만 그 몸뚱이가 크고 무거워 사람처럼 뛰고 움직이지 못할 뿐이다. 이 때문에 조그만 변이 일어나도 사람은 반드시 괴이하게 여겨, 재앙이니 상서니 하고 함부로 추측한다.
그 실에 있어서는 수화(水火)와 풍기(風氣)가 두루 유행(流行)하다가 막히면 지진이 일어나고 격하면 밀어 옮기기도 하나니, 그 형세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땅에 온천(溫泉)과 염정(鹽井)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태허(太虛)는 물의 정[水精]이고 태양(太陽)은 불의 정[火精]이며 지구는 물과 불의 찌꺼기다. 물과 불이 아니면 땅은 능히 살아 활동할 수 없다. 돌고 위치를 정하고, 만물을 내고 성장 시키는 것은 물과 불의 힘이다. 이 온천과 염정도 물과 불이 서로 부딪쳐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내는데 그 묘(墓)자리가 길하지 않으면 바람과 불이 재앙을 만든다 하니, 또한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수화와 풍기(風氣)는 운행하는 길이 있으니, 실(實)을 만나면 피해 달아나고 허(虛)를 만나면 모이게 된다. 장사를 지냄에 있어 그 옳은 방법[道]를 잃으면 재앙이 반드시 이르나니, 해골(骸骨)이 엎어지거나 뒤쳐지거나 타버리거나, 심지어 벌레가 생기고 썩어 없어지기까지 함은 장사를 안전하게 지내지 못한 때문이다.”
“장례를 치를 적엔 토질이 깨끗하여 물ㆍ불ㆍ바람ㆍ벌레의 작용할 데가 없었는데, 뒤에 혹 면례(緬禮)를 하려고 구광(舊壙)을 해쳐 보면 편하고 좋은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물음이구나. 사람이 부모에게, 살아 계실 때 봉양을 극진히 하고 죽으면 정성을 다하며 남긴 글과 남긴 의복을 높이 받들고 삼가 갈무리하는 것은 공경의 극치인데, 더구나 유해(遺骸)에 있어서랴. 묘 자리란 유해를 갈무리하는 곳인데, 감히 공경하고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렇기는 하지만 포백(布帛)이나 의금(衣衾)은 생존시에 봉양하는 기구이고, 관곽(棺槨)이나 정삽(旌翣)은 남보기에 아름답게 하는 장식으로 흙에 들어가면 썩어서 유해를 더럽힐 뿐인데, 오직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힘써 필경엔 더럽히는 것은 생각지 않으니, 효도하고 또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느냐?
더구나 허하면 반드시 딴 물건을 끌어들이는 것은 땅의 생리다. 정삽을 갖춤으로 해서 곽(槨)은 허해지고, 옷과 이불이 썩음으로 해서 관(棺)이 허해지고, 역청(瀝靑 송지(松脂)에 기름을 섞어서 짠 도료(塗料))과 회석(灰石)이 견고함으로 해서 광(壙)은 허해진다. 물ㆍ불ㆍ바람ㆍ벌레는 모두 허함으로 인해서 생기니 슬프다. 부모의 유해를 갈무리함에 있어, 안으로 썩을 물체를 입히고 바깥으로 풍화(風火)를 끌어들여 사지(四肢) 백절이 타고 흩어져 시체를 보존하지 못한다면 마음에 괘하겠느냐?
대저 흙은 물(物)의 모체요 생의 근본이다. 비단으로 족히 그 아름다움에 겨룰 수 없고 구슬도 족히 그 깨끗함에 비길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사람의 육체란 습한 데에 거처하면 병이 생기고 좋은 의복도 땅에 가까우면 더러워진다. 그러므로 높은 집에서 겹방석을 까는 것은 흙을 멀리하기 때문에 귀한 것이요, 움막에서 거적을 까는 것은 흙과 가깝기 때문에 천한 것이다.
사람이 옛 습관에 젖어 그 근본을 잊어버린다. 죽음에 임해서 염습(斂襲)하는 의복이 두텁지 못할까 염려하고 관곽과 회석이 단단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깊은 걱정과 긴 계획은 오직 흙을 멀리하기를 꾀한다.
사(死)와 생의 도가 다르고 귀와 천의 물이 다르나, 누른 정색(正色)으로 따뜻하고 윤택함이 흙보다 더 귀함이 없으니, 참 아름답고 참 깨끗한 것이 실로 유해(遺骸)의 보장(寶藏)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덤도 만들지 않고 나무도 심지 않음은 태고(太古) 시대의 너무 질박한 일이었고, 베로 싸기만 하고 관(棺)이 없이 나장(裸葬 관곽을 쓰지 않는 장례)한 것은 달사(達士)의 괴이한 짓이었으며, 다비(茶毘)로 사리(舍利)를 모아 탑(塔)을 쌓는 것은 불씨(佛氏)의 정법(淨法)이었고, 벽돌로 둘러쌓고[0周] 기와 [瓦棺]관을 만든 것은 성인(聖人)의 적중한 제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법은 다비이고 그 다음은 나장입니다. 무덤을 만든다 나무를 심는다 벽돌로 쌓는다 기와로 관을 만든다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스승을 장사 지내는 데는 의리를 주로 하고 어버이를 장사 지내는 데는 은애를 주로 하는 것이다. 서축(西竺 곧 불교를 말함)의 가르침은 은애를 끊고 의리를 세웠으며, 중국의 가르침은 의리를 굽히고 은애를 폈다. 그러나 왕손(王孫)을 나장한 것은 풍속을 바로 잡는데 과격했던 때문이다.
중국에 나면 자연 그 의가 있다. 곧 검소함을 숭상하고 그 꾸밈을 절제하며, 그 근본을 잊지 않고 시의(時義)를 참작하며 속습에 따르지 않고 어버이의 안장(安葬)을 길이 생각하는 일이다. 대개 판판한 언덕과 높은 산은 모두 복지(福地)인데, 무슨 풍화(風火)의 재앙이 있겠느냐? 이것은 남의 자식된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일이다.
대개 성주(成周 주(周) 나라의 별칭) 시대엔 문(文)을 숭상하여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이 너무 갖춰졌고, 맹씨(孟氏)는 묵씨(墨氏)를 배척함에 있어 박장(薄葬)을 나무랐다. 그러나 ‘관(棺)을 무겁게 하고 명기(明器)를 써야 한다. 흙이 어버이 피부에 닿지 않아야 한다.’라는 의론은 폐단이 없지 않은 것이다.”
“택조(宅兆)의 길흉과 자손의 화복이 한 기(氣)로 감응(感應)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중형(重刑)을 당한 죄수가 옥(獄)에 있을 때 겪는 고통이 견딜 수 없다 하여, 죄수의 아들이 몸에 악한 병이 생겼다는 말을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죽은 자의 혼백에 있어서랴?
비록 그러하나 기술이란 허망하여 본래는 그럴 이치가 없지만, 그런 줄로 믿어 내려온 지 오래고 마음을 모으고 영을 합하면 무(無)를 상상하여 유(有)를 이루나니, 가끔 중인(中人)의 기교를 하늘이 따라준다.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이고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아진다.’는 말이 이치가 있는 것이다.
대개 천문(天文)에 대해서 상서와 재앙, 복서(卜筮)에 있어서 길흉, 기도와 제사에 있어서 귀신의 흠향, 지술(地術)에 있어서의 화와 복은 모두 그 이치가 마찬가지다.
채계통(蔡季通)이 귀양갈 때에 남의 묘(墓)를 옮겨준 것을 후회하였다. 연고없이 남의 면례(緬禮)를 시켰으니, 뉘우쳐 마땅하나 사실은 오직 간사한 술법을 숭상하여 믿은 것이 후회의 근본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양(紫陽)의 산릉 의장(山陵議狀)이 오로지 술가(術家)의 말만 주장한 것이 너무 심한 데도 대사(臺史)가 이 말이 유종(儒宗)에서 나왔다 하여 감히 의논하지 못했다. 이러므로 간사한 말이 거침없이 퍼져서 천하가 미친 듯하여 송옥(訟獄)이 들끓고 인심이 날로 무너지게 되었으니, 폐단의 혹독함이 어찌 선학(禪學)이나 공리론[事功]에 비등할 뿐이겠느냐?”
“천지의 형체와 정상은 이미 가르쳐 주심을 들었으나, 인물의 근본과 고금의 변화와 화이(華夷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을 듣고 싶습니다.”
“대저 땅이란 허계(虛界)의 활물(活物)이다. 흙은 그의 살이고 물은 그의 정기와 피이며, 비와 이슬은 그의 땀이고, 바람과 불은 그의 혼백이며 영위(榮衛)다. 이러므로 물과 흙은 안에서 빚어내고 태양 화기는 밖에서 쪼이므로, 원기가 모여 온갖 물을 생산시킨다. 풀과 나무는 땅의 모발(毛髮)이고 사람과 짐승은 땅의 벼룩이며 이[虱]이다.
바위 골짜기와 땅 속에 뚫린 굴은 기(氣)가 모여 바탕을 이룬 것이니 기화(氣化)라 이르고, 남녀가 서로 느끼어 육체로 교접하여 태(胎)로 낳은 것은 형화(形化)라 이른다.
상고(上古) 시대에는 오로지 기화(氣化)로 되었기 때문에 인물이 많지 않았으나 태어난 성품이 두텁고 정신과 지혜가 밝고 동정(動靜)도 점잖았다. 음식은 물(物)에 자뢰하지 않고 기뻐함과 노여워함도 마음에 싹트지 않고 호흡만 토하고 마시는데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았다. 하는 일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놀러만 다니니, 조수(鳥獸)와 어별(魚鼈)도 모두 제 마음대로 살고 초목과 금석(金石)도 각각 제 자체를 보전하였으며, 하늘엔 음하고 요사스러운 재앙이 없고, 땅엔 무너지고 마르[渴]는 해가 없었다. 이야말로 인물의 근본이요 태평한 세상이었다.
중고(中古)로 내려오면서부터 지기(地氣)가 비로소 쇠해지자 인물들이 점점 박잡하고 흐리게 되었다. 남녀가 서로 모이면 곧 정욕이 생기고 정신이 감동되어 아이를 배게 되었으니, 비로소 형화(形化)가 생긴 것이다. 형화가 있음으로부터 인물은 점점 늘어나고 지기는 더욱 줄어지며 기화(氣化)가 끊어졌다. 기화가 끊어지면 인물의 나는 것이 오르지 정혈(精血)만 타고나기 때문에 찌꺼기의 나쁜 것만 점점 자라나고 맑고 밝은 마음은 점점 없어졌다. 이것이 천지의 비운(否運 불행한 운수)이요, 화란(禍亂)의 시초였다.
남녀가 육체로 교접하매 기혈(氣血)이 소모되고, 기교한 꾀가 본심을 해치매 정신에 울화(鬱火)가 생겼다. 안으로 기갈(飢渴)의 걱정과 밖으로 한서(寒署)의 괴로움이 있게 되매, 풀잎을 먹고 물을 마셔서 기갈을 채웠으며, 나무로 둥우리를 틀고 토굴을 파서 움을 만들어 한서를 방비하였다. 이렇게 되자 온갖 물(物)은 각각 제 몸을 위하기에 이르렀으니, 백성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풀잎을 먹고 물을 마심이 너무 박하다 하여 함부로 사냥하고 고기 잡으매, 조수(鳥獸)와 어별(魚鼈)이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고, 둥우리와 움집이 누추하다 하여 좋은 저택을 지으매 초목(草木)과 금석(金石)이 형체를 보전할 수 없게 되었다. 고량진미(膏粱珍味)로 그 입맛을 맞추자 장부[臟胃]가 약해졌고 베와 비단으로 그 몸을 따스게 하자 지절(肢節)이 해이하게 되었다. 동산을 만든다 정자를 짓는다 못을 판다는 일이 생기자 땅 힘이 줄어들고, 성냄과 원망함과 저주(咀呪)하는 더러운 기(氣)가 오르자 하늘 재앙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용맹스럽고 지혜롭고 욕심 많은 자가 그 중간에 나서 제 마음과 같은 자를 몰아 이끌고 각각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되매, 약한 자는 일만 수고로웠고, 억센 자는 이권을 누렸다. 각각 갈라 점령한 강토를 아울러 차지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벌리면서 육박을 하므로 백성이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교(巧)한 자가 재주를 부려 살기(殺氣)를 도발시켰다. 쇠를 불리고 나무를 쪼개어 흉기(匈器)를 만들었다. 날카로운 칼과 창, 혹독한 활과 화살로 성(城)을 뺏고 땅을 다투매 쓰러진 시체가 들을 메웠다. 생민의 재앙이 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기주(冀州)는 지방이 천리로 중국이라 일컬었다. 산을 등지고 바다에 임하매 바람과 물이 혼후(混厚 넉넉함)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비치매 춥고 더움이 알맞고, 물과 산이 영기(靈氣)를 모으매 선량한 사람을 탄생시켰다. 대개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ㆍ요순(堯舜)이 일어나서 초가집에 살면서 자신부터 검소한 덕을 닦아 백성의 재산을 마련해 주었으며, 공손하고 겸양한 모습으로 밝은 덕을 몸소 실천하여 백성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문명한 교육이 차고 넘쳐서 천하가 화락하였다. 이것이 중국에서 이른바, 성인의 정치요 가장 잘다스려진 시대였다.
시대를 따르고 풍속에 순응함은 성인의 방편이요 다스림의 기술이다. 대저 가장 화락하게 잘 지내는 것은 성인이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건만, 시대가 바뀌고 풍속이 변해져서 법이 행해지지 않는데 만약 거스려 막는다면 그 혼란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인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까닭에 이르기를 ‘지금 세상에 살면서 옛 도(道)를 회복시키려고 하면 재앙이 반드시 자신에게 미친다.’고 하였다.
정욕에 대한 느낌을 이미 금할 수 없게 되자, 혼인하는 예절로 부부(夫婦)로 짝지었으니 그 음탕함만 금했을 뿐이요, 좋은 집에 거처함을 금할 수 없게 되자 초가집을 짓되 갈고 깎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 화려함만 금했을 뿐이며, 고기 먹는 습관을 이미 금할 수 없게 되자, 낙시만 하고 그 물질을 못하도록 산과 못을 금하였으니 함부로 잡는 것만 금했을 뿐이요, 좋은 옷 입는 것을 이미 금할 수 없게 되자 노소와 상하의 제도를 구별하였으니 그 사치함만 금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악(禮樂)과 제도로서 성인이 인도해 주고 보충도 해주어 한 시대를 제어하는 방편으로 하였는데, 그것은 정욕의 뿌리가 뽑히지 않고 이욕의 근원이 막히지 아니하면 마치 방천처럼 끝내는 무너지리라는 것을 성인이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하후(夏后)가 천자(天子)의 위(位)를 아들에게 전하게 되자 백성이 비로소 제집 이익만 꾀하게 되었고, 탕무(湯武)가 임금을 내쫓고 죽이자 백성이 비로소 위를 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몇몇 임금의 허물은 아니다. 잘 다스려진 끝에 쇠하고 어지럽게 됨은 시대와 형세의 자연인 것이다.
하(夏) 나라가 충(忠)을 숭상하고, 상(商) 나라가 질(質)을 숭상했으나 당우(唐虞)에 비하면 이미 꾸민 것이었고, 성주(成周)의 제도는 오로지 화려하고 사치함만 숭상하여 소왕(昭王)과 목왕(穆王)부터는 임금의 기강이 이미 떨어져 정사가 제후(諸侯)에게 있었고, 한갓 헛 이름만 안고 윗자리에 기생(寄生)하였으니, 유왕(幽王)ㆍ여왕(厲王)이 천하를 망치기 전에 주(周) 나라는 이미 없어졌던 것이다.
영대(靈臺)와 벽옹(辟雍)은 놀이를 위해 아름답게 만든 것이고, 구정(九鼎)과 천구(天球)는 보배로 여겨 갈무리한 것이었다. 옥로(玉輅)와 주면(朱冕)은 복식(服飾)을 사치하게 한 것이고, 구빈(九嬪)과 어첩(御妾)은 예쁜 여색을 뺏아들인 것이었다. 이리하여 낙읍(洛邑)과 호경(鎬京)에 토목 공사가 번다하였으니, 저 진 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도 이것을 본받았다 하겠다.
또 미자(微子)와 기자(箕子)를 버리고 무경(武庚)을 세워서 은(殷) 나라 도(道)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주 나라의 속 마음을 어찌 숨길 수 있겠느냐? 성왕(成王)이 즉위(卽位)함으로부터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형제간에 다투었던 바, 주공(周公)이 3년 동안이나 동쪽으로 정벌하는데 창과 도끼가 다 부서지고 여덟 번이나 매방(妹邦)에 고시(誥示)하였으나 미련한 백성이 대항하고 따르지 않았으니, 주 나라가 은 나라를 대신함에 천하를 차지하려는 마음이 어찌 없었다 할 수 있겠느냐? 공자(孔子)가 순(舜)의 덕을 칭찬함에는 ‘성인(聖人)이라’ 했으나 무왕(武王)에 대해서는 ‘천하의 좋은 이름을 잃지 않았다.’ 했고, 태백(泰伯)의 덕을 칭찬함에는 ‘지극하다.’ 했으나 무왕을 말함에는 ‘다 착하지는 못했다.’ 하였으니, 공자의 뜻을 크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주 나라 이후로 왕도(王道)가 날로 없어지고 패도(覇道)가 횡행하여 거짓 인(仁)한 자가 황제(帝)로 되고 병력(兵力)이 강한 자가 왕(王)이 되었으며, 지략(智略)을 쓰는 자가 귀하게 되고 아첨을 잘한 자가 영화롭게 되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림에는 괴임과 녹으로 꾀이고 신하가 임금 섬김엔 권모(權謀)를 미끼로 하였다. 이리하여 얼굴을 반쯤 알아도 마음이 맞게 되고 남모르는 식견으로 걱정을 예방하는 바, 상하가 서로 다투어 사욕만 꾀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천하가 번잡하게 됨은 이욕을 품고 서로 대한 때문이었다.
비용을 절약하고 부세를 덜어줌이 백성 위함이 되지 못하고, 어진 이를 높이고 유능한 자를 쓰는 일이 나라 위함이 되지 못하며, 반역을 치고 죄를 치는 것이 포악을 금하는 일이 못되며, 후하게 주고 박하게 받으며 먼 데 물건을 보배로 아니 여김이 먼 나라를 회유함이 못된다. 오직 이뤄진 업을 지키고 위를 보전하여 몸이 마치도록 영화롭게 지내다가 2대 3대 무궁토록 전하는 것, 이것이 소위 ‘어진 임금의 할 일이요 충신이 낼 아름다운 꾀’라는 것이었다.
어떤 자는 말하기를 ‘나무와 돌의 재앙은 유소씨(有巢氏)에게서 비롯했고 짐승의 재화는 포희씨(包羲氏)에게서 시작되었으며, 흉년의 걱정은 수인씨(燧人氏)에서 유래되었고 교묘한 지혜와 화려한 풍습은 창힐(蒼頡)에게서 근본하였다. 봉액(縫掖)의 위용이 좌임(左袵)의 편리함만 못하고 읍양(揖讓)의 허례가 막배(膜拜) 참다움만 못하며, 문장(文章)의 빈말[空言]이 말타고 활쏘는 실용만 못하고 따뜻하게 입고 더운밥 먹으면서 몸 약한 것이 저 추운 장막에서 우유 먹고 몸 강건한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는 혹 지나친 의론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이 떨치지 못한 까닭이 여기서 싹트게 되었다.
혼돈(混沌)이 뚫어지매 대박(大樸)이 흩어졌고 문치(文治)가 승해지매 무력(武力)이 쇠했으며, 처사(處士)가 제멋대로 의논하매 주(周) 나라 도(道)가 날로 쭈그러졌다. 진 시황(秦始皇)이 서적을 불사르매 한(漢) 나라 왕업이 조금 편케 되었고 석거(石渠)에서 분쟁이 생기매 신망(新莾 신은 국명 왕은 왕망 이 왕위(王位)를 찬탈했으며, 정현(鄭玄)과 마융(馬融)이 경서를 연역(演繹)하매 삼국(三國)이 분렬 되었으며 진씨(晋氏)가 청담(淸談)을 일삼으매, 신주(神州 중국)가 망하였다.
육조(六朝)는 강좌(江左) 부속되었고 오호(五胡)는 완락(宛洛)을 처부시었으며, 척발(拓跋)은 북조(北朝)에서 위(位)를 바르고 서량(西凉)은 당(唐) 나라에 통합되었다. 요(遼)와 금(金)은 서로 주인 노릇하다가 송막(松漠)에서 합쳐졌고, 주씨(朱氏)가 왕통을 잃으매 천하는 오랑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남풍(南風 천자의 덕)이 떨치지 못하고 오랑캐[胡]의 운수가 날로 자라남은 곧 인사(人事)의 감응이기도 하지만 천신(天時)의 필연이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짓되 중국은 안으로, 사이(四夷)는 밖으로 하였습니다. 중국과 오랑캐의 구별이 이와 같이 엄격하거늘 지금 부자는 ‘인사의 감응이요 천시의 필연이다.’고 하니, 옳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하늘이 내고 땅이 길러주는,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이 사람이며, 여럿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이 임금이며, 문을 거듭 만들고 해자를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장보(章甫)이건 위모(委貌)건 문신(文身)이건 조제(雕題)건 간에 다 같은 자기들의 습속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이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
대저 천지의 변함에 따라 인물이 많아지고 인물이 많아짐에 따라 물아(物我 주체와 객체)가 나타나고 물아가 나타남에 따라 안과 밖이 구분된다. 장부[五臟六腑]와 지절(肢節)은 한 몸뚱이의 안과 바깥이요, 사체(四體)와 처자(妻子)는 한 집안의 안과 바깥이며, 형제와 종당(宗黨)은 한 문중의 안과 바깥이요, 이웃 마을과 넷 변두리는 한 나라의 안과 바깥이며, 법이 같은 제후국(諸侯國)과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먼 나라는 천지의 안과 바깥인 것이다. 대저 자기의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죄가 아닌데 죽이는 것을 적(賊)이라 하며, 사이(四夷)로서 중국을 침노하는 것을 구(寇)라 하고, 중국으로서 사이(四夷)를 번거롭게 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그러나 서로 구(寇)하고 서로 적(賊)하는 것은 그 뜻이 한 가지다.
공자는 주 나라 사람이다. 왕실(王室)이 날로 낮아지고 제후들은 쇠약해지자 오(吳) 나라와 초(楚) 나라가 중국을 어지럽혀 도둑질하고 해치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춘추(春秋)란 주 나라 사기인 바, 안과 바깥에 대해서 엄격히 한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느냐?
그러하나 가령 공자가 바다에 떠서 구이(九夷)로 들어와 살았다면 중국법을 써서 구이의 풍속을 변화시키고 주 나라 도(道)를 역외(域外)에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즉 안과 밖이라는 구별과 높이고 물리치는 의리가 스스로 딴 역외 춘추(域外春秋)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성인(聖人)된 까닭이다.”